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108일간의세계일주

[7] 천국으로 가는 계단

찰라777 2004. 1. 23. 09:06

 
 
□ 천국으로 가는 계단

“휴~ 암스테르담까지는 12시간 16분이나 걸린데.”
“와, 그렇게나 오래 걸려요? 날 새겠네요?”

모니터에 뜨는 비행시간 시그널이 나를 또 어지럽게 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남쪽으로 내려간 비행기는 홍콩에서 중국을 관통하여 다시 북쪽으로 올라가니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세계일주 항공권의 위력(?)이 우리를 벌 써 지치게 하는 순간. 비행기가 이륙하여 안전벨트를 플러도 된다는 사인이 나오자 안내원들이 드링크와 먹 거리를 또 밀고 온다.

“아니, 밥 먹은 지 3시간 밖에 안 되었는데 또 밥을 주어요?”
“이제부터 유럽의 시차에 맞추는 거여. 먹어두어요. 내일 아침은 매우 늦게 나올테니.”
“그럼 난 인슐린을 또 맞아야 하는데.......”
“.......”

아이고, 나도 모르겠다. 와인이나 몇 잔 더 마시고 잠이나 자자. 가축우리에 가두어 놓은 돼지처럼 좁은 의자에 앉아서 저 녁을 꾸역꾸 역 다 먹어치우고 와인을 한잔 더 부탁하니, 안내원 아가씨가 플라스틱 투명 컵에 포도주를 가득 부어주며 '에니씽 엘스?' 하고 물어 온다.

내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간다. 나는 슬픈 외국어로 말하지 않아도 다 알아듣는 만국 공통어가 좋다. 이름하여 바디 랭기지.

“여보, 그걸 다 마시려고요?”
“......버릴 수는 없지 않소.”
“그럼 취할 텐데.......”
“술은 취하라고 마시는 거 아닌가?”
“피이~ 그럼 나도 한 잔 마실까 봐요.”
"선택은 자유......"

포도주를 벌컥 벌컥 다 마시고 나니 정말로 취한다. 취기가 도니 걱정도 사라지고 천국에 온 것 같다. 게다가 비행기가 가 끔 요동을 치며 흔들어 주니 천국도 스릴이 넘치는 천국이다. 술에 약한 아내가 먼저 꿈나라로 빠져들어간다.

잠을 자고 있는 아내의 편안한 얼굴이다. 그런 아내의 손을 가만히 잡아 본다. 따뜻하다. 아내의 손이 따듯하면 몸이 정상 컨디션이고 차거우면 저혈당이나 혈압 등 몸에 이상이 온 징조다. 나는 아내의 음성을 듣거나, 눈동자를 보거나 손만 만져보아도 아내의 건강 상태를 대강 안다. 오랜경험에서 오는 나만의 진단법. 아내는 지금 포도주 한잔에 천국의 계단을 올라가고 있는 것일까?

유토피아!
나도 점점 눈이 감겨진다. 붉은 포도주 몇 잔이 나를 분홍빛 천국으로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바벨탑이 무너 지든 언어가 다르든 내 알바 아니다. 지금은 빙빙 돌아가는 비행기의 천장을 뚫고 천국의 계단으로 올라가고 있으니까....


 


□ 암스테르담의 무지개

얼마나 잠을 잤을까?
목이 타는 듯하여 일어나 보니 하늘엔 멀리 여명의 빛이 밝아오고 있다. 천국의 하루밤이 끝나고 있는 것.

여행 첫날을 우린 그야말로 천국(하늘)에서 별들 속에서 잠을 잔 것이다.

바다보다 낮은 나라 네덜란드. 유럽의 관문 암스테르담.
'신이 자연을 창조했다면, 네덜란드는 네덜란드인이 만들었다'
생존을 위해 자연과 피나는 투쟁사를 갖고 있는 네덜란드에 첫발을 내 딛고 있는 것이다.

아침 7시. 공항의 이미그래이션 데스크를 바로 빠져 나오자 젖소들이 우리를 반기고 있다. 물과의 끊임없는 투쟁으로 낙농 업의 강국을 이룩한 나라답다.

"아니, 웬 때 아닌 젖소가 공항에...."
"당신 원기부족한데 우유를 주려고 온 모양이지. 자 젖소 앞으로 가 봐요."

아내를 젖소 앞에 새우고 유럽에서의 첫 셧다를 누르는 순간이다. 밖에는 가을비가 내리고 있다. 때는 9월. 유럽의 가을을 재촉하는 비다. 배낭을 찾아매고 다운타운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가을비가 차창을 때리고 있다.

"어머! 무지개 좀 봐요!"

아내가 창밖을 바라보며 환성을 지른다.

"어? 정말? 당신을 반기는 아침 무지개네!"

이상하다. 5년전 도버해협을 지나 이곳에 올적에도 무지개가 걸려 있었다. 비가오면서 해가 뜨면 생기는 프리즘 현상이겠지 만 아침무지개를 보는 기분은 썩 상쾌하다.


...아내와 함게 떠나는 배낭여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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