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108일간의세계일주

라노 라라쿠 채석장

찰라777 2008. 1. 20. 22:55

라노 라라쿠 채석장

인간의 상상력을 볼모로 만들고 마는 곳

 

△모아이 석상들의분만실 란라라쿠 채석장. 397개의 모아이가 여기저기 남아있다.

 

드디어 라노 라라쿠 채석장 입구에 도착하니 시원한 나무 그늘아래서 라파누이들이 돌로 만든 모아이 석상 기념품을 팔고 있었다. 노점상들이 있는 푸른 나무 터널을 지나 밖으로 나가니 거대한 채석장이 한 눈에 들어온다.

 

모아이 거석을 만들어 내는 채석장은 이스터 섬에서 가장 인상적인 명소 가운데 하나다. 포이케 반도 가까이에 자리한 야외 채석장은 라노라라쿠 화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으며 150미터 높이의 돌산이다. 라노라라쿠 화산이 채석장으로 선택된 이유는 조각재료로는 최고의 돌이 나기 때문이다.

 

△퇴적물에 고개까지 잠긴 채 외로이 서 있는 모아이 거인들

 

채석장 기슭에는 수백 개의 모아이 거석들이 누워 있거나 퇴적물 속에 묻혀 있다. 고개만 내밀고 있는 모아이, 두 동강난 모아이, 길게 누워 있는 모아이, 바위 속에 제작을 하다가 그대로 누워 있는 모아이… 이들은 형태는 다르지만 마치 화순 운주사의 석불들을 연상케 한다.

 

라노 라라쿠는 모아이들의 '고향'이자 '분만실'이다. 지금까지 이스터 섬에 남아있는 석상들은 거의가 이곳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섬 전체에 887개의 모아이 중 397개가 모아이가 제작과정에 버려진 모습으로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다. 이제 막 다듬기 시작한 것도 있는 것, 작업이 다 끝나 운반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도 있다.

 

모아이의 평균 크기는 5~7미터 이지만 어떤 것은 길이가 족히 20미터는 넘어 보여 산등성이 하나를 온전히 차지하고 있다. '엘 지강테'란 모아이는 무려 그 무게가 270톤에 육박한다고 한다. 이 석상의 크기는 파리 콩코드 광장이나, 바티칸광장에 세워진 오벨리스크 정도 커 보인다(파리 콩코드 광장의 오벨리스크의 크기는 22.8미터이다).

 

바위벽에 붙어 있는 이 거인은 거의 접근조차 불가능해 보이는 데 어떻게 이러한 거석들을 수십 킬로미터나 떨어진 제단으로 옮겼을까? 채석장에는 강한 바람이 윙윙 불어온다. 언덕을 오르는 데 숨이 차다.

 

△길이가 20미터가 넘는 엄청난 크기에 무게가 270톤에 달한다는 모아이가 그대로 채석장에 누워있다.

마치 화순 운주사 미륵 와불을 상상케 하는 모습이다.

 

 

외계인이 만들었다?

세계적인 낚시꾼, 에리히 폰 다니켄의 주장

 

 

 

 

"그토록 완벽하게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초현대적 도구를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소규모 지능인 집단이 '기술상의 장애' 때문에 이스터 섬에 좌초했다. 그들은 엄청난 지식의 소유자들이었다. 그리고 우리로서는 알 길이 없는 매우 발달된 무기와 석공기술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자기들이 이곳에 체류했다는 것을 원주민들이 영원히 기억하도록 하기위해 , 아니면 자신들을 돌봐 준 친구들에 대한 우정의 표시로 이방인들은 화산의 돌로 거대한 석상을 만들어 냈다. 이어 그들은 더 많은 거석상을 만들었고, 멀리서도 볼 수 있게끔 해안의 석조 대 위에 이것들을 세웠다. 아득한 과거, 정말 색다른 비행기로 먼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이 아무 문제도 아닌, 진보된 기술을 가진 존재들이 있었던 것이다."

(에리히 폰 다니켄, '별들로의 귀환' 중에서)

 

 처음 이스터 섬이 발견될 당시만 하더라도 사실 그다지 유명한 곳은 아니었다. 어쩌다 들렸던 것뿐이었고, 그 뒤로는 노예로 쓸 원주민을 잡아들이기 위해 방문했었으니까. 그러다가 결국 이스터 섬의 호투 마투아 왕조는 백인들에 의해 멸망하였다.

 

하지만 왕조가 멸망한 이후 여러 가지 전설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럴만한 것이 이스터 섬에 대해 체계적으로 알려줄만한 사람이 거의 씨가 마른 상태였다(최대 20,000명이나 되었던 인구가 1877년경에는 겨우 110명에 불과 했다고 하니 백인들이 가져온 재앙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아틀란티스의 후예, 무대륙의 종교 중심지 등 온갖 전설이 생겨났는데 이러한 전설을 더욱 화려하게 세상에 알린 사람이 바로 스위스 출신의 에리히 폰 다니켄이었다. 그는 1968년 이스터섬을 방문하여 그곳 원주민들과 인터뷰하고, 곳곳의 전설을 채집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왔다고 발표했다(그림 : 외계인이이스터 섬에불시착하여 모아이 석성을 만들었다는 상상도).

 

 

 

 

 

"이스터 섬의 모아이는 외계인이 만들었다. 이스터 섬의 모아이는 모두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는 바로 자신의 고향을 기리기 위한 외계인의 의지가 담긴 것이다. 외계인들은 이스터 섬에 불시착한 이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음에 무료함을 달래고 고향을 그리워하며 거대 모아이 석상을 만들어냈다. 그러던 중 갑자기 고향 행성에서 온 구명정을 타고 모두들 황급히 떠나가 버린 것이다.

 

이를 뒷받침 하는 것은 이스터 섬을 비롯한 근처 섬에는 '새사람'이라 부르는 말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외계인을 뜻하며, 이스터 섬의 석상은 그 재질이 너무 단단하여 원주민들의 도구로는 절대 조각할 수 없다. 또한 나무도 제대로 자라지 않는 이스터 섬의 환경상 그렇게 거대한 석상을 옮기고 세울만한 도구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모아이 석상이 쓰고 있는 붉은색 모자가 바로 외계인의 '우주모(푸카오)'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세계를 휩쓸었다. 갑자기 이스터 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으며 멀고 먼, 제대로 볼 것이라고는 거대 석상 밖에 없는 이스터 섬이 갑작스런 주목을 받은 것이다. 호화유람선들은 코스에 꼭 이스터 섬을 넣었으며 많은 관광객들이 '외계인이 만든 거대 석상'을 보기 위해 찾아왔다.

 

정말 이스터 섬의 모아이 석상은 외계인이 만들었을까? 아직까지도 그렇게 믿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다니켄이 외계인이 만들었다는 근거로 세운 가장 큰 이유. 이스터 섬의 돌 재질이 너무나 단단하여 원주민의 도구로는 절대 조각할 수 없다는 것부터가 거짓말이다. 이스터 섬은 화산섬으로 모아이 석상 역시 화산암으로 만들어져있다. 화산암도 그 단단하기가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모아이 석상의 재질은 간단한 도구만으로 쉽게 조각할 수 있는 암석이다.

 

또한 지금은 나무도 많지 않은 황폐한 섬이지만 모아이석상이 만들어진 15~17세기 무렵에만 하더라도 나무가 매우 울창한 지역이었다는 것이 지질학자들에 의해 밝혀졌다.

 

 

 

'새사람'이라는 것 역시 제비갈매기가 돌아오는 것을 기념하며 지배자를 뽑은 행사에서 나온 말로써 높은 벼랑에서 뛰어내려 제비갈매기의 알을 가장 먼저 가져오는 사람을 1년간 지배자로 인정하며 그렇게 뽑힌 사람을 '새사람'이라 부른 것에서 연유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다니켄은 날조된 거짓말로 사람을 끌어 모으려 했고, 그러한 노력은 매우 훌륭한 결실을 맺었다.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은 모아이 석상이 외계인의 흔적이라 믿고 있으니 그의 '세계적 낚시질'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하겠다.

 

 

영원히 잠들고 있는 거인들

 

△목까지 땅 속에 묻혀 슬픈 표정으로 하늘을 응시하고 있는 모아이의 표정

 

나 역시 다니켄의 황당무계한 주장 때문에 호기심이 발동하여 이곳까지 온 것일까? 그의 주장이 인간의 호기심을 끌어 들이는데 큰 역할을 했음을 부인 할 수는 없다. 채석장에는 수많은 거석들이 수수께끼를 품은 채 영원히 잠들어 있다. 채석장의 가파른 언덕을 넘어서니 물이 질퍽하게 고여 있는 분화구가 나온다.

 

이 진귀한 장소에 들어서는 순간, 이상야릇한 감정에 휩싸인다. 모든 사회의 인연 줄이 끊기고 모아이를 만들어 내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들과 조우하는 감동에 휩싸이고 만다. 장인 조각가들이 막 작업을 중단하고 도구를 그대로 옆에 둔 채 땀을 닦으며 쉬고 있는 것만 같다.

 

 

 

△라노 라라쿠 사화산 분화구에 들어서니 이상 야릇한 정적이 휩싸인다.

 

일부 공동에서는 화산에서 태어난 거상의 흔적만이 남아있기도 하고, 작업이 마무리된 거상이나 깨진 석상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공동도 있다. 조각가들은 암석 둘레의 좁은 공간에서 작업을 했을 것이다. 석상이 똑 바로 누워있는 형태에서 머리에서 시작하여, 몸체, 옆모습을 조각해 나갔을 것이다.

 

다듬고 마무리 하는 작업이 끝나면 석상을 암석과 분리한다. 마지막 단계는 아주 세심한 주의를 요구하는 작업이다. 종종 석상이 깨지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석상 밑을 파내고, 선체 밑바닥에 길고 큰 목재(용골)를 받친다. 그리고 용골에 구멍을 낸다. 그리고 그 구멍을 자꾸 넓게 파 나가다 보면 상은 돌 부스러기 위에 얹혀 있는 샘이 된다. 이 과정에서 석상을 옮길 수 있도록 통나무나 다른 도구를 끼우는 작업도 병행한다.

 

드디어 산자락으로 운반되어 구멍이나 계단식 단 위에 올려 진다. 이 구멍과 단은 모아이의 등을 파기 위해 일시적으로 세워 두는 곳이다. 임시 작업대 위에서 작업을 마무리한 석상은 아후로 운반했다. 20km가 넘는 거리도 있는데 수백 개의 석상을 어떻게 운반을 했는지 그저 신비스러울 따름이다.

 

 

어떻게 옮겼을까?

 

 

 

"투코 이후, 마케 마케 신은 석상에게 '걸어가서' 아후에 올라가라고 명령했다. 석상들은 영적인 힘을 발휘해서 아후까지 저절로 걸어가거나, 신의 명령대로 날마다 조금씩 조금씩 걸어왔고, 밤이 깊어지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신탁의 말씀을 전했다."

 

섬사람들은 모아이를 옮긴 전설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이스터 섬에는 이 석상을 옮길 만큼 많은 인구도, 기중기 같은 도구도 없었기 때문이다. 믿으면 신도 움직인다는 말은 진실일까? 그러나 고고학자들은 이보다는 좀 더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설명을 찾아냈다.

 

최근의 연구결과 이스터 섬에는 원래 나무가 울창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토로미로, 칠레 포도야자와 비슷한 야자나무 등 몇 가지 나무가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석상을 나르기 위한 썰매, 지렛대, 굴림대를 만들기 위하여 나무를 무분별하게 베어 냈다.

 

 

△위에서부터 차례로 외계인, 스스로 걸어서, 뗏목에 실어 바다로, 20도 기울여서,

5도로 기울려서, 사방에 줄을 걸어서, 선 채로 나무위에, 누운챌 나무위에.. 가지가지설로 난무하다.

 

나무의 굴림대를 이용하여 모아이 석상을 옮겼다는 설, 비가 와서 축축하게 젖어 있을 때 옮겼다는 설, 맑은 날 옮겼다는 설, 세워서 옮겼다는 설, 눕혀서 옮겼다는 설, 뗏목으로 옮겼다는 설, 비스듬히 눕혀서 옮겼다는 설, 썰매를 이용해서 옮겼다는 설, 고구마나 감자 등 미끄러운 식물성 기름을 바르고 옮겼다는 설…

 

실로 수많은 가정과 설이 난무하지만, 그러나 아직도 모아이 석상을 어떻게 옮겼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추측만 난무할뿐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아후' 성소에 세워 생명을 불어넣다

 

△하얀 산호로 눈을 집어넣어 모아이에게 생명을 불어넣는다.

 

 

아무튼 그들은 이 석상을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아후(Ahu)'라는 제단으로 옮겼다. 아후는 신과 고귀한 선조들을 기리기 위해 세운 야외 '성소'를 의미한다. 이 성소들은 아주 엄격한 금제(禁制)에 의해 엄격하게 보호되었으며, 정치와 종교의 중심지 기능을 하였다. 전쟁이나 전염병으로 그 아후의 혈통이 사라지면 그 성소를 버렸으며, 돌들은 다른 성소에서 사용하였다.  

 

일단 석상이 아후 아래에 도착을 하면 마무리 작업이 이루어진다. 모아이가 똑바로 세워지고, 이어 대좌 위에 세워진다. 그리고 머리위에 빨간색으로 된 거대한 원통형의 모자를 씌운다. 마치 왕관이나 터번처럼 생긴 원뿔형의 모자는 '푸카오'라고 부르는데, 일종의 고관들에게 씌운 상투 같은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얀 산호에 눈을 새겨 미리 파 놓은 두 개의 구멍에 집어넣는다. 모아이로 하여금 시력을 갖게 하는 순간이다. 시력을 갖게 된 모아이는 비로소 생명력을 부여받게 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모아이의 눈들은 모두 역간 슬픈 표정을 하고 하늘을 응시하고 있다. 근심과 걱정, 안쓰러움 을 자아내게 하는 묘한 표정이다.

 

이스터 섬에는 성소가 여러 곳에 분포 되어 있는데, 일반적으로 해안가를 따라 나란히 세워져 있다. 그러나 일부 성소는 하지와 동지의 일출과 일몰 위치에 맞추어 수직으로 세운 것도 있다. 그리고 아후 모아이는 모두 바다를 등지고 서 있는데, 그 이유는 자신들의 혈통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모아이가 굽어보는 널따란 경사면에 모여 사람들은 사회적, 종교적인 공동의식을 진행했다. 아후는 마주보고 있는 집들이 몇 채 있는데, 그것들은 족장, 사제, 그리고 다른 고관들이 묵는 곳이었다고 한다.

 

채석장을 내려오는데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무록 일어난다. 그들은 정말 이 거인들을 무슨 이유로 만들었을까? 밤이면 석상들이 걸어 다녔을까? 정말 외계인들이 와서 만든 것은 아닐까? 그들의 간절한 소원은 무엇이었을까? 미륵이 도래하는 기원을 담은 운주사의 전설과는 어떤 관계가 없을까? 이런 의문과는 아랑곳 없다는 듯 거인들 옆에는 말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거인들의 사연과는 아랑곳없다는 듯 말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다. 

 

나는 거의 45도로 기울어져 있는 모아이를 붙들고 힘껏 밀어보았다. 그러나 모아이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남태평양의 절해고도 이스터 섬까지 와서 모아이를 밀어대고 있는 나는 과연 누구인가? 꿈쩍도 하지않는 모아이를 밀어대고 있는 나는 바보다, 하릴없이 거인을 밀어대고 있다니....

 

도대체 이 모아이는 몇 백년동안 이렇게 기울어져 있었단 말인가? 이제 침묵을 지키며 누워있는 있는 거인들과 함께 하고 있는 나 역시 사지가 굳어 버린것만 같다. 모아이야, 말좀 해보아라. 나는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그러나 모아이는 여전히 입을 굳게 다물고 말이없다.

 

 

(△모아이를 밀어대고 있는 나는 바보다 ) 

어쨌든... 이 석상들 때문에 이스터 섬 사람들은 편하게 먹고 살아가게 된 것만은 분명하다. 섬에는 사실 석상 말고는 딱히 볼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 단순히 그들의 조상들이 만든 석상을 보여주는 것 하나로 그들은 먹고 살 수 있게 되었다. 석상을 만든 그들이 기원했던 용화 세계는 별다른 생산물도 없이 그냥 보여주는 것만으로 후손들을 먹고 살게 하는 것이었을까? 알 수없는 일이다. 세상일은 정말로 한 치의 앞도 알 수 없다.

 

(이스터 섬 모아이 채석장 라노라라쿠에서 글/사진 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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