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우리강산/전라도

[거문도]거문도에 가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

찰라777 2009. 9. 22. 23:29

거문도에 가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

  

 

거문도 하면 이생진 시인이 떠오르고, 이생진 시인을 생각하면 거문도가 떠오른다.

그만큼 이생진은 거문도 시인이다.

 

"거문도는 참 아름답다. 거문도에 가면 처음엔 자연에 취하고 다음엔 인물에 감동하고, 나중엔 역사에 눈을 돌린다. 거문도에는 아름다운 자연과 그 자연을 아름답게 키우는 강인한 생명력이 있다. 그것은 우리나라 무인도 중 가장 아름다운 백도의 실력이다. 거문도에는 100여 년 전에 아름다운 자연을 읊은 시인이 있었다. 그분은 섬이 좋아 섬만을 고집한 귤은(橘隱) 선생이다. 또 이 섬은 효성이 지극한 만회(晩悔) 선생이 살았던 곳이고, 애국애족의 표상인 임병찬 의사가 유배되어 생을 마친 곳이다." (이생진)

 

백도에서 돌아오니 오후 1시다. 배가고프다. 거문도 산책을 잠시 유보를 하고 부두에 있는 강동횟집으로 들어갔다. 횟집에 들어가니 대낮부터 술상을 벌리고 왁자지껄 떠드는 건장한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온다. 갈치회에 소주를 몇 병을 마셨는지 식탁위에는 소주병이 줄줄이 서 있다. 때는 마침 은갈치 철이 아닌가?

 

강동횟집 주인아주머니는 우릴 안방으로 모신다. 밖이 너무 소란하니 조용한 곳으로 모시겠단다. 백도에서 만난 부부와 우리 부부 이렇게 안방으로 들어가 마주 앉았다. 아주머니가 곧 밑반찬과 갈치회를 서비스로 가져온다.

  

 

▲거문도 은갈치 

 

"오늘은 갈치가 좋아요. 갈치회, 갈치구이, 갈치조림…"
"하하, 갈치풍년이군요. 그럼 갈치조림 하나, 갈치구이 하나."

서비스로 가져온 갈치회가 부드럽고 입에 쩍쩍 붙는다.
"아줌마, 이거 서비스 한사라 더."
"오메 엄청 비싼것인디. 그래도 드려야지."
"엄청 맛있네요."


거문도 인심이 이런 것이다. 아주머니는 또 한사라 갈치회를 서비스로 듬뿍 가져온다. 백도의 절경에 취하고, 갈치회 맛에 취하고. "알고 보면 우리나라 섬 중에 가장 아름답다는 백도를 구경하고 생선회에 취하는 것으로 끝낼 거문도가 아니다. 거문도엔 조용한 고독이 있고, 동백 숲에는 안개처럼 자욱한 시(詩)가 있다."(이생진)

시인의 말처럼 거문도 갈치회에 취해 있을 때만 아니다.

 

 

▲수월산으로 가는 목넘어 


"택시를 불러들일게요. 오며 가며 6000천원이면 거문도 등대를 다녀 올 수 있거든요. 거문도 등대 다녀오시어 영국군 묘지도 둘러보고, 갈치 경매장에도 가 보셔야지요."


강동횟집 아주머니는 이제 거문도 관광 안내까지 곁들어 준다. 곧 택시가 왔다. 택시를 타고 수월산으로 향했다. 거문도에 있는 단 하나의 다리 삼호교를 건너 좁은 길을 조심스럽게 달려간다. 유림해수욕장을 지나니 곧 수월산으로 가는 목넘어 길이 나온다. 목넘어는 거문도 등대로 가는 목처럼 생긴 바닷길이다. 태풍이나 해일이 일면 바닷물이 넘나드는 곳이라 해서 '목넘어'라고 부른다고 한다.

 

목넘어 길을 지나니 동백나무와 상록수림이 어우러진 숲 터널이 이어진다. 동백새의 지저귐이 예쁘다. 이런 길이 있다니, 경이롭다. 숲 터널을 빠져 나오니 하늘을 향해 서 있는 '선바위'가 노인처럼 바다에 앉아있다. 그 뒤로 거문도의 기암괴석이 시원하게 이어진다.

 

가다가 하늘을 보고, 가다가 바다를 보고, 가다가 숲을 보고… 이윽고 백탑의 거문도 등대가 푸른 창공에 솟아올라 있다. 남해안 최초의 등대 '거문도 등대'는 시인의 등대다.


 등대로 가는 길 1

 

숲속을 나와
다시 숲속으로
나는 천국에서 걷는 걸음을 모르지만
이런 길은 이렇게 걸을 거다
가다가 하늘을 보고
가다가 바다를 보고
가다가 꽃을 보고
가다가 새를 보고
머리로 생각하지 않아도
머리로 고민하지 않아도,
웬일로 나를
나무가
꽃이
새가
혹은 벌레가
아직 살아 있는 나를
행복의 길로 몰고 가는지 모르겠다
너무 행복해서 죄스럽다
까닭 없이 내게만 편중된 행복
남들이 시기하겠다
사람들에게 매맞겠다
사랑도 속박이니
지나친 행복도 구속이니
다시 슬프고 외롭게 해다오 (이생진 거문도 등대 중에서)

 

다름 날이 필요 없다. 시인의 노래 하나로 거문도 등대의 아름다움을 대신한다. 거문도 시인 이생진. 그는 '거문도 후기'를 이렇게 말한다.

 

"다시 돌아오면 일상의 그 걱정은 이어지지만 그저 훌쩍 떠나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그러나 훌쩍 떠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늘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도
이것저것 따지다 보면 떠나기 어려운데,
그렇지 못한 사람은 얼마나 어려울까.
떠나고 싶을 때 떠나지 못하는 마음 알 만하다.
세상에 자유가 많은 것 같아도 실지 이용하려고 들면
부족한 것이 자유다.
그러나 좌절하지 말라.
그저 출발해보는 것이다.
도중에 되돌아오는 한이 있더라도, 출발하는 것이다.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출발이다.
출발할 줄 모르는 자에게 무슨 자유가 있겠느냐,
일단 출발했으면 뒤돌아보지 말라."  (이생진 시집 [거문도] 후기 중에서)  

 

 

 

거문도 등대에 올라 먼 바다를 바라보니 백도가 아스라이 보인다.

날이 더 청명한 날은 제주도까지 보인다고 한다.

 

"여기서 제주도까지는 98km인데요. 맑은 날은 제주도가 보입니다."

 

운 좋게 거문도 자연 해설가를 등대에서 만났다. 그는 거문도와 백도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을 해준다.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며 당첨을 하면 거문도 등대의 별장에서 머물 수도 있단다. 관백정에 앉아 푸른 바다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시간을 가는 줄 모르겠다. 환상! 그것이다.

 

거문도 등대에서 내려와 횟집에 들려 아내는 거문도 갈치를 사겠다고 한다. 그 사이 나는 영국군 묘지로 올라갔다. 그곳에는 미처 돌아가지 못한 19세기의 영혼이 누워 있었다. 어쩌다 이곳까지 와서 뼈를 묻었을까? 그러게 남의 나라를 함부로 침범하지 말아야지.

 

선착장으로 내려오니 여수로 돌아갈 시간이 다 되었다고 마이크는 말한다. 은갈치 펄럭이는 거문도, 바다 냄새 물씬 풍기는 거문도, 이생진의 거문도, 그리고 환상의 섬 백도가 멀어져 간다. 거문도를 떠나는 나는 어느새 어중이 거문도 시인이 되어 있었다.

 

 ▲거문도 등대

 

 ▲등대지기

 

 ▲관백정

 

 ▲선바위

 

 

▲ 영국군 묘지

 

 

 

 ▲은갈치 경매장

 

 

(거문도에서 글/사진 찰라)

 


'아름다운우리강산 > 전라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적의 등산 지리산 천왕봉  (0) 2009.09.25
지리산 법계사의 일출  (0) 2009.09.24
풍년  (0) 2009.09.22
[백도]다도해의 마지막 남은 절경  (0) 2009.09.21
달마산에서 만난 기인청년  (0) 2009.09.15