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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썹이 노래졌어요! -응봉산 개나리

찰라777 2013. 4. 12. 07:00

 

 

 

 

 

 

 

 

 -묘지사이에 핀 현충원 개나리

 

 

 

 

영국의 시인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T.S Eliot)이 노래했듯 과연 '4월은 잔인한 달'이다. 20년 만에 서울에 눈이 내리고,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가 하면, 북한의 도발 위협으로 민중은 떨고 있다.

 

1차 대전 당시 9백만 명 이상의 생명을 앗아간 참혹한 전쟁 속에서 삶의 의미를 망각해버린 서구인들은 정신적인 공황상태에 빠졌다. 그래서 꽃이 피는 4월이 돌아와도 꽁꽁 얼어붙은 마음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모두의 마음이 황무지로 변해버려 있었기 때문이다. 시인 엘리엇은 그 당시 상황을 아무것도 키울 수 없는 <황무지>라고 비유하며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노래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황무지에서/4월은 가장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기억과 욕망을 뒤섞고/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차라리 겨울은 따뜻했었다/대지를 망각의 눈으로 덮어주고/가냘픈 목숨을 마른 구근으로 먹여 살려 주었다'

 

 

그들에게 생명의 계절인 봄이 와도 죽은 시체를 땅에 묻어야 하는 4월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절망의 계절이었다. 황폐한 마음의 황무지에서 라일락을 키워낼 수 있을까? 엘리엇은 차라리 망각의 눈으로 덮어준 겨울이 낫다고 생각을 한것이다.

 

 

 

 

 

 

 

 

 

-현충원 개나리

 

 

 

그래도 서울에는 봄이 오고 있다. 여기저기 개나리가 피어나 노란 생명이 물결치고 있다. 한강을 끼고 있는 강변도로에도 개나리 일색이다. 북한산에도, 관악산에도, 국립현충원에도, 주택가 담쟁이 밑에도, 그늘진 곳, 울타리, 심지어는 하수구 주변에도… 노란 개나리는 고개를 내밀고 무작위로 피어나고 있다.

 

개나리꽃은 공해와 자동차의 소음도 아랑곳 하지 않고 서울 아무데서나 마구 피어난다. 서울의 개나리꽃 물결은 한강이 바라보이는 성동구 응봉산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 강변북로를 달리다가 성동구 응봉동 부근을 지나게 되면, 매처럼 생긴 응봉산이 샛노란 개나리꽃으로 뒤덮여 있다.

 

흔해 빠진 개나리라고 우습게 봐서는 안 된다. 자동차를 몰고 가다가 노란 물감을 칠해 놓은 개나리 꽃동산에 홀려 한눈을 팔다간 아차! 하는 순간에 사고를 낼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이하 응봉산 개나리

 

 

 

 

 

 

 

 

 

용산에서 중앙선 전철을 타고 응봉역에서 내렸다. 1번 출구로 나가 도보로 10분을 정도를 걸으니 개나리 동산이 바로 코앞이다. 밤새 하늘에서 수많은 노랑별이 내려와 개나리꽃이 되었을까? 아니면 병아리 떼 뿅뿅뿅~ 하며 전국의 병아리들이 다 모여 들었을까? 응봉산은 노란불을 지펴 놓은 듯 개나리가 산 전체에 활활 타오르고 있다.

 

응봉산에 오르니 개나리가 터널을 이루고 있다. 4월이 아무리 잔인한 달이라고는 하지만 개나리 터널에 파묻혀 있다 보니 따스한 봄이 피부로 느껴진다. 겨우내 추위에 떨며 꽁꽁 얼고, 북한의 도발 위협에 꽁꽁 얼었던 마음도 옷고름을 풀고 봄기운에 젖어들게 한다.

 

개나리는 정말…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노란색이다. 단봇짐을 싸매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픈 마음이 들게 하는 꽃, 개나리!

 

 

 

 

 

 

 

 

 

 

 

 

 

 

 

 

 

 

시골 촌놈인 나는 어릴 적부터 봄이 오면 아무데서나 피어나는 개나리꽃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개나리를 좋아하다 보니 자연히 노란색을 가장 좋아하게 되었다.

 

노란 병아리, 노란 해바라기, 노란 은행잎, 노란 황금 들판, 노란 유니폼, 노란 유채꽃, 고흐의 노란의자.황금빌밭…내 책가방에 든 크레파스는 언제나 가장 먼저 노란색이 짧아졌다. 그림을 그릴 때는 노란색을 화폭에 마구 북북 그어대기 일쑤였으니....

 

개나리꽃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괜히 고향이 그립다! 초등학교 가는 시골길에 핀 개나리꽃을 아무생각도 없이 꺾어들고, 필통소리 딸랑딸랑 나는 책보를 등에 걸머지고 맬겁시 뛰어다니던 고향길이 그립다. 양지바른 울타리 가에 핀 개나리꽃 꺾어 머리에 꼽고, 소꿉장난하던 고향집과 친구들도 그립다.

 

개나리꽃을 바라보노라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노란 바람개비가 돌아가는 것 같다. 노란 개나리 바람개비를 보고 있노라니 또 한 사람,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노무현! 바로 그 사람이다. 밀짚모자 쓰고, 자전거를 타고, 노란 바람개비처럼 시골길을 달려가는 그 사람이 생각난다.

 

그는 대통령이기 전에 봉화마을 촌놈이었고, 대통령이 끝 난 후에도 역시 봉화마을 촌놈으로 돌아갔다. 밀짚모자 쓰고, 손자를 자전거에 태우고, 노란 바람개비 돌리며, 봉화마을 논둑을 바람처럼 달려가는 시골 촌놈, 노무현이 그냥 그리워진다. 노란 개나리처럼 격정으로 피어났다가 역사의 격랑 속으로 몽을 던진 그 사람, 노무현이 그립다! 그는 저승에서도 자전거를 타고 <아침이슬>을 부르며, 노란 바람개비를 돌리고 있을까?

 

 

-봉화마을 노란 바람개비

 

 

 

 

 

 

 

 

 

 

 

 

 

 

 

 

개나리는 사실상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꽃이다.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전국 어디서나 가장 흔하게 피어나는 꽃이 바로 개나리꽃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개나리는 학명도 <한국>이란 명칭이 들어간 <Forsythia Koreana>이다.

 

개나리는 1908년까지 서구식 학명이 없다가, 영국의 원예학자 윌리엄 포시(William Forsyth)의 이름을 따서 <Forsythia>라고 명명했다. 그리고 그 뒤에 <Koreana>라는 이름을 붙여 <Forsythia Koreana>라고 명명했다. 그런데 1908년 이전에 조선시대에도 개나리는 여전히 <개나리>라고 불려왔다고 하니 개나리는 순전히 <한국의 꽃>이다.

 

개나리의 꽃말은 <희망>이다. 반만년 역사를 가진 우리 민족은 온갖 시련 속에서도 이 땅에 희망의 꽃인 개나리꽃을 피워왔다. 4월이 아무리 잔인한 달이라고 해도 한반도에 개나리꽃은 피어난다. 누가 한반도를 <황무지>라고 부르겠는가?

 

지금 한반도에는 마라도에서 함경도까지 여전히 노란 희망이 꽃이 부지기수로 피어나고 있다. 잔인한 달이라 주저 앉지말고, 개나리 꽃을 바라보며 우리 모두 희망의 노래를 부르자.

 

 

 

 

 

 

 

 

 

 

 

 

☞응봉산 개나리 축제는 피해서 가라

 

오늘(4월12), 응봉산 개나리축제가 열린다. 응봉산 팔각정 일대에서는 성동구 관내 20개 초등학생 및 구민들이 참석하여 어린이 그림그리기, 글짓기, 소년소녀합창단 공연, 백파이프, 마술 등 다양한 축제행사가 열린다.

 

4월 11일, 한나절이나 응봉산을 헤매다가 눈썹이 노래져서 내려왔다. 꽃샘추위로 개나리는 개화시기가 늦추어져 다음 주까지도 계속 피어날 것 같다. 그러므로 오히려 축제를 피해서 가는 것이 호젓하게 개나리를 만끽할 수 있을 것 같다.

 

 

▷응봉산 가는 길-삐딱구두는 금물!

 

-주소 :서울시 성동구 응봉동 271

 

-지하철 : 중앙선 전철 응봉역 1번 출구 응봉 빗물펌프장 방향 500m(도보 10분)

 

-버스 : 110B, 241A, 421, 6016, 2411, 마을버스 성동 08

 

-승용차는 주차사설이 없으므로 놓고 가는 것이 좋다. 응봉산은 해발 94m로 낮은 산이지만 바위산으로 가파르니 삐따구두나, 하이힐은 절대 금물. 편한 운동화를 신고 가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