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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여인의 동전꾸러미-빈자일등

찰라777 2014. 8. 25. 08:31

가난한 여인의 동전꾸러미-빈자일등(貧者一燈)

 

 

 

 

 

지난 8월 16일 오후, 찰라의 블로그 독자인 한 보살이 무거운 동전 꾸러미를 들고 연천 금가락지를 찾아왔습니다. 베개처럼 생긴 동전꾸러미는 어찌나 무겁든지 내가 한 손으로는 도저히 들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무거운 동전 꾸러미를 들고 서울에서 전철을 타고 소요산역까지 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 동전을 네팔의 어린이를 위한 장학금으로 보시를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이 무더위에 저렇게 무거운 동전을 들고 38선 오지인 연천까지 찾아온 그 여인의 정성에 너무나 감동을 받아 한동안 멍 했습니다. 저로서는 처음 만나는 인연인데, 몇 년 동안 모은 동전 꾸러미를 이렇게 선 듯 내놓다니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서울 신당동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그녀는 청정남 아우님과 전통문화 답사를 함께 다니는 인연으로 서로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청정남 아우가 연천 금가락지를 방문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쁜 식당일을 언니에게 맡기고 함께 오게 된 것입니다.

 

그녀는 블로그에 읽은 금가락지를 언젠가는 꼭 한번 방문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침 기회가 닿아 신당동에서 택시를 타고 신설동에서 아우를 만나 소요산으로 오는 전철을 타고 왔다고 했습니다.

 

나는 소요산역에서 두 분을 맞이하여 금가락지로 왔습니다. 금가락지에 도착한 두 분은 임진강변을 산책을 하고 아내가 준비한 조촐한 저녁 식사를 하고 금가락지 정자에서 차 한 잔을 나누며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두 사람은 밤 9시가 되어 서울로 되돌아갔습니다.

 

 

 

 

 

보살님이 떠난 뒤 나는 아내와 함께 탁자에 동전을 쏟아놓고 세기 시작했습니다. 500원 짜리, 100원 짜리, 50원 짜리, 10원 짜리로 구분해가며 밤새도록 동전을 헤아려 합산읗ㄹ 해보니 339,960원이나 되었습니다.

 

나는 이 동전을 23일 날 향운사 자비공덕회 기도법회에 들고 가 부처님 전에 올렸습니다. 이 날은 한 달에 한 번 자비공덕회 회원님들이 남을 위해 기도를 올리는 날입니다. 회원님들도 지난 한 달간 집에서 각자가 남을 위해 기도를 하고 모은 성금을 부처님 전에 올리고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올리곤 합니다.

 

 

 

부처님 전에 올린 동전 꾸러미를 바라보자니 감개가 더욱 무량해집니다. 50,000원 짜리 지폐를 봉투에 넣어 300,000원을 올렸다면 그렇게 감동이 오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루하루 손 떼가 묻은 동전을 몇 년 동안 모아온 이 동전꾸러미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이 동전꾸러미에는 매일 몇 잎씩 동전을 모아왔던 수많은 세월과, 남을 돕겠다는 한 여인의 갸륵한 마음의 향기가 가득 젖어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부처님 전에 올린 동전꾸러미를 바라보며 기도를 올리다가 문득 부처님 시절 ‘가난한 여인의 등불’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현우경> <빈녀난타품>에 나오는 가난한 여인의 등불에 대한 사연은 우리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좀 자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가난여인의 등불-빈자일등(貧者一燈)

 

쉬라바스티(사위성)에 난타라는 가난한 여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때 부처님은 기수급고독원에서 안거하고 계셨습니다. 어느 날 온 성안이 떠들썩한 것을 보고 난타는 지나가는 사람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이 나라의 프라세나지드왕이 석 달 동안 부처님과 스님들에게 옷과 음식 침구와 약을 공양하고 오늘 밤에는 또 수만 개의 등불을 켜 연등회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온 성안이 이렇게 북적거립니다.”

 

 

 

 

이 말을 들은 여인은 생각했습니다.

 

“프라세나지트왕은 많은 복을 짓는구나. 그런데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으니 어떻게 할까? 등불을 하나 켜서 부처님께 공양했으면 싶은데. 나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가난한 집에 태어나 이집 저집 다니면서 밥을 빌어 겨우 목숨을 이어왔을까? 복 밭을 만나고도 뿌릴 종자가 없구나.”

 

그녀는 괴로워하면서도 적은 공양이라도 드릴 양으로 아침 일찍 일터에 나가 날이 늦도록 부지런히 일했지만 얻은 것은 겨우 한 푼에 불과했습니다. 또 여인은 지나가는 행인에게 구걸하여 동전 두 닢을 마련했습니다. 그녀는 그 돈을 가지고 기름을 좀 사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기름집 주인이 물었습니다.

 

"부인, 1전어치 기름은 사 봐야 쓸 데가 없을 텐데 도대체 어디에 쓰려는 거요."

"이 세상에서 부처님을 만나 뵙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이제 그 부처님을 뵙게 되니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나는 가난해서 아무것도 드릴 것이 없으니 등불이라도 하나 켜 부처님께 바칠까 합니다. 돈이 적지만 이것만큼이라도 주세요."

 

 

 

 

기름집 주인은 사정을 듣고 가엾이 여겨 기름을 여인이 가져온 돈의 갑절로 주었습니다. 그녀는 그 기름을 받아 기쁜 마음으로 등불을 하나 만들어 불을 켠 뒤, 절로 올라갔습니다. 그녀는 그 등불을 부처님께 바친 뒤 서원을 세웠습니다.

 

“저는 지금 가난하기 때문에 이 작은 등불 하나만을 부처님께 공양하나이다. 그러나 이 등불은 저의 큰 재산을 바치는 것이오며, 따라서 저의 마음까지도 모두 바치는 것이옵니다. 바라옵건대 이 인연 공덕으로 저도 내생에 지혜광명을 얻어 일체 중생의 어두운 마음을 없애게 하여주소서.”

 

 

 

 

이렇게 소원을 말하고는 부처님께 예배하고 떠났습니다.

 

밤이 지나고 이른 새벽이 되어 먼동이 트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등불은 하나 둘 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새벽이 가까워져도 가난한 여인 난타가 켠 등불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이날 불을 끄는 당번은 목건련 존자였습니다. 목건련 존자는 부처님의 십대제자 가운데 신통제일(神通第一)의 위대한 현자였습니다.

 

그 신통제일 목건련 존자는 등불을 끄기 시작했습니다. 낮에 불을 켜두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에 껐다가 다음 날 밤이 되면 다시 켜야겠다는 생각으로 하나하나 불을 꺼나갔습니다. 그런데 유독 난타 여인의 등불만은 여전히 꺼지지 않았습니다. 입으로 불어도 끄떡하지 않고 다시 옷자락으로 끄려 하였으나 역시 그대로였습니다.

 

 

 

 

이때 부처님께서는 목건련이 불을 끄려고 애쓰는 광경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부질없이 애쓰지 마라. 지금 네가 끌려고 하는 그 등불은 너희들 성문(聲聞)의 힘으로 꺼지는 것이 아니다. 비록 네가 사해의 바닷물을 길어다 붓거나 크나큰 태풍을 몰아온다 하여도 그 불은 끌 수 없다. 그 등불을 보시한 사람은 자기의 재산과 마음을 진실하게 바친 뒤 일체 중생을 구원하겠다는 큰 서원을 세운 것이기 때문이니라."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목건련 존자는 부처님께 나아가 예배를 드렸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난타를 불러 그녀에게 수기(授記)를 주셨습니다.

 

 

 

 

"너는 오랜 세월이 지난 뒤 불국토를 성취하고 부처가 될 것이다. 그 이름은 연등불(燈光등광)이라 할 것이고, 여래의 열 가지 명호를 모두 갖출 것이다."

 

이에 난타 여인은 수기를 받고 기쁜 나머지 부처님 앞에 꿇어 앉아 출가하기를 원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쾌히 승낙하시고 그녀가 비구니가 되도록 허락하시었습니다.

 

이때 아난다와 목건련 존자는 그 가난한 여인 난타가 등불을 보시하고 그 공덕으로 온갖 고액에서 벗어나 수기를 받고 출가하는 것을 보고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저 난타 여인은 무슨 업을 지어서 금생에 오랫동안 가난하게 살았고 또 무슨 인연으로 부처님을 만나 수기를 받고 출가하여 대중들이 다투어 공양하나이까?”

 

 

 

 

이에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그 사연을 말씀하셨습니다.

 

“과거에 가섭 부처님이 계셨는데 그 때 일이다. 한 장자의 부인이 부처님께 나아가 공양을 하겠으니 부디 거절하지 마시고 받아 주소서. 하고 청했다. 한편 그 때 또 다른 어떤 가난한 여인이 청을 했기 때문에 선약을 깨뜨릴 수 없어서 부처님은 가난한 여인의 청을 먼저 들어 주셨다. 이 가난한 여인은 이미 다시는 생멸의 세계로 돌아오지 않는 진리를 터득하고 있었다.

 

가난한 여인의 청을 먼저 들어주자 장자의 부인은 자기의 재산을 믿고 가난한 여인을 업신여기기 시작했다. 자신의 청이 뒤로 밀린 것을, 배신당한 것으로 생각하고 질투와 시기하는 마음으로 부처님께 사뢰었다.

 

‘부처님께서는 어찌하여 나 같은 부자의 공양을 받지 않고 저 거지의 청을 먼저 받으십니까?’

 

장자의 부인은 이렇게 모질고 비뚤어진 언행으로 가난한 여인을 옳지 못한 여자라고 비방했다. 그 뒤로 장자 부인은 세상을 떠나 다시 세상에 태어날 때마다 항상 거지의 집에 태어나기를 5백 번 이나 거듭했다. 그러나 그 녀는 뒷날 부처님과 스님들께 등불을 켜 공양을 올린 공덕으로 지금 부처님을 만나 수기를 받고 그리고 출가하여 온 나라 국민들이 존경하고 받들게 된 것이다.

 

아, 아난다야. 그리고 목건련이여. 이 여인의 전생은 이와 같았느니라.”

 

가난한 여인의 등불에 대한 빈자일등(貧者一燈)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진한 감동을 줍니다. 연꽃 모양이 가장 많은 연등은 부처님에게 공양을 올리는 방법의 하나입니다. 번뇌와 무지로 가득 찬 무명(無明)의 세계를 부처님의 지혜로 밝게 비추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기도 합니다.

 

 

 

가난한 여인의 등불은 그녀의 온 마음과 전 재산을 담아 밝힌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처지도 어렵지만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자비의 마음의 내어 남을 돕겠다는 마음과 같은 것입니다.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돕겠다는 갸륵한 마음이야말로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진정한 지혜의 등불이 될 것입니다.

 

 

네팔 어린이 32명이 한 달간 생활을 할 수 있어..

 

힘든 음식점 일을 하면서 매일 매일 모은 동전 꾸러미를 가난한 네팔의 어린들의 학자금에 보태겠다는 이 이 여인의 마음이야말로 빈자일등(貧者一燈), 즉 가난한 여인의 들불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 동전을 네팔 루피로 환산을 하면 약 32,000루피가 됩니다. 32,000루피면 네팔의 가난한 아이들 32명이 한 달간 생활을 할 수 있는 큰 돈입니다. 이 동전은 다음 달에 네팔의 어린이들에게 보내져 그들이 매우 유용하게 쓰며 공부를 계속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네팔의 가난한 어린들은 공부를 하고 싶으나 너무나 가난해서 그들 자신이 돌을 개는 등 생활비를 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일을 하느라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이제 한 사람이 모은 이 동전이 부처님이 태어나신 나라 네팔에 보내져 지혜의 등불을 켜는데 큰 보탬이 될 것입니다. 이 공덕으로 이 동전을 보시한 보살님이 빈자일등의 부처님 지혜광명을 얻어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난타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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