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찰라의세상보기

목포행완행열차와 대전블루스

찰라777 2014. 9. 15. 12:22

추석 귀성열차 단상

 

 

인터넷 클릭전쟁으로 변한 기차표 예매

 

9월 7일 아침 7시 23분, 용산역에서 목포로 가는 KTX를 탔다. 용산역에는 추석 명절을 새로 가는 귀성객들로 초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추석 명절에 고향을 찾아가는 회귀본능은 수년째 이어지는 불경기도 말리지 못하는 모양이다.

 

첫 대체휴무제 실시로 어느 때보다 긴 5일 간의 추석연휴를 맞이하여 사람들은 너도나도 고향으로 달려가고 있다. 지난 5일부터 11일 7일간의 전국 예상 이동인원은 3천945만 명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남한 인구의 80퍼센트가 대이동을 하는 샘이다.

 

 

▲추석 전날 고향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로 붐비는 용산역

 

이는 마치 연어가 태평양을 헤매다가 자기가 태어난 숲속 냇물을 찾아가듯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고향을 찾는다. 원숭이나 코끼리 등 동물들도 죽을 때는 자신이 태어난 고향에서 죽고 싶어 한다. 그런데 하물며 인간의 마음이야 어쩌겠는가? 누구나 귀소 본능은 억제할 수 없다.

 

우리나라 최전방 경기도 연천군에 살고 나 역시 아내와 함께 고향으로 가는 귀성열차를 타기 위해 애를 갖은 써야만 했다. 지난 달 8월 13일 아침 6시, 땡 소리가 나자 나는 인터넷으로 기차표를 예매를 했는데, 올해는 온 좋게도 대기번호가 1151번째로 비교적 수월하게 예매를 할 수 있었다. 매년 기차표를 예매를 하다 보니 요령이 생긴 것이다. 추석 기차표를 손에 쥐고 나니 마치 로또복권에 당첨이 된 것보다 더 기뻤다.

 

“여보, 당첨이야 당첨!”

“복권이라도 당첨됐어요!”

“내가 언제 복권 사는 것 보았소? 고향 가는 기차표가 당첨됐어요!”

“우와, 축하해요!”

 

 

예전에는 기차역에서 밤을 새며 길게 줄을 서서 전쟁을 치르듯 귀성열차 표를 예매를 했는데, 세월이 흘러 귀성열차 표를 예매를 하는 방법도 많이 달라졌다. 최첨단 IT산업의 발전으로 줄서기 전쟁에서 마우스 클릭전쟁으로 바뀐 것이다. 인터넷 예매는 불과 1초 안에 몇 만 번으로 순서가 밀린다. 나는 5시부터 컴퓨터를 켜 놓고 예매 준비를 했다. 그리고 6시가 되기 몇 분 전부터 마우스를 계속 클릭을 했더니 1151번째이란 빠른 대기 순서를 받았다. 드디어 내 예매 순서가 돌아오자, 3분 안에 원하는 날짜와 시간, 좌석을 선택해서 표를 예매를 했다. 인터넷 예매도 매년 하다보니 요령이 생긴 것이다.

 

9월 6일 아침 일찍 출발하는 귀성열차를 타기 위해 하루 전날 미리 연천에서 남양주 도농동에 있는 아이들 집에서 하루 밤을 지냈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5시 50분에 도농역에서 중앙선 전철을 타고 용산역에 도착하여 7시 23분 발 호남선 KTX를 탔다. 번거롭기는 하지만 오랜만에 고향에 계신 장모님과 친척들을 만나고, 조상님의 산소에 성묘를 할 생각을 하니 마냥 즐겁기만 하다.

 

‘비 내리는 호남선’과 ‘대전 블루스’

 

기차가 용산역을 출발하여 한강 철교를 지나갔다. 여의도에는 마천루 같은 빌딩들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한강철교를 지나며 나는 문득 오래전 목포행 완향열차를 타고 고향을 갔던 생각이 났다. 그 시절 목포행 완행열차는 밤 8시 45분에 서울역을 출발하여 다음 날 아침 6시에 도착을 했다. 그러나 연착을 하면 그 보다 훨씬 늦을 때도 허다했다.

 

서울역과 목포역에는 이별을 아쉬워하는 전 송객들이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고향을 떠나가는 아들딸들을 바라보며 부모님들은 눈물을 지었다. 그 때 사람들이 즐겨 부르던 노래가 있다. ‘비 내리는 호남선’이 바로 그 노래다.

 

 

▲고향을 향해 KTX를 타는 사람들

 

 

“목이 메인 이별가를 불러야 옳으냐/돌아서서 피눈물을 흘려야 옳으냐/사랑이란 이런가요/비나리는 호남선에/헤어지던 그 인사가 야속도 하더란다.” 당시 박춘석이 작곡하고, 손로원 작사한 ‘비 내리는 호남선’은 손인호가 불러 크게 히트를 했다. 1956년 제3대 대통령 선거에서 신익희 후보가 선거를 불과 10일 남기고 이리역(현 익산역)에서 갑자기 내일혈로 사망을 하고 말았다. 결국 대통령에는 자유당 이승만이 당선되었고, 부통령에는 민주당 장면이 당선되었다.

 

이승만 정권의 독재에 염증을 느낀 국민들은 해공 신익희의 죽음을 애도하며 ‘비 내리는 호남선’을 목 놓아 불렀다. 그리고 심지어는 이 노래를 ‘가련다 떠나련다 해공선생 뒤를 따라/해공선생 뒤를 따라/가도 가도 끝이 없는 당선 길은 몇 구비냐.’고 개사를 하여 부르기까지 했다. 신익희의 죽음 이후 ‘비 내리는 호남선’ 음반은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그러나 이 노래로 인해 작곡가 박춘석과 작사자 손로원은 한동안 고초를 겪어야 했다. 경찰은 이 노래가 해공 신익희 선생의 죽음을 애도하는 뜻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며, 가사를 신익희 선생 미망인이 붙이지 않았느냐고 집요하게 추궁을 했다. 또 이 노래가 민주당의 당가처럼 불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조사결과 이 곡은 신익희가 타계하기 3개월 전에 만들어졌다는 것이 밝혀져 무사히 풀려났지만 작사자인 손로원은 더 많은 괴로움을 당했다고 한다(참고자료:강준만, 한국현대사산책, 1950년대편 3권, 신익희와 민주당:비 내리는 호남선). 결국 ‘비 내리는 호남선’은 어이없게도 금지곡이 되고 만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열차의 스피커에서는 서대전역에 도착했다는 방송이 울렸다. 용산역을 출발한 지 불과 1시간여 만이다. 그러나 그 시절 밤 8시 45분에 서울역을 출발한 목포행 완행열차는 4시간이나 걸려 새벽 0시 40분에야 도착을 했다. 그 당시에는 서울에서 목포로 가는 서너로가 연결되지 않아 서울발 호남선 열차는 대전역에서 기관차를 분리하여 반대편으로 돌려서 목포로 출발했다. 따라서 0시 40분에 도착한 목포행완행열차는 10분간을 쉬고 0시 50분에 출발을 했다. 이 때 탄생한 것이 대전역 가락국수와 ‘대전 블루스’라는 노래다.

 

“잘있거라 나는 간다/이별의 말도 없이/떠나가는 새벽열차/대전발 영시 오십분/ 세상은 잠이 들어 고요한 이 밤 나만이 소리치며 울 줄이야 아~ 붙잡아도 뿌리치는 목포행 완행열차.” 1959년 김부해 작곡, 최치수 작사, 안정애가 부른 ‘대전 블루스’는 대전역을 배경으로 이별의 아픔을 끈적끈적한 블루스 리듬에 애절한 가락으로 담아냈다. 자정을 넘은 새벽에 대전에서 목포로 가는 완행열차를 소재로 ‘떠나가는 새벽열차 대전발 영시 오십분’이라는 가사가 유명하게 되어 흔히 ‘대전발 영시 오십분’이라고 지칭하기도 하며, 1963년에는 ‘대전발 영시 오십분’이라는 영화까지 만들어지기도 했다.

 

1999년 대전역 광장에 이 노래 가사를 적어 넣은 노래비가 건립되었다. 노래비에 작곡가와 작사가, 가수의 이름까지 새겨 넣으려 했으나, 원곡을 부른 가수 안정애가 조용필의 이름도 같이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하여 가수 부분은 이름이 빠져 있다는 일화도 있다. 안정애가 부를 당시에도 크게 히트했으나 조용필이 1980년대에 취입해 새롭게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1959년부터 호남선은 대전역을 거치지 않고 서대전역으로 다니면서 ‘대전발 0시 50분발’ 완행기차도 없어졌다.

 

2시간대로 단축된 서울-목포 고속전철 시대 개막

 

그 후 호남선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단골메뉴로 호남선 복선화 공약을 내걸었다. 그러나 호남선 복선화 공사는 1968년에 착공하여 36년만이 2003년에 완공되었다. 또한 경부고속철도는 2004년도에 완공되었지만, 2006년에 착공된 호남고속철도는 2015년도 상반기에 오송-광주송정 간 182.3km를 개통할 예정으로 있으며, 2단계 공사구간인 광주소정~목포 구간은 2017년에 도에 개통을 할 예정으로 되어 있다.

 

 

 

▲목포역에 세워 놓은 호남선 종창역 이정표

 

한국철도시설공단에 의하면 서울 용산에서 광주까지 기존 159분이 소요되었는데 93분으로 단축된다고 한다. 또한 용산~목포 구간 소요시간도 연재 191분에서 125분으로 줄어들게 된다고 한다. 그 시절 10시간 정도 걸리던 목포행완행열차가 이제 2시간 이내로 단축된 고속철도로 바뀌어 가고 있다.

 

경부선에 비하여 호남선에 대한 복선화와 고속철도 공사가 늦어지기는 했지만, 어쨌든 전국이 2시간 이내 철도 생활권으로 변하게 되었다. 이제 서울발 목포행완행열차는 역사 속으로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목포는 국도 1,2호선의 출발기점이다. 목포에서 신의주까지는 939km이다.

 

목포역에 도착하니 10시 55분이었다. 추석명절이라 열차가 다소 지연된 것이다. ‘호남선종착역’이라는 이정표가 보이고, 고향방문을 환영한다는 플래카드가 어지럽게 걸려있다. 목포는 우리나라 국도 1, 2호선의 출발기점이다. 목포에서 신의주까지는 939km이고 판문점까지는 498km이다.

 

나는 목포에서 기차를 타고 판문점을 지나 평양-신의주-몽골리아-바이칼 호수-모스크바를 거쳐 유럽으로 여행을 가는 꿈꾸고 있다. 과연 살아생전에 내가 꿈꾸고 있는 기차여행을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