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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빼로 마이데이~

찰라777 2009. 11. 11. 08:57

작은 것이 희망이다!

 

11월 11일 11시 11분.

이날 이 시각 우리는 작은 산사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니 누가 뭐라하던 '빼빼로데이'는 나의 날이다.

 

작은 산사에는 첫눈이 내렸다.

나는 암자의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문 앞에 서서 첫눈을 맞으며 면사포를 쓰고 암자를 걸어들어 오는 신부를 바라보았다. 하늘에서 떨어진 하얀 눈발이 바람에 휘날리는 신부의 면사포로 떨어지더니 곧 사라져 버렸다.

 

하얀색과 하얀색이 합쳐지면 당연히 눈발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나는 흰 눈을 맞으며 암자로 들어서는 내 인생의 반려자가 마치 '눈의 나라'에서 내려오는 여인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암자의 어간(법당으로 들어가는 가운데 문)에 서서 나는 신부를 기다리고 있었다. 신부가 내 앞을 지나 어간을 통해 면사포를 휘날리며 먼저 작은 법당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따라 나는 검정색 싱글을 입고 빨간 양말(나는 내 양말이 빨간색이었다는 것을 결혼식 사진을 보고 나중에야 알았다. 법당에서는 구두를 벗어야 했으므로 사진 속에는 양말색깔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보였다)을 신고 법당의 다다미방을 힘차게 걸어 들어갔다.

 

하객은 신부 측 가족과 우리가족 뿐이었다. 다 해보아야 30명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하기야 더 많이 왔더라면 작은 법당에 다 들어올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객의 숫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우리의 손에는 각자 국화꽃 일곱 송이가 들려져 있었다. 국화꽃은 우리들의 결혼 예물이었다. 이윽고 불교 예절에 따라 의식이 진행되었다. 모든 의식은 목탁소리에 맞추어 진행되었다. 사실 나는 그 때만해도 불교에 대하여 아무것도 몰랐다. 절에 가본적도 없으며, 불경을 읽어 본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불교의 문외한이었다. 내가 돈이 없는 것을 간파한 아내 될 사람이 절에서 결혼식을 올리자고 했고(공짜였으므로), 가난한 나는 아내의 의견을 따르게 되었다. 나는 그저 스님이 시키는 대로 따라서 했다.

 

결혼식 절차는 의외로 간단했다. 일곱 송이 국화꽃을 부처님께 바치는 것을 끝으로 우리는 부부로서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났다. 나는 국화 일곱 송이를 부처님께 바치고 순식간에 나의 아내가 되어버린 여인을 면사포를 통해서 바라보았다. 사랑스러웠다. 가난한 나는 아내가 되어준 여인을 정말로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눈은 폭폭 내리고, 가난한 나는 면사포를 쓴 여인을 사랑해서' 

 

나는 가난한 백석이 나타샤를 사랑하듯 면사포를 쓴 여인을 사랑했다. 눈이 폭폭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암자로 온 나는 면사포를 쓴 여인을 사랑하고 있었다. 나는 면사포를 쓴 아내의 손을 잡고 눈이 펑펑 쏟아져 내리는 암자 밖으로 나왔다. 축복의 눈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부부로서 세상 밖으로 나왔다. 눈은 계속 내리고 있었다. 나는 허공에 춤을 추며 떨어져 내리는 '축복의 눈'이 좋았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지만 하늘이 내려준 눈의 축복을 받은 나는 행복했다. 아마 아내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으리라.

 

첫눈이 내리던 산사, 면사포를 휘날리며 암자로 들어오는 아내의 모습이 바로 어제 같은데, 벌써 36년이란 세월이 흐르다니… 세월 참 빠르다. 세월은 인생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시간은 행복을 만들어 주지 않는다. 그러니 스스로 행복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이 날이 오면 나는 언제나 새로 시작하는 마음이 된다. 산사에서 첫눈을 맞으며 맨주먹으로 시작했던 우리의 인생을 생각한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행복의 시간'으로 돌아간다. 가진 것이 없으므로 행복했던 시간 속으로…

 

우리들의 삶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결혼도 행복을 찾는 일 중의 하나이다. 세상 사람들 누구나 행복해지고자 하는 바람은 매 한가지다. 철학자도, 왕자도, 대통령도, 굴뚝 청소부도, 환자도, 건강한 사람도 누구나 행복을 찾는 일은 명백한 자기의 권리다.

 

사람들이 얼마나 각자 다른 행복의 이상을 마음속에 품고 있는지, 그리고 자기 삶의 그런 행복 원천을 찾아 얼마나 색다른 곳을 찾아 헤매는지를 살펴보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많은 사람들은 행복을 부의 축적으로 여긴다. 그런가 하면 권력 과시나, 예술과 문화 성취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도 있다. 지적 정신 탐구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도 있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육체적 쾌락과 물질적 소유를 잣대로 행복을 가늠한다. 그리고 자신이 설정한 목적을 달성했을 때 사람들은 행복해 한다. 하지만 설정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거나, 자신의 재능이 떨어지거나, 환경이 따라주지 않으면 사람들은 곧 불행해지고 만다. 재능과 환경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잘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행복은 지속적이어야 한다. 행복해지려면 우선 낙관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낙관주의는 작은 일에 희망을 거는 것이다. 낙관주의는 세상을 선하게 바라보고 살아가는 일이다. 세상을 선하게 살아가려면 '사랑'이 우선이다. 사랑하며 작은 일을 하는 것, 작은 일에 기뻐하며 끝까지 사랑하면 행복은 온다.

 

"사랑이 전부다!"

 

11월 11일 빼빼로 마이 데이!

오늘 아침, 나는 다시 첫눈이 내리던 날 면사포 쓴 여인을 사랑했던 날로 돌아간다. 가난한 백석이 나타샤를 사랑했듯 가난한 나는 하얀 면사포를 쓴 아내를 사랑한다. 오늘 밤에 눈이라도 폭폭 내리면 더 없이 행복해지리라.

 

눈은 푹푹 내리고

나는 면사포를 쓴 여인을 사랑하고

면사포를 쓴 여인은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중에서 응용)

 

빼빼로 데이 아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