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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겨운 골목길 산책

찰라777 2013. 3. 30. 07:17

 

봄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고 있습니다. 따사로운 봄 햇빛이 눈부시게 빛나는 오후입니다. 이런 날은 산책을 하기에 매우 좋은 날입니다. 나는 거실에서 관악산을 바라보다가 봉천동 골목길을 걷기로 했습니다. 봉천동에서 가장 높은 봉천고개에 위치한 우리 아파트는 전망이 아주 좋은 곳입니다. 관악산 밑으로 우리나라 최고의 명문대학인 서울대학교가 자리잡고 있고, 재개발을 한 아파트와 빌딩들이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봉천동(지금은 청림동)은 아직 개발이 안 된 주택들이 아파트의 성에 둘러싸여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전봇대와 교회의 십자가, 색깔이 다른 주택의 지붕들.... 그리고 그 사이 사이로 좁은 골목길이 거미물처럼 나 있습니다. 오늘 같은 봄날에는 저 골목길을 걷고 싶은 유혹에 사롭잡히고 맙니다.

 

▲봄볕이 따사로운 오후, 걷고싶은 유혹을 강하게 느께게 하는 봉천동 골목길 

 

예전에는 봉천고개를 살피재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살피재는 워낙 험하고 도둑들이 많아 잘 살펴서 넘으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상도동과 봉천동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살피재는 8차선 도로가 뻥~ 뚫려있습니다. 이 고개를 중심으로 왼쪽 동작구 쪽은 국립현충원이 들어서 있고, 오른 쪽 관악구 쪽에는 아직 재개발이 되지 않는 오래 된 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습니다.

 

봉천고개를 중심으로 양쪽에 아파트가 성처럼 둘러싸여 있고, 그 아파트 성안에 오래된 주택들이 봉천고개에서 서울대입구역 쪽으로 정겹게 들어 서 있습니다. 서울 아이들 집에 오면 나는 국립현충원과 이 봉천동 골목길을 산책하곤 합니다. 이 두 길을 걷다보면 마치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느낌이 듭니다. 현충원 묘지 길은 저승 길이고, 봉천동 골목길은 삶의 애환이 서려 있는 이승의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산책하기 좋은 정겨운 골목길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두 장소를 걷다보면 묘한 감정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적막하고 고요한 묘원 길을 산책하는 것도 색다른 느낌을 주지만 나는 치열한 삶의 현장인 봉천동 골목길 걷기를 더 좋아합니다. 봉천고개에서 서울대입구역 쪽으로 가는 길에는 교회와 구멍가게, 접치는 집, 이발소, 세탁소, 골목시장, 철물점, 복덕방… 등등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역시 살아 있다는 것은 참으로 좋은 것입니다. 아무리 저승의 천당이 좋다고 하지만 오감이 교차하는 삶의 현장만큼 재미있지는 못하리라는 생각을 합니다.

 

골목길에는 걷는 사람,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 리어카를 끌고 가는 사람,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사람, 유모차를 밀고 가는 사람, 양지바른 곳에 느긋이 앉아 휴식을 취하는 사람, 강아지, 고양이… 등등 많은 볼거리가 산재해 있습니다. 서민들의 희로애락이 묻어 있는 골목길을 걷다보면 삶에 대한 애착이 강하게 생겨나기도 합니다.

 

 

▲봉천동 고목길. 맨 위에 있는 아파트가 봉천동에서 가장 높은 봉천고개에 곳에 위치한 아파트다.

 

봉천고개에는 큰 교회가 두 개나 있습니다. 봉천동에서 하늘과 가장 가까이 닿아 있는 교회지요. 봉천동의 지명도 하늘을 떠받드는 의미라고 합니다. 그 교회 밑으로 이어지는 골목을 따라 내려가면 폐휴지 등을 수집하는 집이 나옵니다. 어디서 그렇게 많은 폐휴지를 주어 왔는지 주인은 박스와 병, 비닐 등을 구분해서 잘 포장을 합니다. 그걸 팔아서 생계를 유지 하는 모양입니다. 그 앞집에는 ‘비룡정사’란 신녀보살집이 있습니다. 아마도 점을 쳐주는 집인가 봅니다.

 

좁은 골목의 낮은 담벼락에는 <미운오리새끼>를 비롯하여 <선녀와 나무꾼> <마지막 잎새> <메밀꽃 필 무렵><피노키오> <양반전> 등 세계 명작동화와 우리나라 고유 전래동화가 정겹게 그려진 북벽(Book 벽)이 심심치 않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아, 여기 재래식 비누를 만들어 말리고 있네요!

 

 

 

 

 

 

 

 

 

 

 

 

 

오, 저기 할머니들이 두 분이 따뜻한 양지에 앉아 봄볕을 즐기고 있군요. 그 모습이 마치 북벽속의 그려진 한 폭의 동화처럼 아름답습니다. 봄볕이 내리쬐는 골목에 앉거나 누워 느긋하게 햇볕을 즐기는 할머니들의 모습이 매우 릴렉스하게 보입니다. 먼 고향의 향수를 아련하게 불러일으키는 정다운 풍경입니다. 골목에 아무렇게나 놓인 화분들도 퍽 운치가 있습니다. 낮은 담장 너머로 목련과 산수유 등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어떤 집 계단에는 화초를 심은 화분들이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봄을 맞이한 골목길은 활기가 차오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골목길도 점점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곳곳에 재개발이 한창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재개발을 위해 펜스를 친 높은 담장이 흉물스럽게 보입니다. 재개발을 반대하는 플래카드가 여기저기 어지럽게 걸려 있습니다. 무분별한 재개발은 도시의 균형을 깨뜨립니다. 재개발을 하더라도 주변 환경과 어울리게 고려를 하여야 하는데, 이익만을 바라는 재개발이 천편일률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자연스런 풍경이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정겨운 골목길이 사라지면 하늘을 찌르는 아파트나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서기 마련입니다. 콘크리트 숲이 들어서면 들어서면 사람들은 감정이 매말라 갑니다. 편리한 만큼 잃는 것도 많아지게 됩니다. 담장 밑에 고개를 내밀고 있는 나무들, 화초, 편리한 구멍가게 등 오래된 보석들이 하마하나 사라져 가버리고 그곳엔 규격화된 건물, 정 떨어지는 대형 마트 같은 건물이 들어서게 마련입니다. 골목길을 보호할 방법은 없을까요? 정겨운 골목길을 지나 평평한 평지에 다다르면 또 다른 풍경들이 볼거리를 제공하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볼거리, 살거리도 많은 봉촌동 골목시장은 물건도 싸고 구경거리도 많은 곳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