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80일간의티벳일주

얼하이 호의 실낙원, 남조풍정도

찰라777 2009. 12. 15. 07:46

<잃어버린 지평선>을 찾아서②

얼하이 호의 실낙원, 남조풍정도(南沼風情島)

 

 

▲바다처럼 넓은 얼하이 호의 남조풍정도에 있는 인어공주 상

 

 

남조풍정도(南沼風情島)는 다리의 얼하이 호에 있는 작은 섬이다. 얼하이 호(洱海湖)는 사람의 귀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바다처럼 넓은 호수다. 250㎢에 달하는 호수는 과연 바다처럼 보인다. 그래서 바이족들은 호수라는 말을 쓰지 않고 바다 “海” 자를 써서 이해(洱海)라고 부른다.

 

해발 1900m 높이에 이렇게 넓은 호수가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호수 건너편에는 4000m 높이의 창산이 거대한 요새처럼 의연이 솟아있다. 중국인들은 다리를 중국의 스위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해발 3500m 이상의 고봉들이 무려 19봉우리나 흰 눈으로 덮인 채 이어져 얼하이 호와 어우러진 풍경이 스위스 못지않게 아름답다.

 

▲평균 3500여 미터의  창산 19개 봉우리로 둘러싸인 얼하호는 중국의 스위스라고 불릴정도로 아름답다.

 

 

윈난성에는 150만 명에 이르는 바이족(白族)들이 살고 있다. 바이족들은 약 3000년 전부터 이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왔으며, 8세경 당나라 군대를 물리치고 남조국(南沼國,737-902)을 건설했다. 남조국은 중국 남서부 일대에 큰 영향력을 행사해 왔으며, 미얀마 북부까지 장악을 하였다. 남조국은 250년간 윈난성을 통치하며 세력을 떨쳤으며, 다리는 버마로드의 중심도시로 발전하였다.

 

남조국이 멸망한 후 단사평(段思平)이 건국한(937년) 다리국(大理國)은 남조문화를 계승하고 불교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백만 문화를 개화시켰다. 다리국은 송나라와 거의 교섭이 없이 300여 년간 태평성대가 계속되었다. 그러나 평화로웠던 대리국은 1254년 칭기즈칸의 손자인 원나라 쿠빌라이 칸의 침략으로 멸망을 하고 만다.

 

 ▲남조풍정도로 건너 가는 보트

 ▲남조풍정도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바이족 전통가옥

 ▲남조풍정도 가운데 우뚝 서 있는 고급 호텔. 엄청 비싸다. 눈요기만 하고 우린 전통가옥 게스트하우스에서 합숙했다.

 

 

"얼하이 호를 중심으로 배아족의 문명을 일으키며 평화롭게 살아가던 다리국은 저 잔악무도한 쿠빌라이 칸의 말발굽에 그만 무참하게 짓밟히고 만 것이지요."

 

다리 문은 쿠빌라이 칸에 의해 멸망을 한 다리국이 못내 아쉬운 듯 열변을 토하며 설명했다. 우리는 선착장에 도착을 하여 분홍색 지붕을 한 배를 타고 남조풍정도로 향했다. 호수는 잔잔했다. 섬까지는 불과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다. 그러나 유람선은 섬을 한 바퀴 나서 돌고 선착장에 멈추었다. 우리나라 남이섬을 연상케 하는 남조풍정도는 가운데 하얀색의 호텔이 우뚝 서있고, 물가에는 바이족의 전통가옥이 엎드리듯 옹기종기 모여 있다.

 

섬에 도착하자 맨 먼저 눈에 띠는 것은 사일모(沙壹母)라는 청동 조각상이다.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사일모는 바이족의 여신이다. 이 사일모라는 여신이 낳은 여덟 명의 자손이 부족의 대표가 되어 남조국을 다스렸다고 한다.

 

 

 ▲남조국 여신 사일모. 여덟명의 자손을 낳아 남조국을 통치했다고 한다.

 

 

 

 ▲남조풍정도의 기암괴석

 

남조풍정도는 원래 남조국의 왕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 돌아다니다가 발견한 섬이다. 그 후 남조풍정도는 왕족들의 휴양지로 이용했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며 이곳에는 바이족의 공동묘지로 변해버렸는데, 1997년 중국정부가 무덤을 모두 이장시키고 1억 위안을 들여 지금과 같은 관광지로 단장을 하였다고 한다.

 

하늘엔 구름이 잔뜩 끼어 있다. 구름사이로 햇빛이 가끔 눈부시게 쏟아진다. 쏟아지는 햇빛 사이로 어떤 계시라도 내릴 듯 이상야릇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푸른빛을 띠며 창산에서 빗살처럼 찬란하게 쏟아지는 햇빛은 신비감을 자아낸다. 우리는 사일모 상에서 왼쪽으로 섬의 해변을 따라 걸었다. 섬에는 이름 모를 꽃들이 화사하게 피어 있었다. 인형들이나 살법한 아름다운 섬에는 전체가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정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해변으로 통하는 동굴을 지나니 섬 속의 작은 마을이 나온다.

 

 

 ▲창산에서 신비하게 내려 비치는 햇살. 어떤 계시라도 내려올 듯

 ▲바이족 전통가옥의 침대. 대청에 여러개의 침대를 놓아 두었는데 창문이 없어 호수와 하늘이 그대로 내다 보인다.

 

 

우리는 어느 민가에 도착을 하여 여장을 풀었다. 나무로 지어진 중국전통 목조건물은 창문이 없다. 가옥 이층으로 올라가니 바다처럼 넓은 호수로 문이 뻥 뚫려 있다. 문틈 사이로 호수가 그림처럼 보인다. 사통팔달 문이 없는 방은 그대로 숨을 쉬며 살아있는 느낌을 준다. 이곳은 일 년 내내 기후가 온화하여 문이 필요 없다고 한다.

 

침실에 누우면 그대로 하늘이 보인다. 아름답다! 화장실에도 문이 없다. 화장실 앞에는 작은 연못을 하나 만들어 놓고 들어가기 전에 한바가지 물을 떠서 들어가야 한다. 일을 보고나서 그 물을 부어 오물을 흘러내려가게 만들어 놓았다. 섬에는 모기도 없단다.

 

 

 ▲전통가옥에 걸려 있는 청사초롱

 ▲호수에 누워있는 인어 상

 

 

짐을 풀어 놓고 섬 산책에 나섰다. 호숫가에는 청사초롱이 걸려 있고 바다처럼 쏴아~ 쏴아~ 하며 파도소리가 들린다. 호수에는 인어공주 같은 여인의 나체상이 조각되어 설치되어 있다. 인어공주와 다른 것은 하체가 그대로 사람모양이다. 한 여인은 선채로 바람에 휘날리는 자신의 머리칼을 잡고 있고, 다른 한 여인은 비스듬히 누워서 오른 손을 들고 있다. 수면위에 머리를 풀어 헤치고 늘씬한 육체를 자랑하고 있는 모습이 섹시하게 보인다.

 

섬은 온통 꽃 천지다. 빨간 부겐베리아가 화사하게 피어 바람에 흔들거리며 노을빛에 더욱 화려하게 보인다. 유토피아가 따로 없다. 이런 곳이 바로 천국이 아닐까 생각이 될 정도로 섬은 평화롭고 아름답다. 얼하이는 창산에서 흘러내려온 18계곡의 물이 폭포처럼 흘러들어 형성된 담수호다.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은산옥이(銀山玉洱:눈 덮인 창산, 구슬 같은 얼하이)’라고 부른다.

 

 

 ▲화사하게 피어 있는 부겐베리아. 섬 전체가 하나의 작은 정원으로 이루어져 산책을 하면 마치 밀톤의 실낙원을 거니   는  기분이 든다.

 ▲아름다운 정원수

 ▲바다처럼 넓은 얼하이 호

 ▲석양노을에 비치는 호수의 황혼과 창산, 그리고 실낙원같은 정원. 이 아름다운 호수에 당나군대 7만명이 남조국과 전투에서 몰사하여 수장되었으며 그들의 영혼이 호수 속에 깃들어 있다.

 

 

이 아름다운 호수에 7만 명의 당나라 군대가 몰살을 당한 곳이라니 믿기지가 않는다. 역사는 그 들의 영혼을 호수에 담고 있다. 남조의 지도자 몽사조가 당의 지원 아래 육조를 하나로 통합을 하여 남조국을 건설하자 당은 몽사조를 윈난왕으로 책봉하고 조공을 받치도록 했다. 허지만 당의 사사건건 관섭에 반기를 든 남조는 토번국(현 티베트)과 연합하여 당에 대항했다. 당시 토번국은 당이 한때 조공을 바칠 정도로 강성했다.

 

754년 당나라는 무려 7만 명의 군대를 동원하여 남조를 공격했다. 그러나 남조군의 치밀한 전략에 당군은 대패를 하고 말았다. 얼하이를 이용한 남조국의 수전에서 당군은 전체가 몰사하여 수장되고 만다. 수장된 당군의 시체를 수습하여 장사를 지낸 곳이 다리의 다이허청 경내에 있는 만인총이다. 766년 남조왕 각라봉은 당과 화친을 위해 남조덕화비를 세우고 3800여자로 된 비석에 전쟁의 실상을 자세히 기록했다.

 

 

 ▲천하의 명당터라는 남조풍정도의 광장. 반질반질한 곳이 핵심적인 터라고 한다.

 ▲석양노을에 웅장하게 서 있는 남정풍정도의 조각

 ▲다리국을 멸망시킨 원나라 황제 쿠비라이 칸. 그는 몽골제국 칭기즈칸의 손자다.

 

 

“대리는 천하의 명당입니다. 그냥 지나가면 느끼지를 못하는데 며칠 머물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머리가 맑아지는 곳입니다. 사람과 자연이 가장 조화가 잘 되는 지역이지요. 호수와 산, 그리고 고성, 훈훈한 인심, 이런 것들이 명당과 조화를 이루고 있지요.”

 

호텔 광장의 중앙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다리문은 얼하이와 다리를 천하명당 터라고 극찬한다. 그는 세상 곳곳을 떠돌아다니다가 다리의 아름다움에 반해 허물어져가는 집을 얻어 ‘제3초대소(다리문 게스트 하우스)’를 꾸미고 눌러 앉게 되었다고 한다.

 

텁수룩한 수염에 구수한 목소리가 세상을 초월한 듯한 모습이다. 큰돈은 벌지 못하지만 체면, 눈치 보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좋아 마음이 편하다고 한다. 모든 것을 접고 이곳에 삶의 터를 마련하여 살아가는 그의 용기와 자유로운 삶이 갑자기 경이롭게 보이기까지 한다.

 

호텔 앞 광장을 대리석으로 깔아놓은 모습은 과연 다리가 대리석의 산지임을 실감하게 한다. 광장 우측에는 역시 대리석으로 빚어낸 영웅들의 동상이 있는데, 다리국을 멸망시킨 쿠빌라이 칸의 동상이 말을 타고 있다.

 

신혼여행을 온 두 커플은 오늘 밤 이 호텔에서 묵기로 했다. 우리는 그를 따라 잠시 호텔 구경을 했다. 5성급 최고급 호텔은 너무 비싸서인지 손님이 없었다. 응접실, 침실, 욕실이 너무 호화로웠다. 욕실에는 장미꽃 한 송이까지 꽃아 놓았다.

 

 

 

▲신혼부부가 달콤한 허니문을 보낼 멋진 방과 화장실. 우린 전통가옥에서 합숙을 했다. 

 

 

“달콤한 허니문을 보내시길…”

 

호텔에서 나와 왼쪽으로 걸어 나가니 백색의 관세음보살이 우뚝 서 있다. 242개의 대리석을 붙여서 빚어냈다고 하는데 장관이다. 사원은 없는데 백의 관음보살은 홀로 섬을 지키고 있다. 관세음보살상에 앞에 서서 합장을 하고 잠시 묵상에 잠겼다. "지금 내가 어느 하늘아래 서 있는 거지요?" 그러나 관세음보살은 빙그레 미소만 지을 뿐 대답이 없다.

 

 ▲242개의 대리석으로 조성한 백의 관세음보살

 

 

 

 

날이 어두워져 숙소로 돌아오니 바이족 아주머니가 고기를 굽고 있다. 보름달이 휘영청 떠오르고 있었다. 달밤에 야외에 때 아닌 주안상이 멋지게 차려져 있었다. 이게 얼마만의 호사인가? 배낭 여행자에게는 꿈도 꾸지 못할 산해진미가 차려져 있다. 한국인 관광객을 위하여 다리 문이 여러 가지 밑반찬을 준비하여 가지고 온 것이다.

 

일단 허기진 배를 채우자, 술잔이 오가고 술이 거나하게 취하자 이제 노래까지 나왔다. 이건 여행 중에 만난 오랜만의 횡재다. 섬에는 아무도 없다. 오직 우리 일행만 있어 마치 별세계의 어느 하늘 아래에서 취홍에 젖어 있는 기분이다.

 

 

 

▲고기를 굽는 바이족 원주민 

 ▲얼하이 호의 보름달. 침실에 누우면 문이 없어 그대로 보름달이 보인다.

  

저녁식사를 하고 이층 방에 올라가 누우니 그대로 보름달이 하늘에 걸려 있다. 넓은 대청마루에 여러 개의 침대를 놓고 함께 잠을 자는 공동 침실이다. 마치 그 옛날 시골에서 멍석을 깔아 놓고 별을 해는 기분이 든다. 누워서 밝은 달을 바라보니 잠이 잘 오지 않는다. 아내와 나는 일어나 다시 호숫가로 나가 해변을 거닐었다.

 

호수 건너 다리에는 불빛이 아득히 반짝거린다. 휘영청 밝은 보름달, 찰랑거리는 호수, 모든 것이 시적이다. 달이 밝으면 별빛이 희미한 법인데 무공해 얼하이 호수는 별과 달이 함께 어울려 빛나고 있다. 아내와 나는 바위에 걸터앉아 오래도록 별과 달을 바라보았다. 달빛이 호수에 서려 찰랑거렸다.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자정이 되어서야 파도소리에 잠이 들었다.

 

 

 ▲남조풍정도의 일출

 ▲더욱 선명하게 보이는 부겐베리아. 실낙원은 희망의 아침을 열어주고 있다.

 ▲평화롭게 잠들고 있는 강아지에게 인사를 하고 실낙원을 떠났다.

 

 

이른 아침 파도 소리에 잠을 깼다. 호수엔 물안개가 자욱이 끼어 있었다. 환상적이다. 푸른빛이 도는 아침의 빛깔은 희망적이다. 아침 공기를 가르고 다시 섬 산책에 나섰다. 어제보다 모든 것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 새들이 어디선가 날아와 노래를 부른다. 창산에 떠오르는 태양이 가슴을 밝게 비추인다. 희망의 아침이다.

 

남조풍정도의 하룻밤은 천국 같았다. 티베트로 가는 여정 중에 가장 릴렉스한 시간이 아닐까? 사람은 때로는 이렇게 여유작작하며 아무생각도 없이 그냥 머물러 있는 시간도 가져야 한다.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 오늘은 얼하이에서 모든 걸 잊어버리고 마음껏 자유를 누리며 에너지를 충전하는 거다.

 

 

 

(윈난성 다리 얼하이 호수 남조풍정도 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