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텃밭일기

신주를 다르듯 조심스러운 배추모종

찰라777 2013. 8. 9. 22:53

정말이지 찜통 안에 있는 것 같은 무더위다. 더욱이 하우스 안에서 작업을 하는 것은 거의 찜통수준이다. 사방에 문을 열어 놓았지만 청정이 막혀 있어서인지 가만히 앉아 있어도 온 몸에 담이 뚝뚝 떨어진다. 그래도 이곳은 사방이 녹색으로 둘러 싸여 있는지라 좀 나은 곳이다.

 

8월 1일 파종을 했던 배추모종이 훌쩍 자라났다. 400여개의 씨를 파종했는데 거의 다 싹을 티여, 8월 6일 날 100여개 정도를 솎아냈다. 그리고 3일이 지났는데 벌써 떡잎이 거의 4개씩 돋아나 있다. 배추싹이 자라나는 속도는 더위와 관련이 없나보다.

 

 

 

홍 선생님은 이제 배추를 포트(72구 트레이 포트)에 옮겨 심을 때가 되었다며 이식하는 방법을 자세히 가르쳐 주었다. 아직도 배추 싹은 마치 인큐베이터에 들어있는 아기처럼 여리고 부드럽다. 자칫 잘못하면 분지르거나 뿌리를 상하기 쉽다.

 

“우선 상토에 적당히 물을 뿌려 손으로 비빈다음, 포트에 골고루 넣습니다. 이때 주의할 점은 상토를 너무 누르지 말고 그냥 쓸어내는 정도로 가볍게 거두어내야 합니다. 상토를 누르면 뿌리가 활착이 잘 안 되고, 물을 줄 때 넘쳐나게 됩니다.”

 

 

 

 

 

“다음에는 배추모종에 물을 충분히 주어서 모종을 옮길 때 옆의 모종에 붙이 흙이 따라 오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건조한 환경에서는 뿌리가 흙을 붙드는 성질이 있어서 뿌리를 상할 염려가 있지요."

 

 

 

 

“그 다음에는 옮겨 심을 포트 상초에 구멍을 깊게 뚫어서 모종이 흙에 안정되게 심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손가락으로 뚫어도 좋고, 포크로 뚫어도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뿌리가 상하지 않도록 포크로 배추모종을 흙과 함께 조심스럽게 떠내어 포트에 옮겨 심습니다. 이때 조심할 점은 뿌리와 줄기가 상하지 않도록 하고, 되도록 깊숙이 심어서 줄기가 흔들리지 않도록 반듯하게 세워주어야 활착이 잘됩니다.”

 

 

 

 

 

“옮겨심기가 끝나면 포기마다 상토로 북을 해주어 잘 자라나도록 여건을 조성해 주어야 합니다. 북을 준다는 것은 사람이나 식물이나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홍 선생님이 배추 모종 하나하나에 쏟는 정성과 보살핌은 실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땀방울이 떡잎 위로 뚝뚝 떨어져 내린다. 이열치열인가? 그에게 휴가는 없다. 농장에서 보내는 것이 바로 휴가다.

 

풀잎 하나하나의 생명도 소중하기는 똑 같다. ‘풀잎에도 불성이 있다’는 말이 과연 실감이 난다. 동물이나, 식물이나, 사람이나 생명은 하나다. 나역시 이처럼 풀잎 하나의 생명을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다루어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사실 나는 이 5개월 동안의 자연농사 실습을 ‘하안거’를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깊은 산골의 절이나 선방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안거를 하는 것만이 수행이 아니다. 오히려 홍 선생님처럼 생명 하나하나에 집중해서 키우는 작업이 더 실감이 나는 수행이 아닐까?

 

그는 자연농사를 짓는 것 하나하나에 매사에 삼매에 들 정도로 집중을 한다. 씨를 뿌리고, 모종을 하고, 정식을 하며 풀을 베고, 수확을 하기까지 어느 것 하나 소홀이 취급하는 경우가 없다. 풀을 베어낼 때에도 풀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을 늘 한다. 그리고 베어낸 풀을 매우 소중히 다루며 바로 그 자리에 놓아둔다. 그러면 풀의 뿌리가 다시 그 양분을 받아먹고 자란다. 물론 작물도 그 풀의 영양분을 먹고 풀과 함께 공생을 한다.

 

 

 

나는 72구 포트 한판을 옮겨 심는데 무려 3시간이나 걸렸다. 조금만 집중을 하지 않아도 뿌리나 줄기를 다치기 십상이었다. 처음 해보는 이식이라 시작을 할 때는 신기하기도 하여 힘들고 지루한 줄을 별로 몰랐는데, 3시간이 지나고 나니 눈도 아프고, 팔다리도 아프다. 그렇다고 이식이 썩 마음에 들게 한 것도 아니다. 아무리 조심을 해도 뿌리가 다치고 어설프다.

 

그런데 홍 선생님은 같은 시간에 72구 두 판이나 옮겨 심었다. 그리고 이식상태도 매우 적나라하고 안정되게 심어졌다. 이것은 당연한 결과다. 10년 동안 숙달을 하신 분과 처음 접해보는 왕초보와의 차이가 아니겠는가?

 

“원래 잎이 두개 반 정도나 나올 때 이식을 해야 가장 이식을 하기가 좋습니다. 그런데 벌써 3~4개가 돋아나 있어요. 이 보다 더 자라나면 이식을 하기가 더 힘들어 집니다. 뿌리가 더 뻗어나기 전에 빨리 끝내야 해요. 농사란 때를 놓치며 배로 힘들어 지지요.”

 

“내일 아침 일찍 와서 좀 선선할 때 서둘러서 이식을 해야 갰군요.”

 

 

 

 

일반관행농법에서는 트레이에 파종을 하여 키운 다음 정식을 하는데, 홍 선생님은 모판에 파종을 하여 트레이에 이식을 하는 절차로 모종을 키우고 있다. 이는 트레이에 이식을 하면서 건강한 모종만 골라 심고, 뿌리가 활착이 되도록 안정되게 심어서 웃자라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데 목적이 있다.

 

시계를 보니 벌써 7시가 넘었다. 소나기가 한파 더 쏟아지려고 그런지 하늘이 캄캄하고 주변이 어둡다. 나이 들고 서투른 제자를 거두어 주고, 자세하게 자연농사를 짓는 방법을 전수해주시는 홍 선생님이 고맙기 이를 데 없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게에 감사를 드리며 배추모종 친구들에게도 작별을 고하고 해땅물자연농장을 떠났다.

 

(2013.8.9)

 

 

'국내여행 > 텃밭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솎아내기의 갈등  (0) 2013.08.13
토마토 망 씌우기  (0) 2013.08.10
잡초 밭에 무씨 파종  (0) 2013.08.09
[찰라의농사일지]상추씨 파종  (0) 2013.08.07
배추싹이 올라온다  (0) 2013.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