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임진강일기

배추흰나비의 행복한 죽음

찰라777 2013. 10. 30. 09:44

2%의 확률로 태어난 배추흰나비의 죽음

 

-살아있는 생명은 다 존귀한 인연으로 태어난다

 

 

 

▲ 배추폭 속에서 죽어가는 배추흰나비

 

외출을 했다가 연천으로 돌아오면 제일먼저 가보는 곳이 텃밭이다. 요즈음은 김장배추가 한창 크고 있어 가장 큰 관심을 두고 있는 작물은 배추다. 그런데 배추벌레나 어찌나 극성이던지 매일 잡아주지 않으면 배추가 남아돌지를 못한다.

 

녀석들이 먹어치우는 양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배추벌레 한 마리가 배춧잎 한 잎을 먹어치우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러니 농약을 치지 않는 우리 집 텃밭은 매일 배추벌레를 잡아주지 않으면 배추 맛을 보기 어렵게 된다.

 

 

▲ 250여 포기를 심은 배추밭

 

서울에서 꽤 긴 시간을 보내고 두주일 만에 돌아온 나는 배추밭이 가장 궁금했다. 그동안 배추벌레들이 다 먹어 치우지는 않았을까? 벼룩벌레와 달팽이들이 구멍을 숭숭 뚫어 놓지는 않았을까?

 

집에 오자말자 나는 배추밭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배추는 생각보다 튼튼하게 자라나 있다. 여기저기 배추벌레나 다른 벌레들이 뜯어먹은 흔적은 있지만, 그렇게 극성을 부리던 배추벌레도 별로 눈에 띠지 않고 포기가 결구되며 제법 커져 있다. 아마 날씨가 추워진 탓이리라.

 

 

▲ 배추벌레가 갉아먹고 자란 배추

 

250여포기의 배추를 일일이 살펴보다가 나는 배추흰나비 한 마리를 발견했다. 보통 나비들은 사람이 접근하면 갈지자로 휘리릭~ 날아가기 마련인데 어쩐 일인지 이 나비는 내가 가까이 다가가도 그대로 앉아 있었다.

 

"웬일일까?" 녀석은 내가 배추포기를 만져도 그대로 앉아 있었다. 나비가 앉아있는 배춧잎을 흔들어도 그대로 있었다. "별일도 다 있네. 나하고 친구를 하자는 건가?" 나는 궁금해서 나비날개를 만져보았다. 그런데도 나비는 꼼짝을 하지않았다. 앗, 이런! 그 나비는 죽어있는 나비가 아닌가. 나비는 죽은 채로 앉아있었던 것이다.

 

 

▲ 배춧잎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배추흰나비

 

배추흰나비는 성충의 단계에서 기껏해야 2주 정도 생존한다. 배추흰나비는 한 번에 약 200여개의 알을 낳는다. 알에서 5~7일이면 애벌레로 깨어나는데, 태어나자마자 애벌레는 자신이 깨어난 알 껍질을 먹어버리고 배춧잎을 갉아먹기 시작한다.

 

끊임없이 배춧잎을 갉아먹다가 애벌레가 되어 번데기가가 되기까지 15~20일, 번데기에서 성충이 되기까지는 10일 전후, 그리고 나비가 되어서 하늘을 날아다니는 기간은 고작 2주일이다.

 

 

▲ 배추흰나비 알 (위키백과 관련사진보기)

 

그러므로 배추흰나비의 일생은 알로 깨어나 번데기가 되어 하늘을 날기까지 길어야 한 달 남짓이다. 그 한 달의 생존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가? 새나 쌍살벌 등 천적으로부터의 위험, 농약살포로부터의 위험 등을 피해 한 마리의 성충이 되기까지 너무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만 한다.

 

한마리의 배추흰나비가 알에서 깨어나 나비가 되기까지의 생존 확률은 고작 2~3%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러니 이 나비는 그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하늘을 나는 영광을 맛보고 장렬한 죽음을 맞이한 행복한 나비라고 할 수 있다.

 

 

▲ 배추흰나비 번데기 (위키백과 관련사진보기)

 

생존확률 2%! 그 경쟁을 뚫고 하늘을 날다 작력하게 죽음을 맞이한 나비를 바라보노라니 문득 5년 전 아내가 심장이식을 했던 생각이 났다. 아내는 지난주에 심장을 이식한지 5년이 되어 한주일 내내 5년 검사와 검진을 받았다.

 

5년 전 아내는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그 당시 아내는 심장이식을 받지 못하면 길어야 2년 정도 생명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시한부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장기 기증을 받아 심장이식을 하면 5년 이상 살 수 있는 생존확률이 95%라고 했다. 허지만 잘 못되면 5% 안에 들어갈 수도 있다는 것. 생존확률이 95%나 된다고 하니 5%의 절망을 감수하더라도 이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아내는 거동을 거의 하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에 빠졌다. 장기간 입원상태에서 장기 기증자를 기다리며 기약도 없이 자꾸만 시간이 지나갔다.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하늘의 도움일까? 아내는 정말 천우신조로 기증자를 만나 심장이식에 성공을 했다.

 

 

▲ 알에서 깨어나 애벌레로 살아가는 배추흰나비는 생명에 많은 위험에 처한다.

 

나는 새로운 생명을 살아가는 아내를 하늘이 내려주신 <기적의 여인>이라고 부른다. 매일 기적의 여인과 함께 나는 새로운 아침을 맞이한다. 아내와 기증자와는 어떤 인연을 가졌을까? 어떻든 아내는 기증자의 도움으로 기적 같은 제3의 생명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다시 2%의 확률로 나비가 된 배추흰나비의 죽음을 바라보았다. 따지고 보면 이 나비도 기적 같은 생을 살아온 것이다. 그러나 만물이 태어나서 일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확률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어떤 알 수 없는 기적 같은 인연이다. 어쩌면 사람이 매일 매일 살아서 눈을 뜬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은 다 존귀하다. 아내가 기적적으로 살아난 이후 나는 그 어떤 생명도 함부로 죽일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매일 잡아주는 배추애벌레조차도 죽이지 못하고 배추에서 멀리 떨어진 산에 방생(?)을 해주고 있다. 애벌레 상태에서는 해충이지만 성충이되면 꽃가루받이를 해서 식물을 잉태시켜주는 익충이 아닌가?

 

 

▲ 자신이 태어난 배춧잎 속에서 행복하게 죽어가고 있는 배추흰나비

 

오늘 아침은 물 서리가 내려 제법 쌀쌀하다. 나는 이 글을 쓰다가 나는 배추흰나비가 궁금하여 배추밭으로 나가보았다. 오, 배추포기가 결구가 되어가며 죽어있는 배추흰나비를 감싸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배추흰나비는 자신이 태어난 배춧잎에 묻혀 행복한 일생을 마감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 배추도 저 배추흰나비가 꽃가루받이를 해주어서 세상에 태어났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