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108일간의세계일주

원주민 발등에 키스를 하다

찰라777 2008. 2. 19. 20:16

원주민의 발등에 키스를 하다

 

 

 

ㅁ “원주민의 발=만지면=무사항해=행운이 온다”는  전설을 믿고 항해시대부터 하도 만진 바람에 발등이 번쩍 번쩍 빛나고 있다. 왜 사람들은 거만하게 서있는 마젤란보다 원주민의 발등을 손호할까? 

 

 

ㅁ아르마스 광장에 서 있는 마젤란의 동상. 정복자 마젤란은 대포를 밟고

서 있고, 그 밑에는 절멸한 원주민들이 동상을 떠 받들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좌익의 도시 푼타아레나스

 

산티아고에서 2,400km를 날아온 푼타아레나스는 남극으로 가는 마지막 전진기지다. 남극의 세종기지를 가더라도 이곳을 통과해야한다. 푼타아레나스는 스페인어로 ‘곶의 선단’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1520년 마젤란 함대가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해협을 찾고 있던 중 남하하면서 ‘세계사를 바꾸는 해협’을 발견하였던 것이다.

 

그것은 실로 세계사를 바꾸는 위대한 발견이었다. 푼타아레나스는 마젤란 해협을 쉴 새 없이 통과하는 대형선박들과 함께 번성하였으나, 1914년 파나마 운하가 개통이 되면서부터 번성은 종말을 맞이하게 되었고, 남극으로 가는 마지막 전진기지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푼타아레나스는 좌익의 도시였다. 이들이 바로 살바도르 아옌데를 자신들의 대표로 뽑은 사람들이었다.

 

푼타아레나스는 공항에서 20km나 떨어져 있다. 콜렉티보(합승버스)를 타고 바람 부는 해안가를 따라 푼타아레나스 시내로 들어갔다. 그러나 오늘 우리들의 최종목적지는 푸에르토나탈레스다. 푸에르토나탈레스로 들어가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과 모레노 빙하, 그리고 밀로돈의 동굴을 돌아본 뒤 다시 푼타아레나스로 돌아올 예정이다. 아르마스 광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버스터미널에 콜렉티보가 멈춘다. 푸에르토나탈레스로 가는 파체코Pacheco버스가 18시30분에 있었다.

 

이미 그곳에는 우리처럼 배낭을 걸머진 여행자들이 벌써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모두가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으로 가는 여행자들이다. 주로 젊은 층으로 파이네 국립공원으로 트레킹을 하러가는 남녀여행자들이다. 파체코 버스표를 3500페소에 산 뒤 큰 배낭을 맡겨두고 아르마스 광장으로 갔다. 출발시간까지는 아직 3시간 정도의 여유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원주민 발등=만지면=무사항해=행운

  

ㅁ  하도 만진 바람에 발톱까지 닳아있는 모양이다.

 

 

푼타아레나스는 인구 11만의 조용한 도시다. 남극이 가까운 이곳은 하늘이 맑았다가도 어느 틈엔지 먹구름이 몰려와 덮어버리기도 한다. 바람의 대지는 구름도 빠르게 왔다가 빠르게 지나가는 모양이다. 지구 땅 끝의 도시는 어쩐지 쓸쓸하고 고독해 보인다. 하늘은 빗방울을 뿌리더니 곧 멈춘다. 우리들이 우산이 없는 줄을 어찌 알았을까?

 

마젤란! 그는 내 젊은 날의 우상이었다! 그는 최초로 세계 일주를 한 사람이다. 아르마스 광장에서 제일먼저 눈에 띠는 것은 마젤란의 동상이다. 대포에 한 발을 거만하게 걸친 마젤란이 정복자의 모습으로 진군하듯 서 있고, 그 밑에는 원주민들이 마젤란을 떠받쳐들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원주민들은 ‘마젤란의 발견’으로 인하여 절멸의 위기에 놓인 아라카르프족과 우웰체족이라고 한다.

 

원주민에게는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굴욕적인 동상이다. 19세기 후반, 푼타아레나스가 전성기를 구가했던 당시 떼 부자가 되었던 브라운 메넨데스라는 사람이 세운 것이라고 하는데, 이곳에는 그 사람의 이름을 딴 박물관까지 있다. 정복자와 피정복자의 참혹한 대조다.

 

 

 

 

이 동상은 ‘죽어가는 갈리아 인 The dying Gaul’(기원전 3세기경에 재작된 대리석 조각상으로 죽음을 기다리며 땅 위에 쓰러져 부상당한 켈트족 병사의 모습. 현재 로마 캄피돌리오 박물관 소장)을 본 떠 조각한 것이다. 마젤란이 이런 동상을 과연 원했을까?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그가 저렇게 원주민에게 치욕적인 모욕을 주는 동상을 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허지만 아르마스 광장을 찾는 여행자들은 마젤란보다도 그 밑에 앉아 있는 원주민에게 관심을 보인다. 여행자들은 벌거벗은 채 한 발을 내려뜨리고 있는 원주민의 발을 누구나 예외 없이 만져본다. 활처럼 휘어진 막대기 같은 것을 들고 있는 원주민은 멸종위기에 있는 아라카르프족이다. 그런데 예부터 이 원주민의 발을 만지면 “무사히 항해를 마친다”는 전설 덕분에 항해시대부터 지금까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면 이 원주민의 발등을 만진다. 하도 만져서 발등과 발가락, 다리까지 번쩍번쩍 빛이 날 정도다.

 

 

 

 

보석처럼 빛나는 발등! 항해시대에는 이런 막다른 지구의 땅 끝에 오면 누구나 위기감에 처하게 되고 말 것이다. 이런 머나먼 오지에서 살아서 다시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위기감과 긴박감이 그들을 짓눌렀으리라. 그러니 “원주민의 발=무사항해=행운” 이런 등식이 심리적으로 성립할 만도 하다. 생명을 지켜줄, 그리고 행운을 안겨줄, 그 “무엇”인가를 의지하고 믿고 싶은 마음이 절로 나지 않겠는가. 그러나 나는 지금 마치 순례자의 입장이 되어 원주민의 발등을 바라보고 있다. 모든 것을 놓아버린 순례자로! 그러면서도 어떤 한 끈을 놓지 못 한 어리석은 순례자로!

 

원주민의 발등은 빗방울에 촉촉이 젖어있다. 금 새 내리다가 멈춘 빗방울에 젖어있는 발등을 만져보는 기분은 야릇했다. 마치 통한의 눈물이 발등으로 흘러내리는 것 같아 왠지 마음이 서글퍼지고 숙연해 진다. 원주민의 발등을 사람들이 얼마나 만져댔든지 발톱 부위까지 반질반질하다. 발등을 만지다가 나는 문득 로마 베드로 성당에 있는 ‘베드로의 발등’이 생각이 났다.

 

 

 베드로 성당에 있는 베드로의 청동좌상의 발등도 이 원주민의 발등처럼 반질반질했다. 13세기 이후 수많은 순례자들이 베드로의 발등을 만지고, 입을 맞춘 덕분에 베드로의 발등은 반질반질하다 못해 뭉뚝해져 있었다. 더욱이 19세기 교황 비오 9세가 특별회칙을 통해 베드로의 발등에 입을 맞추어야 전대사를 받을 수 있다고 하자, 유럽 전역에서 수많은 순례자들이 한꺼번에 몰려와 키스를 하는 바람에 베드로의 발등이 더욱 심하게 닳아 버렸다.

 

나는 일종의 동족애를 느끼며 아라카르프 족의 발등에 키스를 했다. 베드로의 발등처럼 화려한 교회 안에 있는 것도 아니고 지구의 땅 끝 시내 한 가운데 있는 원주민의 발등이야말로 가장 낮은 곳으로 돌아가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겠는가? 낮은 마음, 그것은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마음이다. 아마 지금쯤 죽은 마젤란의 영혼은 참회하며 겸손의 미덕을 더듬을 것이다.

 

광장 주위에는 옛 금권 정치 시절에 지어진 대성당, 호텔, 그리고 고관들의 클럽이로나 이용되는 옛 부호들의 건물과 현대식 건물들이 나란히 서 있다. 우리는 대성당과 아르마스 광장 주변에 있는 가게들을 기웃거리다가 터미널로 가서 푸에르토나탈레스로가는 버스에 올랐다. 저녁 18시 30분이다. 이곳에서 푸에르토나탈레스까지는 4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하니 아마 한밤중에나 도착을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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