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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으로 떠난 새해 첫 여행

찰라777 2014. 1. 3. 10:39

'화성'으로 떠난 새해 첫 여행

‘효원의 종’을 울리며...

 

 

▲ 수원화성에서 '효원의 종'을 울리며(2014. 새해아침)

 

60년 만에 찾아온다는 청마의 해를 맞이하여 서울 봉천동 집에서 온가족이 새해를 맞이하였습니다. 봉천동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봉천고개, 그 봉천 고개 중에서도 12층 아파트에 살고 있는 우리 집은 키가 관악산과 맞먹을 정도로 높습니다.

 

그래서 저희 집에서는 사방 천지가 훤히 내려다보이지요. 하기야 하늘을 받들고 있는 봉천(奉天洞)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니 세상의 훤히 내다보일 수밖에…  

 

▲ 서울 봉천동 고개에 있는 집에서 바라본 새해일출

 

그 하늘 아래 첫 동내에서 새해일출을 바라보고 우리가족은 수원화성을 가기로 했습니다. 처음부터 화성으로 갈 여행계획은 전혀 없었는데, 둘째가 갑자기 화성을 보고 싶다고 하기에 무턱대고 서울을 출발하여 수원으로 향했습니다.

 

화성! 이름도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우리는 어쩐지 <서울>이라는 지구를 떠나 <화성>으로 새해 여행을 떠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뻥~ 뚫린 길을 우리는 마치 우주선을 타고 온 듯 한달음에 화성 장안문에 도착을 했습니다.

 

자동차들이 모두 정동진이나 울진, 포항, 설악산, 뭐 그 런 유명한 곳으로 새해 해돋이 여행을 떠나버려서인지 불과 30분 만에 화성행궁에 도착했습니다. 평소에는 막혀서 서울에서 수원까지 시간 반도 넘게 걸리기도 하는데 말입니다. 새해 첫날 온가족이 함께 떠난 여행이 시간도 절약되고, 돈도 절약되니 기분이 가볍고 상쾌하군요.

 

 

▲ 팔달산으로 올라가는 수원화성 성곽

 

화성행궁! 정말 화성이란 행궁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화성행궁 터는 속리산이 태조산이고, 칠현산이 중조산이며, 광교산이 소조산이고, 팔달산이 주산이라고 하네요. 뭐 그런 복잡한 풍수지리를 굳이 알 필요도 없지요. 사통팔달로 통하는 팔달산 밑에 자리 잡고 있는 화성행궁은 명당임에는 틀림없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정조가 이곳에 도읍을 옮길 생각으로 축성을 했겠지요.

 

어럽쇼? 웬 종소리? 우리의 낡은 우주선(12년 된 자동차)에서 내려 화성행궁 앞에 첫발을 내 딛는 순간 어디선가 종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습니다. 마치 우리가 행궁에 착륙 한 것을 축하라도 해주듯이 말입니다.

▲ 아름다운행궁길에 있는 벽화  

 

우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행궁 길을 따라 걸어갔습니다. 예스런 행궁길 풍경이 보기에 좋았습니다. 독특한 간판과 기와 벽화, 칠보벽화 등이 개성 넘치게 지구인의 눈길을 사로잡는군요. 다른 동네 간판도 이 행궁길을 좀 본 따서 왕창 뜯어 고칠 수는 없을까요? 이렇게 보기 좋고, 찾기 좋고, 아름다운데 …

 

 

▲ 행궁길에 있는 생각하는 돼지와 닭상

 

서울은 어디를 가나 간판으로 홍수를 이루고 있어 그저 어지럽기만 합니다. 만약에 정조대왕이 다시 살아난다면 간판부터 뜯어고치는 일대개혁을 하지 않을까요?

 

댕~ 댕~ 대~에엥~ 아무리 생각해도 종소리가 너무 평화롭고 좋군요. 화성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는 다 저렇게 심금을 울려주는 것일까? 우리는 종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성곽을 오르기로 했습니다.

 

▲ 수원화성 팔달산에 우거진 솔숲

 

붉은 깃발이 펄럭이는 고풍스런 성곽 길은 생각보다 가팔랐습니다. 좌우에 소나무 숲이 울울창창하게 우거진 성곽은 정말 별세계에 온 착각에 빠지게 하는군요. 그러나 뒤를 돌아보니 멀리 아파트가 철옹성을 쌓듯 에어 싸고 있군요. 저런, 이곳 화성도 아파트 건축 붐이 일어났을까요?

 

 

▲ 팔달산에서 바라본 수원시내

 

허지만 성곽을 따라 걷는 길은 참으로 좋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우리들의 눈, 코,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아름드리 소나무였습니다. 수원은 예부터 노송지대를 비롯하여 유독 오래된 소나무가 많습니다. 굽이쳐 하늘로 솟아 오른 소나무는 피톤치드를 발산하며 늘 푸르게 서서 길손을 반기고 있습니다. "소나무야, 고맙다!"

 

솜사탕 같은 뭉게구름이 소나무 위로 두둥실 떠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 숲길을 평화롭게 걸어가고 있습니다. 역시 화성은 지구보다 풍경이 아름답군요. 아직 오염이 덜 되어서 그러겠지요?

 

▲ 솜사탕 같은 뭉게구름이 소나무 위로 두둥실 떠가고 있다.

 

종소리가 지척에서 울려오네요. 우리는 마침내 종소리의 근원지에 도착했습니다. 사람들이 종루 앞에 열을 지어 서 있습니다. 우리도 사람들이 긴 꼬리를 물고 있는 뒤에 가서 줄을 섰습니다. 줄을 서면 누구나 종을 울릴 수 있다고 하는군요.

 

'효원의 종'! 팔달산 정상에 세워진 효원의 종은 사람들에게 효심을 길러주고 소원을 성취하게 해주는 종이라고 하네요. 모두가 즐거운 마음으로 타종을 하고 있었습니다. 원래 돈을 받고 치는 종이라고 하는데 오늘은 새해 첫 날이라 공짜라고 하네요. 1~2인은 1000원, 3인 이상은 2000원 받는다고 하는군요. 그런데 오늘은 공짜라니 왠지 횡재를 한 기분이 듭니다. 

▲ 효원의 종을 울리며 새해 소망을 기원하는 커플

 

효원의 종은 1회 3타를 타종하는데, 첫 번째 타종은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효도를 다짐하고, 두 번째는 가족의 건강과 화목을 바라고, 세 번째 타종은 각자 자신의 소원을 기원하며 치는 것이라고 하는군요.

 

드디어 우리차례가 되어 우리 네 식구가 함께 타종을 했습니다. 그리고 아내와 나는 별도로 한 번 더 타종을 했습니다. 종을 치는 기분이 매우 좋았습니다. 나는 효원의 종을 치는 순간 갑자기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났습니다.

 

그러나 한번 돌아가신 부모님은 다시 돌아오시지 못하니 보고 싶어도 뵐 수가 없으니 안타깝기만 하군요. 살아 계실 적에 효도를 해야 한다는 것을 효원의 종이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미 때늦은 후회를 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리오. 두 자식들은 효원의 종을 치면서 과연 어떤 생각을 할까요? 하하, 뭐 이 애비와 어미를 지극히 생각하며 타종을 하고 있다고 해야 마음이 편하겠지요?

▲ 뉴칼레도니아에서 수원화성으로 새해여행을 떠나온 부부

 

효원의 종을 치고 내려오는 길에 한 외국인 부부를 만났습니다.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멀리 태평양의 뉴칼레도니아라는 나라에서 왔다고 하네요. 참 멀리서도 왔네요. <꽃보다 남자>를 촬영한 곳이던가요? 그런 천국 같은 곳에서도 이곳 화성으로 여행을 왔다니 그들에게 뭔가 필이 꽂힌 곳인가 봅니다.

 

그래서 궁금하기도 하고 어떻게 이곳을 알고 왔느냐고 물었더니 어느 관광책자에서 수원화성을 발견했다는군요. 그 사진 한 장이 너무너무 마음에 와 닿아서 한국에서 10일간 새해휴가를 보내기로 하고 왔는데 새해 첫날인 오늘 제일먼저 이곳 화성을 들렀다고 합니다.

 

 

 

 

화성에 온 소감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원더풀! 뷰티풀!"만 연발하네요. 하하, 그들에게는 오래된 성곽이 천국 같은 뉴칼레도니아보다 더 아름다운 모양입니다.

 

사실 오래된 성곽을 걷는 길은 잃어버린 고향을 찾은 느낌이 들지요. 우리들의 잃어버린 고향을 말입니다. 우리 모두는 언제부터인가 바쁘다는 핑계로 고향을 잊고 살지요. 우리들의 고유 전통과 문화를 잃어버리고 정체성마저 망각해버린 채, 대부분 사람들이 돈과 권력만 좇아 살아가고 있습니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오면 바로 이런 오래된 곳을 보기를 원합니다. 그들은 우리문화, 우리 전통, 우리의 정체성을 보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점점 보여줄 것을 마치 컴퓨터를 포맷을 하듯 싹 다 지워가고 있으니 안타깝기만 합니다.

 

▲ 잃어버린 고향을 찾게 하는

느낌을 들게 하는 오래된 성곽 길

 

 

성곽을 걸어 내려오다가 부탄이라는 나라가 잠시 떠올랐습니다. 부탄은 비록 물질적으로는 세계 최빈국 중의 하나이지만 국민행복지수 세계1위로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손꼽히고 있는 나라이지요.

 

부탄은 그들 고유의 전통과 문화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복장도, 건축도, 간판도, 생활습관도, 음식문화도, 음악… 모든 분야에서 옛날 전통을 고수하려고 애쓰는 나라입니다. 개발을 서두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개발의 속도를 늦추어 가고 있습니다.

 

수도 팀푸에는 교통 신호등도 없고, 6층 이상의 건물도 없습니다. 모든 건물에는 부탄 전통 문양을 새겨 넣어 부탄 전통방식으로 건축을 해야 합니다. 자연은 60퍼센트 이상을 숲으로 덮어야 합니다. 국왕이 왕권을 내려놓고 민주주의를 하도록 국민들에게 설득을 하여 민주선거를 치르게 하고, 자신은 평민과 결혼하여 작은 통나무집에서 살며 때로는 자전거를 타고 집무실로 출퇴근을 하기도 합니다.

▲ 고풍스런 맛을 풍기는 수원화성

 

부탄에 있는 그러한 모든 것 자체가 전부 관광자원이 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런 오래된 전통과 청정한 자연을 경험하기 위하여 하루에 250달러나 되는 여행 세를 물면서까지 부탄으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부탄은 부자를 꿈꾸지 않으며, 자연보호를 가장 중요시하고, 행복해지기 위해 서두르지 않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국민의 97퍼센트가 행복하다고 느끼고 있으니 참으로 이상한 나라입니다.

 

그런데… 간판도, 건물도, 문화도, 음식도, 음악도, 생활습관도… 우리나라는 모든 것이 서구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행복해지기 위하여 바쁘다 바빠! 하며 마냥 서두르기만 하는 우리나라는 과연 국민의 몇 퍼센트가 행복하다고 느끼고 있을까요? 이렇게 서구화 되어버리고 바쁘기만 하면 외국인들은 한국에서 볼 것이 하나도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 수원화성 화서문

 

나는 화서문으로 내려오며 뉴칼레도니아에서 온 부부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오늘 수원화성에서 가장 인상에 깊은 것은 무엇이지요?"

"아하, 그거요, 산 정상에서 종을 치는 체험이었어요! 너무 신비하고, 즐거웠어요!"

 

그렇습니다! 외국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도 새해 첫날 유서 깊은 성곽에서 종을 울리는 체험은 남다른 느낌이 들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울려주는 종, 무언가 깨닫게 해주는 그 깊은 울림소리, 사람의 심연을 울려주고, 우주를 아우르게 해주는 그윽한 종소리… 나 역시 오늘 수원화성에서 가장 인상 깊게 남는 것은 바로 '효원의 종' 소리였습니다.

 

▲ 수원화성을 평화스럽게 날고 있는 비둘기

 

때마침 비둘기들이 화서문 주위를 힘차게 날고 있었습니다. 그 외국인 부부는 성곽을 나는 비둘기를 카메라에 담으며 "원더풀!"을 계속해서 외쳐댔습니다. 오래된 성곽과 참으로 절묘하게 어울리는 평화로운 풍경이었습니다.

 

새해 첫날, 복잡한 서울을 떠나 '화성'으로 여행을 온 보람을 톡톡히 느끼는 날이었습니다. 우리는 꽃피는 봄에 다시 한 번 수원화성으로 여행을 떠나자고 다짐하며 장안문을 나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