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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찰라777 2012. 10. 24. 05:17

가을비는

낙엽지는 소리로 온다

 

낙엽 지는 소리에 가슴을 앓고

낙엽 지는 소리로 시를 쓴다

 

거리에는 시의 조각들이 연서처럼 나굴고

사랑을 앓는 연인들이 낙엽을 좇아 시를 읽는다

 

가을비는 낙엽 지는 소리로 와서

가을비 소리로 낙엽 위에 시를 쓴다.

 

-서정란 시인, 낙옆에 쓰는 시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홍천 비발디파크에서 1박 2일을 보냈습니다. 아침 일찍 연천을 출발하여 포전, 청평을 지나 비발디 파크에 닿았습니다. 시인이 노래했듯 가는 곳마다 가을비는 낙엽 지는 소리로 왔습니다. 운악산에도, 청평호에도 산과 호수는 낙엽지는 소리에 가슴을 앓고, 낙엽지는 소리로 시를 쓰고 있었습니다.

 

 

 

 

자동차의 물결이 주차장을 방불케 하는 도로에서 사랑을 앓는 연인들이 낙엽을 좇아 시를 읽고 있었습니다.

"와아, 전 단풍 좀 봐!"

사람들은 자동차 길이 막히던, 비가 내리던 상관하지 않고 만산에 홍엽을 바라보며 시의 언어로 그저 감탄사를 날렸습니다. 도로에는 시의 조각들이 연서처럼 나뒹굴고, 사람들은 낙엽지는 소리를 안타까워하면서도 아름다운 시를 쓰고 있었습니다. 아름다움은 생명이 사라져 갈 때 극치를 이루는 것 같습니다.

 

 

 

 

 

어느 여인이 홀로 낙엽을 좇아 시를 읽으며 길을 걷고 있습니다.

홀로 길을 걷는 여인은 낙엽 지는 소리에 가슴을 앓고 있는 것일까?

 

 

 

단풍 곱게 물든 길을 걷다가 어떤 여인은 그만 계단에 주저 앉아

붉게 물든 낙엽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습니다.

감국 향기가 천지에 분을 바르고,

가을은 감국향기로 점점 더 짙어 가고 있습니다.

 

 

 

 

 

 

 

 

 

 

가을비는 낙엽 지는 소리로 와서

가을비 소리로 낙엽위에 시를 쓰고 있습니다.

비가 오다가 그치다가 다시오고,

가을비도 낙엽 지는 소리에 가슴을 앓고 있습니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서정주, 국화 옆에서)

 

 

 

 

비발디 파크에는 국화가 한창이었습니다.

연인들은 국화 향기를 맡으며 가을의 서정을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서정주 시인의 시에는 윤회사상이 그 내면에 깃들어 있습니다.

 

 

 

 

국화꽃이 피는 것은 우리들 삶의 소망과 성취를 말합니다.

그리고 소쩍새는 그 소망의 성취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우리들 자신입니다.

소쩍새가 우는 봄은 우리들의 청춘시절이며,

천둥과 먹구름은 우리네 삶의 고달픔입니다.

 

 

 

우리는 삶의 고달픔 속에서도

한 송이 국화곷을 피우기 위해

부단히 삶에 바둥거리며 울부짖고 있습니다.

 

 

 

 

젊음이 사그라져 간 먼 훗날에 시인은 거울 앞에 섰습니다.

돌아온 탕아에게 일생을 헌신한 국화꽃 여인이 여전히 그의 옆에 서 있습니다.

간 밤에 가을비가 내리고

새벽에 무서리가 내리도

국화꽃은 거울 앞에 피어나 돌아온 탕아를 반겨주고 있습니다.

 

 

 

 

 

돌아온 탕아는 후회로 잠들지 못하고

여인은 일생을 그를 기다리느라 잠들지 못하고....

그러나 사랑은 국화옆에서 다시 피어나고 있습니다.

 

 

 

 

 

 

비발디 파크에는 다알리아도 한창입니다.

정열의 꽃 달아리아는 파란 하늘 아래 바람개비처럼 탐스럽게 피어 있습니다.

작은 꽃들이 모여 한 송이 커다란 꽃을 이루는 다알리아가 일제히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습니다

 

 

 

 

 

 

당신의 사랑이 나를 아름답게 합니다

당신의 마음을 알게되어 기쁨니다.

 

'정열'이란 꽃말을 지닌 다알리아는 바람개비처럼 창공에 피어 있습니다.

이 꽃은 보사노바풍의 감미로운 주제곡과 사랑의 명작으로 유명한 영화 '남과 여'를 떠올리게 합니다.

 

 

 

 

 

가을비에 낙엽이 지고 국화와 다알리아가 피는 가을날 밤

비발디파크에서는 다알리아 콘서트가 진행되었습니다.

시월의 어는 멋진 날에

연인들은

낙엽지는 소리에 가슴을 앓으면서도

국화옆에서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한 송이 아름다운 국화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