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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우병을 앓고 있는 아내를 위해 한국에 온 네팔화가 죠주의 유일한 희망

찰라777 2007. 6. 22. 13:05

 혈우병을 앓고 있는 아내를 위해  서울에 온

네팔 화가 죠주의 유일한 희망은

아내의 혈우병을 치료 하는 것 

 

 

네팔 화가 하레람 죠주Hare Ram Joju가 혈우병을 않고 있는 그의 아내 사드나와 함께 6월 7일 한국에 왔다. 아내의 혈우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물론, 죠주가 한국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사회봉사 단체인 '가족 아카데미아' 이근후 박사님의 나눔 정신이 크게 결실을 맺은 것이다. 오래전부터 죠주는 '혈우병'을 앓고 있는 아내의 병을 치유하기 위하여 한국에 오고 싶어 했다.

 

그러나 비자, 체재비, 치료비 문제로 쉽게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근후 박사님의 관심과 노력으로 '가족 아카데미'에서 초정장을 보내 비자를 받을 수 있었고, 누구인지는 몰라도 죠주부부의 딱한 사정을 이근후 박사로부터 전해들은 어느 독지가가 죠주 부부의 항공권 비용을 전액 부담했다고 한다. 그리고 죠주 부인은 박사님의 배려로 이화대학 병원에 무료로 입원을 하여 검사와 치료를 받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나눔 정신은 말은 쉬워도 행하기는 엄청나게 어려운 일들이다. 내 살기도 바쁜데 그 까다로운 비자와 조달하기 힘든 비용, 그리고 병원에 무료로 입원하여 치료를 하게 한다는 것들…이 무엇 하나 아무나 할 수 있는 쉬운 일들이 아니다.

  ▲이화여대병원에 입원을 한 죠주 부인 사드나

 

 

▲2004년 한국에서 전시회를 열었을 때의 죠주의 모습(서울 '예띠의 집')

  그림 판매 수입금은 전액 한국 NGO에 기부하고....

 

사실 내가 죠주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04년도에 한국과 네팔의 민간 문화 교류 차원에서 삼청동에 소재한 '예띠의 집' 스페이스 쉘 화랑에서 열렸던 '100 Images of Nepal' 전시회에서였다. 그 때 가족 아카데미아 초청으로 죠주는 100점의 그림을 가지고 와서 전시회를 가졌고, 전시회에서 팔린 그림의 수입금은  전액 한국의 NGO에 기부를 했다.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 때 나는 광주 비엔날레를 보고싶다는 죠주와 단 둘이서 광주를 여행하게 되었다. 그날 하루를 그와 보내며 아내를 향한 그의 마음이 얼마나 지극한지를 알 수가 있었다.  광주에서 늦게 돌아온 날 밤 우리 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그는 부인의 혈우병 치료를  위해 한국 꼭 다시한번 오고 싶다고 말했다.

 

죠주가 돌아간 다음해인 2005년도에 우리는 티베트 여행을 하다가 네팔 카트만두에 잠시 들르게 되었는데 우리는 죠주 부부를 그곳에서 다시 만났다. 인연의 고리란 이렇게 진한가 보다. 그 때 죠주 부부는 아이들과 함께 내가 묵고 있는 카트만두의 유스호스텔로 찾아왔다. 우리는 그날 하루를 죠주 가족과 함께 보냈다. 카트만두의 시장 거리, 스와얌부사원, 파탄, 그리고 죠주의 집까지 들려 차를 한잔 하기도 했다.  

  

 ▲카트만두에서 만난 죠주 아내 사드나와 아이들(2005년)

 

 ▲ 네팔 혈우병 환자 협회에서 혈우병 환자들과 함께(2005년) 

 

그 때 죠주는 나에게 말했다. 아내 사드나의 혈우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한국으로 가는 돈을 모으고 있다고… 네팔은 의료시설이 너무나 취약하여 약도 구하기 힘들뿐더러 혈우병을 치료하는 의사도 거의 없다고 한다. 우리는 그의 안내로 네팔 혈우병 협회까지 방문을 하게 되었다.

 

네팔 혈우병 협회는 카트만두 병원의 어느 좁은 구석에 있었다. 그 날 협회에 온 환자들이 너도나도 약을 좀 보내 달라고 하면서 그들의 주소와 약 이름을 적어주는 데, 이를 바라보는 나는  가슴이 아프기만 했다. 이들의 소원을 들어주지 못하는 무력한 심정이 더욱 부끄러웠고.... 그 때  죠주는 아내를 치료하다보니 네팔 혈우병협회 부회장직을 맡고 있었다. 이는 내가 아내 덕분에 한국 루푸스 환자 협회인 '루푸스를 이기는 사람들'의  회장직을 맡고 있는 처지와 비슷했다.

 

그러나 네팔의 정정이 불안하여 네팔을 찾는 관광객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그림도 팔리지 않아 그는 한국행 비용을 모으는데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그는 이미 아내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집까지 팔고 모든 재산을 쏟아 부은 상태였다.

 

그리고 그를 만난지 그렇게 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의 소식을 간간히 듣기는 했지만 여전히 비자와 비용문제 등으로 아직 한국에 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  그러나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드디어… 죠주는 한국에 오는 꿈을 이루어지게 되었다.  가족 아카데미아의 초청으로 죠주의 간절한 희망이 부서지지 않고  한국행의 꿈이 이루어진것은 위대한 일이었다. 민간 단체의 끈끈한 인정과 도움의 손길이 이루어낸 눈시울 뜨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여간 죠주 부부는 그의 소원대로 한국에 왔다. 죠주가 한국에 왔다는 소식을 박사님으로부터 접하고, 지난 6월 14일 이화여대 병원으로 아내와 함께 그를 찾아갔다. 마침내 우리는 동대문 이화대학병원 10층 60호 병실에서 다시 그를 만났다. 언제나 얼굴에 웃음을 잃지 않는 죠주 부부가 반가이 우리를 맞이했다. 네팔인들은 아무리 환경이 어려워도 얼굴에 웃음이 있었다. 특히 죠주 부부는 만면이 웃음이 넘쳐 흘렀다. 그냥 보기만 해도 행복해 지는 얼굴이다. 아내와 사드나는 서로 포옹까지 했다. 동병상련의 정을 나눈다고나 할까?

 

아내와 사드나는 둘 다 치유하기 어려운 난치병을 않고 있다. 아내는 루푸스란 병으로, 사드나는 혈우병으로. 둘 다 매우 치료 하기 어려운 난치병이다. 그리고 죠주와 나는 그들을 돌보는 보호자의 입장이에 있다. 동병상련이란 이런 때를 두고 한 말 같다. 우린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잘 알 수가 있었다. 이심전심으로… 그날 우리는 창신동에 있는 네팔 음식점 에베레스트에서 함께 네팔음식으로 점심을 함께 하며 그간의 회포를 풀었다.

 

 

태어나서 아직 바다를 구경하지 못했다는 

사드나와 함께 동해 바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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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처음 본다는 사드나. 동해바다의 파도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죠주 부부(2007년 6월)

 

6월 16일, 죠주부부와 우리 부부는 동해바다로 향했다. 태어나서 한 번도 바다를 구경해 본적이 없다는 사드나에게 바다를 구경시켜주기 위해서였다. 하기야 네팔은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내륙이니 바다를 구경하기가 어려웠으리라.

 

그 날, 대관령 유스호스텔에서는 '루푸스를 이기는 사람들' 환우 협회에서 여름 캠프를 여는 날이었다. 10년째 루푸스를 않고 있는 아내는 요즈음 심장에 부정맥과 심부전증까지 겹쳐 사실 건강이 별로 좋지 않은 상태다. 늘 병원의 응급실을 제 집 드나들듯 해야 하는 아내. 그런데도 아내는 오랜만에 만난 죠주 부부와 함께 동행을 하겠다고 나섰다. 내심 걱정이 되었지만 별 수 없다.

 

▲푸른 동해 바다에 혈우병치료의 희망을 안고 서 있는 죠주 부부

 

죠주 부부는 한국의 산이 참 아름답다고 했다. 높지는 않지만 다 그만그만하고, 나무가 많아 정감이 간다고 했다. 터널이 길고 많은데도 그들은 놀라워했다. 대관령 유스호스텔에서 도착하여 우리는 루푸스 환우들과 점심을 함께하며 환담을 나누었다. 캠프 오픈식을 마치고 우리는 곧  바로 동해 바다로 향했다.

 

하조대 해수욕장에 도착을 하자 죠주와 사드나는 환성을 질렀다. 그날따라 날이 청명하여 바다가 한없이 맑고 푸르렀다. 죠주와 사드나는 모래사장을 걸어서 바다로 뛰어 들었다. 그러다가 몰려든 파도에 맞에 흠씬 젖고 말았다. 바다를 처음 접해보는 사드나는 파도가 그렇게 밀려오는 줄을 몰랐기 때문이다.  두 부부의 하체는 온 통 바닷물 세례를 받았지만 그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마냥 즐거워했다.

 

바다를 처음 본다는 사드나는 너무나 신기한 듯 바닷물을 손으로 만져보기도 하며 물속에서 나오려고 하지를 않았다. 바닷물에 자신의 아픈 육신을 씻어내 버리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정말 그녀의 병이 이 바닷물에 말끔히 씻겨 내려가 버리기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날따라 사드나의 소원을 들어주기라도 하듯 바다는 한없이 푸르고 맑았다.

 

▲캐이블카를 타고 설악산에 오른 죠주 부부

 

하조대를 떠나 우리는 설악산으로 가서 권금성에 올라 다시 동해 바다를 바라보았다. 설악산이 높다 한들 네팔의 동산에 지나지 않지만 그들은 마냥 즐거워했고, 죠주는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해가 저물 무렵 콩 요리로 저녁을 먹은 우리는 밤늦게야 동대문 이대병원에 도착을 하였다. 그들 부부를 병원에 내려주고 집에 들어오니 12시다. 아내는 피곤해 보였지만 마음만은 뿌듯한 모양이다.

 

 

세계 혈우병 환자를

한 가족처럼 여긴다는 '한국코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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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혈우병협회 회장 유덕현, 사무국장 김영로씨의 방문을 받고 상담을 받고 있는 죠주 부부

 

한국 혈우병 협회(한국코헴회) 회장 유덕현 씨와 사무국장 김영로 씨를 6월 18일 이화여대 병원에서 만났다. 이는 사드나에게 혈우병을 치료 할 수 있는 어떤 길이 없을까 하는 희망에서 주선을 한 만남이었다. 루푸스 환자협회에서 일을 해본 경험으로 보아 병원이 아닌 환자단체에서 보다 많은 치료정보를 얻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맙게도 기꺼이 한국코헴회에서는 미팅에 응해 주었다. 유덕현 회장과 김영로 국장은 두 분 다 심한 혈우병을 않고 있는 환자였다. 그들을 보는 순간 무언가 뜨거운 것이 목 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특히 김영로 국장은 무려 3번이나 수술을 하였다는데 걷기조차 매우 힘들어 보였다. 그러나 표정만은 매우 상냥하고 여유와 자비가 넘쳐흘러 보였다. 이렇게 불편한 몸을 이끌고 네팔에서 온 환자를 상담을 해 주기 위해 와주다니! 천사가 따로 없다. 이들이 바로 천사가 아니겠는가? 자신들의 처지도 매우 어려운데 세계 혈우병 환자는 다 한 가족으로 본다며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동료환자들을 생각하는 그들이 더 없이 고맙게 여겨졌다..

 

그들은 혈우병의 발생원인과 치료 방법에 대해서 매우 자세하게 죠주부부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발생요인에서부터 치료 방법에 이르기까지… 옆에서 참관을 하며 듣다보니 혈우병에 대해서 자세히 알게 되었다. 혈우병이 유전이라는 것, 1만 명당 1명꼴로 발생한다는 것, 여자가 유전인자를 아들에게 전달해 준다는 것, 유전인자를 전달해 주지만 여자가 혈우병에 걸릴 확률은 극히 드물다는 것(한국 혈우병환자 1850명중 10명, 네팔 300명중 1명) , 혈우병은 피를 응고시켜주는 13개의 인자 중 7번과 8번 인자가 부족하거나 결핍이 되어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사드나의 경우는 8번 인자 결핍이라는 것, 그러나 사드나는 생각했던 것보다 매우 건강한 편이라는 것. 또한 혈우병 치료약은 다른 약에 비해서 매우 비싸다는 것 등....

 

우리나라 혈우병은 1984년부터 단체를 만들어 1986년부터 치료약을 쓰기 시작했으며, 많은 우여곡절 끝에 보험료에서 치료약에 대하여 80%를 부담해 준다고 한다. 지금도 환자들의 치료를 위하여 정부와 협상을 하고 있으며, 세계 혈우병 협회와 제약회사등에  지원요청을 하고 있다고 한다.

 

 

국경을 초월한 끈끈한 도움의 손길

 

▲죠주의 유일한 희망은 아내의 혈우병을 치료하는 것이다

 

당연히 죠주의 관심은 치료약을 무료로 조달할 수 있는 길과 수술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한국코헴회에서는 사드나의 진단이 확정되면 한국의 정부와 제약회사에  치료약을 지원요청을 해 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한국 혈우재단이 운영하고 있는 병원에서 사드나의 검진과 치료, 그리고 혈우병 환자를 위한 임시 숙소에 머무는 것까지 주선을 해주겠다고 했다. 세계의 모든 혈우병 환자를 한 가족으로 여긴다는 너무나 가슴 뜨거운 모습이었다.

 

6월 20일, 다시 한국코헴회 사무실에서 죠주를 부부를 만났다. 죠주는 이대병원에서 일단 퇴원을 하여 한국코헴회에서 보내준 자동차를 타고 혈우재단에서 진찰을 받았다. 사실 이대병원에서는 수술이 아니면 더 이상 사드나에게 해줄 것이 때문이다. 사드나는 난소에서 계속 출혈이 있다고 한다. 네팔에서 왼쪽 난소 수술을 받았지만 출혈이 멈추지 않고 있고, 오른쪽 난소에서까지 출혈이 있다고 한다. 죠주는 이런 아내의 수술을 한국에서 받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수술비용이 엄청나게 비싸서 현재로선 누군가가 수술비를 제공해 주지 않으면 실현하기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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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환경이지만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뭔가 행복을 느끼게 된다. 그들의 밝은 미소는 돈을 주고도 살수 없는 그 어떤 행복을 우리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다(대관령 유스호스텔 루푸스 환자 캠프에 도착하여)

 

사드나는 혈우재단에서 혈우병에 대한 물리치료방법, 운동방법 등 치료 프로그램을 전수 받았다. 그리고 혈우병 환자용 아파트에 머물 수 있는 숙소까지 제공하였지만, 죠주는 언어 소통상의 불편을 들어 서울에 머물고 있는 그의 조카 바쥬 집에 머물면서 통원 치료를 받겠다고 했다. 

 

혈우병 치료는 부족한 혈액을 수혈을 받는 방법, 치료약을 투여 하는 것, 그리고 수술 등의 방법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치료약도 다른 병에 비하여 매우 비싸고, 더욱이 수술비용은 큰 돈이 들어간다. 아울러 김영로 사무국장은 죠주에게 국제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방법을 자세히 일러 준다. WFH(World Federation of Hemophilia), 바이엘Bayer, Baxter등 국제혈우병 지원기구와 제약회사에 어떻게 지원을 요청하는지를 일일히 설명해준다.

 

그 동안 한국의 혈우병 협회가 피나는 노력을 하며 혈우병 환자를 돕기위한 지원요청을 했던 노우하우를 전수해 주는 것이다. 물론 죠주도 네팔에서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효과는 미흡했단다. 한국에 온 죠주의 부인이 얼마만큼 치료의 효과를 거둘수 있을지는 아직 아무도 알 수가 없다. 그래도 계속하여 노력을 하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네팔 화가 죠주의 유일한 희망은 아내 사드나의 혈우병을 고치는 것이다.  그는 오헨리의 마지막 잎새에 나오는 베어맨 화가처럼  아내의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는 마지막 그림을 그리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동해의 푸른 물이 그들의 소원을 들어줄까?  죠주의 아내에게 치료의 손길이 열리기를 간절히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