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섬진강일기

운조루의 건축미와 풍류

찰라777 2011. 4. 23. 05:29

 

 

풍류와 건축미가 깃든 운조루 

 

 

 

▲솟을 대문 입구에 있는 하마석

 

 

운조루 솟을대문 입구에는 하마석이 있고, 그 옆에는 굴뚝이 낮게 서 있다. 그 하마석 뒤에는 요금표가 조잡스럽게 걸려있다. 고색 찬연한 고택에 어울리지 않는 표지판이다. 좀 더 고택에 어울리는 표지판으로 바꾸어 놓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1968년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 제8호로 지정된 운조루는 1000원의 입장료를 받는다. 그런데 입장료를 받는 창구도 없다. 솟을대문 뒤 평상에 앉아있는 이집 9대종부인 이길순 할머니에게 주면 된다. 돈을 받는 이길순 할머니의 순박한 표정은 다소 어색해 보인다. 차라리 입장료를 받는 직원을 채용하여 받도록 하면 어떨까? 물론 국가에서 급여를 주고 채용한 문화재 관리 직원이 상주하도록 함이 좋을 듯하다.

 

 

▲행랑채. 운조루의 행랑채는 줄행랑채이다.

 

 

호랑이 뼈가 걸려있는 솟을 대문을 지나서니 좌우로 행랑채가 길게 펼쳐진다. 행랑채는 문간채로서 노비와 일꾼들이 거처하는 곳이다. 행랑채는 보통 두 세 칸으로 지어지는데, 운조루는 긴 줄행랑이다. 행랑채의 규모만 보더라도 당시 운조루에서 일을 하는 노비들의 숫자를 가늠해볼 수 있다. 행랑채는 최근에 보수를 하여 회벽이 깨끗하고 정비가 잘 되어 있다.

 

 

 ▲'ㄱ'자형의 사랑채. 수레가 들어 갈수 있는 완만한 경사와 품위있는 계단이 함께하고 있다.

 

 

▲사랑채 앞의 앵두나무

 

 

대문을 들어서니 'ㄱ'자 형의 사랑채가 나온다. 큰 사랑채에 잇대어 지은 아랫사랑 채에는 누마루(다락처럼 높게 만든 마루)가 있다. 아랫사랑채 마루 밑에는 오래된 탈곡기가 하나 놓여 있고, 마루 밑에는 여물통 같은 나무통이 놓여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방문객의 눈길을 끄는 것은 만개한 앵두나무 꽃이다. 푸른 하늘에 화사하게 피어있는 앵두나무 꽃은 고택과 어울려 한 폭의 정물화를 보는 느낌이 든다.

 

 

 ▲오래된 탈곡기와 통나무

 

 

'ㄱ'자형으로 꺾인 사랑채는 구조가 매우 안정감을 준다. 특히 오른 쪽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수례를 밀고 들어 갈수 있도록 턱과 계단이 없는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부엌으로 곡식들을 밀고 들어 갈수 있도록 설계를 해 놓은 것 같다. 과연 수원화성을 축성한 류이주의 탁원한 건축 안목이라 할 수 있다.

 

 

▲곡선미가 있는 원목을 그대로 살린 건축미

 

 

1미터 정도의 축재를 쌓아올린 큰 사랑채 앞에는 폭이 좁은 정원을 만들어 놓았다. 작은 정원에는 동백을 비롯하여, 자목련, 조팝나무, 회양목 등이 마치 분재수처럼 낮게 잘 가꾸어져 있다. 정원 중앙에는 돌계단이 있다. 필시 이 집 주인 류이주가 드나드는 계단이리라.

 

 

▲운조루는 곳곳에 아름다운 건축미가 숨어있다.

곡선미가 아름다운 부억 기둥

 

 

류이주는 건축을 사랑하는 정신을 가진 조선시대 양반이다. 그는 수원유수로 재직하면서 수원화성을 쌓을 때 정조의 마음에 흡족할 정도로 축성을 잘 하였다고 한다. 정조는 신하들이 "성을 튼튼히 쌓으면 되지 왜 이렇게 아름답게 쌓습니까?" 하고 묻자, "아름다움이 능히 적을 이길 수 있느니라"라고 대답을 하였다고 한다. 운조루에는 건축을 사랑하고 아름답게 만들겠다는 류이주의 건축정신이 곳곳에 숨어있다.

 

 

▲사랑채 앞에는 자목련, 동백, 회양목 등 분재수들이 고택과 멋진 조화를 이루 있다.

 

▲암수제의 주련에는 류이주의 선비정신과 풍류정신이 깃들어 있다. 

 

 

정원수는 사랑채와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사랑채에는 이산루(二山樓), 족한정(足閒亭), 운조루(雲鳥樓), 귀만와(歸晩窩) 등의 현판이 걸려 있었다는데,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오른쪽 사랑에는 '암수제(闇修祭)'란 낡은 현판이 걸려있다. 암수제 밑기둥에는 공자의 논어의 '학이(學而)'편에 나오는 구절이 주련으로 걸려 있다.

 

 

學而時習之 不亦說乎(학이시습지 불역열호)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有朋自逺方來 不亦樂乎(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

친구가 멀리서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인부지불온 불역군자호)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니, 참으로 군자답지 아니한가

 

 

이 주련은 류이주가 늘 학문을 닦으며 친구를 반기고,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군자답게 호연지기의 자세로 분수에 맞는 삶을 살아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깃들어 있다. 류이주는 건축을 사랑하는 것 못지않게 풍류의 멋을 안 선비였다.

 

 

▲휘어진 나무 기둥이 더욱 멋과 아름다움을 풍기고 있다.

 

 

그의 풍류정신은 후손들에게 대대로 이어져 조선말 한일합방을 통탄하며 오언시를 남기고 절명을 한 매천 황현 같은 시인 묵객들과 더불어 활발한 교류를 하면서 대대로 써온 시조가 일만여편에 달한다고 하니 운조루 사람들은 진정 풍류의 멋을 아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운조루의 가장 소중한 정신 다른데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