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텃밭일기

고추밭에 흙을 북돋아 주며…

찰라777 2013. 8. 1. 03:14

고추밭에 흙을 북돋아 주며…

 

▲잣나무 숲이 우거진 산밭

 

그는 논을 건너 잣나무 숲 밑에 있는 고추 밭에 홀로 앉아 무엇인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풍경이 어떤 선인이 홀로 도를 닦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나는 논두렁길을 걸어 그에게도 다가갔습니다. 그는 내가 다가가는 줄도 모르고 고추밭에서 호미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고추에 흙을 북돋아주다

 

 

잠시 비가 멈춘 장마철, 햇볕이 뜨겁게 비추이자 지열이 올라오며 날씨는 찜통처럼 덥습니다. 원두막에서 불과 30여 미터를 걸어가는 데도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고, 바짓가랑이에 땀이 고입니다. 고추밭에 들어가 내가 인기척을 내자 그는 잠시 일손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지금 무얼 하시는 거죠?”

“이 고추들에게 북을 좀 해주고 있습니다. 그 동안 너무 바빠서 이 산밭을 거의 와보지 못하고 고추들을 마치 이붓자식처럼 돌보아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도 들고요. 그래서 고추들에게 애정을 담아서 흙을 북돋아주고 있습니다.”

“………”

“작물에게 북을 해준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식물이 잘 자라도록 주변에 흙을 쌓아 올려주는 단순한 의미도 있지만, 식물의 영혼에 용기를 불어 넣어주는 의미도 있지요. 그 동안 고추가 폭우와 장마에 시달리고, 풀에 시달리고, 두더지와 들쥐에 시달리고, 바람에 시달려 넘어지기도 하고 영양분을 제대로 공급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추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기 위하여 이렇게 흙을 북돋아주고 상처 난 부위에 발라주기도 하고, 가지치기도 해주고, 주변의 풀들을 베어서 덮어주기도 하는 것이지요.”

 

 

▲넘어진 고춧대

 

 

그의 이마에는 작은 냇물이 흐르듯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습니다. 그는 허리춤에 찬 수건을 꺼내어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냈습니다. 셔츠와 바짓가랑이에는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 있습니다. 너무나 무더운 날씨입니다.

 

 

그는 다시 고추 주변을 정성스럽게 정리를 하고 주변의 흙들을 긁어모아 넘어진 고추나 뿌리가 드러난 고추를 덮어주며 정성을 듬뿍 들여 주었습니다. 마치 어버이가 자식을 돌보듯 애정이 가득 담긴 모습입니다.

 

 

▲뼈처럼 드러난 조의 뿌리

 

 

“이 뿌리를 좀 보십시오. 밖으로 드러난 뿌리가 흙을 묻어 올리고 있습니다. 흙에 뿌리를 내리기 위하여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흙은 모든 식물들에게 자양분을 공급하는 아주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뿌리를 덮어주어 흙의 영양분을 빨아 먹도록 북돋아 주는 것이지요. 비단 뿌리뿐만이 아닙니다. 줄기가 가지에 상처가 나 있는 부분에도 흙을 발라주면 치유가 됩니다. 그러니 흙은 식물들의 만병통치약이기도 하지요.”

 

 

고추 사이에는 조를 심어 놓았는데 조의 뿌리가 겉으로 뼈처럼 드러나 있는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뿌리에 아주 정성스럽게 흙을 덮어주고, 상처가 난 고춧대에도 흙을 발라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들 주변에 있는 돌들을 하나하나 골라내어 용기에 담았습니다. 호미로 흙을 긁어모으는 동작이 아주 부드럽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작물을 다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흙이 이렇게 부드럽고 거름이 되는 유기물이 풍부한 같은데 고추가 잘 자라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 밭은 거의 15년 이상을 묽혀 두었던 밭입니다. 풀들이 제멋대로 자라나고 가을이 오면 썩어서 흙 위에 쌓여 흙이 아주 검고 영양분이 듬뿍 들어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도 이 밭을 개간하면서 매우 흥분을 했었습니다. 무엇이든지 심으면 아주 잘 자랄 것 같은 흙에 기대를 잔뜩 하며 작물을 심었는데… 결과는 참혹했어요. 몇 년 동안을 그렇게 기대를 하며 농사를 지어 보았지만 역시 잘되지 않았습니다. 금년에는 조금 나아진 것 같기도 합니다. 고추가 조금 더 열리기도 하고요. 그래서 농사는 전적으로 흙의 문제나 거름의 문제가 아니라, 자연이 허락을 해주어야 하며 농사를 짓는 사람의 마음가짐과 정성에 있다는 것을 새삼 다시 느낍니다.”

“………”

 

 

 

자연의 허락? 신의 허락? 하늘의 허락? 그렇습니다! 진인사대천명이란 말이 있지 않습니까? 사람이 할 일을 다 해 놓고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말이 적적한 표현일 것 같습니다. 나도 그가 하는 작업을 그대로 따라서 고추밭에 흙을 북돋아 주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내 평생 작물에 이렇게 애정을 가져 보기는 처음입니다. 그가 본밭과 논에 정성을 들이는 동안 나는 이 고추밭 풀을 두 번이나 베어주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 산밭에 자라나는 고추, 잔대, 산마늘, 곰취 등에 남달리 애정을 더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또 이 산밭은 멧돼지와 고라니가 자주 출현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멧돼지들과 고라니들에게 여러 번 부탁을 하기도 했습니다.

 

 

“멧돼지야, 이곳에 제발 나타나지 말아다오. 네가 나타나면 사냥꾼이 총으로 너를 쏘아 죽인단다. 그러니 사록 싶으면 제발 나타나지 말아다오.” 뭐 이런 식의 부탁을 산밭에 갈 때마다 중얼거렸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뒤로 멧돼지가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잘 정돈된 고추밭

 

▲잔대

 

작업은 오후 늦게까지 진행되었습니다. 고추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는 작업을 하고 나니 어쩐지 마음이 뿌듯해집니다.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은 비단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 자라는 식물들에게도 좋은 음악을 들려주고, 부드러운 말을 하고, 지극한 사랑을 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작물은 쥔장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하질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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