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Nepal

카필라성 순례[1]-쿠단(붓다와 정반왕의 재회장소)

찰라777 2011. 1. 18. 08:05

 ▲붓다가 성도후 12년만에 카필라 성을 첫 방문 할 때 머물렀다는 쿠단 유적

 

 ▲허물어진 사원터와 고목이 세월을 말해주고 있다.

 

 ▲쿠단 유적 표시판. 망고나무가 둘러싸여 있다.

 

 ▲쿠단탑. 붓다의 아들 라훌라가 아버지 붓다를 기다리며 경행을 했다는 곳. 라훌라는 그 때 이곳에서 출가했다고 한다.  

탑 꼭대기에는 망고나무가 뿌리를 내리며 자라고 있어 세월의 무상함을 말해주고 있다.

 

 ▲유적지에서 평와롭게 풀을 뜯고 있는 염소들. 붓다가 방문했을 때에도 염소들은 있었을까?

 

 ▲유적지 주변에는 망고나무에 무성하게 자라 망고열매가 열리고 있다.

 

▲카필라성 일대 유적지 순례도

 

 

▲쿠단유적지  동영상

 


 

 

 

쿠단-붓다가  성도후 아버지 정반왕을 처음 재회했던 곳 

 

 

붓다가 탄생을 하여 29년 동안 살았던 카필라 성 방문은 네팔 불교 성지순례중 매우 중요한 순례코스다. 흔히 바쁘다는 핑게로 룸비니 동산만 들리고 카필라성은 들리지않는데, 이는 매우 애석한 순례이다. 적어도 부처님이 출생하여 출가하기전까지 29년간 생활을 했던 카필라성과 과거7불 탄생지를 방문해보아야만 붓다의 채취를 흠뻑 느낄수 있다.

 

아침 8시, 우리 일행은 룸비니를 출발했다. 카필라 성으로 가는 길은 작은 농로로 된 길이다. 테라이 평원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들판에는 벼들이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다.

 

2500년 전 해산을 앞 둔 마야부인이 무거운 몸을 이끌고 룸비니로 향했던 길을 가자니 어쩐지 마음이 아련해진다. 색즉시공 공즉시생... 보이지 않는 마음은 어느듯 과거와 현재, 시공을 초월하여 붓다의 어머니 마야부인 곁으로 간다.

 

대성석가사 법신스님이 추천 한대로 코스를 잡았다. 스님께서는 가필라 성에 대하여 정통한 현지 안내원까지 한 사람 추천해 주었다. 법신스님께서 추천한 순례 코스는 다음과 같다.

 

룸비니-따울리하와-쿠단-고티하와-카필라성(틸라우라코트)-니그리하와-사가르하와-따울리하와-룸비니순으로 동선을 잡는 것이 좋다. 8인승 소형승합차를 렌트를 하면 운전자를 포함해서 약 1500루피(화 약 2만원)정도 든다고 하는데, 가격은 유동적이라는 것.

 

우리는 25인승 버스를 이미 렌트를 했기때문에 그 버스를 타고 갔다. 길은 폐이고 좁아 버스가 몇 번이나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버스에 탄 사람들이 내려 버스의 중량을 줄이고, 버스를 밀거나 길을 정비하며 가야만 했다.

 

부처의 고향은 개발과는 거리가 먼 곳 같다. 오히려 예스런 풍경이 사람의 마음을 사로 잡는다. 벼들이 익어가는 들판 논길 사이로 네팔의 여인들이 걸어오고 있다. 나는 저 여인들로부터 마야부인의 자취를 찾아보려 애를 써 본다. 붓다를 출산하기 위해 마야부인도 저렇게 논길 사이로 걸어갔까?

 

우리들의 첫 번째 순례지는 쿠단이다. 쿠단은 타울리하와 서남쪽 약 1km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쿠단은 붓다가 6년 고행 끝에 보드가야에서 성도 후 처음으로 아버지 정반왕을 만나기 위해 그의 제자들과 함께 카필라투스를 찾아와서 머문 곳이다.

 

정반대왕은 아들 붓다가 카필라 성으로 들어오기를 권했지만 붓다는 수행자의 전통에 따라 성으로 들어가지 않고 이곳에 머문다. 할 수 없이 정반대왕이 붓다를 만나기 위해 이곳에 왔다. 부자간의 만남이 얼마나 마음이 아렸을까?

 

출가 후 처음으로 만나는 부자간의 상봉이었을 텐데 말이다. 싯다르타는 카필라 성을 나온 후 6년이 지난 다음 성도를 하고, 그 후 다시 6년이 지나 고향 땅을 밟았다고 하니 실로 12년만의 만남이었다.

 

버스는 가까스로 들판길을 지나 쿠단 입구에 도착했다. 쿠단 정문에 들어서니 사람은 없고 염소들이 우리들을 반긴다. 나는 쿠단의 유적지에 들어서며 성도 후 가족을 만나기 위하여 고향을 찾아온 인간 붓다를 생각해본다. 아버지 정반왕, 아내 야소다라, 그의 아들 라훌라.... 인간 붓다는 어떤 생각으로 그의 가족들을 만났을까?

 

과연 붓다가 성도 후 방문한 이곳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붓다의 행적을 찾아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정반왕은 성도를 한 아들이 금의환향하는 것에 매우 기대가 컸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기대는 정반대였다. 

 

 붓다는 쿠단에 도착한 다음날 붓다는 제자들과 함께 카필라성의 이집저집을 돌면서 탁발을 하고 있었다. 싯다르타 태자가 걸식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자, 많은 사람들이 창문을 열고 붓다의 탁발 모습을 바라보았다. 붓다이 아내 야소다라도 그 모습을 보고 정반왕에게 말했다. 왕은 발우를 들고 걸식하는 아들을 보고 흥분하여 붓다에게 달려가 말했다.

 

"세존이시여, 왜 우리 가문을 부끄럽게 하시요."

"와이시여, 이것은 우리의 오랜 관습입니다."

"세존이시여! 우리의 가계는 마하삼마따(Mahasammata)의 크샤트리아(kshatriya) 가계로 단 한번도 걸식을 행한 적이 없소."

"왕이시여! 그 왕계는 당신의 가계이지만, 나의 가계는 디빵가라(Dipamkara, 연등불)에서 전해 온 붓다의 가계입니다. 지금껏 수천의 붓다들은 걸식에 의해 삶을 유지해 왔소."

 

왕과 붓다 사이의 이대화는 많은 것을 생각케 하는 대화다. 붓다는 왕은 아들이 크샤트리아 왕계를 계승한 것으로 생각했지만, 붓다는 과거칠불의 전통을 계승했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붓다의 아내 야소다라와의 재회

 

또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라훌라의 어머니 야소다라와 붓다와의 재회와 아들 라훌라를 출가시킨 사건이다. 붓다는 정반왕의 초대에 응하여 카필라 왕궁에서 공양을 하게 되었다. 붓다가 공양을 마치자 라훌라의 어머니를 제외한 왕궁의 모든 여인들이 붓다께 경의를 표하기 위해 자리에 참석을 했다. 그러나 라훌라의 어머니는 그 자리에 참석하는 것을 거절했다. 만일 그녀에게 도덕적으로 어떠한 결함이 없다면 붓다께서 그녀에게로 올 것이기 때문이다.

 

붓다는 야소다라가 붓다께 인사도록 허락을 하고, 두 수제자와 함께 그녀에게로 갔다. 야소다라는 붓다의 발에 엎드려 손으로 발을 붙잡고 자신이 머리를 그곳에 댔다. 야소다라는 남편의 발에 머리를 댄체 눈물을 삼켰을까? 그러나 경전에는 그런 설면은 없다. 이미 그들 사이에는 아내와 남편 사이는 사라지고, 출가 스승과 제자 사이만 남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정반왕은 붓다가 출가를 한 후 야소다라는 스스로 모든 사치를 포기하고, 붓다가 가사를 걸치고 하루 한끼만 먹는다는 소식을 듣고, 그와 똑 같은 방식으로 지냈다고 붓다께 설명을 해주었다. 그러자 붓다는 짠다긴나라 자따까(Candakinara Jataka)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이 이야기는 과거 그녀 역시 충절이 대단했다는 내용이다.

 

라훌라의 출가시키는 붓다

 

붓다가 이곳에 머물며 아들 라훌라를 출가시킨 이야기는 더욱 흥미롭다. 유산을 달라고 한 라훌라를 붓다는 제자로 출가를 시키고 말았다. 정반왕의 아들 난다를 이미 출가시키고 다시 손자 라훌라 마져 출가사문이 되어버리자 정반왕은 망연자실 할 수밖에 없었다. 왕의 대가 끊기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라훌라(Rāhula, 羅睺羅)의 출가 사정에 대해서는 팔리 『율장(律藏)』「대품(大品)」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라훌라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붓다께서 카빌라 성을 방문한지 칠일 째 되는 날이었다. 붓다가 왕궁에서 공양을 마치고 붓다께서 떠나려고 할 때 라훌라의 어머니는 어린 라훌라에게 말했다.

 

“라훌라야, 저 분이 너의 아버지이시다. 가서 너의 유산을 달라고 해라.”

 

라훌라는 세존께 다가가서 그 앞에 섰다.

 

“사문이시여, 당신의 곁에 있으니 즐겁습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버렸다. 라훌라는 세존의 뒤를 따라 가면서

 

“사문이시여, 저의 유산을 주십시오. 사문이시여, 저의 유산을 주십시오.”

 

그러자 세존께서는 사리뿟따(Sāriputta, 舍利弗) 존자에게 말했다.

 

“사리뿟다여, 그대가 라훌라를 출가(pabbajjā)시켜라.”

“세존이시여, 라훌라는 어떻게 출가시켜야 합니까?”

 

그러자 세존께서는 법을 설해 주고자 할 때와 그 이유에 대해서 말씀해 주었다. 그리고 붓다는 비구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나는 사마네라(Sāmanera, 沙彌)의 출가는 삼귀의에 의해 허락한다. 하지만 출가는 이러한 방법으로 해야 한다. 먼저 머리와 수염을 깎고, 황색 가사를 몸에 걸치게 한다. 그리고 한쪽 어깨에 상의를 걸치고, 비구들의 발에 예배하게 한다. 무릎을 꿇게 하고, 두 손을 올려 합장 한 채, 삼귀의를 낭송하게 한다. 곧 ‘저는 붓다(Buddha, 佛)께 귀의합니다. 저는 담마(Dhamma, 法)에 귀의합니다. 저는 상가(Sangha, 僧)에 귀의합니다. 두 번째 저는 붓다께 귀의합니다. 두 번째 저는 담마에 귀의합니다. 두 번째 저는 상가에 귀의합니다. 세 번째 저는 붓다께 귀의합니다. 세 번째 저는 담마에 귀의합니다. 세 번째 저는 상가에 귀의합니다.’라고 말하게 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사미의 출가는 이와 같이 삼귀의를 함으로써 이루어지느니라.”

 

왕의 대를 이을 라훌라를 출가시키는 정반왕의 아픔

 

그리하여 사리뿟따 장로는 라훌라를 출가시켰다. 그러자 숫도다나 왕이 세존을 찾아왔다. 그는 세존께 공손히 절하고 한쪽에 앉은 뒤 말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고따마시여, 여래는 은혜를 초월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의 부탁은 적절하며 비난받을 만한 것이 아닙니다.”
“고따마시여, 그렇다면 말해 보시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출가하실 때 저는 무척이나 괴로웠습니다. 난다 출가할 때도 그러했는데, 이제 라훌라까지 출가하니 저는 너무나 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자식에 대한 애정이 저의 피부를 도려냅니다. 피부를 도려낸 뒤 살갗을 도려내고, 살점을 도려내고, 힘줄을 끊고, 뼈를 자르고, 골수를 뽑아내는 듯합니다. 세존이시여, 원하건대 부모의 허락을 받지 않은 아들은 출가시키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세존께서는 숫도다나 왕에게 법문을 베푸셨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 지니게 하고 격려하고 기쁘게 하셨다. 세존의 법을 받아 지니고 기뻐한 숫도다나 왕은 세존께 공손히 절한 뒤 오른쪽으로 도는 예를 올리고 떠났다. 이러한 인연으로 세존께서는 비구들을 모이게 한 뒤 법문을 베푸신 뒤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부모의 허락을 받지 않은 아들을 출가시켜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는 자는 악작을 범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숫도다나 왕의 마음을 한번쯤 헤아려 보아야 한다. 그는 붓다가 돌아온 후 아들 난다를 빼앗기고, 손자 라훌라마저 잃어버렸기 때문에 비통하기 짝이 없었다. 특히 그 손자를 잃은 슬픔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왕계(王系)가 단절되는 아픔을 감수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왕은 직접 붓다를 찾아가서 앞으로는 부모의 허락 없이는 자식을 출가시키지 못하도록 금해 주시기를 간정했던 것이다. 붓다는 왕의 요청을 받아들여 그렇게 하기로 하였던 것이다.

 

 

▲쿠단탑에 꼭대기에 자라고 있는 망고나무

 

 ▲사원은 부서지고 유적지 꼭대기에는 힌두교의 링가가 세워져 있다. 

 

 

붓다가 떠나 간 뒤 정반왕은 쿠단에서 붓다를 만난 기념으로 탑과 작은 성을 세웠다. 망고나무가 드문드문 서 있는 쿠단은 평화로웠다. 1962년 데발 미트라(Debal Mitra)가 이곳을 발굴, 약 8세기경에 벽돌로 지은 사원 터를 발견해냈다.

 

 

유적의 왼쪽에는 싯다르타의 아들인 라훌라 존자가 공부를 했다는 터가 남아있다. 쿠단탑의 꼭대기에는 망고나무가 자라나 세월의 무상함을 전해주고 있다. 이 탑은 라훌라가 경행을 하면서 아버지 싯다르타를 만나기 위해 기다린 곳이라고 한다. 또한 이곳은 붓다의 이모인 마하파자파티 왕비가 붓다에게 금란 가사를 받친 곳이기도 하다.  

 

사원터로 올라가는 길에는 염소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다. 사원 유적의 꼭대기에는 허물어진 벽돌탑만 남아있고, 힌두교의 링가가 세워져 있다. 성터에는 망고나무가 둘러싸여 있고 망고열매가 파랗게 열려있다. 아, 붓다는 없고 허물어진 성터와 고목만 남아 있데. 세월의 무상함이 절로 느껴진다.

 

 

쿠단!

 

붓다가 성도 후 고향을 

처음으로 찾아 머문 곳

출가 후 12년 만에

정반왕과 재회를 했던 곳

아들 라훌라가 경행을 하며

아버지 붓다를 기다렸던 곳

유모 마하파자파티가

붓다에게 금란가사를 받친 곳

 

붓다는 보이지 않고

망고나무만 성터를 지키고 있네 

허물어진 성터와 고목만 남아있네

 

아, 허물어진 성터에 서서

나그네는

인간 붓다와

아버지 정반왕

아네 야소다라와

아들 라훌라와의 재회를 생각하니

마음이 저리고 아프다네

 

(카필라투스 쿠단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