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우리강산/경상도

[예천]내성천의 고집센 사람들

찰라777 2009. 11. 7. 00:38

예천은 몰라도 김진호는 안다?

 

내성천의 고집 센 사람들, 예천

 

▲ 예천은 소백산에서 흘러내려온 맑은 물이 굽이쳐 흐르는 고장이다. 내성천의 백사장은 투명한 빛이 난다.

 

 

소백산 우람차게 나래를 펴고

내성천 굽이쳐서 기름진 들판

물맑고 인재많은 선비의 고장

빛내자 우리예천 슬기의 고장

샘물이 솟아나듯 영원 하리라

-예천군민가 중에서-

 

지난 10월 31일은 예천에 있는 학가산자연휴양림에서 심장이식환자들의 정기 모임을 갖게 되어 아내를 따라 휴양림에서 이틀 밤을 지내게 되었다. 학가산휴양림은 나의 죽마고우가 주인인 탓에 가끔 들리곤 하는 아주 조용한 휴양림이다. 그런 연고로 해서 이번에 심장이식환우들의 모임장소를 내가 알선을 하게 되었고, 이식환자인 아내 보호자 격으로 나는 이번에도 휴양림에 머무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중앙고속도로가 뚫리기 전 예천은 오지중의 오지였다. 서울에서 예천을 가려면 수안보, 단양을 거쳐 꼬불꼬불한 죽령고개를 넘어서 다섯 시간 이상을 가야만 했다. 그러나 이제 중앙고속도로가 뚫린 데다 중부내륙고속도로까지 뚫려 3시간이 채 걸리지 않아 하루코스로 다녀오는 데도 전혀 무리가 없다. 사실 사람들은 양궁선수 김진호는 알지만 예천을 잘 모른다. 세계양궁선수권대회에서 사상 첫 5관왕을 차지한 신궁(神弓) 김진호는 예천출신으로 '예천진호국제양궁장'까지 있다.  

 

▲늦가을  단풍이 마지막 활활 타오르고 있는 학가산자연휴양림 입구

 

예천이 고향인 사람을 몇 사람 알고 있지만 한결같이 고집이 세다. 소백산의 물을 받아 맑은 내성천이 휘돌아치고 학처럼 고고한 학가산이 떡 버티고 있는 지형은 고집께나 센 사람들이 배출 되었을 법하다. 중앙고속도로예천 IC에서 빠져나가 휘돌아 치는 내성천을 지나면 곧 학가산휴양림에 도착한다. 학가산 입구에는 마지막 늦가을 단풍이 붉게 타오르고 있다.

 

학가산자연휴양림은 예천에서 그리 멀지 않는 곳에 자리 잡은 조용한 휴양림이다. 사람이 학을 타고 노니는 모양을 하고 있어 학가산(해발882m)이라고 불리는 곳에 자리 잡은 휴양림은 겉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내성천을 가로 지르는 다리를 지나 여자의 옥문처럼 굳게 닫힌 계곡을 지나야만 비로소 아담하게 자리한 통나무집들이 보이게 된다.

 

▲조용한 휴양림 학가산자연휴양림. 50평짜리 학가산장. 20여명의 심장이식환우들과 함께 지낸 통나무집.

 

학가산 주변에는 소백산 줄기인 봉화 오전에서 발원한 내성천이 굽이굽이 흐르고 있다. 낙동강 서쪽의 제1원류인 내성천은 영주를 거쳐 예천을 가로질러 예천 풍양의 삼강에서 합류를 한 뒤 장장 106km를 흘러 낙동강의 물길을 열어주고 있다.

 

내성천은 수많은 명현거유를 낳았고, 문학도 꽃을 피웠다. 안동 인재의 반이 예천이라더니, 퇴계의 외가가 바로 지보면 죽림리 박씨 가문이다. 퇴계의 제자만도 31명에 달한다. 내성천에 유학의 향내가 곳곳에 묻어나는 이유가 바로 퇴계선생에게 있는 것이다. 조선초 유학의 대이론가인 조용(趙庸)은 예천에서 수많은 후학을 길러냈다. 조용의 제자인 별동 윤상(尹祥)은 군서기에서 대사성애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윤상은 세자 문종을 가르쳤고, 왕세손인 단종의 스승이기도 하다. 예천기행의 저자 조동윤은 고려 말과 조선에서 정승을 지낸 예천 사람이 7명이나 된다고 했다.

 

 

자연이 살아 숨쉬는 내성천

 

내성천은 자연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학가산자연휴양림으로 들어가는 다리 밑으로 은빛 백사장이 눈이 부시게 펼쳐져 있다. 바닷가 해수욕장도 아닌, 강 상류의 깊은 산골 천(川)에 축구장을 수백 개나 지을 만큼 큰 백사장이 펼쳐져 있다. 백사장은 낮에는 은빛 모래로 눈이 부시고, 밤에는 달이 백사장에 꽃을 피워 눈이 부시다.

  

보문면에서 내성천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반달모양으로 굽이치는 중간지점의 강변 절벽위에 서 있는 서원이 도정서원이다. 예천이 배출한 정승 약포 정탁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약포는 유성룡과 함께 충무공 이순신을 신원한 인물이다. 실학의 거두인 다산 정약용도 당시 고을 원님으로 부임한 아버지를 따라 예천에 왔다. 당시 17살이었던 다산은 예천의 반학정에서 과거공부를 했고, 내성천을 유람하여 글도 남겼다. (사진 : 도정서원)

 

도정서원에서 호명면으로 내려가면 내성천을 대표하는 경승지인 선몽대가 나온다. 퇴계 이황의 종손이며 문하생인 이열도가 1563년 창건한 선몽대는 신선이 꿈을 꾸며 노닐었던 장소란다. 선몽대(仙夢臺)라는 대호 세글자는 퇴계선생의 친필이다. 선몽대 입구에는 수백 년이 된 아름드리 소나무 숲이 백사장과 어우러져 내성천의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대위에 올라서면 내성천 백사장의 평사십리가 한눈에 펼쳐진다. 울창한 노송이 우거진 솔숲은 산책하기에 아주 좋은 길이다. 내성천을 바라보며 막걸리 한잔하고픈 마음이 덜컥 난다. 막걸리 한잔 걸치면 시라도 한 수 떠오를 것 같은 풍경이다. 퇴계도 선몽대의 아름다움을 못 잊어 시로 노래했다. 약포 정탁, 서애 유성룡, 학봉 김성일도 선몽대에서 시 편액을 남겼다고 한다.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보자 한강수야"라는 시조를 쓴 청음 김상헌도 고향인 안동 소산에서 선몽대를 오가며 시를 남겼다고 한다. (사진 : 선몽대)

 

 

내성천의 백미는 회룡포이다. 삼강마을 뒤 비룡산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회룡포는 물과 마을, 백사장이 만나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회룡포는 용이 비상하는 것처럼 내성천을 휘감아 돌아간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350도를 휘감아 돌아가는 육지 속의 섬마을 회룡포는 드라마 '가을동화'를 촬영지이기도 하다. (사진 : 회룡포)

 

예천에는 이 내성천을 따라 삼강주막, 천년고찰 용문사, 한천사, 명봉사, 보문사 등 명찰과 선몽대, 가오실공원 등이 있고, 500년이 넘은 황목근, 세금 내는 소나무인 석송령 등 천연기념물이 있다. 또한 최근에 개발을 하여 오픈한 예천온천도 내성천 주변에 있다.

 

신종풀루에다가 모처럼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이번 가을 들어 가장 추운 날이 될 거라는 기상대의 엄포로 감기를 우려해서인지 예상보다 적은 20여명의 환우들이 전국에서 모여들었다. 50평의 학가산장은 방이 다섯 개에 넓은 홀, 화장실 3개 그리고 부엌이 딸려 있는 통나무집으로 모임을 하기에는 딱 좋은 장소다.

 

 

쌀겨를 먹여 기른 예천생균참우 

 

예천은 사실 먹을거리가 별로 없다. 굳이 내세운다면 '예천 참우'라는 소고기다. 최근 개발한 예천생균제참우는 김치, 토종된장, 등에서 추출한 유산균, 효모, 바실러스, 누룩곰팡이 등 유익한 미생물을 쌀겨에 발효시켜 만든 "생균제(生菌製)"란 사료를 소에게 먹여 탄생한 고기다. 지보면에 있는 지보참우마을에 가면 다른 데보다 싼 가격으로 생균참우를 불고기나 육회로 먹을 수 있다.

 

지보참우마을에서 사온 참우로 학가산장에서 숯불구이를 해 먹는 맛은 기가 막히다. 다행히 비가 오지 않아 야외에서 바비큐 판에 고기를 구어 소주를 한잔 곁들이니 세상이 다 내 것이다. 심장이식환자들도 남자들은 소화제로 소주를 한잔하며 카아~카아 를 연발한다.

 

맑은 공기에 예천참우, 그리고 소주를 한잔 곁들이니 기분은 최고다. 자정이 가까워오니 비가 한 방울씩 떨어진다. 우린 모두 늦가을 빗방울 소리에 환우들은 밤이 깊어가는줄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운다. 내일 아침엔 비가 좀 멈춰주면 조으련만... 학가산에 올라 학의 등을 타고 소백산으로 날으는 꿈이나 구어 볼까?

 

 

●예천 지보참우마을

주소 경북 예천군 지보면 소화리 530-5번지

전화번호 054-653-92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