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108일간의세계일주

남미 배낭여행자들의 아버지 김봉중 씨

찰라777 2008. 2. 3. 12:58

산티아고에서 만난 김봉중씨

그는 한국인 배낭여행자들로부터 '남미 배낭여행자의 아버지'로

불릴만큼 배낭여행자들을 따뜻하게 대해주고 배려를 해준다.

 

 

△남미여행의 관문인 산티아고가 뿌연 스모그로 덮여있다. 

 

 

란 칠레 842 점보기는 산티아고 아르투르 메리노 베니테스 국제공항에 사뿐히 내려앉는다. 남미에 와서 벌써 3번째로 도착하는 산티아고다. 아리카에서 산티아고로,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산티아고로, 그리고 이스터 섬에서 다시 산티아고로…

 

산티아고는 우리가 남미여행을 하는 동안 앵커리지 역할을 한다. 그만큼 산티아고는 남미여행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가 산티아고로 다시 오는 것은 칠레의 끝 파타고니아로 가기 위해서다. 파타고니아에서 우리는 다시 산티아고로 와서 호주 시드니로 날아갈 예정이다. '원 월드' 항공권 옵션은 한 쪽 방향으로만 돌게 되어 있다. 우리는 계속 시계방향으로 돌고 있다.

 

하여간 뱀장어가 잠자고 있는 것처럼 길고 가느다란 칠레라는 나라는 여행을 다닐수록 그 매력에 흠뻑 빠지고 마는 나라다. 그래서 여행기도 긴 땅처럼 남미의 어느 나라 보다 길어진다. 마치 강낭콩의 껍질을 하나하나 벗기듯 신비로운 땅이다.

 

비행기에서 내려 출구를 빠져나오는데 누군가 내 이름이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어? 누구지? 이런 이국에서 나를 반기는 사람은? 분명히 내 이름이다. 내가 그녀에게 다가가 사연을 물으니 김봉중 사장님께서 보내서 왔다고 한다.

 

 

김봉중 사장은 산티아고에서 "지구촌 여행사"를 운영하고 계시는 분인데, 한국에서 출발을 할 때에 강영숙 여행 작가한테 우연히 소개를 받은 분이다. 아니 소개라기보다도 남미를 여행을 하다가 어려움이 있으면 한번 전화를 해보라고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던 것. 그녀가 남극을 여행을 갈 때에 융숭(?)한 대접과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것.

(사진:산티아고에서 만난 김봉중씨)

 

나는 그 전호번호를 잊지 않고 메모를 해 두었는데, 아리카에서 산티아고로 올 때에 만나기로 했다가 서로 길이 엇갈려 만나지 못하고 전화 통화만 했었다. 그 때 나는 이스터 섬을 갔다가 다시 산티아고로 올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돌아오는 날짜를 말해주었었는데 그 날짜를 기억하고 사람을 보내다니!

 

"저는 지구촌여행사의 최수영 입니다."

"어? 최수영? 어쩌면 우리 큰 딸하고 이름이 같지요?"

"아, 그래요?"

"너무나 반가워요. 이거 마치 친 딸을 만난 기분이군요. 하하."

"저도 반가워요."

 

 

지구촌 여행사의 최수영 부장. 아내는 반갑고도 놀라는 표정으로 최수영 부장을 바라보았다. 우리 큰 애 이름이 최수영이다. 그러니 나는 남미의 칠레에서 딸을 만난 듯 오지고 기쁘다. 저런! 생김새도 우리 큰딸하고 비슷하다. 하여간 우리는 지구촌 여행사의 최수영 부장을 따라 산티아고 시내로 들어갔다. 그녀는 매우 친절했다.

 

"한국음식이 먹고 싶지 않으세요?"

 

"말하면 잔소리지요. 먹고 싶다 말다요!"

 

"우선 한국 음식점으로 가서 저녁 식사를 먼저 하시지요? 김 사장님께서는 오늘 교포 골프대회가 있어 끝나시면 바로 오신다고 했어요."

 

"아, 그래요."

 

우리는 최면불구하고 최부장이 안내하는 어느 한국음식점으로 가서 김치에 매운탕에 된장찌개에 소주까지 한국음식을 마음 것 먹었다. 아내도 나도 오랜만에 먹는 한국음식에 주려 있었다.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김봉중 사장이 들어왔다. 작은 체구에 야무진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전화만 한 통화를 했지 처음 만나는 순간이다.

 

"반갑습니다. 김봉중입니다."

 

"뭐라고 말씀을 들려야 할지. 이렇게 환대를 해 주다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수인사를 하고 우린 술잔에 소주를 가득 따라 마주치고 들이키면서 만남의 기쁨을 나누었다.

 

"그래, 여행은 즐거우셨습니까?"

 

"네, 이스터 섬의 매력에 흠뻑 젖어 있다가 오는 길입니다."

 

"이스터 섬, 한 번은 꼭 가볼만한 곳이지요. 그러나 집떠나면 고생이지요. 특히 남미 배낭여행은 쉽지가 않아요. 더욱이 이렇게 몇 달씩 두분만 다닌다는 것은.... 도둑이나 강도는 만나지 안았던가요?"

 

"허, 말도 마십시요. 리마에서 배낭을 도둑맞고, 라파스에서 택시 강도를 만나 수중의 현금을 몽땅 털리고 말았지요."

 

"그래도 몸이 성하니 다행입니다. 그런 정도야 남미에서 흔하지요. 그걸로 액땜을 하신 걸로 생각하시면 편합니다. 이곳 산티아고도 예외는 아닙니다. 배낭을 뒤로 매지 말고 반드시 앞으로 매고 다니시고, 주머니에 돈을 넣어두는 것은 이미 남의 돈입니다. 반드시 전대에 깊숙히 챙겨 넣으셔야 합니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숙소는 정했나요?"

 

"네, 10달러짜리 게스트 하우스로 가려고 합니다만...."

 

"그러시지 마시고 저희 집에 머무르시지요. 누추하지만 게스트 하우스보다는 나을 겁니다. 냉장고에 김치도 많고 라면도 있으니..."

 

"저희들이야 영광이지만, 폐를 끼치게 될 것 같아서요."

 

"이렇게 중년을 넘긴 부부 배낭여행자를 만나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고향 소식도 들을 겸 괜찮으시다면 가시지요."

 

 

 

 

 

 

 

 △산티아고 아르마스광장과 다운타운 표정. 아르마스 광장에서는 축제가 열리고 있다.

 

 

우리가 김봉중 사장을 만난 것은 큰 행운이었다. 그는 한국의 소식이 그리웠고, 우리는 한국인과 한국 음식, 무엇보다도 한국말이 그리웠다. 아무리 좋은 곳이라고 하지마는 외국어에 낯설은 우린 그지겹고 슬픈 외국어에 질릴 수 밖에 없다.

 

더욱이나 남미는 영어도 잘 통하지 않는 땅이다. 스페인어를  전혀 못하는 우린 숫째 몸동작으로 의사를 소통하며 여행을 하고 있는 형편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음성 하나, 단어 하나로 서로의 의중을 알아 볼 수 있는 우리말이 너무도 그리워진다. 우리는 김봉중 사장 집으로 갔다. 그의 집은 아르마스 광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방 두 칸에 아담한 거실. 김 사장 집에 도착한 우리는 다시 칠레산 포도주를 마시며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얼마만인가. 허리 띠를 풀러 놓고 느긋하게 마음을 놓고 쉽고도 쉬운 한국말로 이야기꽃을 피운지가….

 

특히 나보다는 아내가 한국말에 주려 있었다. 남미에서는 우리같은 배낭여행자가 한국인 여행자들을 만나기가 썩 어렵다. 페루 리마에서 한번, 쿠스코에서 한번 우리는 한국의 젊은 여행자를 만났을 뿐이다. 우린 모국어로 굶주린 배를 마음 것 채우며 자정이 훨씬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아르마스 광장에 있는 대성당

 

 

 

김사장은 우리들의 잠자리를 거실에 매트리스를 깔고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는 우릴 거실에 재워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가 배낭여행을 하는 부부이기 때문에 이런 누추한 곳에서 잠을 자는 것을 이해 하리라고 생각했다는 것. 그 역시 여행을 좋아 하기에 여행자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우린 그 어떤 호스텔이나 호텔보다 편안했다. 그것은 우릴 따뜻하게 대해주는 김 사장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향의 별을 보고 잠을 자는 기분이었다.

 

3일 동안이나 김 사장 집에 머물렀다. 냉장고에 가득한 한국음식을 마음껏 꺼내 먹고, 아침이면 산티아고 거리로 나가 쏘아 다니고 저녁이면 마치 내 집처럼 돌아와 잠을 잤다. 3일 동안 영양보충을 충분히 하고 잠을 잘 자서 그동안의 여독도 어느 정도 풀렸다.

   

우린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산티아고 거리를 여기저기 쏘아 다녔다. 산타루시아 언덕에서 바라보는 산티아고의 시가지는 뿌연 스모그로 가득했다. 매연으로 유명한 도시라는 것을 실감케 한다.

 

밤에 올라간 산크리스토발 언덕은 산티아고의 멋진 야경을 조망하게 해준다. 정상에는 하얀 백색의 마리아 상이 자비스런 모습으로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다. 높이 14미터, 무게 36톤에 이르는 거대한 마리아 상 앞에서 불빛이 명멸하는 산티아고를 바라보는 것은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산크리스토발 언덕에 양팔을 벌리고 있는 백색의 성모.

밤에는 마치 하늘에서 내려오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1918년 스페인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프랑스 정부가 칠레에 선물한 백색의 마리아 상은 해발 880미터 정점에 양손을 벌리고 서 있다. 태양이 사라진 뒤 밤에는 밑에서부터 올려 쏘아올린 조명으로 검은 창공에서 성모님이 마치 내려오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게 한다.

 

김 사장은 말한다. 칠레 교포들 사이에 산크리스토발 언덕은 '남산'이라고 불리어 진다고....그것은 산크리스토발 언덕 밑에 한인들이 상가를 형성하고 있고, 언덕의 전경과 야경이 한국 서울의 남산과 비슷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 듣고 보니 서울 남산에서 바라보는 야경과 많이 닮았다.  현재도 산티아고 교민의 90%가 언덕밑에서 의류상가 타운을 형성하고 있다고 한다.

 

 

 

△산크리스토발 언덕에서 바라본 산티아고의 야경(상)

성모 마이라가 내려다 보는 계단에서 김 사장 조카와 함께 (하)

 

 

3일간의 시간이 금방지나갔다. 우리가 파타고니아로 떠나는 날 김 사장은 두꺼운 옷가지와 라면, 그리고 김치를 듬뿍 배낭에 넣어 주었다. 남극이 가까운 파타고니아는 한 여름에도 얼음이 얼고 바람이 강해 우리가 가진 옷으로는 턱도 없을 것이란다.

 

"얼어 죽지 옷이 좀 멋은 없지만 않으려면 이 옷을 가져가세요."

 

"이거 멋진 옷인데요. 정말 가져가도 되나요?"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김봉중 사장은 한국에서 남미로 배낭여행을 가는 여행자들로부터 '남미 배낭여자의 아버지'로 불린다고 했다. 그만큼 멀리 고국에서 온 배낭여행자를 만나면 먹 거리는 물론 이것저것 챙겨준다는 것. 그래서 그가 한국에 오기라도 하면 그에게 신세를 진 배낭여행자들이 다 모여 환영회를 한다.  

 

앞으로 여력이 된다면 한국인 배낭여행자를 위해서 편히 쉬어갈 배낭여행 센터를 마련하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 정말 그는 배낭여행자의 아버지답다.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먹여주고, 재워주고, 옷까지 주니 말이다. 김 사장 집을 떠나면서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다. 목젖이 뜨거워지고 코가 시큰해진다. 동포애, 모국애, 이런거 다 떠나서 그냥 그의 한없이 따뜻하고 포근한 마음이 아름다워서 고맙고 눈물이 날 것만 같다.

 

"파타고니아에 가시거든 푼타아레나스에서 땅 끝으로 가는 것을 잊지 마세요."

 

"아니 그곳엔 뭐가 있지요?"

 

"한 여름에만 땅에 엎드려 바짝 피어나는 남극의 아름다운 꽃들이 반겨 줄 겁니다."

 

"오, 그래요! 거긴 꼭 가봐야겠군요."

 

"그리고 돌아오시면 꼭 연락을 주세요."

 

"이거… 너무나 감사합니다. 먹여주고, 재워주고, 옷까지 챙겨주시니… 뭐라 할 말이 없군요."

 

그는 파타고니아 여행지에 대한 정보까지 자세히 알려주며 우릴 배웅해 주었다. 사람의 인연이란 알 수가 없다. 오늘 만난 인연이 언제 다시 지구촌 어디에서 만날지….

 

지구촌은 하나다.

우리는 지구촌 곳곳에 인연의 사슬을 맺어오고 있다.

그 인연은 금방 맺어진 인연이 아니고 몇 겁을 통해서 맺어진 것일게다.

먼 미래에는 그들이 한국에서 태어나고, 내가 남미의 어느 하늘아래서  태어날지 그 주가 알겠는가!

 

아마 김 사장은 오래전에 우리와 깊은 인연이 있었나보다. 먼 과거 생에 우리한 테 신세를 왕창 졌을까? 나는 김 사장의 따듯한 영접을 인연법으로 밖에 해석을 할 수가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국 만리타향에서 이렇게 생면부지의 여행자를 이리도 따뜻하게 맞이해 줄 수 있단 말인가!

 

 

 

(사진:산타아고에서 만난 김봉중씨. 그는 한국의 배낭여행자들로부터 남미배낭여행자들의 아버지라고 불릴만큼 배낭여행자들을 위혀 따뜻한 배려를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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