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임진강일기

심장처럼 붉은 사과가 주렁주렁-함양 바래기자연농원을 가다

찰라777 2018. 10. 31. 10:26

 

 

날씨가 쾌청하고 하늘이 매우 푸르고 높았다. 대전을 출발하여 경부고속도로를 타다가 곧이어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로 바꾸어 탔다. 무주구천동 덕유산 줄기를 지나 함양으로 나아갔다. 평일인지라 자동차도 그리 많지를 않아 운전을 하기에도 편했다. 나는 제한속도인 100km에 크루즈를 고정시키고 액셀에서 발을 땐 채 릴랙스 한 자세로 운전을 했다.

 

우리가 묵기로 한 지리산 일성콘도는 함양과 남원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데 남원보다는 함양이 훨씬 가까웠다. 집에서 출발하기 전에 내비게이션을 체크해보니 함양 IC에서 빠져나가게끔 지도가 그려졌다.

 

함양으로 가려고 하니 문득 함양군 안의면에서 사과농장을 하고 있는 바래기님이 생각 났다. 바래기님이 그쪽으로 오거든 사과농장에 꼭 한 번 들려달라는 말이 생각이 나기도 해서. 바래기님은 서울아산병원에서 심장이식을 받았는데, 아내도 같은 병원에서 이식을 받아 심장이식 환자들의 모임인 다시 뛰는 심장으로모임에서 만나 알게 된 지인이다. 심장이식 환자들의 모임은 각별하다. 인체에서 가장 중요한 심장이라는 장기를 이식받아 덤으로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마치 형제간처럼 가깝게 지내고 있다.

 

 

 

 

사과도 좀 살 겸 그에게 전화를 했더니 마침 농장에 있으니 꼭 들리라고 했다. 바래기님은 내비게이션에 바래기암소한마리를 찍고 오면 바로 그 옆에 사과농장이 있다고 했다. 바래기라는 지명도 특별한 느낌이 들지만 바래기암소한마리라는 식당 이름도 특이했다.

 

바래기님이 그 식당도 운영하나요?”

아닙니다. 지는 사과 농사만 짓고 있습니다.”

하하, 그래요? 나는 바래기님 이름과 상호가 같아서 식당도 함께 운영하는 줄 알았소.”

 

바래기라는 이름은 안의면에 바래기 재가 있는데 그 지명에서 따왔다고 한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바래기라는 뜻은 떠나는 사람을 바래다주는 일이라는 북한말이다.

 

지곡 IC에서 빠져나와 안의면에 소재한 바래기암소한마리 식당에 도착하니 12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이정표를 보니 거창군이 지척에 있다. 바래기자연농장은 거창군과 함양군 사이에 놓여 있었다. 원래는 이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가려고 했는데 하필이면 매주 화요일은 쉬는 날이라고 했다. 그런데다 바래기님이 집에서 점심을 준비하겠다고 하며 점심을 먹지 말고 오라고 했다.

 

여행지에서 누군가가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매우 기쁘고 즐거운 일이다. 나는 바래기님의 호의를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바래기암소한마리 식당 주변에는 사과 밭 천지였다. 아마 바래기님의 사과 밭도 바로 이 근처에 있는 모양이다. 그에게 전화를 했더니 5분도 채 안되어서 봉고 트럭을 몰고 바래기님이 도착했다. 빨간 스웨터를 걸친 바래기님이 사과처럼 건장하게 보였다.

 

아이고, 이거 반갑네! 여기서 만나다니 새롭네!”

형님, 먼 길 오시느라 수고 많이 하셨지 애.”

 

굵은 바리톤 음성 특유의 경상도 사투리가 다정하게 들렸다. 그는 나를 형님이라고 부른다. 아니 다시 뛰는 심장으로회원들은 나이가 자신보다 많으면 무조건 형님이라고 부른다. 그만큼 우애가 돈독하다. 심장을 이식한 아내 덕분에 나이가 많은 나는 많은 아우들이 생겼다.

 

 

 

 

 

바래기님을 따라 토끼굴 하나를 지나니 곧바로 양지바른 언덕에 ‘바래기 자연농원’이 나타났다. 오, 사과밭에는 심장처럼 붉은 사과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토끼굴을 지나는 잠깐 동안의 어둠이 지옥이라면, 양지바른 언덕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사과밭은 피안의 세계, 즉 극락처럼 보였다. 그러나 곧 사과밭 이곳저곳에는 바래기님의 피와 땀이 서려있는 흔적이 보였다.

 

극락세계는 거저 주는 것이 아니다. 도(道)를 닦듯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여 노력한 자에게만 그 맛을 보여준다. 비닐하우스로 만든 임시거처 입구에는 바래기 자연농원이라는 현판이 정갈하게 걸려있고, 식탁에는 점심을 준비한 반찬 그릇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 옆에서는 바래기님의 사모가 가스레인지에 불을 지피고 뭔가 음식을 정성 들여 준비하고 있었다.

 

아이고, 이거 불청객 때문에 괜히 수고가 많으십니다.”

별말씀을요. 찰라님이 이곳 저희 사과 농장까지 오시다니 영광입니다.”

 

 

 

 

 

사모가 음식을 준비하다가 맑은 소프라노 음성으로 우리를 살갑게 맞이했다. 사실 우리 둘 만 방문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가 J, C 선생님이 함께 들이 닥치니 놀라기도 했으리라. 아무튼 이렇게 갑자기 만다는 것이 반갑고 기쁘다. 우리는 점심을 먹기 전에 바래기님의 안내로 사과농장을 둘러보기로 했다. 비닐하우스 앞에는 장독대가 고즈넉이 놓여있고 사방이 주렁주렁 매달린 사과나무다. 사과향이 진하게 풍겨왔다.

 

이렇게 많은 사과나무를 어떻게 혼자서 감당을 하지?”

그저 세월아 가라하고 힘닿는 데까지 천천히 합니데이.”

그런데 언제부터 이 사과밭을 일구기 시작했는가?”

8년 됐습니다. 그러니까 심장을 이식하기 전 도시에서는 도저히 살기가 힘들었어요. 그래서 공기가 좋은 이곳 농장을 구입하여 사과 묘목을 손수 하나하나 심기 시작했지요.”

거참 대단하네! 나는 작은 텃밭을 가꾸는데도 무척 힘이 겹던데.”

수천 평의 토지에 500여 주의 사과나무가 건강하게 자라나고 있었다.

 

 

 

 

바래기님은 심장이식을 받은 지 올해로 6년째다. 심장병 환자는 심장이식을 하고 나서도 여러 가지 후유증이 많아 평생 면역억제제를 복용해야 하고 주기적으로 병원에 가서 이식한 심장을 체크하고 복용약을 처방받아야 하는 등 관리를 해야 할 일이 태산처럼 많다. 나도 200여 평의 텃밭 농사를 짓고 있기에 힘든 농사의 어려움을 익히 알고 있다그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사과나무를 자식처럼 일구고 있는 바래기님이 갑자기 위대하고 커 보였다!

 

그는 심장이식을 받기 전 심장박동기까지 다는 등 8년 동안 지방의 이 병원 저 병원을 옮겨 다니며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갖은 고생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최후의 수단으로 이식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좀 더 일찍 서울아산병원 같은 큰 병원의 심장전문의 한 테 왔더라면 그렇게 고생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심장전문 병원도 아닌 지방의 병원에서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환자를 놓아주지 않아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던 것이다. 심장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거의 이런 문제를 안고 있다. 내가 느끼기로는 심장병에 관한 한 지방의 작은 병원과 서울아산병원 심장센터 같은 큰 병원과 의술 격차는 50, 100년 차이는 나는 것 같다. 그러므로 고치지 못할 큰 병은 신속히 큰 병원의 전문의한테 보내주는 것이 지방의 작은 병원에서 할 일이다. 괜히 시간만 끌다간 병 주고 약 주고 하면서 병을 점점 키우는 일밖에 안 된다. 이런 문제를 시스템적으로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사과나무 밑에는 은박지 비닐이 깔려 있었다. 이는 햇빛을 땅에서도 반사하여 사과를 잘 익게 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주렁주렁 매달린 사과를 보고 아내와 J, C 선생님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사람은 아름다운 풍경이나 놀라운 풍경을 바라보면 엔도르핀이 평소보다 수천 배로 솟아 나와 난치병도 치유가 되는 경우가 있다. 지금 아내와 J, C 선생님이 그렇다. 이렇게 붉게 익어가는 건강한 사과를 바라보면서 심신이 치유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심장이식 환자가 정성스럽게 돌보며 키운 감동적인 사과가 아닌가!

 

 

 

 

사과밭을 돌아본 후 우리는 감격에 벅찬 마음을 안고 텐트로 돌아와 바래기님 사모가 정성스럽게 준비한 점심을 맛나게 먹었다. 전도 부치고 나물도 만들고 샐러드까지배가 고프기도 했지만 사모의 정성이 듬뿍 들어있는 음식은 위장은 물론 마음까지 행복하게 채워주었다.

 

점심을 맛있게 먹고 난 후에는 차 한 잔을 마시며 아내와 바래기님이 심장병으로 고생을 하다가 심장이식을 하기까지 드라마 같은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을 들었다. 몇 번을 들어도 정말 드라마 같은 기가 막힌 이야기들이다. 많이 아파본 사람이 아픈 사람의 마음을 가장 잘 안다. 이렇게 아픈 사람들이 동병상련의 정을 서로 나누다 보면 서로가 심신이 힐링이 되고 위로가 되는 것이다.

 

 

 

아픈 이야기에서 우리는 여행 이야기로 주제를 옮겨 여행담을 나누었다. 바래기님은 금년 사과농사를 끝내고 나면 미얀마로 사모와 함께 여행을 떠날 예정이라고 한다. 그렇게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오후 3시경이 되어서야 우리는 일어섰다.

 

사실 오늘 바래기 자연농원을 방문한 주요 목적은 사과를 좀 사려고 했던 것인데, 아직 수확기가 되지 않아 사과를 딸 수가 없다고 했다. 사과를 사서 예전에 내가 살았던 구례 수평리에 살고 있는 혜경이 엄마도 좀 나누어 주고 개구리 집에도 선물을 할 요량이었다. 허지만 11월경에나 수확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아쉽지만 그냥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바래기님은 근처에 있는 용추폭포가 볼만하다고 안내를 자청하며 함께 가자고 했다. 우리는 바래기님의 꿈이 영그는 사과밭을 뒤로하고 용추폭포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