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80일간의티벳일주

동양의 작은 베니스 리장

찰라777 2010. 2. 11. 07:56

 

<잃어버린 지평선>을 찾아서 ⑦

해발 2400미터 고원에 세워진 물의 도시

 

▲소녀가 연꽃 종이배에 소원을 담은 촛불을 켜고 있다.

 

 

해발 2400미터 물의 도시 리장고성

소녀가 연꽃 종이배를 띄우네

소녀야, 너의 소원은 무엇이냐?

촛불을 켠 종이배가 실개천으로 흘러가네

모두의 소원을 담고 흘어가네

오, 꺼지지 않는 소원의 등불이여!

 

▲실개천에 소원 촛불을 띄워보내는 여행자들 

 

 

 

물레방아 돌아가는 물의 도시

 

집집마다 홍등 밝힌 나시족의 전통가옥, 바둑판처럼 만들어진 미로, 그 미로를 따라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물길, 굽고 굽어지다가 다시 꺾인 길과 실개천, 하염없이 늘어선 능수버들… 미로를 따라 실개천을 걷다보니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먼 과거로 회귀한 듯 한 느낌이 든다.

 

"어휴~ 잘 못하면 길을 잃어버리겠어요."

"길을 잃어보아야 고성 안에 있지 않겠소?"

 

 

▲도시 전체에 홍등이 점멸하는 리장고성은 밤이되면 불야성을 이룬다.

 

 ▲고성에는 실개천이 혈관처럼 흐르고 있어 도시 전체가 생체리듬처럼 살아있음을 느낀다.

 

 

우리는 손을 잡고 홍등이 점멸하는 실개천을 따라 걸어갔다. 도시 전체가 마치 거대한 축제의 현장처럼 보였다. 리장은 동양의 작은 베니스라고 불리어진다. 고성입구의 물레방아로부터 시작된 수로는 혈관처럼 고성으로 흘러간다. 작은 실개천이 혈관처럼 흐르는 고성은 도시 전체가 살아있는 느낌을 준다. 서울의 북촌도 리장처럼 물길을 살려 놓으면 세계적긴 관광지가 되지 않을까?

 

이태리의 베니스는 바다의 석호(潟湖, lagoon;바다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서 생긴 호수)에 건설된 도시이지만, 리장은 해발 2,400m의 계곡에 건설된 고성이다. 리장은 해발 5,500m의 위룽쉐싼(玉龍雪山)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웨룽쉐싼에서 흘러내린 눈 녹은 물을 헤이룽탄(黑龍潭)에 저장했다가 방류하여 리장고성으로 흐르게 한다.

 

 

 ▲ 헤이룽탄에서 바라본 웨룽쉐싼(해발 5,500m)

 

 ▲위룽쉐싼은 나시족의 성산으로 이곳에서 눈 녹은 물을 해이룽탄 호수에 저장했다가 고성으로 흘러보낸다.

 

 

시내 북쪽 끝자락에 있는 헤이룽탄 공원은 만년설에 뒤덮인 위룽쉐싼을 조망 할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은 중국 남서부에서 가장 유명한 사진 촬영지의 하나이다. 그림처럼 맑은 호수를 돌면서 산책하는 기분이 그만이다. 호수에는 오봉루, 용신사, 득월루 등의 정자가 있고, 동파 문화 박물관도 있다.

 

"오! 구름에 덮인 설산이 아름답군요!"

"위룽쉐싼이란 나시족의 성산이라오."

 

리장에 살고 있는 나시족들은 위룽쉐산을 민족의 기원이 담긴 불멸의 성산으로 섬긴다. 위룽쉐싼은 대삭도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해발 4,500m까지 단숨에 올라갈 수 있다. 케이블카에서 내리면 계단을 따라 4,700m 고지가지 갈 수 있으나 고산병이 있는 여행자는 조심해야 한다.

 

헤이룽탄에서 흘러내린 물은 고성 쌍석교에 이르러 두 갈래로 나누어진다. 고성 광장 서쪽으로 흐르는 서하(西河)와, 동쪽으로 흐르는 중하(中河)로 나누어진다. 서하에는 갑문이 있는데, 이 갑문을 열어 지대가 낮은 중하로 물을 흘려보내 광장 바닥을 청소한다. 이 같은 독특한 위생시설은 세계적으로 매우 보기 드문 시설이다.

  

▲물레방아가 끊임없이 돌아가는 리장고성은 동양의 베니스라고 불린다. 고성으로 흘러가는 물길은 이곳 물레방아에서부터  시작된다.

 

 

"오우, 물레방아!"

"늘어진 능수버들과 기막힌 조화를 이루고 있군!…"

 

물레방아 돌아가는 마을. 고성입구에는 커다란 두 개의 물레방아가 돌아간다. 물레방아는 고성으로 들어가는 물길의 시작점이다. 옥하(玉河)라 불리는 수로는 거미줄처럼 고성 곳곳으로 흘러간다. 가정의 담장을 지나 마당까지 이른다. 능수버들과 붉은 홍등이 어우러진 수로는 폭이 3~6m에 달하며 좁은 곳은 1m가 넘지 않는다.

 

 

▲리장고성에는 실개천을 따라 354개의 크고작은 다리가 있다. 

 

 ▲사람들은 나무로 만든 작은 쪽 다리를 신기한듯 건너간다. 개천 주변은 대부분 카페나 기념품 숍이다.

 

 

옥하 수로에는 354개에 달하는 다리가 있다. 다리들은 돌과 나무들을 이용하여 다양한 형식으로 만들어져 있다. 그 중에서도 유명한 다리는 대석교, 쇄취교, 만천교, 남문교, 마안교 등으로 대부분 명, 청대에 만들어진 다리다. 고성에는 수많은 우물이 있으며, 대다수의 우물들은 삼안정(三眼井)형식을 취하고 있다.

 

사계절 축제의 도시

 

수로 옆에는 작은 카페와 기념품 숍이 늘어서 있다. 밤이 되면 카페에는 여행객들로 꽉 들어차며 흥청거린다. 사람들은 촛불을 켠 종이배를 염원을 담아 수로에 띄워 보낸다. 염원 촛불은 나시족 명절에서 유래된 풍습이다. 이태리에의 베니스에서는 곤돌라를 타고 운하를 돌아본다면, 리장에서는 수로에 종이배를 띄워 보내며 한 잔의 술에 풍류를 즐기는 곳이다.

 

"우리도 저 소원 초불을 띄워 보내요."

"조오치!" 

 

 

 ▲소원 종이배를 파는 나시족의 아가씨들. 우리도 이 아가씨한테 연꽃 종이배를 샀다. 

 

▲촛불을 켠 연꽃 종이배가 실개천을 따라 흘러내려 간다. 

 

 

▲수로를 따라 흘러가는 종이배는 어디까지 흘러갈까? 

 

아내와 나는 각자의 염원을 담은 연꽃 종이배에 촛불을 켜고 수로에 띄워보냈다. 촛불이 가물거리며 수로를 따라 흘러갔다. 과연 저 촛불은 얼마동안 꺼지지않고 흘러갈까? 우리는 수로를 따라 사라져 가는 촛불을 바라보며 잠시 침묵에 잠겼다.

 

무엇이 우리를 여기까지 오게 했을까? 아직도 티베트까지의 길은 멀다. 꺼지지 않는 마음의 촛불이야 말로 우리들의 희망이다. 마음의 등불! 그래 "정신(精神)" 은 보이지 않는 것이요, 육체는 보이는 것이다. 보이지않는 마음에 촛불을 켜면 영원히 꺼지지않을 것이 아니겠는가!

 

 

▲밤이 오면 리장의 거리는 축제의 도시로 변한다. 리장은 크고작은 축제가 연중 열린다.

 

리장고성의 밤은 더욱 화려하다. 쓰팡제를 중심으로 거리는 거대한 유흥가와 쇼핑센터로 변한다. 전통복장을 한 나시족 여자들이 매일 밤 전통가무를 춘다. 서구에서 온 여행자들은 그 분위기에 어울려 나시족들과 함께 춤을 추며 밤이 깊어가는 줄을 모른다. 음력 3월 13일 풍년제 축제가 열리는 시기와 5월 노동절 축제때에는  중국 각지에서 모인 관광객들로 거리는 북새통을 이루며 방값 등 무든 물가가 몇 배로 뛰어 오른다.

 

7월에는 횃불축제가 열린다. 이 축제의 유래는 난자오 왕국의 한 음모 사건으로 거술러 올라간다. 내용인즉 당시 왕에 의해 불타 죽은 한 남자의 부인이 왕의 간절한 구애를 속임수를 써서 피하고 불 속으로 뛰어들었다는 것에서부터 횃불축제는 시작되었다고 한다.

  

오래도록 머물고 싶은 도시 

 

 

 

 

 

능수버들이 휘날리는 환상적인 고성에 들어서면 누구나 오래 머물고 싶은 생각이 든다. 단 이틀만 머물겠다고 했던 우리의 여정도 5일 동안이나 발목이 잡혔다. 실개천에 늘어선 홍등이 점멸하는 거리는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완벽한 정원이다. 낯선 이국의 여행자들은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낙원의 꿈을 꾼다.

 

그래서 여행자들은 발목이 잡힌다. 하루가 일주일로 변하고, 일주일이 한 달로 변한다. 아니 영원히 머문 사람도 있다. 오스트리아의 식물학자인 조지프 록(Joseph Rock). 그의 아버지는 그를 신학자로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날마다 지도책을 펼쳐들고 상상의 날개를 펼치다가 중국을 열망하게 되었다. 그는 하와이에서 산 크리스트 어를 포함한 중국어 등 8개의 언어를 공부했다.

  

록은 그가 열망하던 중국으로 왔고, 1922년부터 1949년까지 이곳 리장에서 윈난의 식물채집을 하며 살았다. 그는 8만개의 식물과 1600마리의 새, 60마리의 포유동물을 채집하여 본국으로 부쳤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학문 추구보다도 리장을 중심으로 한 중국 서부 일대를 여행한 매우 수수께끼 같은 기인이었다.

 

록은 생의 많은 부분을 나시 문화연구에 바쳤다. 록은 리장 외곽의 위후(Yuhu; Nguluko) 마을에 살았다. 그는 미 국무성과 하버드 대학의 후원을 받았으며, 후에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중국주재원이 되었다. 록이 식물을 채집하러 행차를 나설 때는 길이가 장장 800m에 달했으며, 요리상사 수십 명의 하인들이 포함되었다.

 

록은 <중국남서부의 나시왕국>을 비롯하여 여러 저서를 남겼으며, 죽기 전에 나시 사전 출판까지 마무리를 하여 놓았다. 그는 리장에서 살다가 리장에서 파란만장한 생애를 마감하였다.

  

 ▲한국인이 경영한다는 사쿠라 카페

 

  

  

우리는 홍등이 켜진 수로를 따라 무작정 걷다가 벚꽃마을(Sakura cafe)로 들어갔다. 카페는 초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우리는 가까스로 수로 옆 능수버들아래 자리를 잡았다. 리장에서 유일하게 한국음식을 파는 곳이다. 현지인과 결혼을 한 한국인이 경영을 하는 곳이라고 하는데, 한국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여행자들이 즐기는 곳이다.

 

맥주 한 병을 시켜 아내와 둘이서 축배를 하며 갈증을 시키고 있는데, 한국인 아가씨 네 사람이 다가왔다. 그들은 단동에서 왔다고 했다. 그런데 아가씨 세 사람이 무리한 여행으로 감기 몸살을 앓고 있었다. 그들에게 가지고 있는 비상약인 아스피린을 주었다. 기차를 타고 단동에서 리장까지 쉬지 않고 왔으니 무리할 만도 하다. 그러나 리장은 그러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