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임진강일기

엇! 새들이 곶감 다 빼먹네!

찰라777 2012. 12. 13. 08:02

구례에서 혜경이 엄마가 보내준 감을 곶감을 만들어 처마에 매달아 놓았다(http://bit.ly/121rIxg 기사 참조). "겨울 내 잘 말려서 봄부터 마누라하고 하나씩 빼 먹어야지."하고 빙긋 웃으며 매달아 놓은 곶감이다. 일부는 처마에 매달아 놓고, 일부는 바구니에 담아서 응달에 말리고 있다. 그런데 아내가 갑자기 큰 소리로 불렀다.

 

"여보, 빨리 내려 와 봐요!"

 

 

 

나는 또 무슨 비상사태가 낫나 하고 부리나케 이층 다락방에서 거실로 내려갔다. 아내는 시한폭탄과 같은 존재라서 가끔 긴급출동을 할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예상과는 달리 아내가 웃으며 빨리 카메라를 대령하라고 하며 창문을 가리켰다.

 

"쉿! 조용히 해요, 움직이지 말고."

 


 


 


창밖 처마 밑에서 새 한 마리가 곶감을 하나씩 빼먹고 있지 않은가! 녀석은 한번 찍어먹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경계를 놓치지 않고 있었다. 새들은 원래 의심이 많은 동물이다. 참새보다는 꽤 큰 새로 보아 지빠귀아과 종류일 가능성이 크다. 딱새? 박새? 아니면 개똥지빠귀인가? 굴뚝새 보다는 크고… 그럼 직박구리인가?

 

나중에 새박사 윤무부 교수님이 지은 조류도감을 찾아보니 직박구리 새였다. 유리창을 통해서 찍은 사진이라 다소 희미하게 보이지만 고슴도치처럼 머리털이 부숭부숭하고 등과 꼬리에 점무늬가 많은 것으로 보아 직박구리가 틀림없어 보인다. 직박구리는 등과 꼬리가 갈색이고, 부리와 발은 검은색이며, 몸길이는 27.5cm로 식물의 열매를 주로 먹고 산다고 되어 있다.

 

곶감을 빼먹는 녀석을 조심스럽게 관찰해 보았다. 녀석은 처음엔 처마에 매달아 놓은 곶감을 쪼아 먹으려고 하다가 곶감이 대롱대롱 움직이자 여의치 않아 포기를 하고 대신 바구니에 널어놓은 곶감을 발견한 모양이다. 녀석은 한동안 곶감을 쪼아 먹다가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여보, 새들이 곶감을 따 빼먹어버리는 것 아니에요?"

"음…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녀석들도 이 한겨울에 오직 먹을거리가 없으면 바로 거실까지 목숨을 걸고 왔겠소? 조금 더 먹으라고 그냥 둡시다."

"저애 혼자면 모르지만 있다가 떼거리로 몰려들지나 않을지 걱정이 되는데요?"

"허긴…"

 

아내의 예상은 적중했다. 아니나 다를까 녀석들은 곧 떼거지로 다섯 마리나 몰려와 곶감을 쪼아 먹기 시작했다. 아마 한 가족일지도 모른다. 먼저 먹은 녀석이 엄마일까? 그렇다면 녀석은 혼자 먹다가 그의 가족들에게 가서 알려 주었음이 틀림없다.

 

"애들아, 저기 금가락지 처마 밑에 가면 곶감이 있는데 쥔장이 참 마음씨가 좋아 보여. 빨리 가서 쪼아 먹자."

"엄마, 그런 데가 다 있어요. 나 지금 며칠째 굶어서 배고파 죽겠는데. 빨리 가요."

 

아마 대충 이런 대화를 나누며 녀석들은 우리 집 처마 맡으로 왔을 가능성이 높다. 녀석들은 곶감 앞에 콩이 있는데도 곶감만 쪼아 먹었다. 아마 콩 보다는 곶감이 훨씬 달고 맛이 있는 모양이다. 사람이나 새나 입맛은 같을까? 딱딱하고 비린내 나는 콩보다는 말랑말랑하고 달콤한 곶감이 훨씬 먹기에 좋겠지.

 

 

"여보, 어떻게 좀 해 봐요. 우린 아직 한 조각도 먹지 않았는데 새들에게 다 빼앗기겠어요."

"얼마나 배가 고프면 저러겠소. 오전까지는 그대로 두고 오후에 옮겨 놓도록 합시다. 이 추위에 딱히 어데서 먹을거리도 없는 것 같은데."

"아이고, 못살아. 당신 언제부터 새들하고 그렇게 친해 졌어요."

"하하, 여기로 이사를 온 뒤로부터 친해졌지. 하늘에 나는 기러기들도 모두 내 친구가 되었는걸.'"

 

우린 그렇게 농담반 진담반으로 토닥거리며 새들이 곶감을 쪼아 먹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대로 두면 정말로 곶감이 남아돌지를 않을 것 같았다. 봄이 오면 우리가 하나씩 빼먹으려고 힘들어 만들어 놓은 것인데 새들에게 다 보시를 할 수는 없었다. 나는 오후에 곶감을 왼쪽 모퉁이 탁자위에 새들이 잘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겨 놓았다.

 

"이젠 잘 안보이니까. 새들이 쪼아 먹지 못할 거요."

"글쎄요. 아무래도 저곳도 안심이 안 되는데요?"

 

 

 

 

곶감을 옮겨놓고 나는 다시 이층 다락방으로 올라왔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아내가 다시 자지러지는 소리로 불러댔다. '엇, 새들이 또 왔나?' 나는 급히 거실로 내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녀석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왼쪽 탁자에 널어놓은 곶감을 열심히 쪼아 먹고 있었다.

 

"거 봐요. 저기도 안심이 안 된다니까요?"

"흠, 그럼 어떻게 할까?"

"뒤 다용도실로 들여 놓으면 어떨까요?"

"거긴 바람이 잘 통하지 않는데? 옳지 좋은 수가 있어요. 블루베리를 덮었던 망사로 덮어두면 어떨까?"

"아 참, 그게 좋겠네요."

 

 

새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창고에 가서 망사를 찾아와 바구니를 다시 처마 밑으로 옮겨 놓고 망사로 덮어 놓았다. 그러나 어쩐지 새들에게 미안한 느낌이 들었다. 이 혹한의 추위에 모처럼 먹을거리를 발견하고 식구대로 찾아왔는데 망사로 덮어 두었으니 녀석들이 얼마나 실망을 할까?

 

지금처럼 혹한기에는 새들뿐만 아니라 네발 달린 짐승들도 먹을 것이 없어 살기가 힘들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눈 위에 동물들의 발자국이 어지러이 찍혀있다. 특히 이곳에는 고라니, 노루, 너구리, 들고양이, 다람쥐, 청설모들이 많이 서식을 하고 있다. 때로는 멧돼지도 내려온다는 데 아직 보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은 녀석들이 실컷 먹었으니 며칠 지나서 다시 생각해 보자. 이를테면 새들이 먹을 수 있게 곶감 몇 조각을 내 놓는 방법도 있을 테니까? 허지만 새들에게 공들여 만들어 놓은 곶감을 다 줄 수는 없다.

 

우리네 삶은 곶감 빼먹기와 같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자신이 땀 흘려 열심히 농사를 지어 저축을 해 놓은 곡식을 남에게 다 줄 수는 없지 않은가? 남이 땀 흘러 일할 때 새들처럼 노래나 부르고 한가하게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때로는 남이 지어 놓은 농사를  저 새들이 곶감을 빼먹듯 슬그머니 몰래 훔쳐 가는 경우가 있다.

 

그런가 하면 곶감을 창고에 잔뜩 쟁여 놓고도 더 많이 곶감을 자신만의 곳간에 쟁여놓을 궁리만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곶감이 썩어서 버릴지라도 남에게 한 개도 나누어 주지 않으려고 욕심을 부린다. 다 먹지도 못하고 저승사자한테 불려가고 말텐데도 말이다.

 

인생은 곶감 빼먹기와 같다. 자신이 먹을 곶감은 젊은 시절에 열심히 일을 해서 노년의 삶을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먹을 수 있을 만큼만 적당히 저장을 하고 나머지는 어려운 이웃이나 새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 그래야 삶이 훈훈하고 저승사자도 반겨줄 것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