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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거인, 노무현 전대통령을 위한 묘비명은?

찰라777 2009. 5. 30. 14:02

작은 거인, 노무현 전대통령을 위한 묘비명 하나

-노무현은 한국의 작은 거인이었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노무현 대통령의 유서 중 한 구절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삶을 보면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의 삶과 여러모로 흡사한 점이 있다. 드골은 그가 추진했던 헌법개정안이 국민투표에서 부결되자, 잔여임기를 3년이나 남겨놓고서도 "나는 오늘 밤 12시를 기해 대통령직을 사임한다"란 단 한 줄의 짧은 하야성명을 남기고 바로 그날 밤 파리에서 287km 떨어진 '콜롱베(Colombey les Deux Eglises)라는 작은 마을로 낙향해 버렸다. 한 마디로 그는 사라질 줄 아는 영웅이었다. 드골 대통령의 묘비명 또한 매우 간단하다(사진 : 프랑스 콜롱베에 잠든 드골대통령의 묘지). .

 

"샤를르 드골 1890~1970"

 

마을 공동묘지에 묻힌 드골의 묘비명이다. 그는 어떤 장식도 거부했다. 왜 판테온 같은 위인 묘지에 묻히기를 거부하고 작은 시골 향리에 묻힌 것일까? 그 사연은 이렇다. 그의 딸 ‘안느’는 장애인 이였다. 그는 당시 정치에만 골몰하여 딸을 제대로 돌볼 수가 없었다. 그 사이 안느는 죽었고, 시골의 보잘 것 없는 묘지에 묻혔다. 드골은 딸 안느를 항상 가슴 속에 품고 살아야 했다.

 

먼 훗날 죽음을 앞둔 드골은 그의 딸 ‘안느’의 곁에 묻어달라고 유언을 했다. 드골의 유언대로 그는 72달러짜리 평범한 참나무 관에 넣어져 마을 공동묘지인 딸 안느 옆에 보통사람처럼 평범하게 안장이 되었다. 드골의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졌다. 거인 대통령치고는 너무 초라하고 검소한 묘비명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거인의 죽음도 묘비도 과연 거인답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 대통령의 재임시절에는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그를 평가절하 했다. 솔직히 나 역시도 그중의 한 사람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퇴임 후에는 봉화마을로 내려가 늪과 환경 등 생태계보존운동에 전력할 것이라는 구상이 발표되면서부터 나는 그에 대한 내 생각은 달라졌다. 또한 실제로 행동으로 옮긴 그의 삶을 바라보며 나는 "참으로 멋진 분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는 죽은 후에도 국립묘지 같은 곳에 묻히는 것을 거부하고 집 가까운데 묻어달라는 유서를 남겼다.

 

비록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가 끝난 후에 그의 고향 봉화마을로 낙향을 했지만, 그는 우리나라의 대통령 중 최초로 낙향을 한 대통령이다. 그가 실제로 서울에서 500여 km나 떨어진 봉화마을로 낙향을 실행하여 살아온 것은 우리나라 정서로 보아 참으로 내리기 어려운 결단이다. 해방이후 모든 대통령이 서울에 칩거하다시피 하며 살고 있는 것과 비교해보면 참으로 멋진 삶이다. 얼마나 자유로운 삶인가! 아직도 손녀를 태우고 논두렁길을 여유롭게 달리는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런 의미에서 드골이 프랑스의 자존심인 큰 거인이라면, 노무현은 한국의 작은 거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비록 몸집은 드골보다 작지만 그의 생각은 드골 못지않게 크다. 이 한국의 작은 거인, 노무현 대통령에게는 과연 어떤 묘비명이 새겨질까? 이미 유족들과 그분을 모셨던 측근들은 그분을 기리는 묘비명을 미리 결정해 놓았는지도 모른다. 또한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가슴속에 저마다의 묘비명이 이미 새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그는 이미 유족을 초월하여 모든 국민이 흠모하고 가까이 하고 싶은 유일한 서민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치러지긴 했지만 그분의 유서로 미루어 보아 거창한 국민장이나 큰 묘지도 원치 않은 것 같다. "집 가까운 곳에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이 유언에는 그분의 모든 생각이 함축되어 있다. 그는 죽어서도 귀여운 손녀를 자전거에 태우고 고향 봉하마을의 논두렁길을 달리고 싶었을까? 여기 작은 거인, 노무현 대통령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한 사람으로서 내 마음속에 그를 기리는 묘비명 한 줄을 새겨본다.

 

“바보 노무현, 봉하마을에 잠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