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108일간의세계일주

천국같은 계곡, 발파라이소

찰라777 2008. 2. 12. 09:30

천국 같은 계곡, 발파라이소

 

△발파라이소의 엘리베이터. 언덕을 오르내리는 엘리배이터가 100년이 넘은 것도 있다.

 

 

산티아고 알라메다Alameda버스 터미널에서 발파라이소 행 버스를 탔다. 버스는 공해의 도시 산티아고를 벗어나 시원한 해변을 달려간다. 버스를 탄지 1시간 반 정도를 달려가니 긴 내리막길에 다다르고 구불구불한 언덕길에 갑자기 바다를 끼고 있는 아름다운 시가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발파라이소다. 발파라이소Valparaiso는 '천국 같은 계곡'이란 뜻이다. 잉카제국의 지배는 이 지방에까지 미쳐 1536년 스페인 정복자 디에고 디 알마그로Diego de Almagro 일행이 이곳에 처음 들어와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Valpariaso(천국 같은 계곡)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정복자들은 이곳을 산티아고로 들어가는 현관으로 정했고, 현재까지 칠레의 제1항구도시로서 무역과 어업의 중요한 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발파라이소는 산티아고에서 북서쪽으로 130km 떨어진 바닷가에 자리 잡고 있다. 칠레 사람들이 언젠가는 살아보고 싶다는 독특한 매력을 지닌 발파라이소는 칠레 서민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도시이다.

 

 

△발파라이소 거리에 늘어선 야자수 나무. 해안을 끼고 거리엔 야자수가 하늘을 찌르고 있고, 반대편에는 원새의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영원한 청춘시인’ 파블로 네루다도 나처럼 버스를 타고 이렇게 발파라이소를 찾았을까? 노벨문학상은 받은 시인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는 말년을 이 지역에서 보냈다. 그는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편의 절망의 노래'란 시집으로 우리에게도 알려진 칠레의 영원한 청춘 시인이다. 산티아고를 사랑했던 시인도 말년에는 이 지역에 있는 이슬라 네그라의 바닷가에서 저작에 몰두하며 생애를 마쳤다. ‘한 여자의 육체’에서부터 ‘절망의 노래’까지 시인의 노래는 절절하게 지금도 우리들에게 다가오고 있지만, 그는 이제 가고 없다.

 

버스터미널에서 내려 시내로 걸어가니 시원한 야자수 나무가 도로 중앙에 하늘로 쭉 뻗어있고, 툭 터진 태평양에서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온다. 아내와 나는 야자수 그늘이 드리워진 도로의 중앙을 따라서 길을 걸어갔다. 도중에 우리는 시장에서 잘 익은 귤과 바나나를 샀다. 바나나 껍질을 벗겨 아이스크림처럼 입에 물고 우리는 야자수 그늘 밑에 쉬기도 했다.

 

 

△언덕배기에 빼꼭히 들어선 집들은 서민의 애환을 답고 있다.

 

 

거리는 해안선을 따라 쭉 뻗어 있고, 해안선의 반대편에는 모두 언덕배기로 되어 있다. 언덕에는 원색을 칠한 집들이 닥지닥지 붙어 있다. 그 언덕을 버스를 타고 올라가면 한 참을 걸리지만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면 금 새 올라간다. 발파라이소는 오래된 엘리베이터들이 41개나 있다. 이곳의 엘리베이터는 건물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언덕을 기어 올라가는 일종 케이블 카 같은 것이다. 그렇다고 공중에 매달려 있는 케이블카가 아니다. 꼭 석탄을 캐는 갱 속에서 올라오는 괘도 열차 같은 것이다.

 

한 참을 걸어가다 보니 남녀 학생들이 거리에 가득 차 있다. 무슨 학교라고 하는데 거길 올라가면 언덕과 시내 가 잘 보일 것 같다. 학교로 들어간 우리는 무턱대고 건물의 제일 꼭대기로 올라갔다. 내 생각은 적중했고, 학교 건물의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그만이었다. 산더미처럼 쌓인 컨테이너 박스들이 무역선에 실려지고 있었다. 언덕에는 고만고만한 집들이 경쟁을 하듯 매달려 있다.

 

 

△발파라이소의 중심가인 빅토리아 광장 

 

학교에서 나온 우리는 다시 해안의 거리를 걸어갔다. 빅토리아 광장을 지나 시청사를 끼고 골목으로 걸어간다. 거리는 좁고 지저분하나 사람들은 활기가 있어 보인다. 도시의 그림자들이 좁은 거리를 가리고 있다. 소토마요르 광장에 다다르니 다소 숨통이 트인다. 넓은 광장은 프라트 부두로 이어지고 부두에는 역시 컨테이너 박스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소토마요르 부근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언덕을 기어 올라갔다. 상자처럼 생긴 엘리베이터는 덜커덩 거리며 천천히 언덕을 기어 올라간다. 하도 오래되고 낡아 보여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나서 언덕 아래로 곤두박질을 치지나 않을까 조바심이 난다. 이 엘리베이터는 1833년 크리스마스 때부터 사용되어오고 있다고 하는데, 어떤 것은 100년이 넘은 것도 있다고 한다. 갑자기 학창시절 괘도 열차를 타고 통학을 하던 생각이 난다. 창고처럼 생긴 열차를 타고 덜커덩 거리며 통학을 하던 때와 흡사한 풍경이다.

 

 

■ 발파라이소의 추억(동영상)

 


 

 

 

스무편의 사랑의 시와 한편의 절망의 노래

 

 

△언덕배기Cochrane 경의 항해박물관에서 바라본 발파라이소 부두 

 

 

어쨌든 엘리베이터를 탄 순간부터 나는 어떤 향수에 젖어진다. 시간이 멈추어 지고 모든 것이 느리게 간다. 오래된 엘리베이터 때문인가? 아니면 언덕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낡은 집들 때문인가? 그것은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목포시의 유달산 기슭을 연상케 한다.

 

내가 다녔던 덕인중고등학교도 언덕을 오르락내리락 하는 곳이지만 유달산 기슭에 있는 죽동, 달성동, 유달동의 집들도 유달리 언덕이 많아 한 참을 오르락내리락해야만 한다. 이곳이 거기인가? 나는 시방 지구의 반대편 칠레의 발파라이소에서 고향의 향수를 달래고 있다. ‘천국 같은 계곡’의 향수를…

 

이런 언덕배기를 오르내리는 것은 힘들기는 하지만, 싫증나지는 않는다. 걸으면 걸을수록 매력이 묻어나기도 한다. 세탁물을 걸어놓은 창문도 구경을 하고, 다정한 구멍가게도 기웃거리기도 하고, 갈매기들의 끼룩거리는 소리를 듣기도 하고…

 

언덕에는 미술관이라고 쓰인 간판이 있어 들어가 보니 단출하지만 역시 정감이 간다. 몇 점의 그림들이 놓여있고, 발파라이소를 상징하는 역사물들이 진열되어 있다. 조금 더 들어가니 콜럼버스 첫 번째 항해 기함인 산타마리아호를 비롯한 배들의 모형을 만들어 놓은 Museo del Mar Load Cochrane 란 항해박물관이 있다. 안으로 들어가니 배들의 모형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를 즐겁게 한 것은 이 박물관에서 내려다보는 항구의 풍경이다. 멀리 태평양이 탁 트인 바다는 내 속에 있는 모든 찌꺼기들을 확 쓰러 내려 갈 기세다. 항구의 배, 거리의 사람들과 자동차, 덜커덩 거리며 오르내리는 엘리베이터… 우리는 한동안 그 정겨운 풍경들을 침묵하며 바라보았다. 어머니의 바다와 거리의 애환, 갈매기의 고독을.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시에 젖으며... 유달산 기슭을 생각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언덕을 걸어 올라간 곳은 산토도밍고 언덕이다. 이 언덕은 발파라이소의 발상지라고 한다. 1559년에 발파라이소에서 가장 오래된 La Matriz 교회가 세워졌고, 그 후 교회 주변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면서 발파라이소라는 마을을 형성해 나갔다고 한다. 가파른 언덕이나 좁은 골목을 걸어가면 유달리 시간이 느리게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급경사인 곳에 세워진 집들도 매우 독특하다. 여기가 천국 같은 계곡인가!

 

나는 이 산토도밍고 언덕을 오르내리며 다시 내 젊은 날의 초상을 떠 올린다. 유달산 기슭에 돌 틈으로 난 밭길을 따라 학교를 다녔던 추억.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엔 미끄러웠다. 그 눈길 옆 밭에서는 시금치가 자라고 있었다. 그 언덕길은 늘 희망과 절망과 사랑이 교차하는 그런 길이었다. 한 가닥 희망이 다가오다가도 고흐의 까마귀 나는 밀밭처럼 출구가 없는 길이 막혀버린 듯 절망이 가로막기도 했다. 그래도 그 추운 겨울에 압해도에서 불어오는 삭풍을 이겨내고 시금치는 자라났다. 그것은 뜨거운 사랑이었다. 눈밭을 이겨내는 사랑. 희망.

 

발파라이소를 떠나며 나는 다시 영원한 청춘시인 파블로 네루다를 생각했다.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편의 절망의 노래를…

 

‘…… 그러나 이제 복수의 시간이 다가왔고, 나는 너를 사랑한다. 벗은 몸, 이끼의, 갈망하는 단단한 밀크의 육체! 그리고 네 젖가슴 잔들! 또 방심으로 가득 찬 눈들! 그리고 네 치골의 장미들! 또 네 느리고 슬픈 네 목소리!……’(한 여자의 육체 중에서)

 

시인은 첫 머리를 이렇게 사랑의 시로 장식을 했고, 그 스무 편의 사랑의 시 끝에 '절망의 노래'를 읊었다. 사랑의 시만 노래했더라면 시는 그저 평범하게 사랑의 노래로만 그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맨 마지막에 '절망의 노래'로 장식을 했다. 사랑과 절망, 그리고 희망... 이 모든 것들은 그리 멀지가 않다.  절망의 노래가 있기에 사랑의 시가 빛이 나고, 사랑의 노래가 있기에 절망의 노래가 솟아난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면서도 이처럼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새벽의 부두처럼 버려진 이별의 시간을 노래한 시인. 등대처럼 반짝이는 마법의 시간, 조타수의 두려움, 눈먼 잠수부의 격렬함…… 오, 버려진 자여!……  절망 뒤에는 사랑과 희망이 오지 않겠는가? 네루다의 '절망의 노래' 속으로 천국 같은 계곡 발파라이소가 멀어져 간다.

 

 

 

 

 

 

절망의 노래

-파블로 네루다

 

너의 추억은 내가 자리하고 있는 밤에서 솟아오른다.

강물은 그 끝없는 탄식을 바다에 묶고 있다.

 

동틀 녘의 부두처럼 버려진 사내.

떠나야 할 시간이다, 오 버림받은 이여!

 

내 심장 위로 차가운 꽃비가 내린다.

오, 폐허의 쓰레기 더미, 조난자들의 흉포한 동굴.

 

네 위로 전쟁과 날개가 쌓여 갔다.

노래하는 새들은 네게서 날개를 거두었다.

 

마치 머나먼 무엇처럼 너는 그 모든 것을 삼켜 버렸다.

바다처럼, 시간처럼, 네 안에서는 모든 것이 조난이었다!

 

침략과 입맞춤의 즐거운 시간이었다.

등대처럼 타오르던 혼수상태의 시간.

 

항해사의 조바심, 눈 먼 잠수부의 분노,

사랑의 혼미한 도취, 네 안에서는 모든 것이 조난이었다.

 

희미한 안개의 유년 속에 날개 달고 상처 입은 나의 영혼.

길 잃은 탐험가, 네 안에서는 모든 것이 조난이었다.

 

너는 고통에 동여매인 채, 욕망에 붙들려 있었지.

슬픔은 너를 쓰러뜨렸다, 네 안에서는 모든 것이 조난이었다!

 

나는 그림자 드리운 성벽을 뒤로 하고,

욕망과 행위의 피안을 걸었다.

 

오 살이여, 나의 살결이여, 내가 사랑했고 나를 버린 여인이여,

이 음습한 시간 속에서 나는 너를 추억하며 노래한다.

 

하나의 술잔처럼 너는 한없는 애정으로 머물렀고,

또 어떤 술잔처럼 끝없는 망각이 너를 산산이 부숴 버렸다.

 

그것은 검은 빛, 섬들의 검은 고독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사랑하는 여인아, 네 품이 나를 반겼다.

 

그것은 갈증이었고 허기짐이었다, 그리고 넌 과일이었다.

그것은 비탄이었고 폐허였다, 그리고 넌 기적이었다.

 

아 여인아, 네 영혼의 대지 안에, 네 품의 십자가 속에

어떻게 네가 나를 품을 수 있었는지 알 수가 없다!

 

너를 향한 나의 욕망은 참으로 어마어마하면서도 그토록 짧은 것,

가장 엉망진창 취해 있는 것, 그토록 위험하고도 목마른 것이었다.

 

입맞춤의 묘지여, 아직도 너의 무덤들에는 불이 남아 있어,

새들의 부리에 쪼인 포도송이들이 이적지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오, 깨물린 입, 오 입 맞추며 엉켜 있는 팔다리,

오, 허기진 이빨들, 오 비비 꼬여 있는 육체들.

 

우리가 맺어졌고, 우리 함께 절망한

희망과 발버둥의 미친 듯 한 교접.

 

그리고 물과 밀가루 같은 사소한 애정.

그리고 입술에서 방금 떨어져 나온 그 단어.

 

그것이 나의 운명이었고 그 안에서 나의 갈망이 항해하였으며,

그 속으로 나의 갈망은 가라앉았다. 네 안에서는 모든 것이 조난이었다.

 

오, 폐허의 쓰레기 더미여, 네 위로 모든 것이 추락하고 있었다.

네가 말로 다하지 못했던 고통이며, 너를 질식시키는 데 실패한 파도들이.

 

뱃머리에 선 뱃사람의 다리처럼 이리로 저리로

너는 불꽃을 일으키는가 하면 노래도 하였다.

 

노래 속에서 너는 꽃도 피워 내고, 시냇물에서는 부서지기도 했다.

오, 폐허의 쓰레기 더미여, 활짝 열린 고통스러운 깊은 연못이여.

 

눈 먼 창백한 잠수부, 기꺽인 戰士,

길 잃은 탐험가, 네 안에서는 모든 것이 조난이었다!

 

떠나야 할 시간이다, 밤의 일정표가 꽉 찬

단단하고도 냉랭한 시간이다.

 

바다의 소란스러운 허리띠는 해변을 휘어감이고 있다.

차가운 별들이 나타나고, 검은 새들이 날아간다.

 

동틀 녘의 부두처럼 버려진 사내.

떨리는 그림자만이 내 손아귀에서 몸부림치고 있다.

 

아 모든 것의 피안으로! 아아 모든 것의 피안으로!

떠나야 할 시간이다, 오 버림받은 이여!

 

 

ㅁ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 1904 - 1973)

 

-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젊어서는 외교관을 자청하여 동남아시아 등 그의 고국인 칠레의 정반대를 유랑하듯 떠돈 시인이었다. 또한 그는 칠레의 독재자에게 대항하다 이탈리아로 망명을 떠나 오랫동안 망명자 생활을 했다. 이때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바로 <일 포스티노>였다.

 

 칠레 공산당의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다가 살바도르 아옌데와 후보단일화를 통해 세계최초로 선거에의해 사회주의 정부를 탄생시켰다. 미국의 사주를 받은 피노체트의 군부쿠데타로 아옌데 정부가 붕괴된 얼마 후 그마저 세상을 등지자 칠레 국민은 물론 전세계의 양심적 시민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는 스무살이이나 위인 연상의 여인 델리아와 함께 망명생활을 했지만, 그녀와 이혼을 하고 마틸데와 결혼을 하여 말년을 이슬라 네그라에서 보내다가 세상을 떴다. 그의 유해는 발파라이소에 멀지 않은 이슬라 네그라의 집 앞 바닷가에 그의 나내와 함께 안장되어 있다.   

 

 

 

Daum 블로거뉴스
블로거뉴스에서 이 포스트를 추천해주세요.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