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텃밭일기

오이가 거꾸로 열리면 안 되는 이유

찰라777 2013. 7. 20. 19:35

독일병정처럼 가지런한 해땅물자연농장 오이

 

해땅물자연농장은 모든 것이 정리 정돈이 잘 되어 있다. 홍려석 선생님은 겉으로 보기와는 영 다른 면이 있다. 외모 상으로는 구레나룻을 길러 텁수룩하고 털털한 성격으로 보이지만 모든 일이 깔끔하고 바르게 정리 되지 않으면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파종이나 모종을 할 때 줄을 반듯하게 맞추어 심는 것이라든지, 농기구를 적나라하게 보관하는 일, 오이, 호박, 토마토 등, 줄기가 있는 작물은 매우 질서 있게 관리를 한다. 모든 일 하나하나가 정성과 성의를 듬뿍 들여 관리를 한다.

 

그 행동 하나하나를 바라보며 연장자인 내라 배움 점이 너무나 많다. 홍 선생님과 나는 띠 동갑 내기인데, 내가 한 지지(地支:12년)가 많은 쪽이다. 그러나 나이만 많으면 뭘 하겠는가? 팔십 노인도 세 살 어린아이에게 배운다고 하지 않던가?

 

▲ 튼튼하게 아치형으로 세워 놓은 해땅물자연농장의 오이 지주대

 

오이줄기 관리 하나를 보더라도 그렇다. 보통 오이줄기는 지주막대를 세워서 그 막대에 오이그물을 씌워 놓는다. 그런데 홍 선생님은 오이 지주를 타원형으로 아치를 세워 단단하고 촘촘한 그물을 씌워놓았다.

 

그 양쪽에 오이를 심고 가운데는 작업을 하기 쉽게 넓은 공간을 만들어 놓았다. 이렇게 공간을 만들어 놓으면 하면 오이 덩굴이 잘 뻗어 나가고 통풍이 잘된다. 또 오이줄기가 덩굴손을 뻗어 타고 오르면 줄기 하나하나에 집게를 물려 바람이 불어도 밑으로 떨어지지 않게 고정시켜 놓고 있다.

 

"그렇지! 세상 만물은 공간이 있어야 해, 공간이 없다면 모두가 숨이 막혀 죽고 말거야."

 

별들과 별들간의 공간, 우주와 우주간의 공간, 남자와 여자간의 공간, 친구간의 공간, 곡식간의 공간, 나무와 나무사이 공간, 공간 속에 삶이 있다. 텅빈 우주, 텅빈 마음, 텅빈 머리... 창고도 비워야 들어갈 공간이 있다. 작물고 공간이 없다면 바람이 통하지 않아 모두 익사하고 말것이다. 따지고 보면 사람도 숨이 들어갈 공간이 없어 죽는 것이 아니겠는가?

오이가 거꾸로 열리면 성장이 잘 안되요

 

▲ 오이줄기 하나하나에 집게를 물려 흔들리지 않도록 고정시켜 놓고 있다.

 

빈 공간 속으로 오이줄기가 그물망 맨 위까지 올라가면 덩굴손을 잘라 줄기를 밑으로 내려 둥글게 타원형으로 감아서 다시 위로 올라가도록 정리를 한다. 오이가 거꾸로 열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오이가 거꾸로 열리면 성장 저해 요인 되고 맛이 제대로 들지 않지요."

 

그렇지 거구로 열린 오이는 피가 역류하여 질식을 하고 말겠지. 그는 사전에 오이 덩굴이 그물 안으로 뻗어나가지 않도록 미리미리 덩굴을 정리해 준다. 그래야 줄기가 꼬이지 않고 밑으로 내려 다시 올리기 수월하다. 이렇게 오이 줄기를 2~3번 정도 되감아 올린다. 그러니 오이 하나를 기르더라도 얼마나 많은 정성과 노력이 들어가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 오이줄기를 밑으로 내려 다시 되감아 올려 준 모습

 

 

홍 선생님은 최근 며칠 동안 오이줄기를 내려서 다시 감아올리는 작업을 했다. 오이 덩굴손 하나하나를 잘라서 줄기를 밑으로 내려 똬리를 틀어 그물에 고정시켜 묶고, 오이줄기 끝이 위로 향하도록 정리를 했다.

 

잘 정리를 해 놓은 오이가 마치 독일병정처럼 가지런히 서 있다. '명장 밑에 약졸이 없다'는 말처럼 명 농부 밑에 튼튼한 농작물이 자라나고 있다. 마치 기압이 시퍼렇게 들어있는 똘똘한 작물들이라고나 할까?

 

▲오이줄기를 정리하여 되감아 올린 모습

 

이에 비하면 우리 집 텃밭의 오이는 어떠한가? 쇠막대로 지주를 양쪽으로 세워 3천 원짜리 허름한 오이그물을 씌워 놓긴 했는데, 장맛비가 내리고 바람이 거세게 불자 오이덩굴이 제멋대로 엉클어져 있다. 지주대도 흔들거린다. 해땅자연물농장 오이에 비하면 기압이 빠진 오합지졸이다.

 

 

▲ 제멋대로 헐클어진 우리 집 텃밭 오이

 

그런데 금년 오이는 꽝이다. 어쩐지 잘 열리지가 않는다. 장마가 너무 오래 지속되어서인지 꽃도 잘 피지 않고 오이도 잘 열리지 않는다. 설령 오이가 열리더라도 땡 도넛처럼 오그라들며 더 이상 크지를 않는다. 그래서 사실 나는 오이농사를 거의 포기하고 있었다.

 

▲ 도넛처럼 오그라들어 크지 않는 오이

 

홍 선생님은 아마 이상 기온에서 오는 결과인 것 같다고 했다. 늦은 봄까지 날씨가 추워 냉해 현상까지 있었는데 5월이 되자 날씨가 가물며 갑자기 여름이 되어 버렸다. 봄이 실종되어버린 것이다.

 

작년에는 오이가 너무 많이 열려 따 먹기 바빴는데, 금년에는 오이를 구경하기가 힘들다. 오이뿐만이 아니라 가지도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잘 열리지 않는다.

 

엉클어진 오이줄기 되감아 줬더니, 오이가 주렁주렁

 

그러나 홍 선생님이 오이줄기를 정성스럽게 되감아 올려 주는 것을 보고나서 나는 괜히 우리 집 텃밭 오이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는 오이 밭에 가서 헝클어진 오이줄기를 정리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오이줄기가 너무 많이 얽혀있어 어떻게 손을 보아야 할지 난감하다.

 

 

▲ 엉클어진 오이줄기를 하나하나 풀어내어 다시 되감아 주는 작업

 

 

그래도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오이줄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마치 엉킨 실타래를 풀듯 조심스럽게 오이줄기를 풀어내어 밑으로 내렸다. 자칫 잘못하면 오이줄기가 끊어지기 쉬우므로 신주 다루듯 오이줄기를 가만가만 풀어내서 일단 땅으로 길게 늘여 놓고 다시 하나하나 되감기 시작했다.

 

덩굴손 하나하나를 뜯어내는 작업도 보통일이 아니다. 각 마디마다 덩굴손을 내밀어 무엇이든 감아 올라가는 오이의 생명력은 실로 놀랍다. 덩굴손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감겨진 덩굴손을 뜯어내야만 오이줄기를 밑으로 내릴 수 있다. 땅으로 길게 늘어놓은 오이줄기를 타원형으로 돌돌 말아 오이그물에 부착을 시키며 상층부가 위로 향하도록 고정을 시켰다.

 

 

▲ 단단하게 늘어붙은 덩굴손을 하나하나 뜯어냈다.

 

새벽 5시부터 시작한 작업은 8시경까지 계속되었다. 작업을 마치고 나니 해땅물자연농장처럼 독일병정은 아니더라도 오이들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된 듯하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오이야, 미안하다. 이제 좀 숨을 쉬겠구나."

 

 

▲ 어느 정도 정리가 된 우리 집 텃밭 오이줄기

 

사람이 자식을 낳았으면 잘 자라도록 보살피듯 식물도 심어놓았으면 잘 가꾸어야 한다. 그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아예 처음부터 심지를 말아야 한다. 모든 일에 정성을 들여야 한다. "정성성이 부처"란 말이 있지 않은가?

 

오이줄기를 정리하고 난 다음 날 아침에 오이 밭에 가보니 놀랍게도 오이가 주렁주렁 열려 있질 않은가! 주인이 정성을 다해 주니 오이가 보란 듯이 커진 것이다. 오이는 하루 밤 사이에도 이렇게 쑥쑥 자라난다.

 

 

▲ 다시 주렁주렁 열리기 시작하는 오이

 

노란 오이꽃도 여기 저기 피어나고 벌 나비들이 찾아들고 있다. 이제부터 오이가 본격적으로 열릴 모양이다. 그러니 사람이든 오이든 정성을 들여야만 한다. 나는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그 중 몇 개를 따와 아침 밥상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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