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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여행⑤-팀푸]신호등이 없는 세계 유일의 수도, 팀푸

찰라777 2013. 12. 29. 10:56

▲팀푸의 상징 타쉬쵸 드종. 불교사원과 정부 청사를 겸용하고 있다.

 

 

서로를 배려하고 아끼며 살아가는 부탄 사람들

 

 

▲ 물질적으로 가난하지만 서로를 배려하고 아끼며 살아가는 부탄 사람들. 마니차를 돌리며 팀푸 시내 쵸르텐을 돌고 있다.

 

매운 고추에 부탄의 전통술 '아라'를 한잔 하고 나니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점심을 먹고 나서 우리는 '노진랑' 대로를 따라 왕궁으로 갔다. 경찰이 수신호로 교통정리를 하고 있었다. 작은 누각에서 교통정리를 하는 모습을 보니 먼 과거로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 든다.

 

팀푸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교통신호등이 없는 수도이다. 그렇다고 자동차수가 적은 것은 아니다. 부탄 전체 자동차의 절반인 약 35,000대(2012년 기준)가 팀푸 시내에 몰려있다. 팀푸의 인구가 약 10만 명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자동차 보유 대수는 적은 수자가 아니다.

 

부탄의 전체 자동차 대수는 2000년도 19,463대에서 2012년에는 66,430대로 매년 크게 증가하고 있다. 교통사고 건수도 2000년도에 58건에서 2012년 74건으로 점차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자동차 증가에 비하면 교통사고 건수가 크게 늘어난 것은 아니다. 신호등이 없는 나라이지만 그만큼 서로 양보하는 정신이 강하다는 증거이다.

 

▲ 신호등이없는 수도 팀푸에서 경찰이 수신호를 교통정리를 하고 있다.

 

팀푸시내의 자동차운행을 유심히 살펴보니 대부분의 운전자들이 다른 방향에서 오는 자동차를 발견하면 일단 정지를 하는 운전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로터리를 돌면서 자동차들은 자연히 서행을 하게 된다. 그들은 상대방을 먼저 배려하는 양보정신이 습관화 되어 있는 것 같았다. 자동차는 매년 크게 늘어나고 있는데 인간미가 없다고 신호등을 철거한 수도 팀푸에 언제까지 사람의 수신호를 통해 교통정리를 할지 매우 궁금한 사항이다.

 

왕궁으로 가는 주차장에 도착하니 여행사 사장인 치미가 휠체어를 그녀의 자동차에 싣고 왔다. 치미의 어머니가 관절이 좋지 않아 사용하고 있는 휠체어라고 했다. 치미의 어머니는 태국 방콕에 있는 병원까지 가서 관절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그만큼 부탄의 의료수준은 낙후되어 있다. 휠체어도 방콕에서 구입을 한 것이라고 했다.

 

아내는 심장 장애를 갖고 있는데다가 푼춀링에서 발목이 삐어 걷는데 많은 불편을 가지고 있었다. 더구나 여긴 백두산 높이의 고산지대가 아닌가. 몸이 불편한 아내에게 부탄 여행은 좀 무리였지만 아내는 오래전부터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부탄으로 가는 여행을 꿈꾸어 왔다. 힘든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부탄으로 가는 여행은 아내의 오랜 소망이었다.

 

 

우리는 부탄 여행을 위하여 오랫동안 몸을 닦고 조이고, 생활비를 절약하며 여행비를 마련해 왔다. 힘들고 어려운 가운데 '희망 하나'를 품고 사는 것은 생활에 윤활유 역할을 한다. 희망은 아픔을 딛고 일어서게 하는 원동력이다. 부탄으로 가는 희망여행을 이루기 위해 아내와 나는 오랜 세월 정성을 들여왔다.

 

"미스 치미, 너무 감사합니다!"

"별 말씀을요. 걷기가 불편하실 텐데 빨리 회복이 되기를 바랍니다."

훤칠한 키에 미모를 갖춘 치미는 보라색 부탄 전통치마인 키라를 입고 화려한 스카프를 걸치고 있었다. 그녀는 본성 자체가 매우 진지하고 인자하게 보였다. 여행사 고객을 위한 서비스차원이라는 점도 있겠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근본적으로 남을 배려하는 정신이 깃들어 있는 것 같았다.

 

사람은 표정과 행동을 보면 마음에서 풍겨오는 진심을 이심전심으로 느낄 수 있다. 싹싹하기 이를 데 없는 치미는 마치 먼 과거에 만난 누이동생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티벳에서의 7년>이란 영화에 나오는 페마를 닮은 다정한 인상이라고나 할까? 그녀는 아름다운 마음만큼 외모도 아름다웠다. 

 

그녀의 정성에 왠지 콧날이 시큰해졌다. 사람의 정이란 이렇게 국경과 시공을 초월해서 통하는 것이다. 역시 부탄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그 무엇이 있다!

  

풍요 속에서 부족함이 없는 것보다 궁핍과 고난 속에서 오는 행복이 더 진하게 느껴진다. 소설<운명>의 작가 임네 케르테스는 내일 죽을 줄도 모른 아우슈비츠 감옥에서조차 행복을 느꼈다고 고백하지 않았던가. 궁핍한 가운데 더 아껴 쓰고, 고난 속에서 서로를 배려하며 나눔을 실천하는 마음, 그 바탕에는 서로의 소망과 사랑이 진하게 깔려 있기에 물질은 부족하지만 마음은 행복하다.

   

부탄이 그랬다. 부탄은 물질적으로는 가난한 나라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은 풍요롭고 이웃을 배려하며 서로를 아끼면서 살아간다. 자기 어머니가 매일 사용하고 있는 휠체어를 가져온 치미의 따뜻한 마음이 바로 서로를 배려하며 살아가고 있는 부탄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부탄의 국민행복위원회(GNHC)에서는 국민행복지수를 매 2년에 한 번씩 9개영역, 33개 지표를 측정하고 있다. 그 지표 중 <심리적 웰빙>항목에는 삶의 만족도(33), 영성(33), 긍정적 감정(17), 부정적 감정(17)을 측정하는 지표가 있다. 이는 국민들이 얼마만큼 삶의 만족을 느끼고 있는지, 그리고 국가와 사회에 대하여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을 체크 하는 항목들이다. 그리고 물질보다는 사람의 매우 영성을 중요시 하고 있다.

   

<공동체 활력>항목에는 기부(30), 안전(30), 소속감과 신뢰(20), 가족(20)이란 지표가 있다. 비록 물질적으로 가난하지만 기부 정신을 생활화 하고, 국민의 안전과 이웃 간의 신뢰감 등 남을 돕고 배려한 정신을 함양시키기 위한 지표들이다.   

 

▲ 타쉬쵸 드죵 정문으로 가는 길. 정부청사와 불교사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지표를 바탕으로 부탄은 성장 속도를 조절하고 국민들의 행복도와 민심을 항상 파악하고 있다. 그리고 국왕이 몸소 솔선수범하여 이런 지표들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굳이 이러한 지표를 선정하지 않더라도 지도자의 솔선수범과 국민들 스스로가 서로 베푸는 마음, 사랑, 있는 그대로의 자신에게 만족하며 살아가는 그 자체가 부탄 사람들을 행복하게 요소다.

 

치미의 배려로 히말라야 기슭에서 아내의 휠체어를 밀고 가는 나는 묘한 행복감을 느꼈다. 시한부 삶을 딛고 제2, 제3의 인생을 살아가는 아내는 그야말로 기적의 삶을 살아가는 여인이다. 그런 아내와 함께 호흡을 하며 지구상의 마지막 샹그릴라라고 하는 부탄에 온 느낌은 남다르다! 이윽고 거대한 요새처럼 생긴 하얀 벽이 나타났다. '영광스런 종교의 성채' 타쉬쵸 드죵이다.

 

상아처럼 흰 벽, 그리고 붉은 지붕 위로 뭉게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었다. 우리는 정문 앞에는 용이 그려진 부탄의 국기가 회색빛 하늘에 휘날리고 있었다. 우리는 쉐리의 안내로 성채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