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108일간의세계일주

그레이 빙하, 그 고려청자의 빛깔!

찰라777 2008. 6. 5. 10:01

 

 

'그레이 빙하', 그 고려청자의 빛깔!

 

 

▲파타고니아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의 그레이 빙하. 마치 고려청자의 빛깔처럼 곱다.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축축한 바람은 안데스 산맥에 부딪쳐 엄청난 눈을 내리게 하고, 산골짜기에 쌓이고 쌓인 눈은 거대한 빙하를 만들어 낸다. 칠레와 아르헨티나에 걸쳐 있는 이 지역의 안데스 산맥에는 수십 개에 달하는 거대한 빙하가 동서로 흘러내리고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빙하국립공원이 있는 곳. 그래서 이 빙하들은 “내셔널지오그래픽 트래블러가 뽑은 죽기 전에 가 보아야 할 50곳” 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그 중에서도 칠레 쪽에 위치한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의 '그레이 빙하(Grey Glacier)'와 아르헨티나 측의 '페리토 모레노 빙하(Perito Moreno Glacier)'는 절대로 놓칠 수 없는 빙하중의 압권이다.

 

 

 

죽기 전에 가 보아야 할 50곳

 

 

그레이 빙하 하류에 위치한 그레이 산장에서 빙하 투어 티켓을 사들고 보트를 타기 위해 밖으로 나가니 다시 비가 내린다. 지척에 유빙(遊氷)들이 둥둥 떠내려 오고 있다. 이곳 빙하의 특징은 겨울에도 최저기온이 비교적 높으므로 얼음의 녹음과 재결정이 짧은 사이클로 반복되어 빙하의 말단에서는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굉음을 내며 호수로 무너져 내리는 절경을 볼 수 있다.

 

 

 

 

 

 

▲1년 내내 강한 바람이 부는 그레이호수는 놓칠 수 없는 빙하투어 코스다. 

 

 

 

빙하지대로 가는 외줄다리를 건너는데, 출렁거리는 외줄다리 밑으로 차가운 물이 콸콸 흘러내리고 있다. 구명조끼를 입고 본선으로 가는 고무보트를 탄다. 보트가 바람에 일렁거린다. 바람이 차갑다.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은 일 년 내내 강한 바람이 분다. 빙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란다. 본선에 오르니 제법 큰 배다. 이윽고 본선이 빙하를 향해 출발한다.

 

 

본선이 호수 중앙으로 나아가 빙하로 가까이 다가 갈수록 사나운 바람이 배를 집어 삼킬 듯 몰아친다. 산골자기에 있는 호수를 가는데 웬 구명조끼인가 하고 의아심을 품었었는데 이제야 의심이 풀린다.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파도가 배 꼭대기까지 퉁겨 올라온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엎드린다. 아내는 아예 배 뒷전에 엎드려 있다. 이거 이러다가 빙하호수에 묻히는 건 아닌가!

 

 

 

 

천년 후에라도 다시 오고 싶은 곳

 

 

그러나 퉁겨 올라온 물이 흘어내리는 창밖으로 비추이는 풍경들은 죽여주도록 아름답다. 우뚝우뚝 솟아올라 있는 미사일 같은 산봉우리, 코앞으로 둥둥 떠내려가는 거대한 유빙. 내 평생 언제 이런 절경을 볼 수 있겠는가. 빙하에 부는 바람을 가슴에 품어버리자.

 

 

그런데 정작 빙하의 본체에 가까이 다가가자 바람이 약하게 숨을 쉰다. 우리는 빙하 가까이 가서 빙하를 만져보기도 했다. 그런데 희한하다. 수십km에 달하는 빙하의 본체는 짙은 회색인데, 유빙들의 색깔은 기이할 만큼 짙푸른 청색이니 말이다. 아니 가까이서 보는 빙하는 그 빛깔이 너무나 아름답다.

 

 

"이건, 정말이지.... 고려청자 빛깔을 닮았어!"

 

 

그 도드라지는 색깔이 너무나 비현실적이고 인공적인 느낌마저 든다. 형용할 수 없는 그 색깔은 마치 우리나라 고려청자의 빛깔을 닮았다고나 할까? 그랬다. 빙하 속살은 마치 곱디고운 고려청자의 빛깔이다. 빙하를 만져보는 아내의 모습이 마치 고려청자에 조각을 해 놓은 것처럼 보인다.

 

 

 

 

▲세상에서 가장 깨끗하고  고운 빙하에 박제를 하고... 천년 후에 다시  찾아올 수 있을까?

 

 

 

"자, 빙하 고려청자에 당신의 모습을 조각해 볼까?"

"당근!"

"천년 후에도 그대로 있겠지?"

 

 

아내의 모습이 청자에 마치 박제를 해 놓은 듯 카메라에 잡힌다. 빙하인간! 그래 빙하 인간은 천년 후에도 다시 살아난다고 했어. 그 빙하 사이로 뾰쪽하게 솟아오른 '파이네 그랑데'와 '퀘르노스 델 파이네'가 한 자루의 칼이나 야수의 이빨처럼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빙하병풍위에 두 겹으로 겹치는 파이네의 산봉우리 병풍 같은 모습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다.

 

 

 

 ▲마치 미사일처럼 하늘로 치솟아 오른 파에네 그랑데와 퀘르노스 델 파이네의 웅장한 위용

 

 

 

윤회의 사슬 속에 다시 인간으로 태어난다면 천년 후가 되더라도 다시 찾아오고 싶은 아름다운 곳, 그레이 빙하! 우리는 호수로 밀려가는 유빙처럼 오던 길을 다시 되돌아왔다.

 

 

▲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의 트레킹 코스와 그레이 빙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