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임진강일기

하늘을 향해 분기탱천하는 문주란 꽃대

찰라777 2016. 8. 12. 07:01

7월 8일 금요일


30년 넘은 문주란 꽃대의 힘찬 정력

 

6월과 7월은 아내와 영이가 교대로 병원을 드나드는 바람에 금가락지에 머무는 시간이 적어졌다. 아내는 치과치료와 백내장 수술, 그리고 심장내과와 내분비내과 등을 번갈아 다니고, 영이는 갑자기 하반신에 마비가 와서 응급실로 입원을 하기도 했다.


살아가면서 어찌 병이 없겠는가? 병고로 약을 삼아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나는 번갈아가면서 아침 저녁, 혹은 밤에도 병원을 오가는 기사역할을 하고 있다. 병원을 참으로 많이 드나들지만 그때마다 느끼는 것은 더욱 겸손하게 살고, 살아서 숨쉴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도 금가락지에 꽃들은 피어났다. 접시꽃, 봉숭아, 메리골드, 달맞이꽃, 채송화, 호박꽃, 원추리, 때 이른 코스모스, 비비추, 물옥잠.... 그 중에서도 문주란 꽃대는 단연 으뜸이다.


혼신의 힘을 다하여 피워주는 꽃들을 바라보노라면 참으로 감개가 무량하다. 여름한철 짧은 생명을 살아가지만 시들어 죽을 때를 생각하지 않고 혼불처럼 피어나는 꽃들을 바라보면 무한한 생명력을 느끼게 된다.


 이 세상에 꽃이 없다면 참으로 삭막할 것이다.

그런의미에서 금가락지에 점점 더 많은 꽃들이 피어나서 다행이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 금가락지를 꽃들의 천국으로 만들고 싶다.

꽃들이 곁에 있기에 늘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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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가락지에 핀 여름꽃



7월초, 문주란이 꽃대를 쑥~ 내밀더니 순식간에 하늘로 치솟아 오르며 부챗살처럼 꽃이 피어났다. 분기탱천하는 그 정력을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비실비실하던 잎 속에서 어떻게 하면 저렇게 기운차게 벌떡 발기를 하며 일어설까?


▲30년을 넘은 문주란 꽃대



 

사실 이 문주란은 30년도 훨씬 넘은 아주 오래된 노인이다. 우리 집에는 오래된 노인 식물들이 몇 그루 있다. 관음죽, 풍란, 영산홍 등이 그것이다. 이 식물들은 30년에서 40년을 넘은 노인들이다. 문주란도 그중에 하나이다. 30년을 넘게 살아오면서 새끼를 쳐서 어미는 연천군 임진강변에 살고 있고, 새끼는 남양주 아이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 베란다에 살고 있다.




 

문주란은 우리와 함께 시련을 많이 겪어온 식물이다. 7년 전에는 서울에서 지리산 섬진강변으로 이사를 갔다가, 5년 전에 다시 이곳 임진강변으로 주인을 따라 이사를 왔다. 그 동안에 된서리를 몇 번이나 만나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맞이하기도 했다. 그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문주란은 아직 건재해 있다. 아내가 몇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며 살아온 세월만큼 문주란도 시련을 이겨내며 살아가고 있다.




 

모든 꽃들은 꽃을 피우기 위해 마지막 사력을 다하는 것 같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자란 문주란이 6월 중에 먼저 꽃을 피운다. 이곳 서울보다 추운 임진강변 뜨락에 자라고 있는 문주란은 7월 초에 꽃을 피운다. 뜨락에 핀 문주란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문득 고진하 시인의 <문주란>이란 시가 떠오른다.


문주란-고진하 시인    

 

뜨락에 핀 꽃들을 보며 훤한 대낮부터 곡차 한 사발씩 벌컥벌컥 들이켰다. 모두들 벌게진 눈길로 길쭉길쭉한 푸른 잎새들 사이에서 말 자지 같은 긴 꽃대를 하늘로 쑥 뽑아 올린 문주란을 감상하고 있는데, 훌떡 머리 벗겨진 중늙은이 居士가 문주란을 가리키며 이죽거렸다. 이년 저년 집적거리지 말고 문주란처럼 좆대를 하늘에다 꽂아, 하늘에다 말이야!

 

대머리 거사의 일갈 때문일까. 문주란이 놓여 있는 뜨락 위의 하늘이 어느 때보다 더 깊고 쨍쨍해보였다.

    

 


시인들의 정신세계는 참으로 경계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늘로 치솟아 오른 문주란 꽃대를 바라보며 어쩌면 이런 기상천외의 발상을 해낼까? 그는 강원도 원주시 인근에 있는 산골에서 불편당(不便堂) 집을 지어 불편을 감수하면서 살고 있다.

 

불편당 집 마당 곳곳에는 잡초가 자라고 있고, 부인 권포근 여사는 이 잡초로 먹거리를 만들어 밥상에 올리고 있다. 잡초는 삶기만 하면 90% 이상이 독성이 없어져 먹거리를 만드는데 큰 지장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 가장 흔한 풀이미래식량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목사로서 한살림교회라는 타이틀의 교회를 운영하고 있지만 예배당 건물도 없다. 일요일에는 원주시내 한 카페를 빌려 젊은이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예배를 드리는 자유자재한 목회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목사이지만 승과 속을 드나드는 스님 같은 분이다.




 

먹구름 속에서 우르르 쾅쾅! 천둥번개가 치고 한바탕 시원하게 내린 문주란은 더욱 힘차고 생생하게 보인다. 누구도 그 기운을 막을 수 없을 것 같다. 뾰쪽뾰쪽한 꽃잎이 여인의 머리칼에 꽂은 옥비녀를 닮았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원추형의 뾰쪽한 꽃잎이 뒤로 휘어지면서 유연하게 곡선을 그린다. 활처럼 휘어진 꽃잎 속에는 노란 왕관처럼 생긴 꽃술이 강한 향기를 뿜으며 솟아난다. 그리고 산형꽃차례 한 가운데 한 개의 암술이 피어난다.




 

저 꽃들이 시들면 문주란은 마치 늙은 노파처럼 변해갈 것이다. 꽃이 진 자리에는 회백색의 둥근 삭과(朔果)가 달린다. 그리고 그 삭과가 익으면 퍽~ 하고 쪼개지면서 씨를 퍼트린다. 이곳 연천에는 삭과가 퍼트린 새끼 문주란이 두 포기나 자라나고 있다. 과연 저 새끼 문주란이 꽃을 피워 손을 퍼트릴 때까지 내가 살아 있을까


풍진세월 삼십년 넘게 살아온 문주란아

온갖 만고풍상 겪으면서도 함께 살아주어 고맙다!

죽을 듯 죽을 듯 하다가도

다시 힘차게 발기하며 분기탱천하는  

너를 보면

희망이 보인다!

저절로 힘이 솟아난다!

무한히 발산하는 정자꽃

다산의 상징처럼 하늘을 향해

쭉 뻗어 벌어지는 네 향기에 취해

오늘 하루가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