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Nepal

룸비니에서 만난 소녀

찰라777 2011. 1. 17. 06:28

 

 

▲자귀나무 꽃 위로 솟아오르는 태양(2010.10.14 룸비니 대성석가사에서)

 

 

룸비니 대성석가사의 밤. 마야데비 사원을 향해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무언가 형용할 수없는 기운이 느껴진다. 이대로 밤을 새고 싶은데… 조금 지나니 자꾸만 눈이 감겨 온다.

 

이넘의 중생은 어쩔 수없는 속물인가 보다. 하긴, 네팔의 동쪽 끝에서 털털 거리는 버스를 타고 강행군을 했으니 어찌 감당하겠는가? 고행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가부좌를 풀고 요사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잠은 금세 꿀밤처럼 밀려왔다. 한 잠을 자고 눈을 떠보니 아직 밖이 캄캄하다. 함께 잠을 자기로 했던 진성거사는 보이지 않는다. 법당에서 철야 정진을 하겠다고 하더니 아직 법당에 있는 모양이다.


하늘엔 별이 총총하고, 만물은 고요하다. 오리온좌와 북두칠성이 유난히 반짝거린다. 새로운 생명, 우주의 진리를 밝히는 새벽은 언제나 온다. 고통은 사라지고, 번뇌는 끊어져라.


하늘을 향해 합장을 한다. 이슬을 털며 대웅전을 돌아본다. 세 바퀴를 돌고 법당으로 들어가니 진성거사가 홀로 가부좌를 틀고 있다. 아마 날밤을 샌 모양이다. 모기와 전쟁을 했을 텐데...

 

그는 룸비니에서 유난히도 감동을 많이 받는 것 같다. 네팔이 아련한 고향처럼 느껴져 마음이 포근하단다. 네팔에서 살고 싶다는 진성거사.... 그는 전생에 네팔에서 태어나 살지 않았을까?

 

 

▲룸비니에 솟아오르는 태양(대성석가사에서 바라본 일출)

 

 

새벽 3시 반. 도량석을 도는 스님의 목탁 소리가 룸비니에 울려 퍼진다. 목탁소리가 유난히 크고 맑게 들린다. 번뇌의 자국을 하나하나 때리는 털어내는 목탁 소리. 그 소리는 마치 번뇌의 껍질을 벗겨 내듯 아프게 울려온다.


사바세계에서 덕지덕지 녹이 슨 번뇌의 떼 자국이 어찌 그리 쉽게 벗겨지겠는가? 껍질을 벗기는 아픔이 없고서는 번뇌는 벗겨지지 않는다. 업의 자국은 이렇게 지엄하다. 회개한다고 해서 죄가 사해지는 것이 아니다.


참회 한다고 해서 업은 사라지지 않는다. 자기가 지은 업은 그 몇 배로 갚아야 조금 가벼워 질뿐이다. 그러나 업의 자국은 그대로 남는다. 업은 몇 겁을 윤회하며 선근을 심을 때 조금씩 가벼워지는 것이다.


부처도 백겁이나 지난 다음에 아기부처로 다시 태어났다고 하지 않았던가? 대저 일 겁은 하늘과 땅이 시작하여 끝나는 동안이라고 한다. 우리의 인생은 한생이 다하면 다시 한생을 받는다. 한량없는 나고 죽음 속에서 쌓인 과보는 셀 수없이 많다.


이 가엾은 중생은 세간의 탐욕으로 인해 애욕의 바다에서 해어나지 못하고 고통의 바다를 헤매고 있다.

 

계향, 정향, 혜향, 혜탈향, 해탈지견향… 모두가 지성으로 새벽예불을 부처님께 올린다. 계율의 향기와 선정의 향기, 그리고 지혜의 향기를 얻어 해탈에 들어가게하여 주소서. 우주의 광대무량한 부처님의 공덕에 거룩한 향을 사루옵니다.

 

광명운대 주변법계 공양시방 무량 불법승…광명이 온 우주 법계에 충만하여 과거 현재 미래 삼세의 한량없는 불법승 삼보에 공양을 올리나이다.

 

룸비니 대성석가사에서 올리는 새벽 예불은 장엄하고 감동적이다. 사람은 역시 환경의 지배를 받는 모양이다. 때와 장소, 그리고 동반자에 따라서 사람의 감정과 감동은 변한다. 모두가 정성스럽게 오분향을 올린다.


예불을 올리고 고요히 명상에 잠겨 본다. 대저 우리 인생에 있어서 이러한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얼마나 될까? 중생은 중생이다. 그러므로 절이나 수도원에 가서 홀로 고요히 지내는 시간을 가끔이라도 가져 보아야 한다. 아주 가끔이라도…


그 시간만큼이라도 마음을 비워 고요함을 즐기고, 욕심을 내지 아니하고, 자기 것을 덜어서 남에게 베풀기를 즐겨하려하고, 계율을 지키고, 항상 겸손하며, 거친 말을 삼가고, 한 마음으로 생각하고, 중생을 사랑하며, 가난하고 불쌍한 이를 가엾이 여기고, 괴로워하고 슬퍼하는 사람을 구제하는 마음을 내 보아야 한다. 그 짧은 시간만이라도... 인생이 수겁을 윤회 하듯이 그 짧은 시간이 현생에서 윤회를 하며 선근을 심어주는 것이다.


6시에 아침 공양을 들고 오늘은 일찍 카필라 성으로 가기로 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세수를 하고 공양간으로 갔다. 정원에는 빨간 자귀나무꽃이 만발하게 피어 있었다.

 

일명 Silk Tree라는 이름을 가진 이 나무는 낮 동안은 잎을 활짝 폈다가 밤에는 오무리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부부금실을 상징하는 꽃이기도 하다. 나는 먹을 만큼만 밥과 반찬을 덜어서 자귀나무 꽃이 만발한 정원으로 갔다.


그 정원 구석에서 서양에서 온 소녀가 손으로 밥을 먹고 있다. 머리를 짧게 깎고 맨바닥에 앉은 채로 자기나무 꽃을 바라보며 밥을 먹고 있다. 화장을 전혀 하지 아니한 소녀는 타원형의 얼굴에 매우 예쁜 얼굴이다. 


소녀는 티없이 맑아 보인다. 나는 소녀를 바라보며 멋쩍게 씩 웃었다. 소녀도 밥을 입에 넣은 채 나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아침 태양이 자귀나무꽃 사이로 붉게 떠올랐다. 환상적이다.

 

나도 소녀도 말없이 해를 바라보며 밥을 움질움질 씹어 먹었다. 소녀는 밥 한 톨 남기지 않고 모두 훑어 먹었다. 소녀의 그릇은 발우처럼 깨끗해졌다. 소녀는 주변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차 있어 보인다.

 

연민의 마음이

자비의 마음이

슬픈일을 보면 자비의 눈물을 흘리고

기쁜 일을 보면 스스로가 얻은 것처럼 크게 기뻐 할 것처럼 보인다.

 

그 때 한 마리 새가 날아오더니 죽은 나뭇가지위해 턱 앉았다. 새는 아침을 노래한다. 희망의 아침을 노래한다. 소녀가 새를 보며 웃는다. 새는 소녀를 보고 노래하고, 소녀는 새를 바라보며 해맑은 미소를 짓는다. 소녀와 새는 하나처럼 보인다. 

 

저 소녀는 무슨 생각을 하며 홀로 여행을 할까? 나는 사라져 가는 소녀와 나뭇가지에 앉은 새를 번갈아보며 입안에 가득 들어있는 밥을 움질움질 씹었다. 태양이 티베트 사원의 탑 위로 솟아 올라왔다. 새가 다시 노래를 부른다. 소녀와 새... 그들은 어디사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룸비니의 아침을 노래하는 새

 


룸비니에 아침이 온다

오, 찬란한 아침이여!


진리의 등불 밝히는

우주의 아침이여

영롱한 아침 이슬에

소녀의 눈이 반짝인다.


태양은 붉게 솟아올라

번뇌의 이슬을 떨어뜨린다.


그 번뇌가 끊어진 자리에

새가 노래를 부른다.

진리의 노래를...

 

룸비니 동산에

진리의 등불을 밝아온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아기부처의 등불이 밝아온다.

 

 


(룸비니 대성석가사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