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108일간의세계일주

[러시아2] 흰 눈이 푹푹 내리는 나타샤의 집

찰라777 2005. 2. 25. 23:09

 

흰 눈이 펑펑 내리는 나타샤의 집에서


 


- 이삭 성당에서 바라본 상트 페테르부르크 시내

차가운 새벽길을 달려 우린 나타샤네 집으로 갔습니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나타샤의 집을 발견한 나는 순전히 그 이름이 좋아서 그리로 가기로 했습니다. 그렇다고 나타샤네 집은 그리 싼 집도 아닙니다.

하루 밤에 50달러나 되니 배낭여행 자에겐 무척이나 비싼 집이였습니다. 난 처음엔 그 집이 러시아인이 경영하는 게스트 하우스인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니 한국인이 방 세 칸의 아파트에서 운영하는 게스트 하우스였습니다.

어쨌든… 난 나타샤라는 이름이 좋았습니다. 나탸샤네 집은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네바 강을 건너 내가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녀는 딸의 음악 공부를 시키기 위해 한국을 떠나 온지 10년이 다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나타샤의 집에 간 날 밤 눈이 펑펑 내렸습니다. 나는 창밖에 쏟아져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문득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란 시가 떠올랐습니다. 언젠가 잠깐 어느 잡지에서인가 신문에서인가 읽어 보았던 그의 시는 눈 내리는 창밖에 금방 흰 당나귀라도 나타날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해 내고 있습니다.

 


- 나타샤가 살고 있는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아파트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물론 이 시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외우지도 못하는 시입니다. ‘가난한 내가/ 나탸샤를 사랑해서/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이 얼마나 순진한 시입니까?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산골로 가는 것이 세상한테 지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그의 가난한 마음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 아름다운 시입니다.

‘눈은 푹푹 나리고/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너무도 좋아서 응앙응앙 울어버리겠다는 백석의 순백한 마음이 꼭 오늘밤을 두고 한 말 같습니다.

나는 이미 노르웨이의 북극 송네 피오르드에서 금년 첫 눈을 맞이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헬싱키에서 밤새 달려와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맞이하는 금년의 눈은 너무도 느낌이 다릅니다. 바람둥이었던 백석도 만주와 러시아를 여행하며 그런 느낌을 받았을까요?

 

 


- 상트 페티르부르크에 거리에서 만난 러시아의 신랑신부

 


아무튼… 나타샤는 우리에게 그녀의 큰 방을 내어 주었습니다. 본인은 거실의 마루에서 자고, 우리에게는 안 방의 침대를 내 주었습니다. 그녀는 카세트에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틀어 주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피아노 협주곡 2번’ 이었습니다.

아아, 눈 내리는 러시아의 밤, 나는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들으며 깊은 잠 속으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눈은 펑펑 내리고 가난한 나는 나타샤를 사랑해서…’ ‘눈은 푹푹 내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해서…’ 나는 지금 그렇게도 그리운 나타샤의 품에 잠들고 있습니다. 나는 너무너무 좋아서 꿈속에서 응앙응앙 울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