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Myanmar

[미얀마기행1] 인연

찰라777 2004. 12. 3. 10:49
시간이 흐름이 정지된 이상한 나라
찰라의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타일랜드 체험기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태국 여정도

     ● 여정

     ▷미얀마 : 14일(2004.10.30~11.12), 불교성지 중심
     ▷라오스 : 7일(2004.11.14~11.20), 자연경관 중심
     ▷캄보디아 : 5일(2004.11.24~11.28), 앙코르왓 중심
     ▷태국 : 6일(들락 달락 하며 체류), 치앙마이 중심
     총 32일간




1. 떠나기 전에

□ 산디마 스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따르릉~
중국의 장가계에서 돌아온 다음날인 10월 19일 나는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거사님, 오늘 좀 만날까요?”

그는 거두절미하고 당장에 좀 만나잔다. 누구인지 선 듯 식별하기 어려운 어눌한 음성이었지만 나는 그가 미얀마에서 온 산다마 스님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아내와 함께(이런 일은 언제나 아내가 동행을 한다) 가회동에 있는 ‘미얀마 선원’을 가까스로 찾아갔더니 밤색 가사장삼을 입은 산디마 스님이 안국선원 앞에 미리 나와 있었다.

그가 어느 허름한 한옥으로 나와 아내를 인도했다. 의정부의 어느 절에 선원을 차렸다가 미얀마 근로자들이 드나든다는 사유로 쫓겨나 이사를 한지 며칠 되지 않아 마당과 방이 어수선하다. 부처님도 아직 모셔오지 못하고 이사 짐이 여기저기 그대로 널려 있다. 론지(치마처럼 발목까지 내려오는 미얀마 남녀 공통 평상복장)를 입은 미얀마처사 한분이 노란 이를 드러내며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넨다.

“거사님, 미얀마 가지 않으실래요?”
“언제요?”
“이 달 말일 경에요.”
“네? 그렇게 빨리요?”
“동국대 대학원을 11월 말일부터 다니게 되어 고향 다녀오는 것을 앞당기게 되었어요.”

우리는 어쨌든 그의 제의에 무조건 수락을 했다. 중국을 다녀온 여독이 아직 풀리지 않은 상태였지만 아내가 이런 호기를 놓칠 리가 없다. 미얀마가 고향인 스님을 따라 미얀마 불교 성지순례를 간다는 것 자체가 우리를 자석처럼 강하게 끌어드리고 있었다.


□ 인연

미얀마 근로자들의 아버지로 알려진 산디마 스님. 3년 전 어느 여름날, 우리는 그를 워커 힐 건너편의 암사동 한강둔치를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만났다. 홍수가 지나간 후 아차산 너머로 석양노을이 드리워진 저녁녘이었다. 스님은 흘러가는 강물을 한없이 바라보며 깊은 명상에 잠긴 듯 하였는데, 이윽고 인기척을 느낀 그가 우리를 보고 씽긋 웃었고, 우리도 싱겁게 따라 웃었다. 스님과 우리가 인연을 맺게 된 순간이었다.

그날 밤 우린 그를 우리 집으로 초청하여 차를 한잔 나누게 되었다. 한국말이 서툰 스님과 우리는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서로 의사소통을을 했다. 그 후 스님과 우리는 몇 번 만난 적이 있지만, 이번 연락은 실로 3년만의 일이었다.

우연히 미얀마로 위빠사나 선 수행을 하러 온 한국인 스님을 따라 송광사에서 2년간 화두 선을 공부를 한 그는 지금 한국에 눌러 앉은 지 5년째가 되어 가고 있다. 그가 한국에 눌러 앉게 된 동기는 두 가지라고 한다.

그 하나는 세계적으로 불교의 큰 줄기는 두 나라에 뭉쳐 있는데, 즉 미얀마의 원시불교인 위빠사나 선수행과 한국의 대승불교인 화두 선 수행이라는 것. 그는 미얀마의 원시불교와 한국의 대승불교의 접목을 시도하고 싶단다.

또 한 가지는 미얀마의 한국 근로자들이 약 3,000여명이 되는데, 올 데 갈 데 없는 외로운 이들을 돌보게 되다보니 이제 이들을 두고 도저히 떠날 수 없는 관계가 되어 버렸다고…. 하여간 그래서 그는 고향에도 5년째 가지를 못하고 한국에 미얀마선원까지 개원을 하여 매주 미얀마 근로자들을 상대로 법회를 열며 그들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 그가 절에서 참선공부만 하다가 한국불교에 대한 교리의 폭을 넓히기 위해 동대학교 불교대학원에 입학을 하기로 결심 했다는 것. 대학원에 다니게 되면 미얀마에 더 가기가 어려워 질 것 같아 이번에 서둘러 미얀마 행을 결행하게 되었단다. 그는 미얀마에 계신 어머니를 5년간이나 뵙지 못해 이번에 가면 어머니 젖을 실컷 먹고 오겠다고 벼르고 있다.

하여간 우리는 10월 30일을 D데이로 잡고, 산디마 스님과 함께한 미얀마 행과 더불어 그 주변국인 라오스, 캄보디아 앙코르 왓에 대한 여정을 짜는 한편, 서둘러 배낭을 챙기기 시작했다.


* 사진 : 자신이 졸업했던 사미 강원에서 후배승들과 함께 활짝웃고 있는 산디마 스님(미얀마 몽유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