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섬진강일기

오! 히말라야!- 히말라야에서 지리산까지

찰라777 2010. 10. 22. 19:28

히말라야에서 지리산까지

 

눈의 고향 히말라야는 신비하기만 하지만

지리산은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하기만 하다

 

 ▲네팔 카트만두에서 동부 자파시로 가는  에띠 에어라리인에서 바라본 히말라야

 

▲어머니의 산 지리산 자락에는 풍년을 기약하는 황금벌판이 펼쳐지고 있다(수평리에서 바라본 구례들판)

 

 ▲지리산 자락 수평마을 집 배추밭

 

▲텃밭에 자란 싱싱한 배추 

 

 ▲무도 밑동이 굵어지고 있다.

 

  ▲낙엽이 되어 뒹구는 담쟁이 덩쿨

 ▲빛바랜 노나무

 

 

눈의 고장 히말라야에서 어머님의 품같은 지리산으로...

싱싱한 배추 밭에서 원기를 회복하고

 

네팔의 히말라야에서 지리산으로 돌아온 다음날 아침, "꼬끼오" 닭 울음소리에 일어나 밖으로 나가니 지리산은 안개에 가려 있군요. 지척을 분간하기 어려울정도로 안개가 자욱이 깔려 있습니다. 안개 속에 흐려진 시야를 뜨고 텃밭을 바라보니 배추와 무가 무성하게 자라나 있습니다. 배추보다 키가 작았던 무우키가 훌쩍 커 있군요.

 

배추는 포기를 이루어 옆으로 벌어지지만 무는 쭉쭉 뻗어 올라가고 있어요. 또한 배추는 각종 벌레들이 놀이터가 된 양 벌레 먹힌 자국이 여기 저기 나 있는데 비해 무는 전혀 벌레 먹은 자국이 없습니다. 무의 밑동도 제법 굵어져 뿌리를 든든하게 박고 있군요. 그러니 배추보다는 무가 벌레에 강하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담장 밑에 시금치와 상치는 땅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촘촘히 돋아나 있습니다. 빨리 속아내서 쌈으로, 반찬으로 먹어야 할 것 같습니다. 처마 밑에는 안개물이 뚝뚝 떨어져 내리고, 파랗던 담쟁이덩굴은 색을 바래 낙엽으로 뒹굴고 있습니다. 뒤꼍에 노나무도 큰 잎새가 반쯤은 떨어져 내려 낙엽이 수북합니다. 블루베리 잎새도 붉은 색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무려 한 달 동안 집을 비운 후 돌아온 변화는 대단합니다. 아내가 병원에 입원을 하여 보름을 지내고, 곧 바로 네팔로 날아가 우리가 학자금을 지원하는 학교를 방문하느라 보름을 보내게 되니 한 달이 훌쩍 지나고 말았군요. 얻습니다. 계절의 변화는 이렇듯 주변의 생물과 움직임을 변화시켜 놓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 달간이나 집을 비웠는데도 채소가 잘 자라게 된 것은 순전히 이웃집 희경이 엄마의 따뜻한 보살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0월 19일 네팔에서 서울로 돌아와 겨울옷을 주섬주섬 챙겨들고 부랴부랴 어젯밤 늦게 수평리 마을에 돌아왔습니다. 그동안 희경이 엄마가 물을 주고 채소들을 돌보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으면 모두 말라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채소뿐만 아니라 화분에 심어놓은 나무들도 희경이 엄마의 손길이 아니면 지금쯤 말라서 생명을 다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희경 엄마 너무 고마워요! 우리가 없는 사이에 저렇게 돌보아 주시다니."

"아이고, 배추에 벌레를 잡아주지 못해서 죄송해요."

 

순박하기 그지없는 희경이 엄마가 한없이 고맙게만 느껴집니다. 희경이 엄마는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개울 건너 집 이웃입니다. 자신의 농사일도 바쁠 텐데 우리 집까지 돌보아 주느라고 너무 바빴을 것입니다. 워낙 부지런하고 마음씨가 착해 남의 일을 거절하지 못하는 성미이지만 우리는 희경이 엄마가 그저 미안하고 고맙기만 합니다.

 

채소밭에 물을 주고 아침을 먹고 있는데 또 이웃집 할머니가 무언가 비닐봉지에 둘둘 말아서 들고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아니, 큰 어머니 아니세요. 어서 들어오세요."

"아이고 어디를 갔다가 이제 왔는겨. 너무 오랜만이여. 어제 밤에 불이 켜져 있길래 왔어요."

 

"죄송해요. 큰 어머니. 저희들이 봉사를 갔다가 오는 바람에 집을 너무 오래 비웠지요?"

 

"큼매, 너무 오랜만에 본 것 같아."

 

우리 집에서 위쪽으로 두 집 건너 있는 할머니는 우리가 세 들어 살고 있는 집 주인의 큰 어머니여서 저희들도 큰 어머니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큰어머니는 봉지에 든 것이 밤이라고 하며 내밉니다. 밤농사를 지어서 주은 것인 데 먹어보라는 가져왔습니다. 시골인심은 진정 이런 것이로구나 하니 코끝이 시큰해질 정도입니다.

 

 

초롱초롱한 히말라야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눈물짓다.

히말라야에 "희망의 씨앗" 하나를 심고...

 

 

 

 

 

 

 

 

 

 

 

 

18일까지는 네팔의 히말라야 동네에 머물러 있었는데, 지리산 자락으로 돌아오니 마치 어머니의 품에 들어온 느낌입니다. 우리가 네팔에 간 이유는 네팔의 어린이 돕기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작년부터 '자비공덕회'라는 단체에서 네팔의 어린이 12명을 선정해서 학자금을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한 달에 2만원이 없어서 그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어린이들이 네팔에는 너무나 많습니다. 2만원은 한 어린이들이 살아갈 생활비입니다.

 

네팔에는 아이들이 살아갈 2만원의 생활비를 돌을 깨거나 농사일을 돌보거나, 아니면 무언가를 팔거나 구걸을 해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자비공덕회에는 작년 6월에 시작한 작은 단체입니다. 매일 남을 위해 기도를 하며 하루에 십시일반 기도금을 모아 불우한 이웃을 돕자는 취지로 설립된 매우 작은 단체입니다.

 

모아진 돈이 너무나 작기 때문에 우리는 우선 네팔의 어린이들을 돕기로 하고 금년 1월부터 12명의 아이들을 선정하야 직접 돕고 있습니다. 마침 네팔 관광청한국사무소장인 케이피 시토울나님의 고향이 네팔 동부 칸첸중가 오지마을인데, 그 마을 하교의 교정 선생이 시토울나님의 학교 동창이어서 NGO를 거치지 않고 직접 학자금을 전달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침 시토울나님은 나와는 10년 전부터 알고 있는 지기여서 그를 통해서 네팔의 아이들과 인연의 고리를 맺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그 학교에 컴퓨터 보내기 운동을 전개하여 10대의 컴퓨터를 살 수 있는 모금이 되었습니다. 자비공덕회에서는 컴퓨터를 전달도 하고 부처님이 태어난 나라에 성지순례도 할 겸 20여명의 회원이 이번에 칸첸중가 밑 오지마을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인천에서 카트만두로, 카트만두에서 다시 경비행기를 타고 네팔의 동부 칸첸중가 오지마을로 찾아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습니다. 몇 백 킬로미터나 되는 히말라야를 날아서 오지마을을 가는 데는 길이 워낙 험해서 20여km를 가는데도 2시간정도 가 걸렸습니다. 길이 파이고 끊겨서 모두가 버스에서 내려 돌을 주어 길을 내고 흙을 파서 파인 길을 매구며 가야 했습니다.

 

우리는 마침내 네팔의 아이들과 조우를 했습니다. 무려 1000여명의 아이들이 학부형들과 함께 나와 우리를 환영해 주었습니다. 그들은 학교 입구에서부터 풍악을 울리고 길 양편으로 도열하여 박수를 치며 환영의 갈채를 보내 주었습니다. 정말로 우리가 가져 간 것에 비하면 너무나 넘치는 환대였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어찌나 맑던지……. 너무나 초롱초롱하여 바라보기가 민망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 학교는 컴퓨터가 한대도 없는 학교였습니다. 교장선생님도 이메일이 무언지를 모를 정도로 컴맹학교였습니다. 그런 학교에 컴퓨터 10대, 프린터기 1대, 팩스 1대를 설치하여 작은 컴퓨터 교실이 마련되었습니다. 그날 환영식에는 그 지방 출신 국회의원은 물론, 지방 유지들이 모두 참석을 했습니다. 학교에서는 환영무대를 설치하고 무려 12차례나 준비된 공연을 했습니다. 네팔 전통춤과 노래가 계속되었습니다. 마침 네팔은 더사인 축제기간이었습니다. 더사인 축제는 우리나라 추석과 같은 네팔의 가장 큰 명절입니다.

 

세상에! 우리가 도대체 무성을 했기에 이토록 환대를 받아야 하는지. 괜히 부끄러워지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표정은 매우 진지했고 땡 볕이 내리쬐는 운동장에 5시간동안이나 꿈적 않고 서 있었습니다. 제발 공연 시간을 좀 줄여 달라고 부탁을 하였지만 이미 준비된 것이라서 다 진행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들과 보냈던 시간이 더없이 진지하고, 미안하고, 고마웠습니다.

 

세상은 참으로 묘합니다. 모두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히말라야와 지리산도 하나입니다. 아직도 네팔의 아이들 눈동자가 선합니다. 그들에게 너무 큰 기대를 주고 왔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토방에서 살아가는 그들의 눈은 행복해 보였습니다. 얼굴에는 언제나 미소가 넘쳐흘렀으며, 마음은 순박했습니다. 가난하지만 불평과 불만이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에 비하면 우리는 너무 가진 것이 많습니다. 가진 것이 많지만 얼굴에 별로 웃음이 없습니다. 상대적으로 비교를 하며 자신이 불행하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습니다.

 

네팔의 아이들은 우리들에게 행복한 웃음과 진실한 눈동자를 선물해 주었습니다. 쓸어져가는 토방에서 생활을 하지만 그들은 행복해 보였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서 몇 갑절의 큰 선물을 받아 온 것입니다. 물질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회원 모두가 느꼈습니다.

 

지리산 자락에 있는 이 시각도 히말라야 밑에 초롱초롱 빛나는 아이들이 눈망울이 선하게 더 오릅니다. 그들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곁에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눈드르이 고장인 히말라야는 네팔의 신처럼 신비하기만 하지만 여기 지리산은 어머니의 품처럼 아늑하기만 합니다. 지리산에서 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돕고 살며 평화롭게 살기를 기원해 봅니다.

 

오! 히말라아야!

 

오, 히말라야의 눈동자여!

그대는 우리에게 큰 선물을 주었도다.

행복은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있다고…….

 

그대 히말라야의 빛나는 눈동자여!

이 세상에 평화를 주고 있도다.

그대 초롱초롱한 눈망울 속에서

세상의 평화를 보노라.

 

여기, 지리산 어머니의 품에서

히말라야의 눈동자를 보노라.

지리산의 따뜻함 어머니 품이

차가운 히말라야를 안고 있노라

 

오, 히말라야요!

오, 지리산이여!

세계의 평화가 그대 품에 있노라.

 

 

히말라야에서 지리산으로 돌아온 날에

찰라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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