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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일날 참배한 연천 유엔군화장장-연천 평화누리길 숭의전 코스

찰라777 2014. 6. 8. 03:07

 

 

▲연천평화누리길 숭의전-유엔군화장장코스

 

 

  지구 반대편에서 전사한 꽃다운 영혼에 대한 묵념

 

 

▲ 폐허로 남아있는 연천군 유엔군화장장

 

오늘은 6월 6일 현충일 날입니다. 현충일을 맞이하여 홀로 연천군 미산면 동이리에 위치한 '유엔군 화장장'을 찾았습니다. 마전 삼거리에서 동이리 방향으로 들어가면 방어진지가 구축된 구조물이 성벽처럼 나타납니다. 방어진지를 지나 서 직진을 하면 곧 오래된 폐교가 하나 나타나고, 그 폐교를 지나면 금굴산 기슭에 경작지와 인접한 작은 골짜기 숲속에 유엔군 화장터가 폐허처럼 자리 잡고 있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잡초만 우거져 있던 화장터는 경기도 측에서 유엔군 화장장 시설 발굴 작업으로 진입로에 자갈을 깔고 화장터에도 잡초를 제거하여 모래를 덮고 주위를 나무로 펜스를 쳐서 어느 정도 흔적을 갖추어 놓았습니다.

 

 

▲ 문화재 408호로 지정한 연천군 유엔군화장장 입구. 최근 보수작업을 하여 진입로에 자갈을 깔아놓았다.

 

 

오전 10시, 나는 불볕더위가 내리쬐는 적막한 화장터에 홀로 서서 화장터 굴뚝을 향하여 묵념을 올렸습니다. 지구 반대편에 희생된 꽃다운 영혼들! 얼마나 많은 젊은 영혼들이 이곳 이국의 화장터에서 한 줌이 재로 변해갔을까?

 

3년 전 이곳 미산면 동이리로 이사를 온 후 우연히 유엔군 화장터를 발견하고 나서부터 3년째 이곳 유엔군 화장터를 찾아 참배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유엔군 화장터를 참배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지구의 반대편에서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젊음의 꽃을 다 피우지 못하고 희생된 영혼들에게 괜히 마안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 벽체는 거의 허물어지고 7m 높이의 굴뚝만 덩그렇게 남아있다.

 

 

3년 전 이곳 연천군 미산면 동이리 마을을 처음 방문했을 때, 금굴산 자락에 우연히 눈에 띤 브라운 색깔의 문화재 안내판에는 '연천 유엔군 화장장시설'이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웬 화장터일가?" 궁금증이 일어나 동이리 마을로 이사를 한 후 유엔군화장터를 찾아보았습니다. '문화재 제 408호 연천 UN 화장장 시설'이란 안내판을 따라 100여 미터 올라가니 잡초만 무성하게 덮여 있는 화장터가 나타났습니다. 화장터 표지판에는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로 '연천 유엔군 화장장 시설'이라고 표시되어 있고 다음과 같은 설명이 덧붙여 있습니다.

 

 

▲ 최근에 일부 보수를 했으나 전사자를 기리는 추모비 하나도 없다.

 

 

'6.25전쟁으로 희생된 유엔군 전사자들을 화장한 곳이다.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을 비롯하여 16개국의 유엔군이 참전하였다. 유엔군의 참전으로 전쟁 초반의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국군과 유엔군은 압록강까지 북진하였으나, 중국군이 개입하면서 38도선 일대로 물러났다. 전쟁이 교착 상태에 빠지자 1951년 7월부터 휴전 협상이 진행되었다. 국군과 유엔군은 휴전에 대비하여 고지쟁탕전을 치열하게 전개 하였다. 유엔군 화장장 시설은 이 때 희생된 유엔군을 화장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이 시설물은 1952년에 건립되어 휴전 직후까지도 사용한 시설로, 건물의 벽과 지붕이 훼손되었으나 가장 중요한 화장장 굴뚝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화장장은 주변의 돌을 이용하여 막돌 허튼층쌓기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 유엔군 화장터에서 얼마나 많은 참전희생자들을 화장을 했는지, 어떻게 건축을 했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어떻게 관리를 했는지 등 제반 자료를 전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그들은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진 작은 나라 한국전쟁에 참전을 했다가 전사를 하여 한줌의 재로 변해 본국으로 돌아갔으리라는 추측만 해볼 뿐입니다.

 

 

 

 

한국전쟁 시 전투가 치열했던 금굴산 자락

 

한국전쟁으로 전사한 유엔군 병사는 4만 670명(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자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중 연천지역에서는 1950년 7월부터 1951년 10월까지 1년여 동안 중국군 2만 1500명과 유엔군 4000여명 등이 사상자가 발생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치열한 고지쟁탈전이 벌어진 연천일대에서 희생된 주검을 처리하기 위하여 연천군에는 2곳에 유엔군화장터를 조성해 운영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처음에는 1951년에 연천군 중면 마거리 민통선 안에 먼저 설치를 하여 운영을 하다가, 희생자가 많아지자 처리시설이 부족하여 1952년에 미산면 동이리에 추가 설치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치열했던 한국전쟁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는 금굴산

 

내가 살고 있는 연천군 동이리 금굴산도 1952년 4월 22일부터 4월 25까지 영연방 제29여단 소속 벨기에‧룩셈부르크 연합군 29여단 대대병력과 중공군 제188사단 병력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격전장입니다.

 

언제 휴전선이 그어질지 모르는 위급한 상황에서 밀고 밀리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면서 전사자가 속출했습니다. 마을 사람들 설명에 의하면 중공군과 아군의 사상자가 임진강 적벽에 떨어져 내려 임진강이 핏빛으로 변했다고 합니다. 전사자가 속출하자 영국군은 금굴산 서쪽 기슭에 화장터를 설치했습니다.

 

 

▲ 연천군 금굴산은 사방이 훤하게 내려다 볼 수 있는 군사적 요충지이다.

 

임진강이 휘돌아가는 북방에 돌출된 금굴산은 사방의 주변 경관을 두루 내려다보여 삼국시대부터 감제고지 역할을 했던 전략적 군사고지입니다. 주변에 고구려 유적지인 ‘당포성’이 천혜의 군사적 요새 역할을 했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만약에 금굴산 지역을 내주면 휴전선이 임진강과 한탄강 이남으로 밀려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꽃다운 유엔군 병사들이 꽃다운 목숨을 바치면서 이 천혜의 요새인 금굴산 고지를 지켜냈습니다. 그리고 전사자의 시체를 이곳 유엔군 화장터에서 화장을 하여 본국으로 송환을 했습니다. 만약에 그들의 희생이 없었더라면 연천군 미산면, 백학면, 왕징면, 군남면과 전곡과 연천 지역까지 북한 휘하로 들어가고 말았을 것라고 합니다.

 

 

 

 

 

지구반대편에서 전사한 젊은 영혼에 대한 '마음의 빚'

 

그렇게 되었다면 내가 이곳 동이리로 이사를 와서 살 수도 없었겠지요. 나는 이 유엔군 화장장을 지나칠 때마다 지구 반대편에서 먼 이국 땅 전투에 참전을 하여 꽃다운 나이에 전사를 한 젊은 영혼들에게 괜히 마음의 빚을 진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수시로 이곳 화장장을 참배를 하곤 합니다. 어떤 날은 누군가가 초코파이 한 개가 화장장 아궁이에 놓고 가기도 했습니다.

 

 

▲ 2012년 4월에 방문했을 때에는 초코파이 하나가 아궁이에 놓여 있었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16개국을 여행하다 보면 어디를 가나 한국전쟁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추모비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들은 머나 먼 지구 반대편 나라에서 전쟁을 하다가 전사를 한 희생자들의 정신을 숭고하게 기리며 극진한 예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곳 유엔군 화장장은 마치 폐허를 방불케 합니다. 벽체는 모두 무너져 내리고 7m 높이의 굴뚝만 덩그렇게 남아 있습니다. 몇 명의 병사가 이곳에서 화장을 했는지, 전사자들의 유골은 어떻게 관리를 했는지 그 어떤 자료도 없고, 이렇다 할 기념비하나 세워져 있지 않습니다.

 

 

▲ 2012년 6월에 방문했을 때의 유엔군화장장. 잡초만 무성했다

 

 

 

아직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60여 년 전, 지구 반대편에서 까마득히 먼 대한민국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모르고 전쟁에 참전하여 희생을 한 영혼들을 생각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젊은 나이에 꿈을 제대로 펼쳐 보지도 못하고 숭고하게 희생을 한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만 들뿐입니다. 

 

애국선열과 국군장병들의 충절을 추모하기 위하여 국가에서는 현충일을 공휴일로 지정하고 있습니다. 정부요인을 비롯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국립서울현충원을 방문하여 추모를 하지만 이곳 연천 유엔군 화장장은 적막하고 쓸쓸하기만 합니다.

 

연휴로 이어지는 현충일은 행락객만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곳 임진강에도 유례없이 많은 캠핑객을 비롯하여 물놀이를 온 행락객들이 유례없이 많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그들은 전투가 치열했던 금굴산 앞 임진강에서 평화롭게 물놀이를 하고 낚시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충일에 대한 의미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누구를 위하여 현충일을 공휴일로 정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현충일날 임진강에서 평화롭게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람들

 

곰곰이 생각을 해보면 남의 나라를 위해 싸우다가 전사한 주검을 화장한 유엔군화장장은 역사적으로 매우 주요한 사료입니다. 잡초만 무성하던 화장장은 그나마 작년에 일부 보수를 하여 형체를 겨우 유지하고 있습니다.

 

아직 전쟁은 끝나지않았습니다. 이곳 금굴산은 지금도 매일 총성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때로는 탱크부대가 요란하게 소리를 내며 지나 다닙니다. 얼굴에 분장을 하고 완전무장을 한 우리 국군들의 행군도 자주 눈에 띱니다. 이 젊은 영혼들이 휴전선을 지키고 있기에 38선 이북 임진강에서도 평화롭게 물놀이와 낚시를 하며 휴식을 취할 수 있습니다.  

 

 

▲이곳 연천군에는 지금도 수시로 총성소리가 들리고 탱크부대를 만날 수 있어 아직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는 실감을 할 수 있다.  

 

아무도 찾는 이 없는 화장장 입구에는 엉겅퀴만 무성하게 자라 보초를 서고 있을 뿐 그 흔한 추모비 하나 없습니다. 머나먼 지구 반대편에서 건너와 이국땅에서 전사한 죽어간 영혼을 기리는 추모비라도 하나 세워서 그들의 영혼을 조금이라도 위로함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