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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서스 순례9-아제르바이잔⑤]중세기로 떠나는 바쿠 성곽도시 산책

찰라777 2018. 2. 14. 09:09

중세기로 떠나는 바쿠 성곽도시 산책

시인의 눈과 독재자의 눈

 

바쿠의 올드시티 이체리 셰헤르(Icheri Sheher)로 들어가는 입구에 들어서니 골목길이 미로처럼 연결되어 있다. 이체리 셰헤르는 바쿠 중심부에 있는 옛 도시로 구석기 시대 사람들이 살던 자리에 터를 잡아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져 있어 골목길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바쿠 올드시티

 

도심지역 이체리 셰헤르는 12세기에 축조된 방어벽의 대부분을 보존해 왔다. 올드 시티는 12세기에 지어진 메이든 탑을 중심으로 15세기에 건설된 시르반샤 궁(Shirvanshahs' Palace)이 아제르바이잔의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남아 있다. 올드 시티는 전체가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구시가지로 들어서니 중세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바닥은 고대 로마의 도시처럼 바둑무늬로 깔아 놓았는데 고풍스럽고 아름답다. 성벽을 따라 걸어가는데 주위에는 기념품을 파는 노점상이 늘어서 있다.

 

 

 

 

좁은 골목길을 지나자 작은 정원이 나오고 기이하게 생긴 조각상이 나타났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나무로 조각한 독특한 조각상이다. 안내판을 보나 알리가 바하드(Aliaga Vahid, 1895-1965)라는 시인이라고 한다. 그는 아제르바이잔의 국민시인으로 추앙을 받을 정도로 아제르바이잔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보석 같은 존재다.

 

 

 

 

아제르바이잔 사람들은 그를 가잘의 왕(Khan of Ghazals)'이란 별명을 붙일 정도로 인기가 높다. 가잘(Ghazal)은 페르시아 권 국가를 비롯하여 아랍, 터키, 인도, 중앙아시아에 걸쳐 널리 퍼져 있는 시 문학의 한 형태로 주로 남녀 간의 사랑을 주제로 한 서정시다.

 

바히드는 목수의 마들로 태어나 그의 아버지를 도우며 힘든 노동자의 삶을 살아갔다. 워낙 가난하여 학교도 그만두고 목수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직종에서 노동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고등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타고난 재능을 발휘하여 모든 국민들이 쉽게 이해를 할 수 있도록 간단하고 쉬운 방식을 시를 지었다.

 

 

 

 

바히드의 흉상은 아제르바이잔의 저명한 조각가 라그히드 하사노브(Raghid Hasannov)에 의해서 제작되었는데, 그의 육체와 머리카락에는 그의 시에 나오는 영웅들의 새겨져 매우 복잡하고 독특하게 만들어져 있다. 그의 눈은 가난한 서민들을 연민의 정으로 바라보는 듯 매우 수심이 깊어 보인다. 나는 한 동안 복잡하게 얽혀진 시인의 두상을 바라보다가 일행과 뒤쳐져 있어 잰 걸음으로 좇아갔다.

 

 

 

 

워낙 햇볕이 뜨겁고 강한데다 찜통더위 속이라 비지땀이 나고 헐떡거릴 정도로 숨이 턱턱 막혔다. 길가에는 무궁화 꽃이 피어있고, 드문드문 조형물도 서 있다.

 

 

 

 

 

시르반샤 궁전 입구에서 일행들을 만나 한숨을 돌렸다. 아내는 뭐 그리 볼게 있어 그리 늦게 오느냐고 투덜거린다. 구시가지 높은 위치에 들어선 시르반샤 궁전 입구에 서니 바쿠 시내가 한눈에 바라보였다. 플레임 타워도 손에 집힐 듯 가까이 보였다.

 

 

 

 

궁전 입구에는 나무그늘 아래에 제복차림을 한 소녀들이 밝은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자원봉사를 하는 중이란다. 사진을 좀 찍자고 하니 기꺼이 포즈를 취해준다.

 

 

 

 

아내는 궁전 관람을 포기하고 나무그늘 아래서 쉬겠다고 한다. 지쳐 보이는 아내가 좀 걱정스럽다. 나는 아내를 나무 그늘아래 두고 홀로 시르반샤 궁전으로 들어갔다.

 

 

 

 

바쿠에서 꼭 둘러 봐야 할 곳은 전체가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구시가지이다. 그중에서도 시르반샤 궁전이 가장 돋보인다. 시르반샤 궁전은 이 나라를 통치했던 시르반샤 왕조가 거주했던 곳으로 15세기에 건축되었다. 시르반샤 왕조 칼리룰라 1세와 1501년 전쟁에서 사망한 그의 아들 파루크의 통치 기간에 건설되었다. 그러나 18세기에 러시아 군의 폭격으로 대부분이 파괴 되었던 것을 18세기부터 20세기 까지 복구 작업이 진행되어 오늘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궁전은 도심에서 가장 높은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데 주거지역과 다반하네(Divankhane;공식적인 회의와 연회장소), 재판소, 모스크, 묘지, 회교사원, 목욕탕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궁전 입구는 다반하네와 주거 지역 모두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설계된 상층의 탁 트인 정원에 있는데, 다반하네는 삼면에 아치가 이어진 아케이드와 다반하네 팔각형 건물, 그리고 정사각형 모양의 정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좁은 통로에 관람자들이 가득 차 있다. 나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아내를 생각하며 잰 걸음으로 궁전 내부를 대충 돌아보았다. 궁전 내부 중간에는 그래픽 화면을 통해 중세 당시 궁전의 생활을 만나볼 수 있다. 현재의 궁전은 아제르바이잔의 지나간 역사를 설명하고 있는데, 내부에는 중세 당시 사용했던 카펫, 도자기, 보석, 무기 등 유물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2층으로 되어 있는 주거 지역은 팔각형 돔 모양 현관의 홀로 들어간다. 작은 팔각형의 대기실이 있으며, 궁전의 다른 장소와 연결되어 있다. 4개의 입구가 각기 다른 방으로 연결되며, 2개의 입구는 계단으로 연결된다.

 

궁전의 가장 낮은 곳에 있는 하층 저장고는 정원으로 연결된다. 이 정원에 궁중 점성술사였던 세이드 야야 바쿠비의 묘가 있으며, 원래 직사각형의 회교 사원을 통해 이곳으로 들어올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 기반만 남아 있다. 세히드 야야 바쿠비는 15세기 당시 궁중 점성술사이면서 철학자였는데, 왕의 신임을 받아 그의 무덤을 궁 안에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정원에는 벽에는 이상한 유물들이 매달려 있는데, 바다에서 되찾은 이 명문은 원래 12세기 사바일(Sabail) 섬 요새의 벽이었으나 13세기에 지진에 의해 파괴되어 섬이 바닷물 속으로 잠긴 후 수세기 동안 방치되었다가 18세기 초 바닷물이 낮아지면서 구조물이 들어나게 되었다고 한다. 시바일 섬에서 발굴한 돌 판넬은 사람이나 동물 또는 신화적인 동물들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

 

 

 

 

지막에 기념품 숍을 돌아 나오자 고 헤이다르 알리예프 대통령의 기념관이 나왔다. 기념관에는 알리예프의 치적을 담은 사진들과 홀 중장에 알리예프의 대형 사진이 걸려 있다. 그리고 그 사진 앞에는 바쿠의 올드시티 전경을 담은 모형도가 진열되어 있다.

 

 

 

 

아제르바이잔은 어디를 가나 알리예프의 일색이다. 어디를 가나 그의 사진이 걸려 있고, 국제공항도 문화센터도 알리예프를 이름을 붙여놓고 있다. 그러나 독재자의 모습은 섬뜩할 정도로 표독스럽게 보여 기분이 썩 좋지가 않다. 그는 모든 공공장소에 자신의 사진을 붙여 우상 숭배를 확립하고 모든 국정을 혼자서 장악했다. 외유를 할 때는 전 각료가 공항에 나가 그를 배웅토록 했다. 반면 알리예프는 아르메니아와의 종전을 추진하고, 혼란을 질서 바꾸어 놓은 공적을 인정받고 있다.

 

로버트 카플란은 그의 저서 <타타르로 가는 길>에서 헤이다르 알리예프를 악어의 미소를 띤 능수능란한 조종자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어쩌면 그렇게도 딱 맞는 표현을 썼을까? 그의 눈은 정말 악어의 눈처럼 표독스럽게 쏘아보고 있다. 아제르바이잔의 국민시인 알리아가 바히드의 자애로운 눈빛과는 퍽 대조적인 모습이다.

 

알리예프는 아제르바이잔 공산당 제1서기(1969~1982)을 지내고, 브레즈네프의 정치국원과 KGB장군을 지낸 후, 1990년 아제르바이잔 나히체반 자치공화국 최고회의 의장에 선출 된 뒤, 1993년 대통령이 되어 10년간 강권통치를 했다. 2003년 말 병을 앓은 그는 그의 장남 일함 알리예프에게 대통령직을 세습시켜 준 후 세상을 하직했다.

 

아버지 알리예프로부터 대통령직을 세습 받은 것이나 다름없는 일함 알리예프는 2003년부터 현재까지 26년 동안 아제르바이잔의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다. 그의 아버지 알리예프와 아들 2대는 사실상 50년 가까이 아제르바이잔을 통치하고 있는 셈이다.

 

 

*로버트 카플란의 <타타로 가는 길>1990년 후반 동유럽에서 시작되어 중동을 거쳐 코카서스 3, 그리고 중앙아시아에 이르는 기행문이다. 그러나 그의 여정은 여행기라기보다는 취재와 탐사에 가깝다. 언론인이자 정치평론가인 그는 예리한 통찰력으로 코카서스 3국의 혼란한 정치현실을 흥미진진하고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다.

 

뉴욕타임스가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초기외교 정책은 아마 상당히 난관에 부딪혔을 것이다평할 정도로 부시행정부의 중동정책에 큰 영향을 준책으로 당시 부시 행정부의 필독서로 자리매김을 할 정도였다. 발칸과 중동, 코카서스 3, 중앙아시아에 이르는 21세기 실크로드를 기행 하고자 할 경우에는 꼭 할 번 읽어볼만 한 책이다.

 

나는 시르반샤 궁전에서 나와 아내가 기다리고 있는 나무그늘 아래로 갔다. 아내의 미소를 본 순간 나는 다소 안심이 되었다. 우리는 나무그늘아래서 잠시 휴식을 취 한 뒤 메이든 탑 쪽으로 걸어갔다. 조금만 걸어도 등에 비지땀이 고였다.

 

우리는 미로와 같은 좁은 길을 따라 중세기 풍경이 물씬 풍기는 가리를 걸었다. 그러나 걷기에는 너무나 더운 날씨다. 구시가지의 오래된 길은 반들반들한 바둑판같은 사각형의 돌로 포장되어 있고, 궁전과 실크로드 시대 대상들의 숙소, 음식점, 모스크, 목욕탕 등 오래된 건물들이 밀집되어 있다.

 

 

 

 

 

 

구시가지 거리에는 기념품을 파는 노점상과 숍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사람들의 표정은 밝다. 노인들은 그늘에 앉아있거나 체스를 두며 여유로운 표정을 짓는다. 우리는 구시가지 광장에서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메이든 탑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걷기에는 햇볕이 너무 따갑고 덥지만 차량 통행이 금지된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