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우리강산/경기도

하나뿐인 광릉 숲을 보호하자

찰라777 2007. 6. 14. 10:26

하나뿐인 광릉 숲을 보호하자

 

 

외로운 사람아,

외로울 때 나무 옆에 서 보아라.

나무는 그저 제 자리 한평생

묵묵히 제 운명, 제 천수를 견디고 있나니

너의 외로움 이 부끄러워지리.… -조병화 ‘나무’중에서-

 

나무가 사람에게

 

사람들아,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당신들은 외로울 땐 우리들을 찾아오곤 하지. 그러나 지금 우리들은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단다. 어쩌면 머지않아 당신들의 외로움을 더 이상 지켜주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겠구나.

 

당신들이 몰고 다니는 자동차들은 괴상한 흉기가 되어 지독한 독가스를 뿡뿡 뿜어 낼뿐만 아니라, 우리들 다리와 몸뚱이 여기저기를 마구 들이받아 우리들은 그만 만신창이가 되어 성한 데가 없구나.

 

몇 해 전 이미 우리들 중 164명의 친구들이 치명적인 상처부위에 외과수술을 받고 아직까지도 완치가 되지 않은 채 신음하고 있지. 그리고 벌써 많은 친구들이 천명을 다하지 못하고 사라져 가기도 했단다. 어디 그뿐인가! 당신들의 몰고 다니는 흉기들의 무차별 공격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들은 다리와 허리에 철사 줄로 동여맨 무거운 타이어와 방어용 스틱으로 중무장을 하게 되었단다.

 

뭐? 중세기의 기사처럼 멋지게 생겼다고? 말도 말아라. 이 옥조여오는 고통과 무게 때문에 다리가 천근처럼 무겁고, 허리가 부러질 것처럼 아프단다. 또한 밤에는 그대들이 쏘아대는 눈부신 조명과 소음으로 인해 심한 불면증에 시달리며 허구한 날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고….

 

사람들아, 이건 비단 우리 나무들 문제만은 아니란다. 이 광릉 숲에 살고 있는 모든 동물과 식물 친구들도 다 똑 같은 고통을 당하고 있는 심각한 문제가 되어버렸지. 길을 건너다 자동차에 치여 죽거나, 혹은 심하게 다쳐 거동을 못하는 동물 친구들이 부지기수고, 아스팔트 길 때문에 이동통로가 막혀 냇가에 물도 제대로 마시러 가지 못하고 공포에 떨며, 그들은 다른 곳으로 이사 갈 준비를 하고 있단다.

 

서어나무, 소나무, 전나무, 노간주나무, 신갈나무 등 200년 이상의 노거수친구들이 숲의 바다를 이루고 있을 때에는 당신들이 천연기념물라고 지정했던 크낙새들이 우리들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소음과 자동차의 매연으로 공해가 심해진 뒤로는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오.

 

사람들아, 제발 광릉 숲에 올 때는 좀 걸어서들 오거라. 아니면 하다못해 자전거라도 타고 오던지. 그래야 우리 나무들이 뿜어주는 ‘산소의 강’에 삼림욕도 제대로 하고, 나무와 사람이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

 

 ▲600년동안 보존되어온 서을 근교의 단 하나뿐인 원시림 광릉숲

 

 

 

사람이 나무에게

 

나무야, 나무야, 정말 미안하구나. 너희들은 언제나 묵묵히 사람들을 위하여 희생과 봉사를 해 오고 있음을 나는 알고 있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쓰러지지 않고, 의연히 제 자리를 지키며 그렇게 서 있음을…

 

너희들은 사람들이 단 몇 분만 들여 마시지 않아도 그만 죽고 마는 생명의 산소를 공급해주고, 스펀지처럼 비를 머금었다가 맑은 물로 정화시켜 우리들의 갈증을 해소시켜주며, 여름엔 시원한 그늘을, 겨울엔 추운 북풍을 막아주는 보호막으로, 그리고 때로는 사람들이 살아 갈 집의 기둥이 되기도 하기도 하면서, 사람들에게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봉사를 하고 있지.

 

그런데 사람들은 너희들을 아프게만 하고, 마치 노예처럼 발목에 무거운 사슬을 채워놓고 말았구나. 600여 년 동안을 원시림으로 보존 되어온, 우리나라에 단 하나밖에 없는 이 광릉의 숲도 이제 차마 바라보기 힘들 정도로 잔혹하고 처절하게 변해가고 있구나.

 

나무야, 나무야, 너희들을 위하여 사람이 무얼 해줄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해줄 것이 하나도 없구나. 그러나 그대들은 스스로 울지 않으며, 누굴 원망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

 

허지만 나무야, 너무 외로워하지는 말아다오.

바람이 너희들을 대신하여 울어주고, 세월이 너희들의 신음소리를 세상 사람들에게 전 해 주고 있으니… 또한 따사로운 햇빛이 그대들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한여름의 소나기가 그대들의 상처를 씻어 주고 있질 않겠니?

 

그리고…마지막으로 너희들 영혼의 소리를 이 세상사람 중에서도 알고 있는 이들이 있단다. 너희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면서 장렬한 일생을 살아가고 있노라고 ...

 

 외과수술을 받고 만신창이가 된 광릉 숲의 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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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뿐인 광릉 숲을 보호하자!

 

알몸으로 걷고 싶은 광릉 숲길

답답하다. 아파트의 베란다를 타고 내리는 햇볕은 틀림없는 초하의 여름기운이 서리고 있는데, 왜 이리 답답할까? 창문을 열었지만 문틈으로 확 들어오는 것은 탁한 공기와 자동차의 소음뿐이다. 사방의 어디를 바라보아도 회색의 콘크리트 숲이 절벽을 이루며 시야를 가리고 있다.

 

운동화 끈을 조여 매고 아파트의 계단을 타고 내려와 밖으로 나간다. 한바탕 조깅이라도 하고 나면 답답함이 풀려질 것 같아서이다. 그러나 밖으로 나가자말자 자동차의 부자소리, 우우 알 수 없는 도시의 소음이 동시 다발적으로 귓전을 때린다. 거리는 매연으로 눈을 뜨기가 힘들다. 딱딱한 아스팔트길은 생명이 없다.

 

이건 아닌데… 자연의 숨결을 느끼며 산책을 할 수 있는 그런 호젓한 흙 길은 없을까? 새들이 노래하는 소리를 들으며 봄의 생명을 흠뻑 느낄 수 있는 그런 숲 길…. 광릉, 그래 광릉 숲이다! 순간 내 앞에는 광릉의 숲길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내가 왜 진즉 광릉의 숲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아아, 나는 지금 광릉의 숲으로 가야 한다.

 

“아니, 갑자기 어딜 가자는 거예요?”

“가보면 알아.”

 

배낭을 챙겨들고 신바람이 난 듯 외출을 하자는 성화에 아내가 어리둥절해하며 따라나선다. 1시간여를 달려가자 그림 같은 푸른 숲이 나타난다. 서울근교에서 설악산과 지리산 못지않게 깊은 숲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오직 하나뿐인 숲이다.

 

“어? 여긴 광릉 숲이 아닌가요?”

“그래, 맞아요. 세조와 춘원이 잠들어 있는 광릉 숲…”

 

실로 20년 만에 찾아온 광릉! 왕숙천을 끼고 광릉 숲 쪽으로 들어서니 길가에 도열한 전나무들이 오랜만에 찾아온 길손을 반긴다. 자동차의 창문을 열자 신선한 공기가 흘러 들어온다. 우리는 지금 ‘산소의 강물’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다. 정말, 수영복만 입고 알몸으로 산림욕을 하며 걷고 싶은 강한 충동이 일어나는 그런 아름다운 숲길로!

 

 

‘숲의 천이’에 따라 이루어진 생태계의 보고

 

우린 봉선사 입구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전나무 숲길을 걸어가기로 했다. 그러나 비포장 도로였던 광릉 숲길은 철책으로 둘러진 채 생태 띠를 차단하는 아스팔트로 덮여있다. 아름드리 전나무들의 허리엔 폐타이어와 나무 발이 흉물스럽게 달려 있다. 이제 이곳에서 흙길을 걸어 다녔던 고요한 정취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그래도… 하늘로 치솟아 오른 전나무의 웅장한 기운은 아직 남아 있다. 광릉 숲에 들어서면 언제나 생태계의 백화점 같은 느낌을 받는다. 식물사회는 1년생 식물, 다년생식물, 관목림, 성숙림, 극상림 단계 순으로 시간에 따라 순서대로 ‘숲의 천이’가 이루어진다. 숲 속에는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생존을 위한 질서가 매우 정연하다. 광릉 숲은 한해살이인 들꽃식물에서부터 소리봉 주위에 극상림(極上林)을 이루고 있는 서어나무 군락에 이르기까지, ‘숲의 천이’에 따라 형성된 우리나라에선 보기 드문 생태계의 보고다.

 

하나뿐인 광릉 숲을 보호하자!

 

최근 이곳 광릉 숲에도 늘어나는 환경오염으로 생물의 다양성이 크게 위협받으며, 생태계의 질서가 점점 무너져 가고 있다. 평일인데도 자동차들이 꼬리를 물고 들어오더니 순식간에 길을 메우고, 내뿜는 매연은 눈물을 흘리게 한다. 아스팔트길이 들어선 이후 고속으로 질주하는 자동차들이 전나무들을 들이받아 벌써 죽어간 나무들이 즐비하고, 온 몸에 상처투성이의 전나무들이 공포에 떨고 있다.

 

나무의 밑 뚱 여기저기에는 마치 칼로 도려 낸듯한 상처가 예리하게 나 있다. 이는 자동차의 충돌과 오염으로 상처 난 부위를 164본의 나무들이 외과수술을 하여 도려낸 아픔의 상처다. 그뿐만 아니라 183본의 나무에 270개의 폐타이어를 매달고 보호용 스틱을 두르고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폐타이어와 보호용 스틱으로 중무장을 하고 있는 나무들

 

 

 

 

 

오직 광릉 숲에만 살고 있다는 세계유일의 크낙새를 본지도 오래되었다고 한다. 머지않아 소쩍새, 솔부엉이, 붉은 뱁새 등 천연기념물과 그 흔한 청솔모나 다람쥐까지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닐는지…

 

소리봉을 중심으로 600년 동안 고이 지켜 온 광릉 숲. 인간의 몸에 매우 이로운 피톤치드와 산소를 끊임없이 공급해주고, 유해한 독소를 살균시켜주며 묵묵히 서 있는 나무들… 그래서 독일에서는 100년을 키운 나무 한 그루의 가치를 벤츠 한대보다 귀하게 여긴다고 하는데… 도대체 우리는 지금 그들을 어떻게 대해주고 있는가?

 

광릉 숲을 보호하는 방법은 없을까?

있다!

그 가장 좋은 방법은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세조가 가마를 타고 갔던 길처럼 걸어서 가는 흙길로 복원하는 것이다. 서울 근교에 적어도 걸어서 산책을 할 수 있는 숲길 하나 정도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이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 부차적인 대안으로는 일반 자동차의 통행을 금지시키고 거주민의 차량과 셔틀버스만 운행을 하게하면 훨씬 공해가 덜어지리라. 자동차의 통행 제한으로 거주민들의 생계가 위험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오히려 그 반대 현상이 일어날 것이다. 숲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오히려 장사가 잘되고 생계에 보탬이 될 것은 자명하다.

 

또한 미국 캘리포니아 몬테레이에 있는 ‘17마일 드라이브(17Mile Drive)’ 길처럼 상당한 통행료를 받아 차량 진입을 적게 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아니, 이도 아니 된다면, 우선 속도제한 스피드건 모니터라도 설치하여 차량들의 질주로 나무에게 상처를 내는 일 정도는 최소한 막을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제한 속도는 30마일로 되어 있는데 아무도 그 제한 속도를 지키지 않는다.

 

도대체 삼림을 보호한다는 국립수목원과 산림청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거의 속수무책으로 생사의 갈림길에 있는 나무들의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 어떠한 방법을 강구해서라도 서울근교에 단 하나 뿐인 원시림인 광릉 숲은 전 국민적인 차원에서 보호해야 한다.

 

 

 공해로 고통을 참다 못해 죽어서 잘려나간 나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