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섬진강일기

청개구리야, 집 잘 보고 있어?

찰라777 2010. 8. 31. 08:31

청개구리 친구에게 집을 맡기고...

 

  

오늘은 하루 종일 비가 오락가락 했다. 청개구리들이 유리창 높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것으로 보아 비가 좀 많이 내릴 것 같다. 햇살이 비쳤다가 어느새 먹구름이 몰려와 바께스로 물을 퍼붓듯이 쏟아져 내리는가 하면 천둥 번개와 함께 소용돌이 바람이 세차게 불어왔다. 유리창이 덜거덩 거리고 베란다에 놓아둔 화분들이 불안하게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일거에 벤자민이 넘어지더니 옆에 있는 철쭉까지 도미노처럼 찌르륵 무너져 내리며 화분이 깨지는 소리가 와장창 들려왔다.

 

허겁지검 밖으로 나가보니 며칠 전에 순천에서 가져온 벤자민 화분이 박살이 나 있었고, 철쭉화분도 넘어져 화분 안에 있는 흙이 흩어져 나와 있었다. 이를 어떤 담? 아내는 서울에 가 있고 나는 오늘 목포로 가야 하는데…

 

일단 화분을 정리해야 했다. 바람은 더 세차게 불어와 마당에 놓아둔 블루베리 나무까지 위험했다. 깨진 화분을 조심스럽게 들어내고, 넘어진 벤자민과 철쭉을 일으켜 세워 마당으로 끌어 내렸다. 물을 흠뻑 머금은지라 무거웠다. 낑낑대며 겨우 끌다시피 하여 옮겨놓고 마침 순천에서 가져온 플라스틱 화분에다 넣으니 꼭 맞았다. 철쭉은 플라스틱 화분인지라 다행히 깨지지 않았다.

 

그리고 두 화분을 바람이 덜 타는 담벼락 밑에 바짝 옮겨 놓았다. 아무래도 블루베리도 염려가 되어 일곱 개의 블루베리 화분을 끙끙거리며 담벼락 밑에 옮겨 놓으니 겨우 안심이 되었다. 내가 왜 이리 고생을 한담? 나무나 꽃을 보기만 하면 집으로 옮겨 오려는 아내를 말릴 수는 없다. 워낙에 나무와 꽃을 좋아하는 아내가 아닌가?

 

이삿짐을 가져오던 날 청도에서 온 김성곤 환우가 대문 옆에 있는 노나무를 베어낸 것을 지금도 아까워하며 한 숨을 쉬는 아내를 바라보노라면 나무와 꽃을 가져온다고 나무랄 수가 없다. 심장병 환우인 김성곤 씨는 집안에 오동나무가 있으면 안 된다고 하며 자르지 말라고 하는 나무를 아내 몰래 잘라 버렸다.

 

경상도에서는 오동나무를 집안에 두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풍습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사실 그 나무는 나중에 알고 보니 오동나무가 아니라 노나무라는 나무였다. 잎이나 수피의 생김새가 곡 오동나무를 닮아 나도 오동나무인줄 알았는데 동네 사람들에 의하면 노나무라고 했다.

 

문언을 찾아보니 중국에서는 추수(楸樹), 의수(椅樹), 의재(椅梓), 목왕(木王)이라 부르는데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는 백 가지 나무 중에서 으뜸이라 하여 목왕(木王)이라 부른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개오동나무라고 부르는데 북한에서는 약효가 몹시 뛰어난 이 나무를 개오동나무라고 부르는 것이 천박하다 하여 향오동나무라고 부른다.

 

노나무는 간염, 간경화증, 간암 등의 여러 간질환과 백혈병에 치료효험이 뛰어나다고 하는데, 노나무에는 약간 독성이 있어서 체질에 따라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으므로 혈액형이 O형인 소양체질의 사람은 매우 조심해서 써야 한다고 적혀 있다.

 

 노나무는 그 열매에 특징이 있다. 열매가 노끈처럼 가늘고 길게 늘어진다. 그래서 이 나무를 노끈나무라고도 부른다. 꼬투리 모양의 열매가 아카시아나 회화나무의 열매처럼 주렁주렁 달리는데 열매의 길이가 매우 길다. 길이가 보통 30센티미터쯤 된다. 동부콩과 비슷하지만 그보다 더 길다. 잎이 다 떨어져 버린 겨울에도 노나무는 긴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어 쉽게 찾아 낼 수 있다.

 

우리 선조들은 노나무를 매우 신성하게 여겼다. 이 나무에는 벼락이 떨어지지 않는다 하여 뇌신목(雷神木) 또는 뇌전동(雷電桐)이라 해서 매우 귀하게 여겼다. 이 나무가 집 안에 있으면 천둥이 심해도 다른 나무에 벼락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고 또 이 나무의 재목으로 집을 지으면 벼락이 떨어지는 일이 없다고 했다. 곧, 이 나무가 벼락을 막아 주는 효력이 있는 것으로 믿었다.

 

이런 믿음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궁궐이나 절간에 이 나무를 즐겨 심었고 관을 짜는 데도 노나무 목재를 흔히 썼다. 벼락이 떨어지지 않는 나무라면 바로 하늘이 보호해 주는 영목(靈木)이 아니겠는가.

 

이리도 좋은 나무를 오동나무로 오인하고 베어내 버렸으니 이 내용을 알고 난 아내는 베어낸 나무를 볼 때마다 혀를 끌끌 찬다. 다행히 베어낸 나무에서는 새싹이 다시 돋아나고 있다. 그리고 집 뒤에는 베어낸 노나무보다 훨씬 큰 노나무가 있다. 대문 옆에 노나무를 베어버렸다고 핀잔을 받고서도 김성곤 씨는 이 나무도 베어내야 한다고 하며 톱을 들고 달려들었다. 왜 그러지 아직 자세한 이유는 모르겠는데 그는 오동나무에 대한 배척심이 강했다. 내가 겨우 그를 말려 놓아서 망정이지 뒤뜰의 노나무까지 베어내 버렸다면 아마 아내는 그만 초상이 나고 말았을 거다.

 

주먹 같은 빗방울이 다시 쏟아져 내렸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주먹으로 닦아내고 거실로 들어와 샤워를 했다. 오늘은 목포에 가기는 너무 늦었다. 비바람이 강해 위험하기도 하지만 이런 우중에 운전을 하고 목포까지 가기에는 너무 위험한 것 같아 처남에게 전화를 하여 내일 아침 일직 가겠노라고 했다.

 

막내처남은 목포에서 유치원사업을 크게 하는데 영어학원까지 운영을 하고 있다. 원어민 강사를 외국에서 데려와 영어를 가르치는데, 월요일 날 캐나다에서 원어민 커플이 오는데 너무 바빠서 그러니 날더러 그들을 맞이하고 자리를 잡을 때까지 업무지침 등 근무 환경에 적응을 하도록 도와 달라고 요청이 왔었다. 워낙 짧은 영어 실력이지만 그래도 미국에서 얼마동안 생활을 했던 적이 있어 처남을 기꺼이 도와주기로 했던 것.

 

청개구리야 집 좀 잘 봐 줘~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집안을 단속하고 7시에 집을 나서려고 현관문을 잠그는데, 아하, 청개구리 녀석이 문틈에서 기어 나오질 않는가?

 

“이 친구야 들어가면 안 돼지. 거긴 공기가 탁해서 지난번에도 너희 친구들이 몇 몇 말라서 천국으로 갔었거든. 그러니 들어가지 말고 밖에서 집이나 좀 봐다오.”

 

다행히 청개구리는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문밖으로 나와 위쪽으로 기어 올라갔다. 연한 다리를 창살에 붙이고 엉금엉금 기어오르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하마터면 녀석에게 뽀뽀를 해줄 뻔 했다.

 

“청개구리야, 내가 없는 동안 집 좀 잘 보고 있어.”

 

나는 다시 청개구리에게 부탁을 하고 집을 나섰다. 아내도 병원이다 뭐다 해서 9월 3일 경에 돌아올 예정이어서, 일주일 정도 집을 비우려고 하니 아무도 없어서 허전 했는데 그래도 청개구리에게 집을 보라고 부탁을 하고 나니 마음이 놓였다.

 

(201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