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108일간의세계일주

킹스캐니언에서 맞이한 새해아침 - Happy New Year!

찰라777 2008. 12. 31. 08:48

"Happy New Year 2009!"

 

양파 속살 같은 태초의 신비, 킹스 캐니언의 새해아침! 

섭씨 50도를 넘나드는  12월의 킹스캐니언! 그리고 에덴정원과 계곡의 자연풀장....

 

 

껍질을 벗길수록 더욱 연한 속살을 드러내는 양파처럼, 숲을 헤집고 돌길 언덕을 지나 안으로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태초의 신비를 드러내 보이는 곳이 호주의 킹스 캐니언Kings Canyon이다. 그러나 12월의 킹스캐니언은 무지하게 덥다. 지표온도가 무려 섭씨 50도를 넘나든다. 

 

 ▲호주의 그랜드 캐니언이라 불리는 킹스캐니언은 어떤 안전장치도 없이 자연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호주의 그랜드 캐니언이라 불리는 킹스캐니언은 앨리스스프링스에서 323km, 울룰루에서는 북동쪽으로 300km 떨어진 와타르카 국립공원Watarrka National Park에 위치하고 있다. 12월 31일 우리는 울룰루를 출발해서 킹스캐니언으로 향했다. 엄청 덥다! 그래도 킹스캐니언으로 가는 내내 끝없이 펼쳐진 황무지에 드문드문 피어 있는 이름 모를 야생화는 아름답다.

  

도중에 우리는 자동차를 멈추고 죽은 나뭇가지를 주어서 캠핑카에 실었다. 가이드 겸 운전수인 글렘의 말로는 오늘 밤 송년파티 캠프파이어를 하기 위해 필요하단다. 날씨가 너무나 더워 나무토막 몇 개를 줍는데도 비지땀이 흘러내린다.

그러나 밤에는 킹스캐니언의 밤은 서늘하단다. 땔감을 마련하는 것도 야생에서 살아남는 한 방법이다. 황무지에는 유칼리나무 같은 마른 나무 가지들이 군데군데 흩어져 있었다. 일행들 모두가 열심히 나뭇가지를 주어서 캠핑카의 트레일러에 실었다.  

(사진 : 캠프파이어를 위해 죽은 나무가지를 모으고 있다)

 

 

킹스캐니언으로 가는 좁은 길로 들어서자 먼지가 풀풀 휘날리는 비포장도로다. 이름모를 야생화가 여기저기 피어 있다. 꽃들은 덜덜 거리는 자동차 소리에 놀란듯 하늘거린다. 울퉁불퉁 길을 달려가는 자동차는 기관지천식에 걸린 것처럼 요동을 친다. 글렘은 자동차의 율동에 맞는 뉴 웨이브의 경쾌한 음악을 틀더니 춤을 추듯 운전을 한다. 언제 어느 때나 자연에 순응을 하는 글렘의 태도는 과연 프로다운 모습이다. 우리가 배워야 할 모습이다.

 

킹스캐니언 캠핑로지에 도착을 하니 저녁 5시 30분이다. 푸른색으로 드문드문 쳐진 텐트는 마치 군 막사를 방불케 한다. 야영텐트에 짐을 풀고 각자가 맡은 소임을 다하여 저녁식사를 마련했다. 야생에서 만들어낸 뷔페식 식사다. 마침 일행 중에 일본에서 온 한 여자 여행자가 생일날이어서 우리는 모두 ‘해피버스데이’송을 불러주며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그녀는 오지에서 맞이한 생일축하 노래에 감격을 받은 듯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더욱이 12월 31일 날이어서인지 생일파티는 분위기를 한 층 들뜨게 만들어 주었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텐트 밖으로 나와 주어온 장작으로 불을 지피고 캠프파이어를 중심으로 빙 둘러 앉았다. 탁탁 타오르는 모닥불을 바라보며 여러나라에서 온 여행자들은 저마다 생각에 잠기는 듯 했다. 컴컴한 밤에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은 노스탤지어에 젖게 한다. 피부색이 다르고, 모습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지만 모닥불 앞에 모인 여행자들의 마음은 모두가 같다. 묶은 해를 모닥불에 태워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 뿐인것 같다..

 

오지에서 맞이한 송년의 밤. 그것은 텔레비젼도, 자동차도, 전화도 없는 단절된 낯선 세계이다. 지금쯤 집에 있으면 거실의 텔레비젼 앞에 모여 앉아 눈과 귀와 생각을 텔레비젼에 뺏기고 있을 텐데...

그러나 이곳엔 텔레비젼 대신 하늘엔 별이 총총 빛나고, 땅에는 모닥불이 활활 타올랐다. 감동을 주는 자연의 밤! 타오르는 모닥불은 여행자의 고단한 마음을 녹여준다.

아주 어릴 때 섯달그믐날이면 고향집에서 대나무로 모닥불을 피워 놓고 가랭이 사이로 뛰어 넘으며 새해 희망을 기원하곤 했었던 생각이 났다. 아픈 아내와 함께 지구를 돌아돌아 온 먼 길. 하늘의 별과 땅의 모닥불을 바라보며 새해 희망을 생각해 본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처럼만 살아가게 해달라고 .....

 (사진:킹스캐니언에서 야영텐트에 맞이한 새해아침 일출)

 

이윽고.... 야영텐트에서 새해 첫날 아침이 밝았다. 5시에 기상을 하여 해가 떠오르는 언덕으로 올라갔다.  유칼리나무 사이로 떠오르는 태양이 마음을 훤히 밝혀주고 있었다. 한국을 향해 영이와 경이의 이름을 큰 소리로 외쳐 불렀다. 소리는 허공 속으로 곧 사라지고 만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겠지만 이 아빠의 마음은 알아들었겠지. 집을 떠나온 지 너무 오래되었다.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동안 해를 넘기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제 집으로 돌아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돌아갈 집이 있기에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섭씨 50도에 육박하는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킹스크릭 워크 트레킹에 나섰다.

  

정각 7시에 우리는 킹스캐니언 트레킹에 나섰다. 물을 충분히 가지고 가야 한다. 우리가 택한 코스는 4시간이 걸리는 킹스캐니언 림 워크(Kings Canyon Rim Walk이다. 킹스캐니언의 트레킹의 진수를 맛 볼 수 있는 코스라는 것. 날씨가 너무나 더웠다. 글렘은 초반이 가장 힘들다고 하며 헉헉거리는 우리들을 격려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계단을 올라가는데 비지땀이 온 몸을 적신다. 뜨거운 지열로 수은주는 섭씨 50도가 넘나든다.

 

드디어 산등성이에 올라가니 '잃어버린 도시'가 장엄하게 펼쳐진다. 수억 년에 걸쳐 이루어진 수백 개의 돔형 모래 바위들이 행렬을 이루고 있는 모습은 마치 폐허가 된 고개 도시를 연상케 한다. 오늘 따라 일행은 우리 그룹밖에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마치 고대 도시를 접수한 개선장군처럼 의기양양하게 길을 걸어갔다.  

  

▲'잃어버린  도시'라는 닉네임을 가진 돔처럼 생긴 바위는 마치 페허가 된 고대도시를 연상케 한다.

 

잃어버린 도시를 지나 흉측하게 벌어진 바위를 건너뛰다 보니 두부처럼 매끈하게 잘려진 황금빛 절벽이 나타난다. 뭐랄까? 마치 붉은 복숭아를 반으로 갈라놓은 듯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절벽의 모습은 감동 그 자체다. 어떤 안전보호시설도 없는 자연그대로다. 깎아지른 절벽이 300미터가 넘는다고 한다. 우리는 절벽 끝에 간신히 엎디어 채 아슬아슬한 절벽을 내려다본다. 절벽 끝에 엎디어 낭떠러지를 내려다보는 스릴은 마치 청룡열차를 타는 기분이다. 이곳이 바로 깊이 숨어 있는 호주의 그랜드 캐니언이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배추 속살같은 핑크빛 바위는 태초의 신비를 느끼게 한다.

 

그렇게 한 동안 엎디어 있다가 아찔한 절벽과 바위 사이 틈을 헤집고 한 참을 걸어갔다. 깊게 패인 절벽 사이로 버드나무 같은 유칼리나무와 양치류 식물이 즐비하게 늘어선 작은 숲이 나왔다. 벌레물린 곳은 야생에서 체취한 진액을 발라 치료를 했다. 글렘이 뜬물같은 식물의 진액을 벌레물린 곳에 발라주는 모습을 바라보노라니 야생에 병을 치료하는 것들이 다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디선가 물이 흘러가는 소리가 들린다! 더위에 지친 일들은 모두 와아! 하고 소리를 지른다.  물소리를 따라 계곡으로 내려가니 배추 속살 같은 정원이 펼쳐진다. 여기가 바로 '에덴 정원Garden of Eden'이다. 마치 아담과 이브가 살았을 법한 비밀의 장소처럼 계곡은 아늑하다.

 

  

영원히 잊지못할 킹스 캐니언 트레킹(동영상)

 

절벽 사이 사이 아주 비밀한 곳에 작은 연못이 나온다. 이런 곳에 연못이 있다니! 정말 아담과 이브가 목욕을 했던 연못처럼 아늘하고 비밀스럽다. 사람들은 마치 아담과 이브가 된 듯 거의 알몸이 되어 계곡의 물속유희를 즐기고 있었다. 자연의 신비함은 곳곳에 숨어 있다.

 

절벽이 만들어낸 그늘 때문에 자연풀장의 물은 먹물을 풀어 놓은 듯 물이 검게 보인다. 으시시한 분위기도 풍긴다. 그냥 물속으로 뛰어 들어가고 싶은 충동이 절로 생긴다. 드디어 사람들이 하나 둘 옷을 벗어던지고 물속으로 뛰어 들어간다. 발만 담그고 있어도 시원하다. 아득히 먼 절벽 위에 있는 사람들도 물속으로 뛰어드는 모션을 취한다. 날씨가 워낙 더우니 누구나 물속에 들어가고 싶을 게다.

  

▲ 바위틈으로 흘러내린 물이 풀장을 이루고있는 에덴 정원. 아담과 이브가 목욕을 했을법한 연못이다.

  

시원한 연못에 앉아있자니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겠다. 한동안 휴식을 취한 후 다시 트랙을 따라 절벽을 오른다. 마치 배추 속 같은 황금빛 바위 결이 태고의 신비를 숨 쉬고 있다. 애버리진의 드림타임에 따르면 고양이 형상의 조상신들은 수백, 수천 개의 돔 위에 앉아 정신을 통일하고 세상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애버리진이 디제리두를 불어 아침을 알리고, 낙타를 타고 사막을 건너는 풍경! 이 땅은 그래야 격에 맞다. 그러나 백인에 의해 정복된 아웃백은 어 이상 애버리진의 드림타임이 없다. 

 

우리는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길을 따라 걸어내려갔다. 자연과 하나가 되는 시간! 킹스 캐니언에 노을이 진다. 우리는 먼 옛날 애버리진들의 걸어갔을 길을 걸으며 생각에 잠겼다. 킹스캐니언의 부시워킹은 잊지못할 추억으로 영원히 남을 것 같다.

 

 

*아웃백 부시워킹은 몇 가지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먼저 공원에 도착을 하면 방문 센터에서 워킹 트랙에 관한 자세한 정보와 주의사항이 적힌 안내서를 꼭 챙겨 두어야 한다. 그리고 부시워킹을 할 때는 안내서, 지도, 표지판을 눈여겨 살펴보고, 최소한 2리터 이상의 충분한 물을 준비해야 한다. 선글라스, 비상식량, 자외선 차단제는 기본 준비물이고 벌레에 물렸을 때 비상약도 챙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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