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섬진강일기

영글어 가는 벼이삭

찰라777 2010. 9. 7. 14:15

 

 

영글어 가는 벼이삭

 

이른 아침, 풀잎에 맺힌 이슬을 털며 산책에 나섰습니다. 태풍 말로의 영향으로 밤새 비가 내리는 가 싶더니 아침에는 비도 바람도 잠잠합니다. 다만, 백운산에서 흘러내리는 개울물 소리만 요란하게 들려옵니다.

마을 골목길을 돌아가는 데 뒷집 창고 울타리에 다섯 마리나 되는 검은 고양이 새끼들이 모여서 놀다가 화들짝 놀라며 세 녀석은 울타리 구멍으로 들어가 버리고 한 녀석은 울타리 속에 몸을 숨기고 있는데 나머지 한 녀석만 웅크리고 앉아 나를 쏘아보고 있습니다. 들고양이들이 짝을 짓더니 새끼를 낳은 모양입니다. 녀석들의 모습이 너무 귀엽습니다.

  

 

 

골목길을 돌아서면 이내 다랑이 논이 나옵니다. 다랑이 논 사이에는 비교적 넓은 농로가 잘 닦여져 있습니다. 벌써 벼이삭들이 고개를 숙이고 무거워져 가고 있습니다. 벼 이삭은 지루한 장마와 태풍 곤파스를 이겨내고 점점 누렇게 익어가고 있습니다. 농부들의 수고로움이 결실로 맺어지는 숭고한 순간입니다. 익을수록 고개를 숙여가는 벼이삭들의 겸손함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저 겸손한 벼이삭들에게 허리를 굽혀 절을 해봅니다.

 

"고맙다. 고마워!"

 

 

 

 

 

 

나는 물을 머금고 있는 벼이삭들에게 입맞춤을 하고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저렇게 말없이 인간을 위해서 일용한 양식이 기꺼이 되어주는 식물들이 고맙지 않습니까?

 

고개를 드니 멀리 노고단에서 흘러내려온 운해가 섬진강을 끼고 아름답게 펼쳐져 있습니다. 운해! 구름들은 참으로 묘한 화가들입니다. 간전면 수평리는 토지면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토지면은 섬진강을 건너 화엄사를 가기 전에 있습니다. 지리산 천왕봉, 반야봉을 타고 내려온 운해는 노고단줄기를 타고 내려와 토지면 운조루가 있는 계곡으로 흘러내려옵니다.

 

 

 

 

 

운해는 지리산의 힘찬 기운처럼 흘러내려오다가 "금환낙지(金環落地)"라 일컫는 운조루에 둥그렇게 원을 그리며 장관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저곳은 천상에서 옥녀가 금가락지를 떨어뜨렸다는 명당이라고 합니다. 오늘 아침 운해는 마치 옥녀가 떨어뜨린 금가락지처럼 둥그런 원을 그리고 있습니다.

 

운해는 지리산의 혈(穴)처럼 산등성이와 골을 타고 융단처럼 내려왔다가 다시 알라딘의 요술 카펫처럼 슝~ 하고 하늘을 향해 일제히 솟아오르기도 합니다. 과연 구름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마술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천재화가입니다.

 

 

 

 

 

이제 태풍도 비도 더 이상 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 비를 내려주고, 바람을 불어 만물에 생기를 불어넣어준 비님과 바람에게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허지만 풍성한 결실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린 이제 쨍하게 내려 쪼이는 햇볕이 필요합니다. 하늘은 우리를 버리지 않고 풍년을 기약하며 충분한 햇빛을 내려줄 것입니다.

 

(2010.9.7 섬진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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