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섬진강일기

마을에 가장 큰 어르신이 돌아가시다

찰라777 2011. 5. 5. 06:15

 

인생은 아침이슬과 같은 것

 

 

 

-인생은 아침 이슬과 같다

 

 

아침 일찍 일어나 산책을 나갔다. 오랜만에 황사도 걷히고 날씨가 청명하다, 5월의 찬란한 햇빛이 백운산에서 솟아오른다. 마을 뒷길은 백운산 자락으로 실핏줄처럼 이어지고 있다. 풀잎에 맺힌 이슬이 아침 햇살을 받아 영롱하게 빛나고 있다. 이슬은 곧 떨어질 기세다. 인생은 참으로 아침 이슬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침 이슬이 지는 찰나에 봄날은 가고 있다.

 

서울에 10여 일 간 머무는 동안 수평리에 돌아와 보니 마을에서 가장 큰 어르신이 아침 이슬처럼 별나라로 가시고 없다. 어르신은 향년 89세로 우리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분이시다.내가 서울에 가기전만 해도 지팡이를 짚고 힘겹게 산책을 하시던 분이다. 더구나 어르신은 우리가 세 들어 살고 있는 집의 큰 집이다. 할머니도 너무 자상하시고 친절하시어 우리는 두 분을 큰아버지, 큰어머니로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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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족산은 그대로 있다.

 

 

며칠 전에 아내가 전복죽을 써서 어르신에게 갔다 드렸는데, 어르신은 그 죽을 한 그릇 다 비우셨다고 하셨다고 하며 그 전복죽 그릇에 고추장을 듬뿍 담아 가져오셨다. 어르신은 과묵하시고 별로 말이 없으셨다. 그저 묵묵히 산책을 하시다가 집으로 들어가시곤 했다. 산책을 하고 계신 어르신에게 인사를 하면 잠시 멈춰 서서 그저 고개를 끄덕끄덕 하실 뿐이다.

 

서울에 머무는 동안 타계하신 뒤늦게 어르신 집에 들르니 아들 3형제가 아직 떠나지 않고 있었다. 돌아가신지 3일째 되는 날인 오늘 탈상을 한다고 한다. 삼형제 모두가 타향에서 살고 노인부부 두 분만 이곳에서 살고 있어 아무도 임종을 지켜보지 못했다고 한다.

다.

 

"돌아가시던 왔다가 괜찮을 것 같아 광주 집으로 갔는데 집에 도착하기 전에 임종 소식을 들었어요. 임종도 제대로 보지 못해 죄송할 따름입니다."

"현실이 다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너무 섭섭해 하지 마십시오."

"저희들 없는 동안 대신 잘 보살펴 주시어 감사합니다."

"별 말씀을요. 잘 해드린 것 하나도 없습니다."

 

 

 

 

 

 

 

비단 이 집뿐만 아니다. 우리 마을 30여 가구가 거의 노인들만 산다. 그러니 부모님의 임종을 자식들이 제대로 지켜보는 집은 거의 없는 것이 농촌의 현실이다. 노인들의 임종은 이웃집에 사는 사람들이 지켜보게 된다. 어르신도 수평상회 아주머니와 큰어머니가 지켜보았다고 한다.

 

마을에서 가장 큰 어르신이 가셨지만 산천은 그대로 있다. 백운산과 계족산, 그리고 섬진강 건너 지리산 노고단은 여전이 그대로 서 있다. 마을 가운데로 흘러가는 시냇물도 졸졸졸 흐르며 잔잔한 소리를 내고 있다. 모든 것이 그대로다. 그러나 한 생명은 보이지 않는다.

 

 

▲아침 마을 풍경. 멀리 지리산이 보인다.

 

산들바람이 불자 풀잎에 맺혀있는 이슬방울이 땅으로 떨어져 내린다. 인생은 저 이슬방울 같은 거야. 떨어지는 이슬방울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문득 부처님의 말씀 한 구절이 떠오른다.

 

 

일체의 유위법(有爲法)은

꿈과 같고

환(幻)과 같으며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으며

이슬과 같고

또한 번갯불과 같나니

마땅히 이와 같이 관할지니라.

 

영원히 잡을 수도 취할 수도 없는 것이 시간이요, 만물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현상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마을 앞의 시냇물처럼 여여(如如)하게 흘러 보내야 할 뿐. 여여(如如)란 마음에 출입이 없고, 어디로 향하거나 흔들림이 없어 일체 처에 평등하다.

 

인생은 영원히 살 것만 같은 착각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것은 항상 한 것이 없다. 그러니 강을 건너고 나면 뗏목까지 버리고 여여부동하게 분별심이 없는 마음으로 자연의 섭리에 따라 살아가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

 

 

(2011.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