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찰라의세상보기

멧돼지가 출현하는 지리산 미타암에서...

찰라777 2012. 10. 12. 06:09

중생을 일깨우는 청정한 목탁소리

 

똑 똑 똑 또르르르르르르르……

똑 똑 똑 또르르르르르르르……

 

▲목탁소리가 청아하게 들리는 지리산 미타암에 고고한 달빛이 어둠을 밝히고 있다.

(흔들려 잘못 찍은 사진이 묘하게 유성처럼 꼬리를 물며 신비히게 보인다)

 

미타암에 머무는 이틀 동안 새벽 3시 정각에 스님은 도량석을 돌며 목탁을 울렸다. 이 시각은 지혜제일 문수보살이 설법을 하는 시간이라고 한다. 스님은 경내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주변의 뭇 생명들을 깨웠다. 새벽 산사.

 

청정한 도량에 울려 퍼지는 목탁소리는 맑고 청아하기 그지없다. 군더더기가 없는 담백한 소리다. 신묘장구대다라니에 이어 스님은 사방을 찬탄하는 천수경을 낮고 맑은 목소리로 천천히 독송했다.

 

도량이 청정하여 더러움이 없사오니

삼보와 천룡님이시여 어서 이곳 내려오소서!…….

  

▲고요한 미타암 경내, 새벽 3시 정각에 스님은 도량석을 돌며 목탁을 울렸다

 

고요한 새벽 산사에 울리는 목탁소리와 스님의 낮고 맑은 독송. 실로 오랜만에 들어 본다. 우매한 중생을 깨우는 한 줄기 청량제 같은 소리가 아닌가. 저 담백한 목탁소리를 듣기 위해서라도 가끔은 속세를 떠나 산사로 와야 할 것 같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찬물을 벌컥벌컥 들어 마시고 세수를 하고나니 정신이 번쩍 났다.

 

불전함도 없는 작은 법당

 

미닫이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니 찬바람이 쏴아 하고 온몸을 감싼다. 속살까지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새벽바람이다. 대웅전에 들어가니 각초스님과 다른 두 분 스님께서 가부좌를 틀고 참선에 잠겨 있다.

 

▲좁은 법당에는 작은 부처님 한분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작은 법당에는 부처님 한분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부처님도 아주 작은 부처님이다. 부처님 앞에는 촛대 둘, 마지그릇 하나, 향로 하나가 전부이다. 흔히 있는 탱화, 지장보살상, 관세음보살상도 없다. 법당은 매우 간결하고 깔끔하다. 시주 돈을 넣는 불전함도 없다.

 

수십 년 동안 선방에서만 수행을 해 오신 스님답다. 지난여름 문경 봉암사에서 한 여름 결제를 해 오신 스님은 이번 겨울에도 봉암사로 선 수행을 떠나실 거란다. 스님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율이 엄하기로 소문난 봉암사 선원에서 입승(入繩-선방의 기강을 바로잡는 직책)을 맡으실 정도로 선의 경지가 높다.

 

허지만 스님의 모습에서는 전혀 엄한 느낌이 없다. 그저 자상하고 부드러움 그 자체이다. 주로 선방에만 계시는 스님을 친견하기란 그리 쉽지가 않다. 때문에 결재(潔齋)철이나 지나야 겨우 스님을 뵐 수가 있다. 그런 스님을 친견 할 수 있는 나는 큰 행운이다.

 

계향~ 정향~, 혜향~ 해탈향~ 해탈지견향~~~

(지계의 향이여, 선정의 향이여, 지혜의 향이여, 해탈의 향이여, 해탈지견의 향이여!

이 거룩한 향을 사루어 올립니다)

 

▲차방

 

오분법신향(五分法身香)은 부처님을 위시해서 모든 깨달은 분들이 갖추고 있는 광대한 무량한 시방의 부처님과 법신, 스님들께 공양을 올리는 것이다. 오분향이 시방으로 무량하게 경내에 퍼진다.

 

계, 정, 혜 삼학의 향기가 나는 암자. 미타암의 예불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길게, 그리고 천천히 부처님께 예불을 올리고, 스님은 짧게 기도문을 낭송했다. 그리고 반야심경을 하고나서 스님은 어간을 통해 조용히 나가셨다.

 

묵언 속의 가르침

 

설법을 길게 하고, 불경을 오래도록 독송한다고 해서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스님의 일거수일투족을 바라보며 느끼는 <향>이 묵언 속에 주는 가르침이 아니겠는가!

 

▲연못에 드리운 지리산 노고단 풍경

 

2500여년 전 부처님은 기원정사에서 입고 계시는 가사장삼 하나, 발우 하나를 들고 마을에 들어가 차례로 걸식을 하고, 식사를 하시고 발을 씻고 정좌를 하여 대중에게 설법을 하시곤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지혜제일 수보리 존자는 오른 쪽 소매를 벗어 오른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짚고 합장공경의 예를 드리고 부처님께 여쭙는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희유하십니다. …… 선남자 선여인이 어떻게 깨달음 얻어 마땅히 어떻게 머물러야 하며,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 받을 수 있겠사옵니까?”

 

이미 아라한의 경지에 올라가 있는 지혜제일 수보리 존자는 무엇을 더 배우고자 그처럼 부처님을 찬탄하며 물었을까? 부처님께서 고요히 정좌하고 계신 모습만 보고도 참으로 희유 하다고 수보리는 감동을 하며 엎디어 여쭈었던 것이다.

 

▲노고단 서산으로 기우는 달

 

우매한 중생이 어찌 그 뜻을 알리요. 나는 법당에 엎어져 절을 하고, 가부좌를 틀고 한동안 호흡을 조율하다가 답답함을 금치 못하고 밖으로 나왔다. 휘영청 떠있던 달이 서산에 기울고 있었다. 달은 기울고 적막강산에 여명은 밝아오는데 중생은 답답하기만 하다. 필시 평생 동안 지어 온 업장이 지구 두께처럼 누르고 있음이렷다!

 

아침 6시 정각에 공양을 하라는 목탁이 울렸다. 그래도 밥은 먹어야지… 공양간으로 내려가니 김치에 죽 한 그릇이 올라와 있다. 절에서 먹는 음식은 무엇이든지 맛이 있다. 다른 간식을 하지 않는 탓도 있지만 잡생각이 없어서 일 것이다.

 

요사 앞에는 작은 연못도 생겼다. 대웅전 오른쪽에는 초가집으로 된 차방도 단출하게 지어져 있다.

 

아침 공양을 마치고 돌아보는 미타암. 지난 4월 미타암을 다녀간 뒤로 다시 와보는 미타암은 많이 변해 있었다. 요사도 황토로 새로 지었고, 요사 앞에는 작은 연못도 생겼다. 대웅전 오른쪽에는 초가집으로 된 차방도 단출하게 지어져 있다.

 

“스님, 선방에만 계신 줄 알았는데. 언제 이렇게 많은 불사를 하셨는지요?”

“허허, 글쎄요 나도 몰라요. 모든 것을 부처님께서 알아서 해주시니…….”

 

미타암 법당에는 절마다 있는 불전함도 없고, 기와불사를 하라는 그 흔한 문구도 없다. 그저 스님은 참선에만 주력하시는데 이렇게 불사가 이루어지다니, 아무리 생각을 해도 무상심심미묘하다. 스님의 그 미묘한 경계를 어찌 범부가 알겠는가?

 

작은 연못에 금붕어가 유유자적 헤엄을 치고 있으니 갑자기 경내 전체가 생기가 도는 느낌이 든다.

 

연못에는 금붕어가 유유히 헤엄을 치고 있다. 참 이상하다. 산사에 작은 연못이 생기고, 그 연못에 금붕어가 유유자적 헤엄을 치고 있으니 갑자기 경내 전체가 생기가 도는 느낌이 든다. 우매한 중생은 눈에 보이는 것만 보는 것만 느낀다고 했던가?

 

요사 아궁이 앞에는 장작더미가 쌓여있고, 재래식 측간도 지어져 있다. 차방에 들어가 스님이 주시는 차를 연거푸 서너 잔을 마셨다. 뜨거운 차를 마시니 몸이 더워졌다. 정좌를 하시고 조용히 차를 끓여서 찻잔에 따라 주는 스님의 모습이 그저 희유하게만 보인다.

 

요사 아궁이 앞에는 장작더미가 쌓여있다.

 

▲초가 차방이 운치를 더해준다

 

“스님, 요즈음 멧돼지들은 안 오는 가요?”

“아하, 그 멧돼지요? 가끔 이 아래 요사로 찾아와서 밥을 얻어먹고 가곤 해요. 그런데 지금은 두 마리 정도밖에 오지 않더군요.”

 

나는 정성스럽게 차를 달이는 스님 앞에서 생뚱맞게 멧돼지 이야기를 꺼냈다. 지난봄 멧돼지가 새끼를 7마리나 낳아 밥때만 되면 공양간 앞에 타나 밥을 달라고 꼬리를 흔들며 애교를 부리던 생각이 떠 올랐기 때문이다. 절집이 가난하여 두 마리만 이 절로 걸식을 오고, 나머지는 다른 절로 걸식을 갔을까? 울울창창한 소나무 숲을 보면 곧 멧돼지가 출현을 할 것만 같은데…

 

▲ 울울창창한 소나무 숲을 보면 곧 멧돼지가 출현을 할 것만 같은데…

 

▲측간

 

차를 마신 후 스님과 함께 산책을 나섰다. 미타암에서 연기암까지는 약 2km이 거리다. 아직은 단풍이 들지 않은 산책길은 신선하기 그지없다. 설법이 필요 없다. 걷는 것이 곧 설법이다. 고즈넉한 산책길, 아름드리나무들이 묵언 속에 설법을 해준다. 부처님은 법당에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가는 곳마다 입추의 여지없이 존재한다.

 

가끔씩 바람이 불면 숲은 우우우 하며 소리를 낸다. 숲의 향기가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온다. 자연이 주는 향기다. 자연은 이렇게 산소를 뿜어주며 향기를 주는데 나는 자연에게 무엇을 주고 있는가? 반성을 해본다. 자연은 천수천안으로 인간을 보살피고 있다. 그런데 인간은 천 가지 만 가지로 자연을 괴롭히고 있다.

 

▲연기암으로 가는 산책길

 

 

자연은 천수천안으로 인간을 보살펴 주는데

인간은 천 가지 만 가지로 자연을 괴롭히고 있다

 

참회를 해야 한다. 자연 앞에 인간은 백고 사죄해야 한다. 최근 구미에 터져 나온 불산(弗酸)이 바로 인간이 자연을 괴롭힌 한 예이다. 불산이 신체에 닿을 경우 플루오린화 수소가 신체의 수분과 결합을 하면서, 뼈 속까지 침투하여 심하면 신체를 절단해야 하는 상황까지 이르게 한다고 한다.

 

제가 아득한 옛날부터 지은 모든 악업

탐애하고 화내고 어리석음 때문이오며

몸과 입과 생각으로 지어왔기 때문이오니

모든 것을 남김없이 제가 이제 참회합니다.

 

백겁을 두고 쌓아온 죄업을 어떻게 일순에 참회 하리오? 세상에 공짜란 없다. 참회한다고 해서, 회개한다고 해서, 죄업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백겁을 두고 쌓아온 죄업은 백겁을 두고 하나하나 갚아가며 씻어가야 한다. 비록 그 죄업을 다 씻는다 해도 죄의 흔적은 남아있다.

 

▲영험하게 보이는 숲속 작은 산신각

 

남은 인생을 죄업을 씻기엔 너무 짧다. 죄의 자성은 본래 없다고 하는데, 죄는 마음에 따라 일어나며, 그 마음이 사라지면 죄업 또한 사라진다고 하는데, 그 죄와 생각이 흔적이 없이 모두가 공하여야 이것을 이름하여 <참회>라고 한다는데……

 

“스님, 이만 내려가겠습니다.”

“벌써 가시려고? 또 오세요.”

 

그렇지, 또 와야 한다. 또 오라는 스님의 말씀이 업장을 씻으러 오라는 말씀처럼 들린다.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스님께 합장배례하고 미타암을 내려왔다. 뒤돌아서서 가는 스님의 모습이 깃털처럼 가벼워 보인다. 늘 바른 말을 사용하고, 참회하는 마음을 항상 잊지 말 것이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부처님처럼 모시라는 스님의 조용한 말씀이 귓전을 때린다.

 

저 가벼운 몸으로 스님은 금년 겨울에도 문경 봉암사 선원에 들어가 정진을 하며 겨울 한철을 날거라고 한다. 얼마나 더 가벼워지시려고 그러실까? 깃털처럼 가벼워지면 스님은 정진 끝에 공의 세계로 들어가 버릴까? 죄와 생각이 흔적도 없이 공한 세계, 그 자리가 바로 <참회>의 자리라고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