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섬진강일기

서울 참새와 시골 참새

찰라777 2011. 7. 13. 05:47

 

 

▲아직은 참새로부터 무사한 우리집 불루베리 

 

 

 

"아빠, 큰일이야. 글쎄 참새들이 우리 블루베리를 다 쪼아 먹어버렸다니까."

"허허, 저런! 우째 그런 일이!"

"옥상에서 블루베리가 싱싱하게 잘 익어가고 있는데 어느새 참새들이 맛을 알고 다 따 먹어 버렸어. 그런데 아빠네 블루베리는 괜찮아?"

"응, 여긴 아직 멀쩡한데. 참새들이 왔다가도 그냥 가곤 해."

"에공, 서울 참새들은 왜 이 모양이야."

"서울은 아마 먹을거리가 없어서 그럴 거야. 망사라도 좀 둘러 쳐 주어라."

"정말 그래야 할까 봐요."

 

 

오늘 서울 둘째아이 경이 한 테서 울상 지은 소리로 전화가 왔다. 지난 6월 경이는 친구들과 함께 십 만원이나 되는 거금을 주고 승주 깨비농장에서 4년생 블루베리 나무를 사갔다. 우리 집에서 블루베리가 싱그럽게 열려 있는 것을 보고 옥상에 키운다며 사 갔던 것.

 

 

블루베리나무는 제법 튼실하게 컸고, 열매도 많이 열려 있었다. 서울로 이사를 간 블루베리는 친구네 집 옥상에서 열매가 잘 익어 요즈음 한 참 따먹는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옥상에 올라가 보니 참새들이 몰려와 블루베리를 마구 쪼아 먹더라는 것. 블루베리 맛을 알아 본 참새들이 떼거리로 몰려와 보랏빛으로 익어가는 블루베리 열매를 모조리 쪼아 먹어치웠다고 한다.

 

 

 

 ▲지난 6월 승주 깨비농장에서 블루베리 묘목을 고루는 경이 친구들

 

 

사실 우리 집에 심어놀은 블루베리도 참새들이 블루베리를 쪼아 먹지 않을까 내심 걱정을 했다. 지난 번 개울 건네 김 씨네 집 대문 앞 뽕나무에 열려있는 오디를 참새들이 시시 때때로 몰려와 쪼아 먹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참새들은 잘 익은 오디만 귀신같이 골라내서 쪼아 먹었다. 녀석들은 우리 집 텃밭에 익어가는 보리이삭도 수시로 날아와 쪼아 먹어 치웠다. 그런데 블루베리만은 아직 무사하다. 그물을 칠까 하다가 그대로 두고 있다.

 

 

"아직 시골참새들은 블루베리 맛을 보지 못해서 그나마 성하지 않을까요?"

"도시 참새라고 해서 모두 블루베리 맛을 알지는 못할 텐데."

"도시에는 워낙 먹을거리가 없어서 아무거나 먹어치우겠지요."

"흐음, 그럴지도 모르지…"

 

 

이곳 수평리 마을에서 블루베리 나무를 키우는 집은 우리 집뿐이다. 그래서 아직 참새들이 블루베리 맛을 모르는 지도 모른다. 참새들은 밭에 심어 놓은 콩까지도 땅속에서 파내 쪼아 먹는 바람에 우리 동네 이장님은 수시로 참새를 쫓으러 딸딸이를 몰고 밭으로 가곤 할 정도다.

 

 

▲뻔뻔하고 영특한 서울 참새들은 내 발밑까지 다가와 내가 밥알을 던져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2008년 서울 아산병원 6층 정원)

 

 

도시 참새들은 참으로 뻔뻔하고 영특하다. 몇 해 전 아산병원에 아내가 입원을 했을 때 나는 병원 6층 정원에서 도시락을 먹곤 했었다. 몇 달간 입원을 한 아내를 간병하느라 병원에서 먹고 자고 해야 했는데, 처음에는 병원식당에서 사먹다가 병원 밥이 질려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해서 영이와 경이가  번갈아 가며 집에서 음식을 날라 왔다. 무균실에 입원을 한 아내와는 물도 함께 마실 수 없었는지라 나는 병원 6층 정원 벤치에 앉아 홀로 밥을 먹곤 했었다.

 

 

어느 날 내가 밥을 먹으려고 하자 어디선가 참새들이 날아와 내 주위를 빙빙 돌았다. 내가 실수로 밥알을 떨어뜨리자 참새들은 눈치 볼 것 없이 다가와 서로 경쟁을 하며 밥알을 쪼아 먹었다. 녀석들은 혹시 밥알이 또 땅에 떨어지지 않나하는 태도로 나를 슬금슬금 쳐다보았다. 내가 모른 체 하고 밥알을 흘리면 참새들은 자기들끼리 박 터지게 싸우며 밥알을 훔쳐 먹었다. 녀석들은 내 발 바로 밑까지 껑충껑충 뛰어와 잽사게 밥알을 주어먹었다. 나는 한 달 넘게 그렇게 자리에서 참새들과 함께 밥을 먹으며 녀석들을 간찰하게 되었다.

 

▲밥알을 달라고 노골적으로 나를 처다보고 있는 서울참새(2008년 서울 아산병원)

 

 

 

녀석들은 기억력도 참 좋았다. 내가 음식이 든 파란 백을 들고 정원에 들어서면, 녀석들은 음식이 든 파란 백을 알아보고는 금새 어디선가 화살처럼 날아와 내 곁에 앉곤 했다. 녀석들은 갈수록 점입가경이었다. 낯이 익어진 녀석들은 이제 노골적으로 밥을 같이 나누어먹자는 식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내 밥의 상당부분을 참새들에게 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 참새들은 만나게 밥알을 주워 먹었고, 나는 녀석들과 친구가 되어 긴 간병생활을 심심치 않게 보낼 수 있었다.

 

그런데 이곳 구례 수평리 참새들은 서울 참새들에게 비해 너무 순박하다. 먹을거리가 풍성해서 인지도 모르지만 가끔 밖에서 음식을 먹어도 서울 참새들처럼 전혀 껄떡거리는 법이 없다. 들판에 먹 거리가 풍성해서 그럴까?

 

 

▲시골 참새들은 텃밭에 보리는 쪼아 먹었으나 아직 블루베리 맛은 모르는 모양이다

(2011년 6월 시골 텃밭에 심은 보리)

 

 

다만 작년 가을에 텃밭에 보릿국을 끓여 먹기 위해 보리를 약간 심어 놓았는데, 보리이삭이 익어가자 참새들이 가끔 날아와 이삭을 쪼아 먹기는 했다. 보리 이삭은 녀석들이 이미 먹었던 낯 익은 먹 거리여서 그럴까? 하지만 아직 블루베리 맛을 모르는 모양이다.

 

 

"그래도 루베리가 익으면 참새가 먹기 전에 얼른 따내야 할 것 같아요."

"좀 먹으라고 두지 뭐. 녀석들도 블루베리 맛을 좀 봐야 할 거 아닌가? 하하."

"에고, 블루베리가 몇 알이나 된다고요."

 

 

서울 참새들은 참으로 뻔뻔하고 영특하다. 반면에 시골 참새들은 서울 참새보다는 우둔하고 순박한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사람도 참새도 서울에서 살면 뻔뻔해지고 영특해 지는 모양이다. 순박한 시골 참새들 덕분에 우리 집 블루베리는 아직 성하다.

 

 

3년 전에 아산병원에서 함께 도시락을 나누어 먹던 참새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지금도 6층 정원에서 누군가가 밥알을 떨어뜨려 주기를 기다리고 있을까? 우리처럼 시골로 이사를 오면 맛난 블루베리도 따먹고, 먹 거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