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임진강일기

텃밭 일구고 난 후 마시는 보드카 한잔의 맛!

찰라777 2015. 3. 12. 07:24

▲언땅을 밀고 나오는 마늘 싹

 

3월 7일. 입춘이 지나고 우수에 이어 경칩도 지나갔다. 경칩은 개구리가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고 겨우내 대동강물도 녹는다고 하지 않던가? 그동안 남양주에서 아이들과 함께 주로 겨울을 지냈던 아내와 나도 기지개를 한껏 켜고 동이리 금가락지로 돌아왔다. 연천은 춥기도 하지만 난방비도 너무 많이 나온 데다 아내가 자주 병원을 드나드는 바람에 금가락지는 2주에 한번 정도 와서 화분에 물을 주고 집안 청소를 하는 등 유지하는 수준으로 겨울을 났다.

 

경칩이 지나니 온도가 15도 정도 올라가 정말 봄기운이 완연해졌다. 이제 슬슬 텃밭농사를 지을 준비도 해야 한다. 마침 응규가 시간을 내어 37일 금가락지에 도착을 했다. 화분에 물을 주고 천리향과 영산홍 종류는 거실에서 밖으로 내놓아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마시게 했다. 식물들도 이제 기지개를 켜고 봄을 맞이할 때가 된 것이다.

 

 

▲실내에 있는 화분을 밖으로 내 놓았다.

 

그런데 행운목이 어쩐지 시들시들하다. 지난달부터 잎이 노래지더니 이제 축 쳐저서 시들어 가고 있다. 좀 아깝지만 행운목 줄기를 3분의 2쯤 과감하게 잘라냈다. 잘라낸 후 새 잎을 나기를 바랄 수 밖에 없다.

 

▲시들어가는 행운목을 잘라냈다.

 

현관에 들여놓았던 블루베리는 여기저기 싹이 움터 나오고 있다. 작년에는 블루베리가 별로 열리지 않았는데 금년에는 얼마나 열려 줄까? 거름도 좀 주고 물을 때 맞추어 잘 주어야 할 것 같다. 일부 작은 화분에 심어놓은 블루베리를 밖으로 내어 놓았는데, 아내는 얼어죽을지 않을까 걱정을 한다.

 

 

 

텃밭에는 겨울을 씩씩하게 이겨낸 시금치가 푸르게 자라나고 있고, 마늘이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언 땅을 쏙쏙 밀고 나오는 마늘 싹이 신기하기 그지없다. 땅을 뒤집으니 촉촉한 흙이 부드러운 감촉을 느끼게 한다.

 

응규와 함께 감자와 토마토, 상추, 오이, 가지, 호박 등을 심을 텃밭을 삽과 쇠스랑으로 일구었다. 이번에는 밭이랑을 너비 90cm로 만들고 고랑도 50cm로 넉넉하게 만들었다. 그동안 텃밭이 너무 좁아 고랑을 좁게 만들었는데 작업을 하기가 너무 불편하다. 그래서 작물을 적게 심더라도 작업을 하게에 편하도록 고랑을 넉넉하게 만들었다.

 

감자는 늦어도 4월 초까지는 심어야 한다. 옥수수, 부추, 호박, 상추류, 당근도 4월 초순에는 심어야 하고, 더덕과 도라지도 좀 심어야 할 것 같다. 상추는 청상추, 적상추, 치커리, 쑥갓, 케일 등을 골고루 심어볼 계획이다.

 

▲감자심을 이랑

 

 

▲토마토 밭

 

오랜만에 삽질과 괭이질을 하고나니 팔다리가 뻐근하다. 그러나 흙의 감촉과 냄새는 매우 좋다. 나이가 들수록 흙을 가까이 해야 한다는 옛 어르신들의 말씀이 새삼 진하게 느껴진다. 하기야 나도 어느덧 노인이 다 되어 가고 있지 않는가? 그러나 나이는 마음으로 먹는다. 마음이 청춘이면 나이도 청춘이다.

 

해가 떨어질 때까지 텃밭에서 일을 하고 나니 육신은 노곤하지만 마음은 봄 날씨처럼 포근하다. 아내가 차려 놓은 밥상에 앉으니 소주 한 잔 생각이 간절하다. 허지만 인근에는 슈퍼마켓이나 구멍가게도 없어 술을 사려면 왕징면이나 군남면까지 가야 한다. 부엌을 뒤져 보니 마치 보드카가 한 병이 보였다. 오래전 러시아 여행을 갈 때 사왔을까? 아니면 누군가가 선물을 준 보드카다.

 

보드카라도 한 잔 해야지?”

조오치요!”

 

러시아산 보드카는 40도의 독한 술이다.

 

, 금년 농사 풍년을 위하여!”

농아 대박을 위하여 건배!”

 

응규와 나는 잔을 마주 치며 보드카를 한 잔씩 따라 건배를 했다. 보드카 특유의 맛이 목젖을 타고 찌르르 침묵의 신호를 울리며 위장으로 넘어가자 곧 온 몸이 더워 졌다. 술이란 이래서 좋은 모양이다. 마침 목포에서 처남이 보내준 마른 민어로 탕을 끓여 안주가 좋았다. 흑산도에서 잡은 민어를 말린 것인데 엄청 큰 민어여서 인지 무를 넣어 끓인 탕 맛이 그만이다.

 

, 보드카 맛이 그만인 데요?”

하하, 자네를 위해 아껴 둔 술이라서 그럴 걸세.”

 

바둑도 한판 두고

 

나는 한 잔으로 족한데 응규는 연거푸 세 잔을 마셨다. 이렇게 오래 된 친구와 텃밭에서 하루 종일 일을 하고 마시는 술이라서 그런지 정말 보드카 맛이 그만이다. 저녁상을 물리고 나서 응규는 바둑을 한 수 두자고 했다. 이렇게 고요한 오지에서 눈이 폭폭 내리는 날, 혹은 시원한 원두막에서 오래 된 친구와 두는 바둑 한 수야 말로 신선놀음이 아닐 수 없다.

 

노곤하지만 식후에 바로 잠을 자기도 그렇고 하여 우린 바둑판 앞에 앉았다. 응규가 세 점을 깔고 두는 바둑이지만 그래도 흥미 만점이다. 그는 하수이면서도 항상 백든 나와 쌈 바둑을 걸어온다. 쌈 바둑을 걸어오다가 실수를 하여 무너지곤 하는 것이 하수 바둑이다.

 

욕심은 금물 일세.”

이번에는 명심하고 둘 테니 한 판만 더 둬요.”

 

단 몇 집으로 패한 그는 한 판만 더 두자고 한다. 그거야 달게 받아드려야지. 그는 처음에는 욕심을 내지 않고 두는 듯하더니 중반전 이후에 또 욕심을 부려 싸움을 걸어왔다. 보통 세 점 바둑이면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다. 이번에도 그는 다섯 점 정도로 졌다. 그러자 또 한 판을 두자고 한다.

 

보드카도 한 잔을 한데다 눈이 슬슬 감기지만 나는 친구의 청을 거절 할 수 없다. 이번에는 내가 실수를 하여 그에게 열 집을 졌다. 눈이 슬슬 감기니 바둑 금을 잘 보지 못해 실수를 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그가 한 판 이기고 잠을 잘 잘 수 있게 한 것도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게임이란 반드시 승부욕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나 모든 게임 중에서도 바둑은 참 좋은 게임 인 것 같다. 낮에는 텃밭에서 동적으로 움직이며 일을 하고, 점심 후에나 저녁상을 물린 후에 오래된 곰삭은 친구와 함께 바둑 한판을 두는 것은 참으로 정신 건강에 좋은 것 같다. 치매도 예방이 되고 우선 심심치가 않다. 우리는 바둑판을 물리고 곧 단 잠으로 빠져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