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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즈번- 브겐베리아 그늘 아래서

찰라777 2009. 2. 9. 12:38

 

▲ 사우스 뱅크 파크랜드의 부겐베리아 아치. 연분홍 부게베리아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1월 5일, 다윈을 출발한 비행기는 오후 6시 40분에 브리즈번에 착륙했다. 숙소에 도착하여 도미토리를 배정 받아 2층으로 올라가니 유럽에서 온 아가씨들 세 사람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무더운 날씨 인지라 그들은 거의 비키니 차림 비슷한 짧은 핫팬츠에 가슴이 훤히 드러내 보이는 러닝셔츠를 걸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이미 흔히 경험한 터라 이제 서슴없이 서로 인사를 나누며 악수를 하는데 익숙해졌다.

 

브리즈번은 호주의 여행지 가운데서도 휴양을 즐기려는 사람들의 관문 역할을 한다. 겨울에도 따뜻하기 때문에 시드니나 멜버른 등지에서 추위를 피해 관광객이 몰려드는 곳이 브리즈번이다. 여름에는 북쪽으로 길게 뻗어 있는 선 샤인 코스트나 세계 모든 서퍼들의 꿈의 해변이라고 일컫는 서퍼스 파라다이스가 있는 골드코스트 가는 여행객들의 기지역할을 하고 있다.

  

 ▲생동감이 넘치는 도시 브리즈번. 브리즈번 강을 끼고 남쪽과 북쪽으로 갈라져 있다.

 

브리즈번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하루는 선 샤인 코스트를, 그리고 다른 하루는 골드코스트를 가기로 했다. 골드코스트에는 5년 전에 유럽여행 때 만난 친구 조앤과 카멜리온이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 도착한 날 저녁 조앤에게 전화를 했더니 그녀는 꼭 들려달라고 했다. 그녀와 카멜 그리고 그녀가 가장 아끼는 인형 마티가 우릴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우리도 그들이 보고 싶었기에 꼭 들리겠다고 약속을 했다.

 

다음날 우리는 백페커스에서 운행하는 셔틀을 타고 트랜짓 센터에서 내렸다. 트랜짓 센터에서 시청까지는 그리 멀지가 않다. 로마 스트리트에서 500미터 정도만 내려가면 브리즈번 시내 한 가운데 서있게 된다.

  

 

 

 ▲활기찬 퀸 스트리트 몰. 브리즈번 거리는 남자와 여자이름으로 크로스를 이루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브리즈번에서 가장 특이한 점은 거리 이름이다. 시내 한 가운데로는 브리즈번 강이 'S'자형으로 유유히 흐르고 있다. 그 강의 흐름과 평행인 길은 남자들의 이름이 붙여져 있다. 윌리엄, 조지, 앨버트, 에드워드 … 반면에 강의 흐름과 직각인 거리에는 앤, 애들레이드, 퀸, 샬럿, 메리, 마거릿 엘리스와 같은 여자 이름으로 불리어지고 있다. 그 사유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어쨌거나 브리즈번 거리를 걷다보면 남자와 여자가 크로스로 서로 얽혀 있는 거리를 걷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음양의 조화가 이루어진 것 같은 거리는 생동감이 느껴진다.

 

"남녀가 만나는 네거리만 기억하면 길을 잃을 염려는 없겠네요?"

"그럼, 당신을 퀸이라고 불러주지."

"그럼 당신은요?"

"난 조지라는 이름이 좋아. 촌스럽기는 하지만."

  

 ▲시내의 중심 시청사. 시청사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다.

 

퀸 스트리트 몰에서 아내가 숍을 구경하는 동안 나는 시청 주변의 사진을 찍기로 하고, 우리는 1시간 후에 퀸 스트리트와 조지 스트리트가 교차하는 트레저리 카지노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브리즈번 시내는 바둑판처럼 정리가 잘되어 있어 거리를 찾기가 아주 쉽다.

 

"하이, 퀸! 여기야."

 

1시간 후에 트레저리 카지노 앞으로 가니 아내가 두리번거리며 나를 찾고 있었다. 퀸과 조지가 만나는 거리는 한가롭다. 평화롭고 낙관적인 느낌을 주는 곳이다. 빅토리아 브리지 쪽으로 걸어 나간 우리는 강변을 따라 산책을 했다. 자유로운 분위기를 가진 강변의 산책로는 살아 숨 쉬는 생동감이 넘쳐흐른다.

  

수양버들나무와 물에서 잘 자라는 나무들이 강심에서부터 하늘을 덮고, 그 사이로 나무로 된 산책로가 놓여 있다. 나무가 거의 없는 한강 둔치의 모습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현대적인 감각을 잘 살리면서도 생태 고리를 연결하고자 하는 노력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이런 산책로라면 끝없이 걷고 싶은 길이다. 사람들이 들끓는 길보다 한적한 길을 우리는 언제나 좋아했다. 그래서 여행지의 나라에 도착한 도시나, 마을 마다 우리는 한적한 길을 찾아 산책을 하곤 했다. 우리들의 여행은 늘 그런 식이었다. 이곳 브리즈번 강변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더워서인지 사람도 별로 없었다.

(▲사진 : 브리즈번 강변의 산책로. 수모깅 우거진 강무위에 나무로 산책로를 만들어 놓고 있다)

  

 ▲보테닉 가든에 핀 하트모양의 꽃

 

수변 로에는 가끔 물고기들이 튀어 올랐다. 길을 걷다보니 넓은 잔디밭이 나왔다. 하트모양의 꽃이 눈길을 끌었다. 보테닉 가든이다. 보테닉 가든에는 온갖 꽃들이 가득 피어 있었다. 우리는 보테닉 가든에서 꽃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늘에 쉬기도 하다가 상류로 거슬러 올라갔다.

 

오후에는 빅토리아 브리지를 건너 남쪽에 있는 사우스 뱅크 파크랜드 길을 걸었다. 전시관에서 강변을 따라 이어지는 녹지대는 브리즈번 여행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곳이다. 거대한 전시관은 88년도에 세게 엑스포가 열렸던 곳이라고 한다.  

 

 ▲허니문의 길인가? 연분홍 부겐베리아 아치는 마치 허니문을 길을 열어주는 듯 했다.

 

길을 따라 걷다보니 부겐베리아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그랜드 아치가 마치 허니문의 길을 열어주듯 도열해 있었다. 'Grand Arbour'라는 지역이다. 물결치듯 하늘로 치솟아 오른 아치에는 연분홍의 부겐베리아 꽃이 아치를 칭칭 감아 돌며 꽃의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와~ 이건 우리들의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허니문 길 같아!"

"정말, 이번 여행의 대미를 장식해 주는 것 같군요."

 

우린 한 동안 부겐베리아 아치 밑에서 감탄에 감탄을 연발하며 신혼부부처럼 그렇게 서 있었다. 그런데 내 옆에 서서 감탄사를 쏟아내던 아내가 갑자기 쓰러졌다. 호사다마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한 말일까?

 

"여보, 왜 그래?"

"갑자기 다리가 마비가 되는 것 같아요."

 

부겐베리아 물결 밑에 스러진 아내는 쓰러진 채 다리를 움켜쥐고 있었다. 나는 급기야 아내의 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십분 동안을 나는 부겐베리아 아치 밑에서 아내의 다리를 주물렀다. 1시간 정도나 지나서야 아내는 겨우 일어났다. 심한 당뇨를 않고 있는 아내는 가끔 사지가 마비되는 경우가 있는 데 이번은 좀 심한 것 같았다. 이번 여행중에도 결코 이번이 한 번이 아니었다. 그래도 죽도록 여행을 좋아하는 아내는 아무래도 좀 별난데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더운 날씨에 너무 많이 걸어 다녔어. 자 저기 그늘로 가서 좀 쉬자고."

"그런 것 같아요."

  

▲한 동안 아내의 마비된 다리를  풀어주며 쉬었던 네팔 식 사원 

 

하긴 걷기에 너무 좋은 산책로여서 너무 무리하게 많이 걸어 다닌 것 같았다. 사람의 육체는 지니고 있는 에너지보다 너무 무리하게 쓰다 보면 경고를 보내오기 마련이다. 우리는 네팔식 사원 밑 그늘에서 땀을 식히며 휴식을 취했다.

 

아내의 다리가 다시 가동을 하기 시작했다. 사원 주변에는 생태공원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야자수와 열대식물로 정글을 이루고 있는 그늘 속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생태공원에는 도마뱀 같은 동물들이 여기저기 헤엄을 치거나 눈을 끔벅거리며 지나가는 낯선 여행자를 멀뚱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열대식물이 우거진 생태공원. 도마뱀이 움직이지 않고 여행자를 쳐다보고 있다.

 

생태공원을 지나자 넓은 수영장이 나왔다. 남녀노소가 자연스럽게 수영장에서 물장구를 치거나 수영을 즐기고 있었다. 인공으로 만들어 놓은 수영장은 'Kodak Beach'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누구나 지나가다가 뛰어들 수 있는 무료 수영장이다.

 

시원한 야자수 그늘과 다양한 수목이 어우러진 수영장은 그냥 보기만 해도 좋다. 사람들은 꼭 수영복을 입고 물속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옷이든 걸치고 들어갔다. 그냥 지나가다가 더우면 옷을 입은 채로 들어가는 사람도 있었다.

 

 

 ▲아무때나 자연스럽게 들어 갈수 있는 인공 수영장

 

"자, 우리도 저 물 속에 몸을 좀 담가 볼까?"

"정말요?"

"아마 저 물속에 몸을 담구면 온 몸이 풀어질 거야."

"정말 그럴 것 같군요. 그런데 수영복이 없잖아요."

"저 사람들은 그냥 들어 가는 것 같은데."

"그래도 그렇지요. 숙소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와요."

"좋아요. 당신의 말을 따르리라."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브리즈번의 야경

 

다행히 숙소는 멀지 않았다. 숙소에 들어가 수영복을 안에 껴입고 간단한 요기를 한 우리는 다시 사우스 뱅크로 갔다. 물결은 감미로웠고, 야자수 그늘은 시원했다. 그렇게 우리는 오후 한때를 수영장에서 보냈다. 헤엄을 치며 물장구를 치다 보니 아내의 근육도 릴렉스하게 풀어진 모양이었다. 어린아이처럼 마냥 즐거워하는 아내의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여행의 대미에서 수영을 즐기는 오후의 한 때. 여행이란 이런 것인가? 우리는 강변에 어둠이 깔리고 가로등이 켜지는 늦은 저녁까지 물장구를 치며 그렇게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호주 브리즈번에서 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