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108일간의세계일주

[5] 바벨탑과 슬픈언어

찰라777 2004. 1. 21. 10:44

□ 바벨탑과 슬픈언어

암스테르담으로 가는 CX 271은 4번 게이트에 가서 갈아타라는 모니터의 시그널이 들어온다. 4번 게이트를 나가는데 승무원이 갑 자기 모자를 벗으란다. 그리고 붉은 레이저를 순간적으로 내 이마에 쏜다. 움찔하며 피하려고 했더니 다시 쏜다. 왠지 섬뜩 한 기분이 든다.

“여보 저 짓이 무슨 짓들이죠?
“사스 검진이겠지.......”
“그 놈의 사스가 뭐 길래 오나가나 야단일까?”

게이트를 통과하여 보딩 대기실로 들어가니 승객들이 절반은 누워있고, 절반은 책을 보거나 앉아서 졸고 있다. 현지시각 11시. 홍콩은 한국보다 1시간이 늦게 간다. 그러니 한국시간으로는 자정이다. 어찌 졸음이 오질 않겠는가?

아내도 피곤하고 졸리는지 아예 빈 의자에 길게 눕고 만다. 배낭 여행자의 휴식 수칙 한 가지. 쉴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 편하게 쉬어라. 그러나 방심은 금물. 아내는 이 보디가드가 있으니 마음 놓고 눕는 거다. 에라, 모르겠다. 몰래 카메라나 한방 찍자.

CX271은 정말 만원이다. 우리들의 좌석은 65 E와 D로 비행기의 꼬리 쪽이다. 홍콩은 비행기를 갈아타는 기지다. 나라는 손바닥마나 한데 공항은 무지무지하게 크다. 섬 하나가 다 공항처럼 보인다. 그러니 자연히 갈아타는 승객들로 언제나 붐빈다. 빨.주.노.주.파. 남. 보....... 비행기 안은 그야말로 총천연색의 인종이 다 모여 있다. 서로 다른 언어가 동시다발적으로 불협화음을 내면서 귓전을 때린다.


 
-
정신이 막 휏갈리는 스트레스가 엄습해 온다. 아, 무너진 바벨탑이여! 언어를 하나로 다시 통일할 수는 없을까?

어찌하여 니므롯은 바벨탑을 쌓는 교만을 부리다가 하나님의 벌을 받아 지금까지 인류로 하여금 슬픈 외국어에 시달리게 한단 말인가? 자, 이제부터 니므롯 때문에 언어와의 전쟁이 하나 더 추가 된다 .

어휴~ 무거운 배낭을 걸머지고 기어다는 것 만해도 충분히 서러운데, 언어와의 전쟁까지 치르게 하다니....... 바벨탑을 쌓지를 말던지, 바벨탑이 무너지지를 말던지.

하여간 바벨탑때문에 세상사람들이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하게되어 이렇게 고통을 겪고 있는게 아닌가? 아무리 생각 해도 나는 바벨탑을 쌓은 니므롯도 밉고, 바벨탑을 무너트린 하나님도 원망스럽다. 언어때문에 나를 슬프게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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