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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만 콩 반, 콩밭을 매며...

찰라777 2012. 7. 27. 15:27

풀 반 콩 반, 콩밭을 매며…

 

농업 1만 년의 역사는 잡초와의 전쟁이다

 

오랜만에 비가 그치고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왔습니다. 지금까지 내린 비로 대지는 충분히 적셔 있다 못해 습기 때문에 다소 답답할 지경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햇빛은 나지 않지만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불고 구름이 끼어 텃밭에서 작업을 하기엔 아주 좋은 날씨입니다.

 

그래서 점심을 먹고 나서부터는 바람도 선선하게 불어 와 콩밭을 메기 시작했습니다. 아내도 절뚝거리며 잔디밭에 잡초라도 뽑아야겠다고 따라 나섭니다. 장마 끝에 비가 그치고 나니 콩밭이나 잔디밭이나 잡초들이 제 세상을 만난 듯 무성하게 자라나고 있습니다.

 

 

 

 

 

 

 

 

 

▲콩밭에 풀을 베너내기 전. 잡초 반 콩 반이다.

 

 

“귀농은 잡초와의 전쟁이다!”

 

 

이곳 동이리에서 텃밭을 일구기 시작하며 농사를 짓기 시작하며 가장 어려운 문제가 어떻게 잡초를 처리하느냐는 것입니다. 귀농은 잡초와의 전쟁이란 말이 정말 딱 가슴에 와 닿는 말입니다.

 

 

일반 관행농법에서는 더욱 많은 생산을 위해서 제초제를 부려서 잡초를 제거합니다. 토양이야 죽던 말든, 화학 제초제와 농약으로 자신이 병들어가면서도, 더구나 누군가가 사먹을지도 모르는 농작물에 독성이 들어있든 말든, 풀을 제거하기 위해 제초제를 마구 퍼부어댑니다.

 

 

사실 처음으로 생태농법으로 농사를 지어보는 새내기에게는 뽑아도 뽑아도 없어지지 않고 곧 바로 돋아나는 잡초 때문에 골머리를 앓을 수밖에 없습니다. 설령 제초제를 살포 하더라도 잡초는 곧 다시 돋아납니다.

 

 

허지만 나는 작은 농사이지만 제초제를 쓰지 않고 농사를 지어보기로 결심을 하고 풀을 손으로 뽑나내고 있습니다. 농업 1만년의 역사는 어찌 보면 인간과 잡초와의 대결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잡초는 사라지기는커녕 점점 더 기승을 부리며 모질게 돋아나고 있습니다.

 

 

엉덩이 깔게

 

 

 

 

 

장화 신고, 밀짚모자 쓰고, 장갑 끼고, 호미와 낫을 들고 콩밭으로 갔습니다. 콩밭은 풀 반 콩 반, 아니 풀이 콩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장마가 오기 전에 두 번 정도 풀을 뽑아 주었는데도 이 모양입니다. 나는 농사 작업용 의자를 엉덩이에 끼어 받치고 콩밭으로 갔습니다.

 

 

엉덩이 붙인 큰 혹을 보고 아내가 쿡쿡 하고 웃었습니다. 그러나 이 엉덩이 쿠션이 작업을 할 때 얼마나 편한지 모릅니다. 옛날 우리 어머님이 밭을 매던 시절에는 왜 이렇게 편한 쿠션 하나 없었는지 애석하게만 생각 됩니다.

 

 

어머님은 땡볕에 몸빼를 입으시고 쪼그리고 앉아 하루 종일 콩밭이나 조밭을 매시곤 하셨습니다. 콩밭에 엎드려 김을 매다 보니 돌아가신 어머님이 사무치게 그리워집니다. 대지처럼 나를 무한히 사랑해 주시고, 언제나 그 모든 아픔을 안아 주시던 어머님! 그러나 별나라로 가신 어머님은 대답이 없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어머님 생각이 더 간절해지는 것은 왜일까요? 어쩔 때는 늙으신 어머님 품에 엎어져 포근하게 잠이 들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에겐 이미 그런 어머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그러니 살아 계실 때 잘 해드려야 해…” 콩밭을 매며 어머님께 잘 못 해드렸던 생각만 줄줄이 떠오릅니다.

 

 

쿠션을 엉덩이에 붙였는데도 콩밭에서 김을 매는 작업은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잡초가 어찌나 크고 뿌리가 단단하던지 자칫 잘못하다가는 콩이 통째로 뽑혀버립니다. 이런 경우에는 풀을 한 가닥 씩 잡고 호미로 자근자근 쪼아가며 살살 뽑아내야 콩이 뽑히지를 않습니다.

 

 

잡초를 뽑아낸 구멍에는 호미로 흙을 긁어서 복토를 해주어야 콩이 넘어지지 않습니다. 모든 식물은 흙에서 양분을 먹고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가급적 콩의 뿌리가 흙속에 잘 묻히도록 복토를 해주어야 합니다.

 

 

자연농법을 고집하는 사람들

 

 

 

 

 

▲콩밭에 풀을 베어낸 후

 

 

잡초는 콩 밑에 그대로 누여 두었습니다. 전에는 밖으로 뽑아내서 퇴비를 만들었는데 그냥 그 자리에서 거름이 되도록 둔 것이지요. 지난주 귀농교육 시간에 미산면에 귀농을 한 홍려식 씨로부터 <자연재배>에 대한 사례발표를 들었는데, 그는 파종을 한 후에는 잡초를 베어서 그 자리에 거름으로 사용하고 일체의 퇴비나 비료를 주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일본인 가와구치 요시카즈가 쓴 ‘신비한 밭에 서서’란 책을 네 번이나 정독을 하고, 그 해 가을 연천으로 귀농을 하여 8개월 동안 아무 것도 안 하고, 오직 삽질을 하며 잡초 밭을 일구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①논밭 안 갈기(처음 한번만 갈고) ②비료 안 주기 ③농약 한 주기 ④풀 뽑지 않기 등 4무 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고 했습니다. 풀을 뽑지 않고 자라면 베어서 그 자리에 거름으로 둔 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4년 동안은 아무 수확도 없이 휙 지나가고 말았다고 합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그는 숲을 바라보며 ‘숲의 나무는 거름도, 농약도, 풀도 뽑아주지 않아도 잘 자라지 않아’ 하면서 자연 농법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5년차에 드디어 토마토, 단호박, 고구마를 처음으로 생산을 해서 200만원의 수확을 올렸고, 6년 차에는 오이, 가지 등이 추가로 수확이 되어 600만원의 수확을 올렸다고 합니다.

 

 

그가 들인 원가는 씨앗 등 겨우 50만 원 정도였다고 합니다. 물론 본인이 직접 풀을 베어내는 등 노동을 하므로 인건비는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땅은 한 번만 갈아엎고 나면 다시는 갈지 않으므로, 트랙터 등 농기계를 사용할 필요가 없고, 석유 값이 들어가지 않으며, 일체의 비료 값도 들어가지 않으므로 원가가 더 이상 들어갈 것이 없다는 것이지요.

 

 

그는 아침에 일어나면 밭에 나가 풀과 농작물과 늘 대화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려울 때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숲에 자라는 나무를 바라보며 희망을 잃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금년에는 104년 만에 찾아온 가뭄 때문에 농사가 엉망이 되었다고 합니다.

 

 

제초제와 농약을 쓰지 않는 것은 찰라가 농사를 짓는 방법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풀까지 매지 않고 그냥 베어서 그 자리에 놓아둔다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입니다. 뿌리에서 곧 다시 풀이 돋아나기 때문이지요.

 

 

잡초는 토양의 수호자?

 

 

 

 

그러나 우리가 농업을 기본으로 삼아 농사를 짓고 살고자 하는 이유는 이제 더 이상 자연을 거스르는 삶은 인간의 심신건강도, 행복한 삶도, 지속적인 생존도 보장될 수 없음을 여기저기에서 확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식물학자 조셉 코캐너는 그의 저서 ‘잡초는 토양의 수호자이다’란 책에서 잡초는 토양 깊숙한 곳으로부터 미네랄을 끌어다 황폐해진 표토 쪽으로 옮겨다 주는 역할을 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잡초들은 인정 많은 이웃처럼 멀리 떨어져 있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영양소들을 농작물 뿌리 쪽으로 끌어다 준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러한 움직임을 ‘만물의 공존 법칙’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식물들 간의 공존가 유대관계를 통해서 서로를 살리며 함께 살아간다는 거십니다(신비한 밭에 서서. 최성현 옮김, 들녘).

 

 

한 나절을 콩밭의 풀을 베어냈습니다. 녀석들은 곧 또 다시 자라나겠지요. 그러나 콩 밭의 풀을 잘라서 콩밭에 그대로 둔 모습을 바라보니 왠지 가슴이 뿌듯해집니다. 잡초와 더불어 살아간다고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해집니다.

 

 

콩이 얼마나 열릴지는 가을에 수확을 할 때에 나타나겠지요. 그러나 독성이 강한 제초제를 쓰지 않고, 농약을 살포하지 않으며 잡초와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지탤 할지는 나 자신도 잘 모르겠습니다. 부디 더불어 살아 갈 수 있는 길이 열리기를 두 손 모아 기도를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