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임진강일기

영하 20도의 강추위에도 배달되는 우유와 편지, 그리고 택배!

찰라777 2012. 12. 9. 07:11

매일 눈을 쓸며 시작되는 하루 일과

 

오늘 아침에는 기온이 하 20도로 내려가 올들어 가장 추운 날씨를 기록하고 있군요. 이곳 연천은 파주군과 철원군 사이에 내륙에 어 있어 기후가 철원과 비슷합니다. 찰라가 살고 있는 동이리는 임진강이 바로 앞에 있어 체감 온도는 더욱 춥습이다.

 

 

매일 강추위가 계속되는 이곳 최전방 연천은 이미 파경보가 발령 중에 있습니다. 그런데다가 하루걸러 내리는 눈으로 이곳 임진강변에 위치한 저희 집은 눈 속에 갇힌 채 고립되어 있습니다. 날씨가 너무 추운 탓에 내린 눈이 녹지않고 그대로 쌓여 있습니다. 고드름은 점점 더 길어지고....

 

 

▲고드름이 점점 길어져 가는 이곳 동이리는 임진강이 바로 앞에 있어 체감 온도가 더욱 춥다!

 

 

요즈음 저는 매일 집 앞에 쌓인 눈을 쓸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12월의 날씨답지 않게 하루걸러 내리는 눈은 쓸어도 쓸어도 다시 쌓이곤 합니다. 눈을 쓸지 않으면 날씨가 너무 추워 곧 길이 동결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꼭 필요하게 다니는 길은 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 눈을 쓸어야 합니다.

 

 

▲ 매일 아침 집 앞 눈을 쓰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먼저 현관문 앞 테라스의 눈을 쓸고, 제설 삽을 이용하여 대문까지 눈을 밀어 나갑니다. 그리고 다시 빗자루로 쓸어 놓습니다. 정자로 가는 길과 창고로 가는 길, 쓰레기장으로 가는 길에도 눈삽을 이용하여 나만의 작은 고속도로를 만들어 놓습니다. 그렇게 길을 내어 놓으면 다니기도 편하고 기분도 매우 상쾌해집니다.

 

 

 

▲먼저 테라스 눈을 쓸고...

 

 

▲ 다음에 현관에서 대문까지 길을 낸다

 

 ▲ 그리고 대문앞 언덕길 눈을 치운다. 가파른 언덕길은 눈을 치우지 않으면 곧 얼어붙어 다닐 수가 없다.

 

 

▲ 정자 앞으로도 눈길을 내고...

 

 

▲창고로 가는 길에도 길을 낸다. 꼭 사람이 다녀야 할 길에는 눈을 치워야 한다.

 

 

대문 앞 언덕에 쌓인 눈은 특히 잘 쓸어 놓아야 합니다. 도로에서 들어오는 언덕길이 너무 가팔라서 눈을 치우지 않으면 매우 미끄럽기 때문입니다. 자동차가 들어올 수 있을 정도로 넓은 언덕길 눈을 치우다 보면 아무리 추워도 온 몸에 비지땀이 납니다.

 

하루에 두세 번 눈을 쓸고 치우고 나면 운동을 따로 하지 않아도 충분한 운동량이 됩니다. 그러나 눈을 치우는 일은 그리 쉽지마는 않습니다. 눈을 치우다 보면 숨이 헉헉 막히고, 허리와 팔다리가 뻐근하게 저려올 정도로 힘이 듭니다.

 

 

 

▲눈을 치우지 않으면 곧 얼어 붙어 버리는 가파른 언덕길은 눈이 내리는 날에는 하루에도 여러차례 눈을 쓸어 내고 있다.

 

 

 

눈속을 뚫고 배달되어 온 우유와 택배, 그리고 편지!

  

그런데 왜 그리 힘들게 눈을 치우느냐고요? 하기야 이곳 동이리는 눈을 치워보아야 누구 찾아올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도 이틀에 한 번씩 우유를 배달하는 우유배달부와 우체국 집배원이 오토바이를 타고 가끔씩 찾아오곤 합니다. 그리고 노루와 고라니, 고양이들이 찾아오고 하늘엔 기러기들이 날아들지요. 나는 이 귀한 손님들을 위해서도 눈을 치워야 합니다.

 

 

▲눈속을 뚫고 배달되어 온 우유

 

 

12월 5일 날은 눈이 너무 쌓여 우유가 배달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아침 식사로 우유를 덥혀 토스트를 찍어 먹곤 하는데 우유가 배달되지 않아 우유대신 커피에 식빵을 찍어먹었습니다. 이렇게 외진 오지에 우유를 배달해 주는 우유배달부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새삼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어제 아침에는 우유배달부가 지난번까지 배달을 하지 못한 우유까지 두통의 우유를 배달하며 미안 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우리 집으로 가는 언덕길. 언덕위에 보이는 집이 내가 사는 집이다.

 

 

"미안합니다. 워낙 눈이 많이 쌓여서요. 수요일에는 너무 미끄러워서 오다가 그냥 돌아가야만 했어요"

"아이고, 미안하긴… 이렇게 추운 날 여기까지 오시는 것만 해도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저희들이 오히려 미안하지요. 감사합니다."

 

정말로 이 추운 날 아침 우유를 배달해주는 우유배달원이 눈물이 나도록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어제 아침에는 우편배달부가 오토바이를 타고 와서 우체통에 편지를 말없이 넣어두고 갔습니다. 그리고 그제 저녁에는 택배 아저씨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 눈 길을 뚫고 온 택배

 

 

"여기 택배인데요. 차가 도저히 올라가지 못하겠어요. 탑 차라서 언덕길을 올라가지 못하거든요."

"지금 어디쯤이지요?"

"이 아래 이장님 집 앞에 있어요."

"그럼 거기 기다리고 계세요. 제가 내려갈게요."

 

나는 외투를 걸치고 어두운 길을 걸어 내려갔습니다. 우리 집에서 이장님 집과의 거리는 100여 미터 정도 되는 다소 언덕이 진 길입니다. 길 반대쪽에서 누군가 랜턴을 들고 걸어왔습니다. 손에 택배를 든 택배아저씨였습니다.

 

"아이고, 추운데 여기까지 오시느라 너무 고생 하셨지요?"

"길이 너무 미끄러워서 차가 도저히 갈수가 없네요."

"네, 그렇지요. 이거 너무 고맙습니다! 조심히 가세요."

 

택배를 받아들고 나는 너무나 고맙고 미안해서 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습니다. 그는 나에게 택배를 건네주고 터벅터벅 어두운 길을 걸어 내려갔습니다. 눈발이 다시 흩날리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허공에 날리는 눈발을 맞으며 택배를 받아들고 미끄러운 길을 걸어 올라왔습니다.

 

▲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해주는 우편물. 집배원아저씨가 너무나 고맙다.

 

 

 

묵묵히 자기일을 하는 사람들

 

생각해보면 묵묵히 자기 일을 하고있는 우유집배원, 우체국집배원, 택배아저씨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사회에는 아직도 이렇게 자기 일을 충실히 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지탱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오지에 우유 한통을 배달하는데 얼마나 많은 수고를 하는지. 그 수고로움에 비하면 그들이 받는 보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작은 돈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우유와 편지, 택배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희망에게 배달하고 있습니다.

 

 

▲영하 15도의 날씨에도 눈을 치우고 나면 온 몸이 땀이 젖는다.

 

 

이렇게 각자 자기가 맡은 일을 열심히 하면 우리 사회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돌아 갈 것입니다. 그러나 대선을 앞둔 요즈음 세태는 남을 비방하고 헐뜯는 일로 모두가 하루를 피곤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신문과 라디오, 텔레비전 등 모든 매체가 총동원하여 남을 비방하고 물어뜯는 기사와 실천하지도 못할 말의 성찬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냥 자신들의 정책을 말해주고, 국민들에게 비전과 희망을 제시해 주며 자신들이 할 일만 열심히 하면 될 터인데 말입니다.

 

 

 

▲정자 마끝에 매달린 고드름. 주상절리에도 흰눈으로 덮혀있고, 임진강은 점점 결빙이 되어가고 있다.

 

 

사실 가장 말하기 싫고, 듣기 싫은 것이 정치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제 대한민국도 보다 정직하고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국민을 웃게 해주는 유쾌한 정치인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한국경제는 세계 10위권으로 진입을 하고,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전 세계에 한국을 알리는 파수병 역할을 하고 있는데, 정치만큼은 영원한 후진국을 면치 못하고 있으니, 실로 정치인들은 부끄러워해야할 일입니다.

 

이미 한파경보가 내려진 이곳 연천군은 수은주가 매일 영하 10도 밑으로 떨어지며 기록적인 추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곳 미산면의 오늘아침(12월 8일) 최저기온은 영하 16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희집은 임진강변에 있어 체감온도가 거의 영하 20도에 이르고 있습니다.

 

 

▲ 눈 속을 뚫고 먹이를 찾아 내려오는 동물들의 발자국

 

 

고라니와 고양이의 발자국이 눈 위에 나 있습니다. 눈에 덮여 먹이를 찾지 못한 동물들이 산에서 내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에는 수많은 기러기들이 V자 편대를 지어 먹이를 찾아 어디론가 비행을 하고 있습니다.

 

근처 금굴산 자락에 있는 군부대에서는 군인들의 구령소리가 힘차게 들려옵니다. 그들이 나라를 지키고 있기에 오늘 내가 여기에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두가 자기 할 일을 하느라고 남을 비방할 시간이 없습니다.

 

 

먹이를 찾아 하늘을 나는 기러기 떼

 

 

나는 오늘 아침에도 눈을 열심히 쓸고 있습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지만 그래도 가끔은 우리 집을 찾아 줄 집배원 아저씨, 우유배달 아저씨, 그리고 택배 아저씨를 위해서, 고라니와 고양이, 하늘을 나는 기러기들이 찾아주기를 바라며 눈을 쓸고, 또 쓸어내고 있습니다. 이마에 숭얼숭얼 맺힌 땀방울이 머리에 묻어 그대로 고드름이 되고 마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