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108일간의세계일주

우리는 이스터 섬의 표류자

찰라777 2008. 1. 15. 00:31

 

우리는 이스터 섬의 두 표류자

 


△ 밤마다 찾아가곤 했던 항가피코 선착장의 모아이 석상. 노을이 진 자리에 어둠이 내리고 있다.

 

 

노을이 사라지고 나니 사방에 어둠의 장막이 깔리고 들리는 것은 파도 소리 뿐. 어두운 공간에 별들이 하나 둘 반짝거리며 나타나기 시작했다. 남십자성이 "十字" 모양으로 뚜렷하게 보인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별이다. 남십자성은 남위 30도 이남에서만 보이기 때문이다. '十字'모양이 정남쪽 방향을 가리키고 있어 대항해시대 이래 뱃사람들이 방향의 길잡이가 되었던 별. 하늘이 맑아서인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이는 별들이 반짝거린다. 별똥이 길게 꼬리를 물며 밤하늘을 나르다가 사라져 간다.


밤이 깊어지자 사금파리가 반으로 쪼개진 듯 한 반달이 어두운 밤하늘에 떠올랐다. 달빛은 마치 강을 이루듯 은은하게 세상을 비추고 있었다. 문 리버 Moon River! 나는 아내의 손을 잡고 달빛이 흐르는 바닷가를 산책했다. 파도가 연달아 하얀 물거품을 물고와 바위에 부서졌다. 우리는 모아이가 서 있는 항가피코 선착장까지 걸어갔다.  그곳엔 모아이 상이 달빛을 받으며 말뚝처럼 외로이 서 있었다.

 

"우리 여기 좀 앉을까?"


"좋지요."

 

 

△항가피코 선착장 부근에 누워있는 모이아

 


우리는 모아이 석상에 기대어 앉아 바다를 바라보았다. 부서지는 파도가 달빛에 반짝거렸다. 파도는 마치 다이아몬드처럼 빛을 발했다. 수많은 다이아몬드가 명멸하는 바닷가, 모아이 석상에 기대어 앉은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부자였다. 자연이 주는 다이아몬드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존재였다.

 

아내의 뜨거운 체온이 나에게 전달되어 왔다. 삶이 고통스러울 때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고 싶은 여자. 몸에 다이아몬드를 걸치기보다는 빵 한 조각에 커피 한잔을 마시고라도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여자. 화려한 침실보다는 길가에서 노숙을 하더라도 좋으니 이 세상 어디라도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여자. 아내는 언제나 그렇게 여행을 떠나고 싶어 했다. 우리들의 등을 받치고 있는 모아이가 마치 아내의 꿈을 실현시켜 주기라도 할 듯 묵묵히 우리를 굽어보며 서 있었다.

 

 

노을이 진 자리, 달빛이 흐르는 강, 파도가 다이아몬드 보석처럼 반짝거리는 바닷가, 이스터 섬의 모아이에 기대어 앉아있는 우리는 꿈을 찾아 함께 길을 떠난 두 표류자. 지구촌을 돌고 돌다가 부활의 섬, 이스터 섬까지 표류한 방랑자였다.

 

그러나 세상에는 볼거리들이 너무 많았다. 마치 ‘Moon River'의 가사처럼 아내가 가는 길엔 내가 있었고, 내가 가는 길엔 아내가 따라 나섰다. 결국 우린 같은 무지개를 찾고 있었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이란 영화 속에서처럼, 아내는 언제나 여행을 꿈꾸는 '홀리'였고, 나는 여행을 설계하는 무명 작가 '폴'이였다. 세상을 알기 위해 ?ㄴ 것을 버리고 길을 떠난 두 표류자에게 후회는 없었다. 남태평양의 외로운 고도 이스터 섬에 함게 표류하고 있는, 오, 나의 허클베리 친구여!

 

 

달빛이 흐르는 강
언젠간 나는 그 강을 멋지게 지나갈테야
오, 꿈을 쫓아 가느라고, 나를 애태우는 사랑이여
당신이 어디를 가든지
나도 그 길을 따라가겠어요

세상을 알기 위해 길 떠난 두 표류자
세상엔 볼거리들이 넘 많거든요
우리는 같은 무지개를 쫓고 있어요
애타게 기다립니다.
나의 허클베리 친구여,
달빛 가득한 강 그리고 나.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주제가 'Moon River'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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