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임진강일기

35년 된 영산홍

찰라777 2018. 5. 9. 08:30

 

 

오늘은 어린이 날이다. 아침부터 어린이날 답게 날이 화창하고 시계가 매우 맑다. 창밖을 바라보니 오래전 화분에 심어두었던 영산홍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유혹의 미소를 짓는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뜨거운 물에 커피를 옅게 타서 후루륵후르룩 마시며 화단에 핀 꽃들을 감상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아내가 정성을 들여 가꾸어 놓은 화단 앞에 앉으면 꽃망울이 터져 나오는 소리가 들리낟. 오늘은 으아리꽃망우리 터져나오고 있다. 머지않아 작약도 곧 터져나올 기세다. 금낭화와 매발톱은 만개하여 화단을 화려하게 장식을 하고 있다.

 

 

 

 

커피잔을 들고 영산홍 곁으로 가까이 다가가 온통 붉은 꽃으로 화분을 덮어버린 영산홍을 바라본다. 어쩌면 저리도 아름답게 피어났을까. 자세히 보면 꽃송이가 하나하나로 보이지만 멀리 거리를 두고 보면 화분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꽃송이처럼 보인다. 참으로 아름다운 자태다!

 

이 영산홍은 우리가족과 함께 생사고락을 함께 해온 나무다. 그러니까 저 영산홍은 올해로 서른 다섯 살이나 된다. 젊었을 때 나는 나무나 화초에 대하여 문외한인지라 저 영산홍이 어떻게 우리 집에 들어왔는지기억이 잘 안난다. 그런데 아내의 말로는 35년 전 빨간 영산홍과 하얀 영산홍 묘목을 화분에 심었다고 한다. 그렇게 탄생한 영산홍은 몇 해가 지나자 드디어 빨간 영산홍과 하얀 영산홍 꽃을 피워주기 시작했다. 봄이오면 마치 한쌍의 신랑신부처럼 곱게 피워주는 영산홍이 그리도 고마울 수가 없었다.

 

 

 

 

허지만 우리와 생사고락을 함께해온 영산홍은 우리가 셋방 살이를 하며 전전할 때 수없이 옮겨 다녀야만 하는 고초를 겪어야만 했다. 젊은 날 셋방 살이를 해야했던 서울에서는 얼마나 여러차례 이사를 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내가 은퇴를 한 후에는 지리산 섬진강까지 함께 이사를 해야했고, 급기야는 섬진강에서 이곳 최전방 삼팔선 이북인 임진강까지 주인을 따라와야하는 고초를 겪어야 했다. 그렇게 주인을 따라 수난을 겪으며 옮겨 다니던 중 어느해인가 하얀영산홍은 그만 얼어서 죽고 말았다. 하얀 영산홍이 죽던해 아내는 그렇게 아쉬워했다. 마치 애지중지 키우던 자식을 보내는 것처럼 아내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하얀 영산홍과 금실좋게 자라나던 빨간 영산홍이 너무나 외롭게만 보였다. 한동안 빨깐 영산홍은 하얀 영산홍이 없어서인지 토라진 듯 몇 해 동안 꽃이 피어나지 했다. 아내의 말로는 추운 땅 속에서 겨울을 나야 하는데 너무 따뜻한 아파트 베란다에만 갇혀 있다보니 꽃이 피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가끔 밖에 놓아두기도 하고 베란다 창문을 열어주기도 했더니 빨간 영산홍은 다시 피어나기 시작했다.

 

 

 

마침내 이곳 임진강까지 주인을 따라온 온 빨간 영산홍은 금년 봄에 가장 화려하게 피어나고 있다. 아마 금가락지의 환경이 생장을 하기에 가장 적합한 모양이다. 연천 금가락지는 춥다. 한겨울에는 영하 20도 아래까지 내려가기도 한다. 그래서 매년 겨울이 오면 이 영산홍을 거실로 옮겨 놓았다가 봄이 오면 다시 밖으로 내보내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사람만큼 정성을 들여 키우고 있다. 그에 보답이라도 하듯 금년에 영산홍은 가장 화려하게 피어나 금가락지를 멋지게 장식해주고 있다.

 

영산홍의 꽃말은 첫사랑이라고 한다. 봄이 오면 첫사랑처럼 피어나는 영산홍이 이제 하나 둘 꽃잎이 떨어져 내리고 있다. 내사랑 영산홍아, 바람에 꽃잎이 지고 나면 내년에 다시 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