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108일간의세계일주

[180]블랙홀로 빠져들어가는 것만 같은 도시 라파스

찰라777 2007. 3. 16. 10:42

 

 

블랙홀로 빠져들어가는 것만 같은 도시, 라파스

 


▲하늘에서 내려다 본 라파스. 마치 하나의 거대한 접시나 블랙홀을 연상케 한다(자료:NASA)

 

드디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수도 라파스La Paz(행정수도. La Paz는 평화라는 뜻임. 헌법상 수도는 수끄레Sucre임)에 도착했다! 그러나 시내로 들어갈수록 원인을 모를 교통체증이 끝없이 이어진다. 파란 군복을 입은 군인과 사이카를 탄 경찰들이 도로가에 도열해 있다. 무언가 심상치 않는 분위기다. 무슨 시위가 있는 모양이다.


볼리비아는 언제나 정세가 불안한 나라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볼리비아는 세기의 혁명가였던 체 게바라가 반정부 게릴라 활동을 하다가 미국이 지원하는 추격대에 체포되어 ‘지금의 실패는 결코 혁명의 종말이 아니다’라는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총살 된 나라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외교통상부의 ‘해외안전정보’에도 라파스 근처는 여행의 필요성을 신중히 검토하라는 경고를 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위험과 불안을 감수하며 마치 돈키호테처럼 라파스로 진군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불안과 위험은 지구상의 어디에나 항상 상존한다. 역설적이지만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내 안방의 잠자는 침대가 가장 위험하다. 탈무드에 보면 사람은 침대에서 90%이상이 죽어간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사람은 세상 밖을 두려워하면 갇혀버린다.

 

 ▲거대한 계곡에 세워진 라파스는 고층빌당과 빈민촌, 그리고 만년설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그러나 세상은 위험한 만큼 아름답다!

멀리 만년설에 덮인 일리마니Ilimani(6402m)의 정상이 석양빛에 붉게 물들어 가고 있다. 아름다운 풍경이다! 흰 눈에 덮인 일리마니 산은 마치 삭막한 고원에 피어난 한 송이 백합처럼 보인다.


버스는 교통 체증을 참다못해 골목으로 빠진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버스는 갑자기 계곡 밑을 향해 곤두박칠 치듯 떨어지기 시작한다. 해발 4000m 고원에서 달팽이처럼 생긴 도로를 따라 빙빙 돌며 계곡에 위치한 도심으로 진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쩐지 거대한 블랙홀로 빠져 들어가는 기분이다. 블랙홀이야, 라파스는…


해발 3632m에 위치한 라파스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수도다. 도시는 거대한 접시처럼 생긴 분지와 협곡에 세워져있다. 라파스는 태고에 엄청난 물이 폭포처럼 아래로 떨어지면서 바위와 자갈이 격류에 휩쓸려지며 만들어진 곳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움푹 팬 거대한 웅덩이처럼 보인다. 때문에 라파스로 진입하는 자동차들은 달팽이처럼 빙빙 돌며 4000m 고원지대에서 갑자기 400m 아래로 굴러 내려가야 한다.


펀펀하고 넓은 고원지대도 많은데 하필이면 답답한 계곡에 도시를 세웠을까? 내 짧은 생각이지만 고산 지대의 바람과 추위를 피해서 살 곳을 찾다보니 움푹 팬 거대한 계곡에 도시가 형성되지 않았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지금가지 여행을 했던 세계의 고산지대에 있는 도시 중 네팔의 카트만두나 티베트의 라사도 분지 이에 도시가 형성되어 있다.

 

 

 ▲빈민촌 엘 알토 너머로 만년설에 뒤덮인 일리마니(6402m) 산이 아름답게 보인다.


버스는 계곡 아래로 굴러 떨어지듯 한 참을 내려간다. 길 양 옆에는 갈색의 집들이 마치 빈대처럼 언덕 위에 빽빽이 붙어 있다. 이 집들은 엘 알토(El Alto)라고 하는 빈민촌이다. 계곡 아래로 내려 갈수록 회색빌딩들의 스카이라인과 언덕위의 빈민촌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그 사이로 눈 덮인 일리마니 산은 여전히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주고 있다. 묘하고 묘하다! 아름다움은 더러움과 깨끗함이 상존하는 곳에서 더욱 돋보이니 말이다.


어둠이 짙게 깔리자 엘 알토의 언덕에는 수만 개의 불빛이 마치 은하계의 별처럼 반짝거리며 나타난다. 계곡의 언덕에 빼꼭히 들어찬 빈민촌에서 밝힌 불빛이 이렇게 밤에는 진귀한 야경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가난한 자들이 켠 불빛의 아름다움이다.


엘 알토 지구를 지나 버스는 골목을 돌고 돌더니 버스터미널이 아닌 프란시스코 광장 근처의 글로리아 호텔이라고 표시된 도심에 정차한다. 고산지대 여행에 지친 여행객들이 마치 묶여진 자루처럼 힘없이 버스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온다. 버스에서 내리니 아찔하고 어지럽다. 한 걸음을 옮기는 데도 골이 띵하다. 더욱이나 라파스의 지형은 울퉁불퉁하여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해야 한다. 마치 우리나라 성남시 상대원동 하대원동을 오르내리는 것과 같다고 할까?

 

라파스는 대성당과 중앙광장이 있는 플라자 무리요Plaza Murillo를 중심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거리가 옹기종기 형성되어 있다. 거리는 모두 다 시장처럼 보일정도로 노점상과 작은 가게들이 밀집되어 있다. 특히 플라자 산 프란시스코 주변의 ‘마술사들의 시장 Mercado de Hechiceria 더욱 신기하고 놀라운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코카 잎, 뱀껍질, 신에게 태워 바치는 라마의 지방, 성생활의 부적 등 원주민들이 필요한 온각 놀라운 것들이 에치세리아 시장에 진열되어 있다.


그런가 하면 라파스에서 남동쪽으로 15km만 벗어나면 초창기 지구의 모습처럼 생긴 ‘달의 계곡 Valle  Del Luna'이 있다. 또한 서쪽으로 황량한 알티플라노를 두 시간 정도 달려가면 남미 최고 불가사의 문명을 이루었던 티아우아나코 유적지가 있다. 푸노에서 출발하기 전에 나는 라파스에서 가보야 할 곳을 미리 생각해두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틈이 없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몇 걸음을 걷자 숨이 턱까지 차오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오늘밤 자려고 찜해둔 숙소는 알로자미엔토Alojamiento Universo 라는 3달러짜리 게스트하우스다. 지도를 보니 걷자면 15여분은 족히 걸려야 할 것 같다.

 

“여보 택시를 타고 가지요? 도저히 걷지 못하겠어요.”

“그래야겠어. 나도 숨이 턱까지 차올라 걷기가 힘들어. 택시를 부르자고.”


내가 택시를 타려고해도 극구 말리던 아내가 오늘만은 너무 힘이 드는지 택시를 타자고 한다. 다른 여행객들도 거의 택시를 타고 하나 둘 사라져 간다. 그들도 걷기에는 너무 힘들기 때문이리라. 아내가 호텔 앞에 서있는 택시를 손짓으로 부른다. 이곳의 택시는 아무 자동차나 택시라고 써 붙이면 택시가 되는 모양이다. 곧 택시가 우리들 곁으로 다가온다.


“알로자미엔토 호스텔로 가는데 얼마냐?”

“10볼리비아노다.”

“너무 비싸다. 5볼리비아노로 가자.”

“오케이! 타라.”


사실 10볼리비아노라고 해보아야 1200원 정도 인데, 남미에선 택시비를 무조건 사전에 흥정을 해야 한다. 운전수의 대답이 너무 시원시원하여 쉽게 흥정이 된다. 미남처럼 생긴 운전수가 우리의 배낭을 받아 트렁크에 싣는다. 기분은 좋다. 그런데 기분 좋게 탄 택시가 엄청난 화근을 몰고 올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